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암살자 나인 (11)
* * *
"정제된 만드라고라?"
자! 5시 경매의 세 번째 경매품! 남작급 뱀파이어의 혈청 경매를 시작합니다!
스피커에서 발성이 탄탄한 경매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가씨, 만드라고라가 뭔가요?"
"만드라고라는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희귀한 영약초야."
"영약초요?"
귀족급 뱀파이어의 혈청은 구하기가 매우 힘든 만큼 값어치를 톡톡히 하는 물건이죠. 제일 끝자락에 있는 남작급이라고 해도….
뚝.
리모컨을 조작해 스피커를 음소거 상태로 전환하며 레이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응,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되게 드물게 발견되는 영약의 한 종류라고 알고 있어."
"아! 나도 들어봤어!"
엘리가 왼손으로 쿠키를 집는 한편 오른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뭐를?"
"만드라고라에 대한 이야기!"
와그작와그작! 우걱우걱!
'아니, 무슨 쿠키를 저렇게 한꺼번에 집어넣냐?'
입에 쿠키를 한움큼 집어넣은 엘리는 다람쥐처럼 볼을 빵빵하게 불린 채 열심히 쿠키를 씹어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녀가 쿠키를 다 삼킬 때까지 기다리다 물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였는데?"
200년 이상 살아온 만큼 알고 있는 지식도 상당할 테니, 그녀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
"레이첼 님의 말대로 만드라고라는 굉장히 희귀한 영약초야."
그녀는 말을 시작하며 손을 쿠키 쪽으로 다시 뻗었다.
"아, 쿠키 좀 그만 먹고 이야기 좀 해!"
"힝…! 왜 화내?"
갑자기 울상을 짓는 엘리에게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이, 화 안 냈어. 하하! 내가 언제 화냈다고 그래? 이야기 좀 하고 먹으라는 거지."
"눈은 안 웃고 있는데?"
"헤헤헤. 봐봐! 웃고 있잖아."
"……알겠어.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엘프들의 구전을 통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만드라고라는 주변의 기운, 즉 마나를 빨아들여 저장하는 식물인데 그렇게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
"특별한 능력?"
"주변의 마나를 분해하는 능력. 자신이 흡수하기 쉽게끔 만드는 거지."
"오…."
"그런데 만드라고라의 그 능력 때문에 채취하는 과정에서 많은 엘프가 죽었다고 들었어."
"채취하다가 죽었다고?"
"응,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는 능력이 약하게 발휘되지만, 만드라고라를 뿌리째 뽑으려고 한 엘프들은 틀림없이 죽었다고 해. 인간의 형태를 한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채취를 위해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엄청난 비명을 지르는데 그건 단순한 비명이 아니라 마나를 분해하는 능력을 강하게 발휘해서 생기는 특이 현상이야. 마나를 분해하는 능력이 고도로 증폭되니 채취를 하던 자는 물론이고 주변의 나무나 식물들까지 그 근원을 유지하는 마나가 모두 붕괴하여 죽게 된대."
엘리는 쿠키 때문에 입안이 텁텁했는지 복숭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주변의 생명체들을 죽이고 난 이후에는 자신의 발로 걸어서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린다고 하니 채취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나도 살면서 몇 번 못 들어봤어."
'뭔가 대단하긴 한 거 같은데.'
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그래서 효능은?"
"효능은 마력의 증진과 신체 능력 개선이야. 효능의 정도는 만드라고라의 뿌리가 몇 년이나 되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마력의 증진은 알겠는데 신체 능력 개선은 무슨 말이야?"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기본적으로는 노화를 되돌리는 역노화현상이 일어난다고 해."
"흠…. 고마워, 엘리. 많은 도움이 됐어."
현실에서 복용하게 된다면 28살인 신체가 20살 적의 신체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건가? 근데 이미 현실의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데 신체 능력 개선이 도움이 될까 싶었다.
'뭐, 마력의 증진만으로도 굉장한 거지.'
빠르게 등급을 올린 덕분에 등급에 비해 모든 능력치가 떨어졌다. 지금은 능력치 하나하나가 소중한 상황.
시간이 흘러 7시가 되었다.
그동안에 나온 경매품들은 평상시보다 품질이 뛰어났기에 고민을 거듭했다. 차라리 강한 장비를 갖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만드라고라가 생각보다 별로여서 보험을 들어놓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7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7시 경매의 첫 번째 경매품은….
결국,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인내하여 마지막 경매 시간이 찾아왔다.
자! 오늘의 경매는 정말 특별함의 연속이군요!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물품들도 특별하긴 했지만 이제부터 소개해 드릴 물품은 정말 놀랍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골드 등급의 특상품!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 길드 '현자의 돌'에서 공증한 진품 중의 진품! 전설로만 치부되었던 만드라고라를 여러분께 소개드립니다!
빠빠라밤! 빠바바밤!
스피커에서 웅장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무대 뒤편에서 민머리의 남자가 검은 천막에 둘러싸인 수레를 밀고 나왔다.
