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44화 (44/62)

〈 44화 〉 성장 (4)

* * *

"현아!"

처음보다 꽤나 길어진 기다림 끝에 엘리가 장막을 열고 나왔다. 나는 바닥에 하던 낙서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켰다.

'파티.'

<2 2=""> 엘리 들어와.

ㅁ 파티 구성

[파티장] (등급 3) 유현

(등급 3) 엘리 프루니아

"와! 또 통과했네!"

"이 정도야 쉽지!"

또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드는 엘리에게 다가가 머리를 헝클었다.

"잘했다! 잘했어!"

"히히!"

"근데 대체 시험 문제가 어떤 게 나오는 거야?"

지식 시험은 도전 자체를 안 해봤기에 묻자 엘리가 자신이 겪은 문제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 2등급 지식의 시험에서 나온 문제는 몬스터는 어디에서 왔는가, 마나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 마법이 구현되는 과정, 사령학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트롤과 오우거의 공생 관계,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는 육체파와 마법을 구현하는 마법파의 차이, 마석을 정제하는 방법 3가지, 어…. 또…독성을 가진 식물의 구분법이랑ㅡ"

"그만, 그만. 다 말할 필요는 없어."

"그래?"

"그래, 근데 시험 문제가 일관성이 하나도 없네?"

"응, 1등급 지식의 시험도 똑같았어. 좀 더 쉽긴 했지만. 문제의 숫자도 1등급은 20문제였는데 2등급은 30문제로 늘었어."

"흠…. 갈수록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나오고 문제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가?"

"그런 것 같아."

"통과 기준은?"

"전부 다 맞춰야 해. 답을 서술하는 방식은 주관식인데 채점을 하는 과정은 잘 모르겠어. 답을 모두 적고 제출하는 곳에 시험지를 올려두니까 시험지가 빛나면서 통과했다는 창이랑 같이 밖으로 나가는 포털이 생성됐어."

"허…. 다 맞추는 게 기준이라면 진짜 갈수록 쉽지 않겠는데?"

게다가 문제가 일관성이 없어서 더더욱 난이도가 급상승할 것으로 보였다. 나오는 문제들을 보아하니 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로선 맞추는 게 불가능한 수준의 문제였고.

"아마 3등급 지식의 시험도 힘들 것 같아. 이번에도 2문제 정도가 헷갈려서 시간이 좀 걸렸거든."

"흠, 도전해 볼 거야?"

"응! 그래도 한 번 경험은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나도 이번에 들어가 봐야겠다. 그리고 이제 잔여 능력치 좀 사용해도 될 것 같아. 우선 체력에 35만큼 투자하고 나머지는 네가 올리고 싶은 대로 올려."

"응, 그럼 지금 바로 올려볼게."

엘리가 잠시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잠시 후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체력을 올린 영향인지 안 그래도 이뻤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겉으로 보이는 근육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몸의 뼈대가 재구성되는 듯 몸속에서 뼛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우드드득!

"안 아파?"

뼛소리에 비해 엘리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어서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냥 좀 신기한 느낌이야! 그리고 나머지 능력치는…. 민첩에 10, 마력에 20을 올리고…."

엘리의 중얼거림과 함께 몸에 잔 근육이 늘어나며 좀 더 탄탄하고 날렵하게 변하였고 엘리의 어깨에 앉아있던 엘이 갑자기 허공에 떠올라 덩치를 불리기 시작하더니 엘리의 상체만큼이나 커졌다.

"오, 마력을 올리니까 엘이 커졌어!"

"이제 어깨엔 못 앉겠네?"

"음, 그런가…? 엘."

엘리가 엘을 부르자 녀석의 몸집이 다시 조그맣게 작아지더니 엘리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히히, 작아지는 것도 가능한가 봐."

'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한 건가?'

"좋네. 그럼 들어가 볼까?"

"응!"

집을 나서면서부터 몸이 근질근질했다. 오면서 던전을 돌았더니 오히려 감질이나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이 더욱 증폭된 기분이었는데 드디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막에 손을 가져다 대자 벽을 만진 것처럼 손이 가로막히고 이어 창이 떠오른다.

[시험의 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등급을 선택하세요. (1등급/2등급/3등급)]

'3등급.'

[시험의 방(3등급)이 개방됩니다. 입장 시 300 업이 소모됩니다.]

업이 차감됨과 동시에 손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진다. 장막 안에 들어서자 사면을 가로막고 있는 벽과 4개의 문이 나타났다.

"후아, 오랜만이구만."

실제 흐른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지만 가리쉬와, 나인, 훈트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온 덕분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느낌이다.

"자, 가보자고."

