3화
어차피 지금 바로 차를 얻어타고 가지 못하니.
잠깐 내려서 확인해볼까?
경신법을 펼쳤는데.
느릿느릿. 그냥 평범한 달리기?
무공이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
[데이터 이전 갱신 중에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 짜증.
갱신이라는 게 얼마나 남은 거지?
83%…. 아직도 진행 중이네.
그냥 뛰어서 괴물이 가까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이렇게 보니.
더 크다.
몸통만 2m는 되겠는데?
거미는 다리가 8개이지 않나?
그런데 저건 12개가 넘는다.
다리 길이도 유난히 길고 가늘었고.
거기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두 마리까지 합치면 총 3마리.
비교적 가까이 있는 녀석의 머리를 보니, 그냥 거미다. 사람의 얼굴을 전혀 닮지 않았다.
“안면지주는 확실히 아니네. 아쉽다. 잡아서 영단을 빼먹을 수 있었는데.”
경험상 저런 괴물은 내단이 없다.
박민준의 목소리를 듣고 송하영이 흠칫 놀랐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그가 태연한 얼굴로 위를 가리켰다.
“저걸 가까이서 구경하려고.”
“네? 괴물을 구경하러 왔다고요?”
“그래. 뭐 잘못됐나?”
“제가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위험하니 어서 피하세요.”
“내가 알아서 하지.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아놔 진짜! 어서 차로 가시라고요. 이러다 아저씨가 다쳐요. 아니 죽을지도 몰라요.”
“너는 괜찮고?”
“나는 아저씨가 보다시피 헌터잖아요.”
“헌터? 네가 사냥꾼이라는 건가? 아까는 공무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헌터직 공무원이요. 그걸 몰라요? 아! 모를 수도 있겠네.”
이 아저씨. 2002년에 다른 세상에 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왔다고 했지.
세상이 변한 건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었고.
거짓말이 아니었나? 아님, 그냥 미친 건가?
둘의 대화 소리가 컸는지.
근처를 수색하던 강인석도 그들이 여기 있는 걸 알았다.
“야! 너 뭐야? 저 민간인은 또 왜 여깄는 거고?”
“선배님? 그게요.”
“민간인을 집에 데려다주라고 했더니. 괴물 근처로 데려와? 너 미쳤어?”
“아니요. 선배님. 제가 미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아니긴. 큰일 나기 전에 어서 저 사람 데려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싸우고 싶어요. 신입이라고 맨날 후방에서 지원이나 하고….”
“너 진짜 계속…! 피해!”
후배를 다그치던 강인석이 순간 그녀를 밀쳐냈다.
휙!
하얀색 거미줄이 송하영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당!
옆으로 넘어진 그녀가 놀라 뒤를 돌아봤다.
높은 곳에 있던 대형 다발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쏘면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그녀가 멀뚱히 서 있는 박민준의 손목을 붙잡았다.
“따라와요. 어서!”
“난 신경 쓰지 말라니까. 그냥 너희 할 일이나 해. 사냥꾼답게 저 괴물을 사냥해 보라고.”
“아저씨! 그런 미친 소리 하지 말아요. 저게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데. 여기서 구경하겠다는 거예요?”
대형 다발 거미.
일반 거미보다 다리가 더 많고, 크기도 무지막지하게 더 컸다.
굉장히 빠르고 민첩한데다 거미줄을 쏴서 높은 곳을 날아다니듯 움직이기까지 했다.
이동할 때 소리도 전혀 내지 않아, 녀석이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로웠고, 위험등급 4단계 괴물로 어지간한 헌터는 혼자 상대할 수 없었다.
탕! 탕!
어느새, 권총을 뽑아 든 강인석이 다가오는 괴물을 노렸다.
탕! 탕! 탕! 탕!
거대 다발 거미가 날아오는 총알을 다리 중 하나로 막거나 피했다. 또는 거미줄을 연이어 엄청나게 쏘기도 했고.
“이런 젠장. 더럽게 큰 놈이 정말 더럽게 빠르네.”
