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42화 (42/62)

〈 42화 〉 성장 (2)

* * *

­ 1층입니다.

엘리가 소환되고 나서 왜인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뭔가 긴장감이 맴돌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문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에…? 예, 예."

'뭐지…?'

여자는 모르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내게 존댓말로 인사를 건넸고 나도 얼떨결에 존대하며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여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도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야?"

엘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시야를 가로막고는 물었다.

"어, 어. 아는 사람이야."

"근데 왜 그래?"

"그러게…?"

카톡!

그때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려 바라보자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 김지원 : 오빠! 나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되게 이쁜 신혼부부 봤어!

여자의 정체는 김지원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신혼부부?'

피식하고 웃음에 새어 나왔다.

"왜 웃어?"

"아니야, 아무것도. 가자."

의류 수거함에 옷을 넣고 비닐은 분리수거해 버리고 카톡을 두드렸다.

­ 방금 그거 나였어.

­ 김지원 : 무슨 소리야?

­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 나였다고. 네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잖아ㅋㅋ 내가 예, 예. 하고.

­ 김지원 : ㅋㅋ옆에 있었어? 못 봤는데.

­ 아니, 진짜 나였다니까ㅋㅋ 지금 좀 바쁜데 내일 얼굴 한번 보자.

­ 김지원 : 응, 알았어. 점심 때 볼까?

­ 그래, 점심 때 보자.

그렇게 카톡을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자 엘리가 묻는다.

"그건 뭐 하는 거야?"

"아, 카톡이라는 건데. 멀리 있는 사람과 문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야."

"그 조그마한 게 되게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

"나도 사주면 안 돼?"

"그래, 내일 낮에 사러 가자."

"진짜? 고마워! 히히."

걸음을 옮기며 다시 휴대폰을 들어 주변의 던전 위치를 파악했다.

'가는 길에 빈 던전이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인 노태산이었다. 새롭게 얻은 힘으로 등급 시험을 보려는 의도도 있었고 엘리에게 세계수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는데 겸사겸사 엘리의 튜토리얼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던전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지나는 길에 비어있는 2등급 던전을 발견했다.

[던전 : 망자의 무덤 (2등급)]

­ 던전 형태 : 던전형.

­ 추천 인원 : 3~5인.

­ 보스 유무 : 유.

­ 현재 상태 : 입장 가능.

­ 던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 : 28일

엘리와 파티를 맺고는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와아…! 신기해! 안에 들어오니까 아예 다른 세상이 됐어!"

던전에 진입하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던전 내부의 환경에 놀람을 표하는 엘리.

'이건 또 새로운 환경인데…?'

그동안 들이니 숲이니 하는 필드형 던전을 여럿 경험해봤지만 던전형 던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들어온 순간부터 썩 좋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냄새지? 습한 곰팡이…냄새 같기도 하고?'

[던전 ­ 구울 처치]

­ 퀘스트 설명 : '던전 ­ 망자의 무덤'의 보스 몬스터인 구울을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구울 처치. (0/1)

­ 퀘스트 완료 보상 : 1000 업.

그리고 던전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엇? 던전, 구울 처치?"

"던전에 들어오면 생기는 퀘스트야."

"아하!"

퀘스트창을 끄고 주위를 살핀다.

주변은 상하좌우가 매끄럽지 못한 울퉁불퉁한 돌벽으로 막혀있고 후방 또한 가로막혀 있어 오로지 앞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일단은.

"가보자."

"응."

앞장서서 걸으며 던전 내부로 마나를 퍼뜨린다.

"와, 하하…!"

"왜 그래?"

마나를 퍼뜨리는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양도 늘어났지만 마나를 운용하는 과정이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데다 그저 퍼뜨린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뻗어 나가는 마나의 협응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나만 따진다면 이미 나인보다도 위야.'

단순히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 질이나 마나가 움직이는 회로 자체가 너무도 이상적인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와하하하!"

"왜 그러는 거냐고!"

"하하하하하!"

마나를 운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경이로운 감각에 감탄과 함께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

"우씨!"

"느려! 하하하하!"

내 어깨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엘리의 손을 가볍게 피해내며 재차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던전 내부의 파악은 끝난 상황.

좁다란 길을 지나 널찍한 공동이 나타났고 바닥에 누워있던 뼈다귀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건…. 스켈레톤?"

엘리가 망자의 모습에 께름칙한지 뒤로 한걸음 물러서고 엘리의 어깨에 앉아있던 엘이 허공에 떠올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뼈다귀를 경계한다.

