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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2화 (2/175)

2화

마치 거대한 쇳덩이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서 내 몸과 충돌한 것 같은 충격.

몸이 붕 뜨더니.

콰당! 털썩.

차가운 땅바닥 위로 몸이 떨어지면서 2차 충격을 느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근데 신이란 놈이 빛으로 내 시야를 가리고 공격을 해?

아무리 무공의 고수라 해도 방심한 상태에서 당하면?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다른 때 같았으면 즉사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흥! 네놈의 시도는 실패했다.’

난 천마를 죽이고 얻은 천잠사의 장포를 입고 있다.

‘더럽게 아프긴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는 날 죽일 수 없지.’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억지로 눈을 떴다.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이제 넌 죽었다.’

지금 당장 죽이지 못하더라도, 10년, 아니 몇십 년이라도 상관없어.

감히 날 농락해?

내가 얼마나 간절했는데.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로 날 현혹하고 우롱해?

그런데 신이란 놈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도망친 건가?’

내가 죽지 않은 걸 알고 쫄았나?

근데 여긴 어디지?

풍경이 확 달라졌잖아?

천마 성의 중심부에서 시체들 사이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 위?

그것도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다.

무림 세계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

이건 지구에서나….

그렇구나.

내가 다시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온 거야.

그럼 내가 차에 치였던 건가?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내가 혼자 놈을 오해했어.

빵빵!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날 향해,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차종인데?

외제 차니까. 뭐. 내가 모를 수도 있겠지.

빵빵!

“아 좀 비키라고! 빨리 안 비키고 뭐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운전석에서 지랄하든 말든.

천천히 내 몸부터 살폈다.

상처 입은 상태에서 잘못 움직이면 후유증이 남을 테니까.

어디가 잘못됐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어디 부러진 곳은 없네. 다행이다.’

아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갈비뼈와 왼팔이 부러진 줄 알았다.

내장도 멀쩡했다.

‘천잠사의 장포가 충격도 일부 흡수해준 모양이네.’

역시 전설급 아이템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빵빵!

“야! 죽고 싶으면 저쪽으로 가라고. 왜 여기서 길막이야?”

내 몸이 정상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 천천히 길가로 움직였다.

그걸 본 운전자가 욕하며 차를 몰고 지나갔지만,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저 남자는 맨 처음 날 차로 친 놈도 아니고.

그놈은 이미 뺑소니쳤다.

내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너그럽게 봐주마.

윽!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다.

과거에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네. 역시 차원 이동의 부작용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미확인 시스템 탐지]

[알파 버전으로 확인]

[베타 시스템으로 데이터 이전 갱신 중 1%….]

이건 또 뭐야?

차원을 넘어왔는데도 시스템이 작동해?

근데 베타 버전?

내가 무림 세계에 가서 얻은 시스템은 알파 버전이었는데?

자칭 신이란 놈도 자길 알파라고 하지 않았던가?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왜 지구로 다시 돌아왔는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작동하는 거냐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차원 이동의 부작용에 갱신인지 뭔지가 더해지니.

머리가 더 깨질 듯이 아프다.

마치 누가 내 뇌를 손으로 휘젓는 기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당해본 적은 없다.

너무 심한 고통에 기절하기 직전.

옆에 보이는 가로수를 손으로 짚으며,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버텨 섰다.

[베타 시스템으로 데이터 이전 갱신 중 17%….]

고통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다시 정신 차렸다.

‘그나저나 여긴 정확히 어디지?’

한국말이 들리긴 했지만, 집에서 동떨어진 곳일 수도 있다.

가족을 만나려면 정확한 위치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마침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지성길?

설마 그 젊은 축구선수를 말하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저 이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보던 도중 갑자기 이세계로 끌려갔으니까.

그 당시에 나와 같은 22살 선수라고 했을 텐데.

그 어린 선수의 이름을 따서 도로가 생겼다고?

지금 몇 년도인 거지?

2002년은 아닐 거다.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길 정도면 시간이 많이 흘렀겠지.

설마, 막 30년이 지나고 그런 건가?

아니면 50년? 100년?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다.

눈앞이 까맣게 변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두통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시간의 무게란.

최강의 무공이고 뭐고, 내가 얼마나 긴 시간을 놓쳤을지.

부모님은? 동생은? 친구들은?

모두 살아있긴 한 건가?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돌아오면 그냥 차원 납치될 당시 그대로의 인생을 이어가며, 평범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젠 그렇게 하지 못할 거란 강한 의심이 들었다.

두통, 혼란, 억울함, 분노, 슬픔 등.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 차리자. 이렇게 무너지면 안 돼.’

이계에서도 악착같이 혼자 살아남은 내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심호흡하자, 공황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내 어깨를 건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저기 아저씨?”

누구지?

내가 뒤를 내주다니?

아주 잠시 방심했을 뿐인데?

적이면 즉시 박살 낼 생각으로 손에 기를 잔뜩 모았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빠르게 뒤돌아섰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이상한 재질의 갑옷? 같은 걸 입고 있었고.

왼손에는 검까지 들었네?

지구로 돌아온 게 아니었나?

그럼 박지성길은 뭐야?

아까 한국말로 들었는데?

여자 뒤편으로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더 보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언제 나타난 거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내가 이걸 몰랐다고?

하긴 평생 처음 느껴보는 공황이었다.

이 세계에 납치되었을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이젠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다.

어차피 지금 나타난 이들이 내 적이라면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난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저기요. 제 말 듣고 계세요?”

“뭐?”

“괜찮으시냐고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적은 아니군.