역시나 저 정도 되는 괴물은 총보단 육탄전인가?
하급 헌터가 아니면 아니, 하급 헌터도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 총을 잘 안 쓰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강인석도 권총을 버리고 서둘러 검을 뽑았다.
근접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중급 이상의 헌터는 이런 방식으로 직접 괴물을 상대했고, 총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대로 괴물을 상대하려던 그가 가뜩이나 찌그러진 얼굴을 더 구겼다.
“민간인이 왜 아직도 여깄어? 너 진짜 나중에 혼날 줄 알아!”
송하영을 향해 크게 소리치더니.
바로 앞까지 다가온 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싹둑!
기세 좋게 덤비던 거미의 다리를 하나 잘라냈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도 다리가 많았고, 다른 다리를 창처럼 찔러 들어왔다.
팅!
검을 들어 침착하게 정면을 막은 강인석.
하지만 각성한 그도 결국 사람이었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었으니.
푹!
등 뒤로 다가온 녀석의 또 다른 다리.
그게 강인석의 허벅지를 뒤에서 찔러서 앞까지 튀어나왔다.
“으악!”
상처 부위가 커서 그런지, 엄청난 양의 피가 솟구쳤다.
“안 돼! 선배! 내가 구해줄게요.”
그걸 본 송하영이 민간인을 버리고 선배에게 뛰어갔다.
한편, 박민준은 괴물을 상대하는 강인석을 보고 연이어 놀랐다.
상당히 빠르다.
그뿐 아니라.
‘저자는 분명 검에 기를 주입했다.’
경신법에 이어, 검기라니.
마치 무공을 익힌 사람 같지 않은가?
지구에 괴물이 나타난 것도 신기한데.
무림인이라니?!
거기다 저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기를 자유롭게 검에 담을 정도면 일류고수라고 할 수 있다.
전설의 인면지주도 아닌, 단순히 거대한 거미 괴물쯤은 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어차피 지금은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데이터 이전 갱신은?
아직도 안 끝났다.
답답하긴 하지만 할 수 없지.
팔짱 끼고 서서 저자가 거미 괴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네.
그런데 이게 웬일?
예상보다 너무 쉽게 괴물에게 당해버렸다.
‘움직이는 동시에 검에 기를 주입할 수 있는 고수가 저런 공격도 못 피해?’
저건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
무공이란 단계가 있다.
수련을 통해 계단처럼 밑에서부터 한 개씩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상위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아! 물론, 예외도 있다.
박민준은 시스템을 가진 덕분에, 무공의 성취가 계단이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처럼 올라갔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위층까지 빠르게 올라갔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불과 15년 만에 정파 제일인이 되고 무림 맹주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 뒤로 5년을 더 수련하고 만렙을 찍었다.
대신 지금처럼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무공을 전혀 쓰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박민준은 성취에 걸맞지 않은 남자의 형편없는 실력에 진심으로 놀랐다.
그럼 저자를 구하려는 여자는 좀 다르려나?
탕! 탕! 탕!
송하영도 처음엔 권총을 뽑아 쐈다.
이미 선배가 쏜 총이 효과 없는 걸 알았지만, 지금은 저 괴물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 용도로 사용했다.
“좋았어. 이쪽이야. 이쪽이라고.”
그녀의 의도가 적중했고, 거대 다발 거미가 상처 입은 먹잇감을 포기했다. 도망치지 못할 거로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녀석이 새롭고 싱싱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총을 버리고 다시 검을 든 송하영이었다.
공격할 듯하다가 괴물을 피해 그대로 지나치더니.
강인석의 주변을 보호하고 섰다.
“선배. 괜찮아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빙글 돌아선 괴물이 다리를 창처럼 찔러왔다.
댕강!
괴물의 다리를 잘라내고, 뒤이어 머리에 검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크륵!
짧게 비명을 지른 괴물이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저 여자가 선배란 작자보다는 좀 낫군. 하지만.’
박민준이 보기에는 오십보백보.