당장 전투의 문을 열고 개인 전투의 문을 열어젖혔다. 저번에는 뭔가 빨려드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순식간에 끊어졌지만, 이번엔 똑똑히 봤다.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서 튀어나온 기형적인 촉수를.

촉수가 나를 벽으로 끌어당기자마자 곧 의식이 끊어졌다.

[전투 ­ 개인 전투 시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2번째 도전입니다.]

[전방의 적을 처치하십시오. 10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 눈앞에는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쾅!

인벤토리에서 구울을 잡고 나온 구울의 손톱이라는 이름의 단검을 꺼내 곧장 던지자 보이지 않는 벽에 튕겨 날아간다.

"흠, 꼼수는 안 통하나 보네."

[능력 : 암기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기다린다.

5.

내가 빨라지면 빨라진 만큼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4.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도 느리게 흐르지도 않는다.

3.

그저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2.

오직 나만의 시간이 멈추어진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1.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착각 속에 오우거 전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걷힌 듯 거대한 도끼를 땅에 내려찍자 바닥이 박살 나며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의 나무와 바위 따위를 싣고 달려든다.

콰과과과광!!!

"하암…."

거친 굉음과 함께 몰려드는 땅의 해일은 누군가 봤다면 입을 쩍 벌린 채 기함을 토했겠지만 나는 무척이나 느리게 보이는 오우거 전사의 공격에 그저 하품을 하며 다리 한쪽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쩌저저적!

[능력 : 가락크 호흡법을 습득하였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나를 운용하였을 뿐인데 일순간에 전신의 근육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다리가 피부를 비집고 흘러나온 흉물스럽고 패도적인 기운으로 뒤덮인다. 온몸에 흐르는 가공할 힘에 그대로 들어 올린 다리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쿵!

처음에 들려온 소리는 오우거 전사의 충격파가 주변의 환경을 갉아먹으며 뿜어대는 소리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았다.

구구구구궁.

다음으로 들려온 소리는 더욱 작았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콰과과과곽!

오우거 전사가 쏘아낸 충격파가 곧 나를 집어삼킬 기세로 맹렬히 돌진하며 급격히 몸집을 키우는데 내 주변은 왜인지 고요하기만 하다.

분명히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고요하다.'

그렇게 느꼈다.

콰득!

돌연 지각이 뒤틀리는 요란한 소음에 나만이 느끼고 있던 짧은 고요가 깨지고 갑작스레 거대한 돌벽 하나가 대각선으로 우뚝 솟아난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앞서 오우거 전사가 만들어낸 땅의 해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재앙이.

쿠구구구구구구궁!!!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실체가 없는 뇌성이 울려 퍼진다. 분명 하늘에서 나야할 소리이건만 이상하게도 소리의 시작은 땅으로부터 시작됐다.

대지는 팔팔 끓는 물처럼 부들부들 떨며 진동을 시작하더니 이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쾅쾅! 콰콰쾅! 콰과과과광!

맹렬한 기세를 뽐내던 충격파가 어마어마한 폭발에 얻어맞고는 허무하게 허공으로 튕겨져 소실되고 융단폭격이라도 이루어진 것처럼 연신 폭음이 울려 퍼지며 내 앞 수백 미터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다.

처음의 온전한 숲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뿌연 흙먼지 속을 나뒹구는 잘게 조각난 나뭇조각과 돌 조각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상을 연출하고 있을 때 시야 한 편에 여러 개의 창이 떠올랐다.

[전투 ­ 개인 전투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0업이 지급됩니다.]

[3등급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이 4가 되었습니다.]

[등급 상승 보상으로 '인벤토리'가 5칸 늘어납니다.]

[등급 상승 보상으로 잔여 능력치 40이 지급되었습니다.]

[상점의 이용 가능한 물품이 갱신됩니다.]

[4등급 시험의 방에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메세지를 읽고는 생성된 포털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다시 장막을 향해 손을 뻗는다.

[시험의 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등급을 선택하세요. (1등급/2등급/3등급/4등급)]

'4등급.'

[시험의 방(4등급)이 개방됩니다. 입장 시 400 업이 소모됩니다.]

이어서 전투의 문을 열고 개인 전투의 문 또한 개방하여 또다시 시험을 시작한다.

[드레이크]

­ 등급 : 5

­ 설명 : 드래곤형의 대형 몬스터. 질긴 뱃가죽과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드레이크는 드래곤형 몬스터답게 뛰어난 항마력과 내구를 갖추고 있으며, 주력으로 사용하는 산성 브레스는 강철도 우습게 녹인다.

