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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57화 (57/62)

〈 57화 〉 노예가 되다 (2)

* * *

"엇차! 다 실었습니다!"

"다들 장비 점검하고 집합해!"

채광반 인원들은 광산 앞의 공터에서 오늘 채광한 철광석이 담긴 포댓자루들을 화물용 마차의 화물칸에 싣고 근처에 두었던 곡괭이와 안전모를 집어 들었다.

'수송반 녀석들 부럽네.'

숯검정이에 땀범벅이 되어 검은 물이 줄줄 흐르는 채광반 인원들과 달리 수송반의 인원들은 하나같이 상태가 뽀송했다. 물론 보수야 우리가 많다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고 수송반은 경쟁 같은 것도 없었기에 마음고생 할 일도 없었다.

"반장님,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철광석 안 떨어지게 조심하고!"

"예!"

히이이잉!

"우리도 내려간다!"

"예!"

말들의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철광석을 실은 마차가 하나둘 공터를 떠나가고 공터에 남은 채광반 인원들도 마차의 뒤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광산을 내려가는 것은 1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거기서 신전의 기숙사까지 도착하는 데는 20분이 걸려 총 3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퇴근길이 길구나, 길어.'

군장만 안 메었을 뿐 성인 남성 80여 명이 산을 내려가 숲을 걷고 있으니, 마치 군대에서 행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 오늘의 작업 순위를 발표한다. 호명하는 조는 나와서 보수를 지급받도록!"

기숙사 앞에 조별로 줄지어 선 광부들은 작업반장 론의 호명 하에 보수를 지급받았다. 우리 조인 3조의 순위는 5위로 평소와 같았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똑같네.'

여러 지식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몸을 쓰는 방법은 알았지만, 육체 자체의 힘이 워낙 낮은 터라 한계가 분명했다.

보수는 1위인 조는 기본급의 200%를, 2위는 180%, 3위는 160% 이런 식으로 20%씩 차등 지급되었고 5위와 6위에서만 각각 120%, 80%로 40%의 차이가 났다. 그리고 꼴찌는 0%로 보수가 없었다.

우리 조는 5, 6위를 왔다 갔다 하는 조로 5위만 하면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였고 신나하는 상위 조와 다르게 하위 조, 특히 꼴찌를 한 조의 침울한 분위기가 크게 대조되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한 달만 견디면 저들 중 누군가는 상위 조에 배치될지도 몰랐다. 채광반은 분기에 한 번씩 조를 무작위로 섞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다음 분기에는 보수를 받을지도 몰랐다. 운이 나쁘다면 또 꼴찌 조에 해당할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고생하신 신도분들을 위해 위대하신 빛의 여신 젤루아 님께 하루를 마치는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보수 지급이 끝나고 기숙사 앞의 작은 단상 위에서 사제 노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거룩한 빛 젤루아 님. 오늘도 빛으로서 저희를 굽어살피시어 감사합니다. 빛의 보살핌 덕분에 오늘 하루도 저희가 무사히…."

'어우, 지루해.'

채광반의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경건한 자세로 노완의 말을 경청하였지만 나에게 기도는 따분하고 지루할 뿐이었다.

'기도한다고 돈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

아, 물론 사제나 신관 등의 성직자들은 기도만 해도 돈이 나오겠지만, 우리 같은 노예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하여튼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기도보단 앞으로 어떻게 꿈의 효율을 높여야 할지 계획을 짜는 게 중요했다.

지난 십여 차례의 입몽에서 나는 입몽의 전반적인 특성을 파악했다. 입몽하는 순간 갱신되는 메인 퀘스트는 완료 조건을 완수하고 나서 하루가 지나면 강제적으로 출몽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고 돌아다니며 쓸만한 보상이나 얻어볼까 하는 잔머리를 굴리다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출몽을 선언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 강제적으로 출몽이 되었다.

'덕분에 하루 동안 뻘짓만 했었지.'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메인 퀘스트만 완료하지 않는다면 꿈속에서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됐다.

'아직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됐을 때는 무려 1년이나 꿈속에 박혀 있었으니….'

사실 나무가 되었을 때는 정신도 멍하고 시간 감각도 이상해서 정확히 1년이라고 확답할 수 없기는 하지만,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으으…!"

"왜 그래, 지크. 오늘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잠깐 안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때를 떠올리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자 옆에 있던 같은 조 조원 루크가 한쪽 눈을 살짝 뜬 채 조심스레 물어왔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고통의 정도는 약했지만, 천천히 몸을 째는 듯한 고통이 수십, 수 시간도 아니고 수천 시간이나 이어지는 것은 진짜 질려버릴 정도였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네.'

