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45화 (45/62)

〈 45화 〉 레이드 (1)

* * *

생성된 포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다시 장막으로 손을 뻗었다.

앞서 치른 시험들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처리했기에 엘리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많이 있었다.

[시험의 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등급을 선택하세요. (1등급/2등급/3등급/4등급/5등급/6등급)]

'6등급.'

[시험의 방(6등급)이 개방됩니다. 입장 시 600 업이 소모됩니다.]

"흠…? 어디에 있는 거지?"

다시 시험의 방 안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사면으로 이루어진 방 안에 네 개의 문이 있었다.

'레이드 전투라고 했으니 전투의 방에 있으려나?'

문 위에 전투라는 글자가 음각된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전과 달리 하나의 문이 더 추가되어 총 여섯 개의 문이 있었다.

"레이드 전투라…."

레이드 전투라고 쓰여있는 문 앞에 섰다.

분명 6등급이 되며 떠오른 창에 레이드 전투는 다수의 인원이 함께 보스 몬스터를 잡는 시험이라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전투를 치른다는 건데 과연 지금 6등급에 오른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둥그런 손잡이를 잡고 문을 당기자 목재로 된 촉수가 내게 뻗어온다.

촤르륵!

그리고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다시 밝아졌을 때 내 눈앞엔 새로운 환경과 각양각색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어? 새로운 사람이다."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무리를 힐끔 바라보고는 주변을 살핀다.

회색빛을 띠는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 드높은 천장에는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발광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돔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돔의 중앙에는 인파로는 가려지지 않는 커다란 붉은 포털이 자리했다.

포털의 모양은 특이하게도 옆으로 길게 늘어진 직사각형을 띠고 있었는데 아마도 다수의 인원이 들어가기 쉽게끔 만들어진 듯했다.

[레이드 전투 시험에 오신 '유현'님 환영합니다.]

이어서 돔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려는데 창이 하나 떠올랐다.

[이곳은 레이드 전투 시험의 대기실입니다. 레이드 전투 시험에 입장하기 위해선 공격대를 구성하거나 공격대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공격대'라고 생각하면 공격대를 구성하거나 구성된 공격대에 참여 신청을 할 수 있는 창을 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공격대 구성을 마치면 대기실 중앙의 포털을 이용해 시험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시험 진행 중 사망하게 될 시 사망자는 시험에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며 그 즉시 시험의 방으로 추방됩니다.]

창의 내용을 숙지하고 나를 보며 수군거리던 무리가 한 말을 되짚어본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라고 했었지? 분명?'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니 확실히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놀랍게도 모두 한국어였다.

"보스 몬스터는 너무 강해!"

"너는 못 했어! 방어!"

"네가 보다 못했어! 나! 너는 해야 했어! 좋은 공격!

그런데 그 한국어가 몹시 괴상했다.

'뭐야 저게. 한국말 맞아?'

분명히 들려오는 건 한국어이지만 어순이 완전히 엉망이었다.

"가서 한번 물어봐봐."

그중 제법 괜찮은 한국어가 귀를 간질였다. 처음 나를 보고 수군거리던 무리였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슨 일인지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네가 물어봐. 나 그런 거 잘 못해."

"아, 내가 물어볼게. 그냥 물어보면 되지. 뭘."

"그나저나 저 사람 존잘이네. 연예인인가?"

존잘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인 게 확실했다. 다른 사람들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남자 열하나, 여자 넷으로 이루어진 무리는 말과 겉모습으로 판단했을 때는 한국 사람 같았다.

내가 무리를 보고 있자 무리 중 하나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지금 내 키가 190이 넘을 텐데도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사내는 광택이 살아있는 은빛 갑주를 입고 옆구리에는 투구를 끼고 있었다.

얼굴은 조금 신경질적이었는데 살짝 찌푸려진 미간과 불만이 서린 눈. 삐죽 튀어나온 입이 내게 다가오며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주름이 지어진 미간은 활짝 펴지고 치켜뜬 눈은 둥글게 변하며 입가는 들어감과 동시에 호선을 그렸다.