새로운 공간에서 눈을 뜨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드넓은 들판에 나와 드레이크라 불리는 커다란 몬스터가 서 있다. 처음 맞이하는 대형 몬스터는 실로 엄청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여태 봐온 몬스터 중 가장 커다랗던 오우거 전사의 2배는 됨직한 높이와 4배에 달하는 너비는 그 크기만으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목이 꺾일 듯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녀석의 목덜미를 보니 작은 언덕이 눈앞에 있는 기분이다.

몸에 비해 비대한 머리 위엔 끝이 뾰족한 굵은 뿔 두 개가 자라 있었고 거대한 이빨이 듬성듬성 삐져나온 입은 오우거조차 한 두 입이면 삼킬 정도로 커다랗다.

파충류의 눈처럼 세로로 길게 그어진 동공은 나를 탐색하는 듯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웬만한 칼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들 것 같은 큼지막한 비늘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빽빽하게 자리했다.

몸을 지탱하는 뒷발은 굵고 길었으나 앞발은 다소 짧아서 발톱을 휘두르기 보다는 뿔과 이빨을 이용한 공격과 브레스를 활용한 공격이 주를 이룰 것 같았다.

서걱. 쿵!

[능력 : 검술을 습득하였습니다.]

[전투 ­ 개인 전투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보상으로 4000업이….]

[등급이….]

[…….]

하지만 녀석이 어떠한 공격을 행하기도 전에 목 가죽부터 목 뒤편의 비늘까지 깔끔하게 베여 쓰러지고 만다. 바닥에 떨궈져 눈을 뒤집은 채 혀를 길게 내민 머리통을 힐끔 보고는 다시 빠르게 포털을 나선다.

[시험의 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등급을 선택하세요. (1등급/2등급/3등급/4등급/5등급)]

'5등급.'

[시험의 방(5등급)이 개방됩니다. 입장 시 500 업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곧장 장막을 진입하여 전투의 문을 열고 개인 전투의 문을 연다.

[전투 ­ 개인 전투 시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방의 적을 처치하십시오. 10초 후 전투가 시작됩니다.]

[용아병]

­ 등급 : 6

­ 설명 : 인간형의 중형 언데드 몬스터. 용의 이빨을 가공하여 만들어낸 몬스터. 용의 이빨로 만들어졌기에 그 내구성이 매우 강하며, 마나 전도율이 높아 몸 자체에 마법을 새기는 일이 많다.

3미터에 달하는 신장은 오우거 전사와 비교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았지만, 크기가 작음에도 느껴지는 위압감은 그보다 한참 위였다.

뼈로 인간을 조각한 것처럼 새하얀 얼굴과 딱딱해 보이는 짧은 머리칼 아래로 이어지는 굵직한 목과 새하얀 갑옷, 커다란 검은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눈의 검붉은 안광이 사이한 기운을 내뿜지만 않았더라면 신전에 있는 성기사의 조각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한 외관이다.

파각! 쿵!

용아병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나에게 목을 베였지만, 그 상태에서도 몸에서 붉은빛을 띠는 문자들이 떠오르며 검을 휘둘러 왔다.

부웅! 파가가가각!

'핵을 부숴야 하나?'

언데드 몬스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핵을 찾아내 부숴야 움직임이 멎을 것 같았다.

지이이잉.

용아병의 몸 전체에 떠오른 불그스름한 문자가 점점 진해지며 무언가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이자 재차 검을 휘둘러 양팔을 자르고 몸통을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있던 커다란 마정석을 부쉈다.

콰직!

사그라드는 붉은 문자를 끝으로 여러 개의 창이 떠오른다.

[전투 ­ 개인 전투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0업이 지급됩니다.]

[5등급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이 6이 되었습니다.]

[등급 상승 보상으로 '인벤토리'가 5칸 늘어납니다.]

[등급 상승 보상으로 잔여 능력치 60이 지급되었습니다.]

[상점의 이용 가능한 물품이 갱신됩니다.]

[6등급 시험의 방에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6등급부터 '시험의 방'에 등급 외 시험인 '레이드 전투'가 개방됩니다.]

['레이드 전투'는 다수의 인원이 함께 보스 몬스터를 잡는 시험입니다. 레이드 전투의 인원편성은 4인, 8인, 16인으로 나뉘며 인원이 올라갈 때마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등급이 1씩 증가합니다. 레이드 전투는 등급 외 시험이기에 시험을 통과할 시 등급이 상승하지 않습니다. 단, 실패할 시 시험의 방 밖으로 추방되지 않습니다. 통과할 시 해당하는 등급 시험만큼의 업이 주어지고 따로 보스 몬스터에게서 업과 전리품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전리품은 시험 통과 시 무작위로 레이드 참여 인원의 인벤토리 속에 자동 수납됩니다. 레이드 전투는 실패할 시 반복하여 도전할 수 있지만 통과할 시 해당 등급의 레이드 전투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흠…? 레이드 전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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