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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59화 (59/62)

〈 59화 〉 전투반 수색정찰조 (2)

* * *

"쓰읍­하!"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호흡기를 타고 밤새 잠들어 있던 세포를 하나하나 깨우는 감각은 정말이지 상쾌했다.

'오늘부터 광산의 더러운 공기는 안녕이다!'

그간 마스크 대용으로 천으로 된 수건을 두른 채 채광 일을 해왔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채광반 기숙사를 뒤로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어제 면접 후 보급조에서 받은 전투반 생활복 차림으로 전투반의 운동장으로 향하자 전투반 사람들이 하나둘 운동장에 집합하고 있었다.

"저기…."

"……?"

나는 그중 편안한 인상을 지닌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수색정찰조가 어느 쪽인가요? 오늘 처음이라…."

"아, 수색정찰조라면 맨 왼쪽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의 손짓을 따라 왼쪽으로 쭉 걸어가자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선 채 저마다 몸을 풀고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이번에 수색정찰조에 새로 오게 됐는데 이쪽에 서 있으면 될까요?"

맨 뒤에서 한 손으로 팔꿈치를 당기며 어깨관절을 늘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묻자 그가 팔꿈치를 당기던 손을 쓱 내려놓는다.

"예? 아, 새로 오셨다고요?"

그의 말과 동시에 몸을 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된다.

"네, 이번에 새로 전입 온 지크라고 합니다."

"뭐야? 신입이 왔다고?!"

"뭐? 신입이 왔어?"

근처에 있던 사람들부터 뒤늦게 기숙사 현관 앞의 계단을 내려오던 사람들까지 후다닥 달려와 내 주변을 둘러쌓았다.

"어디서 왔어요?"

그중 하나가 손을 살짝 들며 물었다.

"채광반에 있다가 왔습니다."

"채광반?"

"거기서 전투반으로 올라온 사람이 있었나?"

"아니, 애초에 다른 곳에서 올라온 사람이 없었는데?"

내 대답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또 다른 사람이 질문을 해왔다.

"채광반에서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채광반 작업반장님께 말씀드려 어제 전투반 반장님께 면접을 봐서 오게 됐습니다."

어제 보급품을 지급하는 사람에게 벨로스가 전투반의 반장이라는 걸 들었기에 그렇게 답하고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이 사람들, 하나같이 몸이 좋네.'

드문드문 섞여 있는 여자들조차 체격이나 근육량이 상당해 보였다. 오히려 남자인 내가 왜소해 보일 지경.

"와, 그런 식으로도 들어올 수가 있구나."

"근데 여긴 왜 자원했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요."

내가 담담히 대답하자 질문한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음…. 돈만 보고 오기에는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잘해 봐요. 저기 1조가 사람이 한 명 비었으니까 그쪽에 서면 될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도 1조의 자리로 가서 서자 날렵해 보이는 체형에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신입, 반갑다. 나는 1조 조장 벤트라고 해."

"예! 반갑습니다. 지크라고 합니다."

"크크, 안 그래도 충원이 너무 늦어져서 반장님께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앞으로 잘 해보자고!"

그의 손을 붙잡자 미소년스러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거칠고 딱딱한 손바닥이 느껴졌다.

'좀 빡세겠는데?'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인데 전투반 생활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음, 조장과 반장 외에는 직급이랄 건 따로 없지만, 저쪽이 네 맞선임이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저 친구한테 물어보면 돼."

"예!"

그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리니 1조의 맨 뒤에 서 있는 갈색 머리칼을 반듯이 묶은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장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피부가 왜 이리 하얗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 두 사람은 유독 피부가 하얬다.

"야, 율리. 네 후임이니까 네가 잘 챙겨라!"

"네에."

도도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늘어지는 말투를 쓰는 여자의 뒤로 가서 서자 여자가 천천히 뒤로 돌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키가 크네. 이 정도면 엘리랑 비슷하려나? 이름도 비슷하고.'

180 정도 되는 지금의 나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그녀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하아암, 신입이라고요?"

"예!"

"어우, 그렇게 크게 말하지 말아요. 머리 울리니까."

양손으로 귀를 감싸는 율리를 보고 소리를 한껏 낮춰 다시 대답한다.

"예."

"으음. 제 이름은 율리에요. 이제 조회 시작하니까, 궁금한 건 식사시간에 물어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뭔가 귀찮아하는 것 같네.'