일류고수라고 보기에는 둘 다 너무 형편없다.
움직임은 빠른데 효율적이지 못하다.
검에 기운을 담았는데, 그걸 제대로 검 밖으로 표출할 줄도 모른다.
검에 기운을 담아 그냥 휘두르면?
기운이 흘러넘치면서 미약하게 외부까지 영향을 주지만, 일반 검을 다룰 때보다 더 강해지는 게 전부.
‘저래선 내공을 낭비만 하는 꼴이지.’
거기다 괴물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신체 능력에 기대거나,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보법을 쓰면 단순히 피하는 거로 끝나지 않을 텐데.
바로 반격하거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거다.
두 사람 모두 움직임이 빠르기만 하고 그 밖에는 엉망이다.
‘왜 이런 간단한 것도 모르지? 마치 수련을 안 하고 강해진 것 같잖아?’
저 사람들도 나처럼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는 건가?
베타라는?
박민준이 연이어 혹평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이.
쓰러진 강인석을 살피는 그녀였다.
“선배 괜찮아요?”
“그래. 살려줘서 고맙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고맙긴요. 그럼 이제 어서 피해요.”
고개를 끄덕인 그가 대답하려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뒤에!”
“네? 제 뒤에요?”
휙! 휙! 휙!
거미줄이 몇 개가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뒤돌아선 송하영이 제일 앞에 날아온 거미줄은 피했지만, 나머진 그대로 맞았다.
“이런. 개….”
그녀가 말을 끝까지 하기도 전에 하체가 거미줄로 뒤덮여 버렸다. 뒤에 있던 강인석도 금방 마찬가지 꼴이 되었고.
“선배. 이것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요?”
...
“왜 대답이 없어요? 빨리 해결책을.”
말을 하며 뒤를 돌아본 송하영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누워있던 강인석은 머리만 남고 상체까지 거미줄로 완전히 뒤덮인 상태였다. 거기다 기절한 듯 보였다.
멀리 있던 괴물 거미 두 마리가 두 사람까지 와버렸다.
“젠장.”
당황한 송하영이 들고 있는 검으로 대항했지만, 이번엔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기껏해야 녀석들의 접근을 잠시 막은 정도.
그녀의 움직임도 거미줄을 맞기 전보다 느려졌다.
검을 휘둘러도 아까의 날카로움은 보이지 않았다.
크르륵.
비웃듯 소리를 낸 괴물이 마저 거미줄을 쏴서 그녀의 몸통을 칭칭 감아버렸다.
목 윗부분만 멀쩡한 그녀를 두고, 괴물 녀석들이 방향을 틀었다.
먹잇감을 제압했으니.
이젠 새로운 걸 노리려는 건가?
박민준은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괴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낱 미물 주제에. 감히 날 노려?”
당장이라도 때려잡고 싶다.
그럼 데이터 이전 갱신은?
[베타 시스템으로 데이터 이전 갱신 중 99%…. 100%]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안내창이 뜸과 동시에 두통이 사라졌다.
온몸에 힘이 가득 찬 것도 다시 느껴진다.
‘기다린 보람이 있군.’
그의 몸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박민준의 몸이 어느새 거미 괴물 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도 원래 그가 서 있는 자리에 아직 잔상이 남아있다.
분신술이라고 오해할 정도의 초가속 움직임.
이전 무림 세계에서 이걸 봤으면.
“우와! 이형환위다!” 라고 소리치거나,
“저런 극한의 경신법이라니! 역시 무림 맹주님이시다!”
라고 감탄했겠지만, 여기선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남다른 감각과 시야를 가진 괴물조차 순간 어느 게 진짜인지 헷갈리고 있을 뿐.
크륵?
뒤늦게 자신 앞에 선 인간이 진짜라는 걸 알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박민준이 녀석을 향해 가볍게 손을 한 번 내밀었을 뿐인데.
펑!
폭발음과 함께 왼쪽에 있던 괴물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가 방금 죽인 괴물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미소 지었다.
“좋았어. 그럼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