'뭐야?'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예, 한국 사람이에요."

"아! 야야, 한국 사람이래!"

그는 감탄을 내뱉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무리에게 외쳤다. 그러자 무리가 그에 반응하여 금세 떠들썩해진다.

"뭐? 진짜? 얘들아! 한국 사람이래!"

"와, 우리 말고도 한국 사람이 있긴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올라왔대. 우리처럼 버그ㅡ"

"야, 그 이야긴 하지 마!"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치자 남자가 당황하며 반문한다.

"내, 내가 뭘 말했다고 그래?"

"아,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그래, 그 이야긴 함부로 하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내가 뭘…! 아, 오케이. 알았어. 입 다물고 있을게."

남자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피력하려다 무리에서 자신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어휴, 그만들 하고 저 사람한테 가보자."

"그래, 싸우지 말자 좀."

여자들이 언성을 높이는 남자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버그? 버그가 무슨 소리지?'

그가 말하려던 게 내가 알고 있는 게임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게임 같은 게 아니다.

무척 비현실적이지만 분명한 현실.

'그런데도 무언가 허점이 있다는 건가…?'

허공에서 오연히 세상을 내려다보던 아이반을 생각하면 허점 같은 게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는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신 같은 존재다. 꿈속의 기억들이 모두 진실되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꿈속에서도 저런 존재는 본적은 물론이거니와 관련된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히든 피스…?'

저들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오류가 아닐 것이다.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세상 곳곳에서 신출귀몰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신적인 존재에게 오류란 있을 수 없었다.

남자가 무심코 내뱉던 한마디로 인해 수많은 생각을 이어가던 나에게 사람들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마주 인사를 건네며 그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비를 풀로 착용하고 있다.

무기는 인벤토리에 보관 중인지 들고 있지 않은 사람도 종종 있었지만 방어구가 하나같이 값비싸 보였다.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부터 시작해서 보석 같은 게 치렁치렁 매달린 로브, 무엇의 가죽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히 질기면서도 탄력이 있어 보이는 가죽 갑옷, 심지어 좀 전까지만 해도 내 몸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먹통이 되어버린 나노 슈트를 걸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저 은빛 갑옷은 미스릴이잖아?'

언뜻 보면 보통의 철 갑옷처럼 보이지만 느껴지는 마력이나 눈으로 보는 광택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은이나 철이 온전히 빛을 반사하는 느낌이라면 미스릴은 빛을 반사하면서 또 흡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분명 빛을 반사하여 표면이 반짝거리고 있건만 눈이 부시지가 않는다.

그리고 나노 슈트는 업으로 환산하면 미스릴 갑옷 전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미스릴 검이나 방패에 비교하면 훨씬 비싼 물건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업이 대략 4만 정도인데 저들 모두가 내 배에 달하는 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지금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허, 이게 가능한 건가?'

이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장비가 다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업을 모은 거야?'

업도 업이지만 이 짧은 시간에 6등급까지 올라섰다는 것도 대단했다. 물론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만 현실에선 2등급도 보기가 힘들었으니 놀라움이 컸다.

"저희도 다 한국 사람이에요."

보석이 치렁치렁 달린 로브를 입고 있는 키가 175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뒤편에 서서 나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도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대화에 응해 질문을 던졌다.

"아, 예…. 근데 여기는 어떻게 된 거죠? 저 사람들은 한국 사람 같지는 않은데 어설프게 한국말을 하고."

"저희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해보니까 이곳은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중국, 일본, 프랑스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또,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역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라마다 어순이 조금씩 다르니 저희가 듣기에는 조금 불편하게 들리는 것 같고요. 저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모국어로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아…."

"저희도 지역은 다 달라요.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뭔가 정중하면서도 의사가 또렷한 말투라고 느끼며 대답한다.

"저는 천안에서 왔어요."

"아, 천안…."

"근데 다들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나요? 친해 보이는데."

"네, 저희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어요."

현재 레이드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기실에 모여있는 백 명 남짓한 사람 중에 열 다섯 명이 한국 사람인 데다 그들 모두가 지인이라고 한다.