"몸 관리 잘해. 한 명이라도 아프면 큰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자 루크는 다시 눈을 감으며 기도에 빠져들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서 말하자면 이러한 시도는 퀘스트의 완료가 불가능해지거나 시간이 한정된 퀘스트의 경우에는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호위 퀘스트에서 호위 대상이 사망하거나 기한 내에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퀘스트가 그런 경우였는데, 그렇게 퀘스트가 실패하거나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꿈속에 오래 머무는 것이 힘들었다.

'벌레들이 농작물을 죄다 갉아먹어서 처음으로 퀘스트에 실패했었지….'

그렇게 퀘스트에 실패하면 곧장 현실로 돌아왔는데 그런 식으로 시간의 제한이 있는 퀘스트에선 시도조차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하며 메인 퀘스트에 실패해도 서브 퀘스트를 완료했다면 그 보상은 수령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몽환석은 활용하기에 따라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이상한 농기구를 보상으로 받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하여튼 이번 퀘스트는 기간의 제한도 없었고 퀘스트가 실패할 조건도 없어서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최대한 오래 머물면서 강해질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어.'

이전까지는 그냥저냥 퀘스트만 완료할 뿐이었지만,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최대한의 효율로 빠르게 성장해야 했다.

'일단은 이 몸의 몸뚱이부터 단련시켜야겠어.'

아무리 봐도 길 가다 객사하기 딱 좋은 몸이었다. 오늘도 곡괭이질 하다 튄 돌조각에 이곳저곳 긁힌 자상이 가득했다.

'현실이었다면 아무리 긁혀봐야 상처 하나 없었을 텐데.'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열심히 키워놓은 캐릭터를 놔두고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너무 약하잖아, 이건.'

곡괭이질을 하느라 저릿저릿한 두 손을 보다 단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모든 말씀, 우리의 구원자 되시고 빛과 생명의 주인이신 주 줄리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어느새 기도는 끝을 향하고 있었다.

"구원의 빛이 우리를 비추기를."

"구원의 빛이 우리를 비추기를!!!"

"그럼 다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노완이 인사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가자 론이 사람들을 쓱 훑고는 외쳤다.

"다들 해산!"

"해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걸음을 옮겼다.

쏴아아아!

"어우, 좋다."

온수가 콸콸 나오는 샤워장에서 땀과 이물을 씻겨내자 채광을 하며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공동 샤워장은 한 번에 마흔 명 정도로 이용이 제한되기에 채광반을 비롯한 다양한 노예들이 주거하고 있는 이곳에서 한 번에 모든 인원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근무가 끝나면 먼저 밥을 먹으러 향하는 사람도 있었고 세면장에서 샤워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통은 기다렸다가 샤워장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야, 지크. 씻고 맥주나 한잔 걸칠래?"

"아니, 나 바쁘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지크에게 유일하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사람이 바로 지금 말을 걸고 있는 루크였다. 루크는 모험가였는데 던전을 탐사하던 도중 함께 탐사를 진행하던 동료들을 잃고 던전의 틈새에 숨어 고립되어 있던 걸 신전의 성기사들에게 구원받았다고 한다. 그가 처음 채광반에 왔을 때 배정받은 조가 지크와 같은 조였고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그는 지크를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지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지크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남들과 대화하는 것을 불편해해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루크의 집요한 집착에는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어느 순간 말을 놓게 되었다.

"네가 바쁘긴 뭐가 바빠! 맨날 방에서 뒤집어 자기밖에 더해? 그러지 말고 오늘은 좀 가자."

"됐다. 술 마실 돈 있으면 빚이나 갚아라. 너는 나갈 가능성이라도 있잖냐."

"오, 뭐야. 네가 걱정도 할 줄 알았어? 오늘따라 일도 열심히 하더니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그래, 잘못 먹어서 좀 쉬어야겠으니까. 내버려 둬라."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루크는 함께 어울릴 사람이 많았다. 그는 현실로 따지자면 소위 말하는 '인싸'였으니까.

"알았다.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얘기해."

"그럴 일 없다."

'맥주 한 잔에 1실버나 하는데 먹을 거 같냐?'

채광반의 기본급은 10실버로 5위를 한 나는 20%의 가산을 받아 12실버를 보수로 받았다. 1실버는 원화로 따지면 약 5천 원꼴이었으니 오늘은 6만 원을 번 셈이었다. 1실버를 노동으로 환산하면 대략 철광석 백 개를 캔 것과 같았는데 그 돈을 맥주 따위에 허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나는 샤워를 마치자마자 체력단련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채광반처럼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퇴근하고 나서도 몸을 움직이는 걸 극히 싫어했기에 체력단련실이라면 치를 떨었다.

나 역시 피곤하고 지친 상태로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하며 쓰이는 근육으로는 몸을 키울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육체의 성장이야.’

나는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만 하면 몸은 저절로 움직일 테니.

"끄아아악!"