[스켈레톤]

­ 등급 : 1

­ 인간형의 소형 언데드 몬스터. 죽은 자의 뼈에 마법을 새겨 넣어 만들어진 몬스터로 만드는 노력에 비해 그 전투력은 형편없을 정도.

시체의 살이 썩어 뼈만 남은 해골 모양의 몬스터는 뼈로 만들어진 골검을 들고 다가왔다.

'스켈레톤이라….'

해골 같은 걸 본다면 본디 음산함을 느끼기 마련이건만 지금의 나는 웃음만이 나왔다.

"푸하하하!"

콰드득!

내려친 주먹에 몸을 일으킨 스켈레톤이 그대로 다시 무너져 내린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두개골은 박이 터진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상태에서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흐음…?"

무너진 스켈레톤의 뼈 사이를 살피자 작은 마석이 보였다. 그걸 끄집어내자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버리는 스켈레톤.

다가오는 스켈레톤들의 가슴팍에 빠르게 손을 뻗어 마석을 뜯어내자 그대로 공동에 있던 열 마리의 스켈레톤이 바닥에 쓰러져 한낱 뼛조각으로 전락해 버린다.

손에 담긴 마석을 보았다.

'이건 마정석이라고 해야 하나?'

마석은 마나가 담긴 돌이었고, 마정석은 그런 마석을 정제하여 마법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이처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끔 만든 것을 말했다.

"난이도에 비해 얻는 게 큰걸?"

고블린이나 오크, 놀 등에게서 얻는 가죽이나 조잡한 무기 따위보다야 훨씬 값어치가 있는 전리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기가 많겠는데?'

그도 그럴 게 스켈레톤은 고블린 정도의 수준이었다. 언데드의 특성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만큼 지능이 현저히 떨어졌다.

스켈레톤 10마리를 처치하며 오른 업은 고작 20이었다.

'뭐, 업을 얻으려고 온 건 아니니까.'

"엘리야."

"응?"

"튜토리얼 퀘스트 완료됐어?"

"응! 몬스터 처치 1은 완료했고 몬스터 처치 2가 생겼어."

"지금 능력치가 어떻게 돼?"

"체력이 15, 근력이 16, 민첩이 18, 정신력이 110, 마력이 15야."

"흠…. 아, 애매하네. 그 정령은 마력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거지?"

"응, 내 마력이 강해질수록 엘이 사용할 수 있는 힘도 커져."

"그럼 일단 잔여 능력치는 사용하지 말아볼래?"

"음? 알겠어."

내가 엘리의 잔여 능력치 사용을 자제시키는 이유는 오거환 때문이었다. 오우거의 힘을 내게 해준다는 오거환은 이미 평범한 오우거의 근력을 뛰어넘어버린 나에게 의미가 없었으므로 엘리에게 넘기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오거환은 복용 조건이 있으므로 잔여 능력치 사용을 자제시킨 것이다.

우리는 다시 좁은 길을 지나 새로운 공동에 도착했다.

몸을 일으키는 스켈레톤을 보며 인벤토리에서 내가 쓰던 검과 방패를 꺼내 엘리에게 넘겨주었다.

"할 수 있겠어?"

"응! 스켈레톤쯤이야!"

호기롭게 외친 엘리는 가장 가까운 스켈레톤에게 달려갔다.

"합!"

그리고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오른발 뒤꿈치를 들며 허리를 틀더니 그대로 기합과 함께 검을 내질렀다.

콰칭!

검이 정확히 스켈레톤의 가슴 안쪽에 박혀 있던 마정석을 깨부쉈다.

'오, 좀 하는데?'

엘리는 원래 궁술이 특기였고 보조로 검술도 익혔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상당했다.

"타앗! 합! 이얏!"

다른 스켈레톤도 쉽사리 무너뜨리는 엘리를 보고는 외쳤다.

"정령도 사용해야지!"

"엘!"

엘리의 부름에 엘이 자신의 몸을 넓게 퍼지게 만들더니 스켈레톤의 몸을 감쌌다. 몸집이 작아서 다 감싸지는 못했는데 그것으로 스켈레톤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멈칫거리게 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스켈레톤이 멈칫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엘리가 검을 뻗어 마정석을 깨부수고는 다른 스켈레톤들도 같은 방식으로 손쉽게 해치웠다.

'연계가 나쁘지 않네.'

엘리의 정령술은 지금도 나쁘지 않았지만, 스켈레톤 같은 언데드 몬스터보다도 살아있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능력이 빛을 발할 것 같았다.