'이건 미쳤는데?'

이렇게 작은 땅덩어리에 인구수도 많지 않은데 이만한 인원이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다. 국뽕이 차오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자 내가 잘한 건 없지만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해진다.

다시 여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능력이 어떻게 되세요?"

"능력이요? 갑자기 능력은 왜…?"

"공격대 자리가 하나 비는데 같은 한국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능력이랄 건 없지만 검을 좀 다룹니다."

"저 죄송하지만, 장비는 그게 다인가요?"

그때 뒤편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남자 한 명이 불쑥 질문을 해왔다.

"무기를 말하는 거라면 인벤토리에 있고 방어구를 말하는 거라면 없습니다."

"아…."

갑자기 사람들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뒤편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야…. 저 사람 데려가기는 좀 에바인 거 같은데…."

"아니, 민주 쟤는 갑자기 왜 공격대 얘기를 꺼내서…."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뭔가 있지 않을까…?"

"있기는 뭐가 있어. 저 아디다스 츄리닝 보면 모르냐?"

"너 지금 아디다스 비하하냐?"

"비하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저 복장이 맞냐는 거지."

야야! 다 들려 이 자식들아!

"하하…. 아무래도 뒤엣분들이 제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네요."

"아…. 죄송해요. 잠시만요."

그리고 그녀가 뒤로 돌아가 조용히 다그치는 말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야…!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인데 데려가는 게 맞지. 장비도 못 맞춘 거 같은데 불쌍하잖아."

'부, 불쌍…?'

"맞아! 우리나라 사람인데 도와야지."

"같이 가면 좋지. 왜."

"쯧!"

그녀의 말에 다른 여자들도 동조하자 남자들이 혀를 찼다.

"너네 저 사람 잘생겨서 그러는 거지?"

"뭐, 뭣?! 아니거든?"

"잘생긴 건 인정하지만 그래서 그런 건 아니거든? 같은 피가 흐르는 한민족으로서ㅡ"

"뭘 아니야. 야, 최우림. 너는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그러지 마라. 무슨 민족까지 들먹여. 네 남자친구한테 다 이른다?"

강하게 반발하는 여자들의 말을 끊고 남자 한 명이 여자의 행태를 지적한다.

"아, 아니라고! 말하기만 해봐. 뒤진다, 진짜!"

"알았어, 말 안 할게. 그러게 말하면 안 되는 걸 왜 말하고 있어. 어쨌건 같이 가기는 곤란한데…."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곁눈질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잘생기긴 겁나 잘생겼네. 그냥 같이 갈까?"

"뭐야 그게 병신아."

"우리 비주얼이 없잖아. 비주얼이."

"레이드 도는데 비주얼이 왜 필요해."

"난 찬성!"

"나도 찬성!"

"난 완전 찬성!"

"저도 찬성이요!"

여자 넷이 일제히 찬성을 외치자 남자 한 명이 힐끔 나를 바라보고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여기서까지 외모가 득이 되다니…."

"어차피 우리도 처음 도는 거니까.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하면 그때 가서 빼도 되잖아."

"그래, 일단 해보자."

"그래, 버스 태워준다고 생각하자."

결국, 저들의 의견이 찬성으로 기울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저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나 혼자 가도 돼…. 버스 안 태워줘도 된다고….'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저…잘 얘기됐어요. 저희랑 같이 레이드 도실래요?"

'그게 잘 이야기된 게 맞는 거냐….'

실은 레이드 전투의 설명을 듣자마자 1인으로 도전해볼 생각이었는데 이들을 보니 궁금해졌다. 과연 이만한 등급의 사람들은 어떻게 싸우는지 또 나를 버스 태워준다고 생각한다는 놈이 얼마나 강할지도.

"좋아요."

"그럼 '한국 사람 모여라'로 공격대 참여 신청해주세요."

곧장 공격대에 참여하자 공격대창에 여러 사람의 이름과 등급이 떠올랐다.

'저 여자애 이름이 김민주인가?'