그녀가 다시 뒤로 돌아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어제 본 구릿빛 피부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중년인, 벨로스가 검은색 생활복을 입고 단상에 섰고 그 옆으로 이름 모를 사제 한 명이 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빛의 여신 젤루아 님께 하루를 여는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눈을 감고 손을 모아주세요."

'기도하는 건 여기나 채광반이나 똑같네.'

짧은 기도가 끝나고 본격적인 조회가 시작되었는데 채광반의 간단한 체조를 동반한 조회가 아닌 체력단련을 방불케 하는 육체노동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체조를 시작으로 모래 바닥에 손을 짚고는 반장의 구령에 맞춰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데 그 수가 무려 300번이다. 앞에서 묵묵히 완벽한 정자세로 팔을 굽혔다 펴는 율리를 보고 있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대단하네. 어…?'

순수한 감탄을 하고 있는데 율리의 상의가 중력에 의해 밑으로 당겨지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말려 올라가 어느새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와, 무슨 여자가 복근이….'

쩍 갈라진 복근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문득 그녀가 고개를 숙이려 하자 나도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크, 눈 마주칠 뻔했네.'

남자밖에 없는 채광반에서는 시선을 조심할 일이 없었는데 성별이 뒤섞여있는 전투반에선 조심해야 할 듯했다. 그 상태로 바닥만 바라보며 300번의 팔굽혀펴기를 끝내자 다음은 구보였다.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따라 발을 맞추어 뛰고 있으니, 마치 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다만, 여기는 농땡이 치려는 선임도 없었고 군가도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뛰고 나서야 구보는 끝이 났다.

"쓰읍­후우! 쓰읍­후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힐끔 율리를 보자 그녀는 땀도 몇 방울 흘리지 않은 채 호흡도 안정된 상태였다.

'지금 내 수준은 이 정도인가?'

마나를 운용했다면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에 과부하를 주기 위해선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아침부터 팔다리가 저린 것이 오히려 성장할 길이 열려있는 것 같아 좋은 느낌이다.

구보를 끝으로 조회를 마치고 반장이 기숙사로 들어가자 조장의 통제하에 각 조의 사람들도 기숙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조장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아, 넌 아직 방이 없다고 했지? 그럼 지금 짐 챙겨서 전투반 기숙사로 가지고 와. 내가 행정실에 말해놓을 테니까."

"예! 감사합니다!"

"야야! 율리, 어디 가냐?"

벤트는 은근슬쩍 자신을 지나쳐가려는 율리를 붙잡았다.

"저요?"

"그래, 얘 행정실이 어딘지도 모를 텐데. 네가 알려줘야지. 겸사겸사 짐도 같이 옮겨주고."

"아…."

"그럼 잘하고 와!"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벤트의 뒷모습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율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 행정실 위치 알고 있으니까, 그냥 가보세요."

"…정말요?"

"네, 네. 얼른 짐 챙겨서 옮겨놓고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어, 그래도…."

나는 율리의 말도 듣지도 않고 곧장 뛰어가 어제 미리 싸놓은 짐을 들고 전투반의 행정실로 향했다. 행정실은 반장의 집무실 바로 옆에 있었기에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703호로 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행정실 직원에게 열쇠를 받아 마력으로 구동되는 승강기에 올라타 7층의 방에 짐을 던져놓고는 세면장에서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다.

"어? 왜 여기 있어요?"

그런데 1층의 식당으로 향하니 식당 문 옆에서 율리가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같이 들어가요. 혼자 들어가면 안 도와준 거 알고 뭐라고 할 테니까."

"아…."

'그런 이유라면 식당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도 위험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함께 식당에 들어가며 궁금했던 점을 하나씩 물었다.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쉬는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급여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생각나는 대로 묻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일과 시간이 되었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보급받은 방어구와 무기를 착용한 채 율리를 따라 3층의 수색정찰조 1조의 회의실로 향하니 이미 다른 조원들은 자리에 앉은 상태였다.

"자! 다들 아까 봤지?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 지크다."

짝짝짝짝!

"자기소개 좀 해볼래?"

"예!"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갑작스러운 요구를 받았지만, 자기소개 정도야 이미 예상했던 터라 당황하지 않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꿈과 희망, 열정이 가득한 청년. 긍정 사나이 지크입니다. 채광반에서 이제 막 온 터라 부족함이 많겠지만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잘 해내도록 할 테니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짝짝짝짝짝!

조원들의 의례적인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벤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 멘트를 준비해온 거야?"

"하하, 아닙니다."

그저 현실에서 면접 볼 때 하던 말을 간략하게 읊었을 뿐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20살입니다."

이곳의 나이 체계는 만 나이로 계산되기 때문에 한국 나이로는 21살이었다.