물로 기도를 막아 질식시키거나 머릿속으로 들어가 뇌를 헤집어놓는다면 웬만한 몬스터는 어찌할 새도 없이 당해버릴 것이다.

그렇게 4개의 공동을 지나고 마지막 5번째 공동에 다다랐을 때 스켈레톤 10마리와 덩치가 거대한 구울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구울]

­ 등급 : 2

­ 설명 : 인간형의 중형 언데드 몬스터. 마법 처리를 해 단단한 피부와 함께 날카로운 손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시체의 사기를 먹는다고 한다.

등이 굽어 있음에도 2미터 50센치는 되어 보이는 신장. 크기만 따진다면 3미터에 달하는 트롤보다는 좀 작고 홉 고블린보다는 컸다.

검은 광택이 도는 피부는 금속처럼 단단해 보이는 것이 웬만한 검은 튕겨낼 것 같았고 두꺼우면서도 길게 뻗은 팔과 다리에 비해 비교적 얄팍하게 빠진 몸통은 날렵하면서도 강인해 보였다. 손톱과 발톱은 20센치에 달해 작은 단검을 여럿 달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이빨보다는 날렵한 몸과 길쭉한 팔다리를 이용한 손발톱 공격이 특기일 것 같았다.

[능력 : 정보 분석을 습득하였습니다.]

'응?'

갑자기 정보 분석 능력을 습득했다는 메세지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구울을 바라봤다.

"크르르르."

구울의 몸은 호흡 기능과 성대가 남아있는지 벌어진 입에서 연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무래도 시체의 사기를 먹는다는 설명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딱 봐도 아직 엘리가 상대하기는 무리일 것 같아 한달음에 다가가 명치 쪽에 주먹을 꽂는다.

콰앙!

그대로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허물어 내리는 구울.

[던전 ­ 구울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업이 지급됩니다.]

[능력 : 권술을 습득하였습니다.]

"하, 하하…."

"와! 유현! 대단해!"

마나는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만들어진 결과물에 괴물같이 변한 신체 능력을 몸소 체감하고는 남은 스켈레톤의 처리는 엘리에게 맡겼다.

'지금은 나보다는 엘리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겠어.'

엘리가 남은 스켈레톤을 모두 쓰러뜨리고 나자 밖으로 나가는 포털이 생성되었다. 곧바로 던전을 나서며 노태산 방향에 있는 던전들을 하나씩 살피며 길을 나아갔다.

여전히 포화상태인 1등급의 던전은 모두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거나 이미 클리어된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2등급의 던전은 종종 비어있었다.

그렇게 2등급 던전 두 개를 더 클리어하자 엘리의 튜토리얼 퀘스트가 끝이 났고, 보급형 선택 무기로는 활과 화살 세트를 받았다.

"이열­! 잘 어울리는데?"

"히힛! 그래?"

"어! 진짜 잘 어울려!"

화살통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으로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정말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여기서 모자만 벗는다면 진짜 판타지 영화 속 엘프의 모습이 재현되겠지만.

'그럴 수는 없지.'

어쨌든 이제 더는 던전을 돌 필요가 없었기에 곧장 노태산으로 향했다.

이미 던전을 돌면서 노태산 방향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노태산 인근에 도착하자 어두운 밤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하늘 높이 뻗어있는 세계수의 모습이 보였다.

"엘리, 저기 봐!"

"응? 어디? 아…. 저게…세계수님……?"

엘리의 시선이 세계수를 향하자 그녀의 눈에 갑자기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반가워서 그런 거야, 뭐야?'

그 종잡을 수 없는 감정 변화에 다급히 이유를 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엘리는 여전히 세계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후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더니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세, 세계수님이……흑! 너, 너무 작고 초라해…!"

"……?"

전혀 작지도 초라하지도 않아….

노태산이 작다고는 하지만, 산 중턱부터 뿌리를 뻗어 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수는 절대 작지 않았다.

그렇지만 엘리의 눈에는 그 모습이 한없이 가엾고 불쌍해 보였는지 재차 흐느꼈다.

"흑흑! 세계수님!!"

갑자기 오열하는 엘리 때문에 근처에서 걷고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뭐야…? 남자가 헤어지자고 했나 봐…."

"어떡해, 여자 불쌍해. 진짜 서럽게 우는 거 봐."

"저 정도면 남자가 사고 친 거 아냐…?"

"얼굴 보면 바람 핀 걸 수도 있겠는데?"

"흐어어엉!!"

"에잇, 진짜!"

슷.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엘리를 둘러메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능력 : 영보를 습득하였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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