앞서 나와 대화를 나눈 여자의 이름을 확인한다. 별다른 사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이름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근데 다들 진짜 6등급이네. 하긴…. 애초에 6등급 이상이 되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니까.'

"다들 준비해."

내가 김민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눈에 담고 있을 때 그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준비? 무슨 준비?'

무슨 마음의 준비라도 하나 싶어 멀뚱히 보고 있자 사람들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연신 들이키기 시작했다.

"다들 도핑했어? 유현 님 도핑하셨어요?"

"응!"

"오야!"

"도핑 완료­!"

"예? 도핑이요?"

일사천리로 대답하는 사람들 사이로 내가 어벙하게 대답하자 단번에 이목이 쏠린다.

"이거 드세요."

"어,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요. 어서 드세요. 어차피 시험의 방을 나가면 아이템은 리셋되니까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돼요."

"아…. 감사합니다."

보라색 액체가 반쯤 담긴 플라스크를 받아든다. 인벤토리에 넣어 정보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시험의 방에서 사용한 물건은 밖으로 나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정보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는 액체를 쭉 들이켰다.

[근력과 체력, 민첩이 모두 100을 초과하여 비약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엥…?"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떠오른 창에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굳이 말을 꺼냈다가는 주목을 받는 상황만 생길 뿐이라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아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전부 100 이하라는 얘긴가?'

그리고 상태창을 열어 체력과 근력, 민첩에 각각 30씩 잔여 능력치를 투자하고 남은 능력치는 예비로 남겨두었다.

우드득!

뼛소리가 울리며 몸 안의 뼈와 피부 따위가 더욱 단단하고 탄력적으로 변형되어가고 근육과 신경 등이 한 단계 진화한다. 근육의 부피도 꽤 늘어났지만, 그보다는 근육의 질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느낌에 손을 쥐었다 펴본다.

'음, 좋았어.'

"응?"

"뭐지?"

자신들과 사뭇 다른 변화에 몇몇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들이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럼 바로 들어가 볼게요."

우리가 대기실 중앙의 붉은 포털로 향하고 김민주가 그곳에 손을 뻗자 잠시 후 창이 하나 떠올랐다.

[공격대장이 레이드 전투(6등급 ­ 16인)에 입장을 요청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수락 중(5/16)]

[수락 중(13/16)]

[수락 중(16/16)]

[수락 완료. 레이드 전투(6등급 ­ 16인) 포털을 개방합니다.]

포털이 개방됨과 동시에 안으로 향하자 피부가 익어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나를 반겼다. 열기를 느끼는 순간 몸 안에 흐르던 마나가 반응하여 뜨거운 열기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눈앞에 보이는 건 주변 곳곳에서 물줄기처럼 용암이 흐르고 있는 뜨거운 화산 지대였다.

공격대원 전원이 들어오자 전투를 알리는 창과 함께 전방에 검은 화석과 용암이 뒤섞인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전투 ­ 레이드 전투 시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방의 적을 처치하십시오. 10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염귀]

­ 등급 : 10

­ 설명 : 용암이 흐르는 화산 지대에 서식하는 자연형의 대형 몬스터. 온몸에 흐르는 용암을 이용해 자신의 먹잇감을 녹여 영양분을 흡수한다. 자연형의 몬스터답게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분리하는 공격을 일삼으며 약점은 오로지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핵을 파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커헉! 뭐, 크악! 뭐야, 여기!"

"꺅! 케헥!"

"크학! 수, 숨도 못, 컥!"

"주, 죽을 것…!"

그런데 함께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그대로 익어가고 있다.

'아니, 뭐야?'

"다들 마나를 운용하세요!"

"커흑!!"

"끄으읍!"

"끄어억…!"

다들 대답도 못한 채 피부가 벌게지다 못해 검게 변하고 있었고 이미 제한 시간이 지나 염귀가 몸을 일으키며 거대한 용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콰아앙!

나는 곧바로 몸을 피하였지만,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공격대원들은 모두 염귀가 내리친 주먹에 그대로 뭉개져 재가 되었다.

"아니, 버스 태워준다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