그럼 죽이는 건 보류.

***

송하영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앞에 있는 강인석에게 말했다.

“선배님. 저 사람 지문조회 결과가 나왔어요.”

“뭐라고 나왔어?”

“이름 박민준. 아까 저 사람이 말한 것처럼 한국인이고 나이는 42살? 어? 어~어!”

순간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멀찍이 앉아있는 박민준의 얼굴과 폰 화면을 번갈아 바라봤다.

강인석이 의아해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저 얼굴이 42살이라니? 다른 세상에 다녀왔다는 말보다 더 안 믿기는데요.”

“뭐, 동안이긴 하네. 그런데 나도 좀 어려 보이지 않아?”

“전혀요. 선배님은 그냥 자기 나이로 보여요.”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강인석이 퉁명스럽게 말을 돌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저 사람 범죄 이력이나 확인해 봐.”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데.

작게 쫑알거린 그녀가 서둘러 화면을 넘겼다.

“다 깨끗해요. 그런데 실종신고가 되어있네요. 연도가…. 어머! 2002년이에요. 그럼 20년 전?”

“그래? 아무튼, 실종신고 된 사람이라는 거잖아? 범죄 이력도 전혀 없고. 빌런도 아니고.”

“네. 맞아요. 하지만 2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거잖아요. 정말 다른 세상에 다녀온 걸까요?”

남자가 입고 있는 옷도 조금 특이하다.

아무리 그 어느 때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은 처음 본다.

적어도 헌터가 아닌 사람 중에서는.

하지만 저 사람은 일반인 실종자일 뿐인데?

송하영의 의문에도 강인석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우선은 네가 집에 데려다줘.”

“저 남자를 그냥 보내준다고요?”

“그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가게? 우리가 경찰이야?”

“아니요. 하지만 우리도 공무원이잖아요? 조사를 해봐야지요.”

“그래. 하지만 실종자를 상대하는 게 우리 임무는 아니잖아? 그냥 발견했다고 신고만 해줘.”

실종자와 관련된 업무는 경찰이 할 일이다.

자신이나 선배가 맡은 건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을 추적하고 처리하는 일이었고.

지금도 엄청난 에너지 발산을 탐지하고, 이곳에 출동하지 않았던가?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이런 일까지 관여할 필요는 없다.

“알았어요. 그런데 왜 제가 저 사람을 집에 데려다줘요?”

“그냥 혼자 보내면? 공황장애가 온 것 같더니만. 그런 사람이 집에 혼자 갈 수 있겠어? 그러다 사고 나면? 내일 기사에 뜰걸?”

“그렇긴 한데. 경찰을 부르면 되잖아요.”

“에너지가 탐지된 곳에?”

“아.”

경찰도 괴물 앞에서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총을 쏴봤자, 어지간한 하급 괴물이 아니고서는 별다른 피해도 줄 수 없을 테니까.

이런 위험한 곳에 불렀다간 괜한 희생만 키울 수 있다.

“알았으면 그만 말대꾸하고 어서 움직여.”

“그래도 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됐어. 신입이 도와줘서 이길 거면, 없어도 이겨.”

“아. 진짜. 저한테 계속 이럴 거예요.”

“송하영 씨! 명령대로 움직이십시오.”

“네. 선배님.”

강인석은 후배가 엄청난 집안에 어리고 엄청나게 예쁘다고 해도, 더는 기어오르는 걸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냐오냐하다가 결국, 쟤는 죽고, 난 직장에서 잘린다.’

한편,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다 들은 박민준이었다.

‘20년이나 흘렀구나.’

어느 정도 예상해서 그런지 충격이 덜했다.

아니, 오히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무척 긴 시간이지만 그래도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동생도 무사할 테니까.

자신과는 다르게, 모두 나이를 20년씩 더 먹었지만.

반대로 박민준은 이세계에선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면 신체의 노화가 상당히 늦어지는 것도 있고, 차원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임무 수행과 생존이 우선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설마 지구로 돌아와서도 나이를 먹지 않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이젠 집으로 가야지. 걱정은 나중에 하자.’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송하영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민준 씨? 제 차로 댁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따라오세요.”

“고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20년이 흘렀다.

집이 그대로 있어도, 혼자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터.

차로 편히 데려다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박민준의 반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재수 없어.’

하지만 그가 외모와는 달리, 자기 부모님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걸 깨닫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저래 봐도 42살이니까. 부모님 친구라고 생각하고 참자.’

그녀의 차를 보고 살짝 놀란 박민준이었다.

생각보다 좋은 차종.

잘 모르지만 2억? 아니 3억은 할 것 같은데.

‘저 어린 나이에 이렇게 좋은 외제 스포츠카를 몰아?’

요즘은 사회 초년생도 저런 걸 몰고 다니나?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구나.

내가 저 나이 때에는 버스비도 아껴가며 소주 사 먹었는데.

그때 함께 놀던 친구들은 지금 다 뭐 하려나?

“아저씨 뭐 해요? 어서 타세요.”

“그래.”

그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부 앙!

누가 스포츠가 아니랄까. 엄청난 엔진소리를 내며 급출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뭘 본 걸까?

그녀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다급한 얼굴로 조수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위험할지 모르니까 절대 차 밖으로 나오면 안 돼요. 알았죠?”

대답도 듣지 않고, 뛰쳐나간 그녀였다.

한편, 박민준도 뭔가를 봤다.

건물 사이에서 움직이는 검은 물체.

“인면지주? 아니, 그냥 거대한 거미인가?”

지구에 저런 건 또 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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