"보다시피 제법 똘똘한 녀석이 들어온 것 같으니까. 다들 잘 챙겨주고. 한동안은 율리 네가 전담해서 가르쳐."

"네에."

"이제 빈 자리에 가서 앉아."

"예!"

율리 옆의 빈자리로 가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오전 일과는 서쪽 숲에 대한 수색 정찰이다. 저번에 고블린 부락 세 군데를 토벌한 후로 한동안 정찰을 하지 않아서 새롭게 자리를 잡은 녀석들이 없나 확인도 할 겸 꽤 멀리까지 나갈 예정이니까, 막내랑 율리는 식당에 가서 주먹밥 좀 넉넉히 챙겨오고."

"네에."

"예!"

다른 조원들이 출동할 채비를 하는 동안 나와 율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넉넉한 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

"음, 인당 3개 정도면 될 거예요."

"그럼 30개면 되나요?"

"통신반에서 2명이 지원 나올 거라서 36개는 챙겨야 돼요."

그렇게 식당에서 주먹밥을 총 36개를 받아 들고는 운동장에서 다시 집합했다. 지나는 길에 보니 운동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 체력단련실에서 근력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와 정반대로 동쪽 숲으로 향하는 사람들까지 일과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자, 출발한다. 경계 태세 철저히 하고 이상징후 발견하면 바로 보고해."

"예!"

전투반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과이기에 작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사주 경계를 철저히 한 채 걷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생각한 그림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니, 다들 긴장감이 하나도 없잖아?'

심지어 통신반에서 지원 나온 인원들마저 긴장은커녕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닥을 보는 데만 전념할 뿐이었다.

'당연히 바닥을 보긴 해야겠지만,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고….'

물론 나야 최근까지 주변을 탐색하며 근처에 어떤 몬스터가 서식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있는 율리에게 물었다.

"긴장 안 되세요?"

"긴장이요? 서쪽 숲에 나오는 몬스터라 해봐야 고블린, 오크가 다라서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아…?"

'아닐 텐데….'

"그나저나 안 무거워요? 반은 제가 든다니까."

주먹밥 36개가 담긴 가방은 제법 묵직하긴 했지만 혼자서 들만했다.

"아, 괜찮습니다. 이런 건 막내가 들어야죠."

"힘들면 말해요. 무리하지 말고."

"옙."

지금 주먹밥을 누가 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본 것은 아니지만 지도를 작성하며 최근까지 주변 몬스터의 생활반경은 거의 파악한 상태였다. 여기서 서쪽으로 계속 간다면 '그 녀석'의 생활반경 내였다.

'워낙 생활반경이 넓은 녀석이라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불안한데….'

여기서 말하는 '그 녀석'이란 내가 서쪽으로는 더 이상 지도의 방향을 넓히지 않은 이유이자 현실에서는 이미 수차례 마주친 전적이 있는 중형의 몬스터. 수많은 몬스터와 맹수가 득실대는 숲속에서 단독 생활을 하면서도 포식자로 군림하며 힘 하면 떠오르는 괴력의 대명사.

우드드득!

"쿠워어어어!!"

오우거였다.

"이런 미친!"

'진짜 나타났잖아? 분명 여기까지 흔적이 이어지진 않았었는데?'

나도 발자국이나 나무에 남은 이빨, 손톱자국 등으로 유추했을 뿐 실제로 마주치지는 못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녀석이 수풀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상황은 더욱 놀라웠다.

서걱!

"끄륽!"

"……응?"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오우거는 그 흉포한 울음소리가 무색하게도 벤트가 내뻗은 일검에 목이 베여.

쿠웅.

그대로 허무하게 쓰러진다.

"여기서 웬 오우거가 나온다냐? 다들 경계 철저히 해. 지난번에 왔을 때랑은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뀐 것 같으니까. 통신반은 보급반에 연락해서 오우거 사체 수거해 가라고 하고."

"예."

"그럼 계속해서 서쪽 숲 수색 정찰을 이어가겠다."

"예!"

"…하, 하하."

이래서 긴장감이 없었던 건가?

오우거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두려운 기색 없이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명 한 명에게서 이글거리며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마력.

아마 선두에 있던 벤트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검을 뽑았을 것이고 누가 검을 들었든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재밌네.'

내심 교단에 도움을 받았을 뿐인 노예라고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수많은 노예 중에서 추리고 추린 전투의 괴물들.

'심심하진 않겠어.'

앞으로 전투반에서의 생활이 꽤나 기대되는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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