그러나 간과한 게 있었다. 운동이라곤 곡괭이질밖에 하지 않은 몸이다 보니 팔굽혀펴기 몇 개만 해도 어깨부터 가슴, 등, 배, 다리까지 전신에 과부하가 왔다.

'어우, 안 되겠어.'

20분 정도만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도 산소결핍으로 머리가 띵했다. 그로 인해 빡빡하게 시간을 채울 계획을 버리고 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채 운동을 시작했다. 이럴 땐 조금씩 늘려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우걱우걱!

'먹는 것도 잘 먹고.'

운동을 마치고 나서는 기숙사 외부의 식당에서 해결했다. 다소 비싸기는 했지만, 기숙사의 식당에서 배식 되는 식단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었기에 외부 식당에서 단백질을 보충하는 게 필수였다. 아무리 운동을 해봐야 근육을 합성할 영양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었다.

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다시 샤워를 마치고 기숙사의 침상에 누워 마나를 몸에 쌓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호흡법은 재래식 호흡법, 가락크 호흡법, 뇌전신공, 영월공까지 네 가지로 그중 가장 효율이 높은 건 마나를 가볍게 해 그 흐름을 가속함으로써 흡입력을 발생시켜 마나를 체내에 붙들어놓는 영월공이었다.

일단 호흡으로 마나를 받아들이며 체내에 흩어진 마력 2에 해당하는 마나를 가슴에 모아 회전시켰다. 체내 마나의 회전으로 생성된 흡입력이 새롭게 들어온 마나를 붙들지만, 마력이 미약해서일까 회전의 속도가 느려 흡입력도 너무 약했다.

'그래도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지.'

2의 마력조차 없었다면 꼼짝없이 재래식 호흡법으로 마나를 쌓아야 할 뻔했으니까. 그렇게 영월공의 묘리를 이용해 잠들기 전까지 마나를 쌓고 잠은 최소한으로 줄인 채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상태창.'

[상태창]

­ 이름 : 지크

­ 등급 : 2

­ 능력치

체력 : 18 근력: 19 민첩 : 14 정신력 : 84 마력: 12

­ 잔여 능력치 : 0

­ 능력 : 채광(7급), 영월공(3급)

한 달 동안 상태창에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변화가 있었다. 체력, 근력, 민첩 등이 1.5배가량 늘었고 정신력의 수치가 대폭 상승하며 등급이 2로 바뀌었다. 마력은 2에서 12가 되었고.

"후우."

'아직 멀었어.'

"오늘의 작업 순위를 발표하겠다! 호명하는 조는 나와서 보수를 지급받도록! 1위 7조."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7조가 호명되고 7조 조원들이 보수를 받아간다. 그리고 론이 다음 순위를 발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2위 3조! 3조는 한 달 동안 채광량이 엄청나게 늘었구나! 축하한다!"

"예? 저희요?"

"우와아아! 우리가 2위라고?!"

"호들갑 떨지 말고 얼른 튀어나와! 정산 마치고 조도 새로 편성해야 하니까!"

론의 호통에 나를 포함한 조원들이 후다닥 달려가 보수를 지급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와…. 우리가 2위라니 말도 안 돼…."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죠?"

루크가 입을 떼자 조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지크, 이 자식! 이게 다 네 덕분이다. 한 달 동안 순위가 3개나 오르다니 말이야!"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거야?"

"비법이랄 게 있나요. 열심히 하는 거죠, 뭐."

"뭐? 그럼 우리는 열심히 안 했다는 이야기냐?! 으하하하!"

"푸하하핫! 다들 지크 이놈 붙잡아!!"

"어엇!! 왜들 이러세요?!"

나를 제외한 조원 일곱이 내 몸을 붙들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두울."

"자, 잠시만!"

"셋!!!"

"으아악!"

'이 양반들이 일을 쉬엄쉬엄했나!'

"거기 조용히들 해라!!!"

"죄송합니다!"

다행히 조원들의 헹가래는 론의 호통으로 인해 한 번으로 끝났다.

"아, 아쉽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다들 회식이나 하시죠?"

"좋지!"

"나는…."

"지크, 너는 절대 못 뺀다! 오늘 주인공은 너니까!"

거절하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들었더니 루크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조원들이 누가 질세라 빠르게 말을 쏟아낸다.

"그래, 인마. 아무리 불편해도 마지막은 좀 참석하라고."

"마지막인데 같이 밥 좀 먹자!"

"대신 지크 너는 오늘 회식비 안 내도 된다! 너 때문에 받은 보수가 쏠쏠했으니까. 다들 인정하지?"

"인정!"

"루크, 너는 기도 끝나면 바로 달려가서 식당 예약하고."

"예이! 바로 예약하겠슴다!!"

"하하…."

아무래도 오늘은 빠지기 힘들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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