만드라고라는 사실 채취하는 것도 복용하는 것도 위험성이 큰 영약이지만, 이번에 소개해드릴 만드라고라는 정제가 된 제품으로 위험성을 모두 제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진행자가 수레의 검은 천막을 벗기는 것으로 경매는 시작되었다. 천막을 벗기자 투명한 상자 안에 담긴 만드라고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의 말대로 사람을 작게 축소해 놓은 것처럼 정교한 뿌리가 투명한 푸른빛 액체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무려 300년근에 달하는 긴 세월을 살아왔기에 그 영묘한 효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매 시작가는 100만 골드부터 10만골드씩 올라갑니다!
"……."
'100만 골드?'
시작부터 쌔다.
우리가 있는 곳은 A13번으로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너 정말 저걸 사려고?"
레이첼은 상상을 벗어난 금액에 기가 질렸는지 혀를 내둘렀다.
"살 수 있으면 사야죠."
말이 100만 골드지 대영지의 1년 치 예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고위급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지불할 수 없는 금액.
F72, 110만, 110만 골드. 120만 골드 없습니까? 예, 120만 골드 나왔습니다. 130만, 130만 골드….
경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 경매가 벌써 200만 골드에 도달합니다. 지금부터는 20만 골드씩 올라갑니다. G19, 220만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200만 골드에 도달하자 입찰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E36, 240만 나왔습니다!
260만! H88번에서 260만 나왔습니다.
G19! 280만 나왔습니다.
E36, 300만 골드 나왔습니다. 단위는 계속해서 20만, 20만 골드로 유지하겠습니다. 320만 없으십니까?
320만, G19번에서 320만 나왔습니다.
E36, 340만 골드!
300만이 넘어가자 입찰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E36과 G19.
'와, 이거 못 사는 거 아니야?'
300만이 넘어가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미 가진 돈의 절반을 넘은 상태.
G19! 360만 골드 나왔습니다! 380만 골드 없으십니까? 380만 골드 없으시면…!
E36번도 그 이상은 힘들었는지 더는 입찰을 진행하지 않았고 그렇게 360만 골드로 경매가 마감하려 할 때, 리모컨을 들었다.
380만! A13번에서 380만 나왔습니다.
"후우…. 가보자."
400만, 400만 골드 없으십니까?
400만이면 대영지의 4년 치 예산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모니터 속 진행자의 입을 숨죽여 바라봤다.
없으시면 이대로…. 아아! G19! 400만 골드 나왔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G19에서 입찰이 들어왔다. 나는 입찰이 들어오는 순간 바로 승부수를 띄웠다.
'아, 몰라. 이 이상은 나도 없다."
5, 512만! A13번에서 512만 골드!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새롭게 갱신합니다!
쓸 수 있는 최대한을 적었다. 이 이상이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 따로 성검 급의 물건을 구할 수밖에.
532만, 532만 골드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이대로 경매 마무리! 하겠습니다!
탕탕!
정제된 만드라고라! 512만 골드! 낙찰입니다! A13번 고객님께 512만 골드 낙찰!
"후우, 어떻게 사긴 샀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옆에서 과장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레이첼과 과자 부스러기를 입에 묻힌 채 배를 문지르고 있는 엘리의 모습이 보인다.
"……."
"아, 배부르다!"
"아가씨, 턱 떨어지겠어요. 그리고 엘리 이제 밥 먹으러 가야 되는데 과자를 그렇게 먹으면 어떻게 해?"
"밥 먹을 배는 따로 있어서 괜찮아!"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이게 무슨."
실성한 듯 말을 어버버 하는 레이첼.
"뭐요, 왜 말을 못 해?"
"일개 개인이 그만한 돈이 있다고?"
"일개가 아닌가 보죠. 좀 특출하잖아요 제가?"
내가 대금을 지급하고 만드라고라를 수령하고 올 때까지도 레이첼은 믿을 수 없는 듯 정신이 멍해 보였다. 아, 대금은 상인 연합이 운영하는 국제 은행을 통해 지급했다.
아무리 아공간 주머니가 있다지만 500만 골드가 넘는 금액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었으니.
"자자, 남은 시간 동안 축제를 즐겨보자고요!"
수도는 지금 건국 기념일을 맞이해 축제가 한창이었다.
거리에는 어린아이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지긋한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축제의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었고 우리도 그 틈새에 끼어 들어갔다.
'좋네, 축제라니.'
"로한! 나, 이거 먹고 싶어!"
"안돼, 엘리. 밥부터 먹고."
"아, 왜에!"
길 한복판에서 떼를 쓰는 엘리는 모자를 써서 귀를 가렸음에도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레이첼 또한 많은 시선을 받았는데, 그녀도 귀족가의 여식으로서 철저한 관리를 해왔을 뿐 아니라, 무예를 닦으며 상당히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긴 생머리를 묶지 않고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 나조차도 평소보다 눈길이 갔다.
'엘리도 그렇고, 레이첼도 그렇고 인기가 상당하네.'
지나가는 남자들이 내게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그리고 궁금했다.
나의 인기가!
레이첼의 친구들이 예약해놨다는 식당으로 가는 동안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한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씨익.
화들짝!
그 상태에서 내가 씨익 웃음을 흘리자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 달아나는 여자.
"훗."
'부끄러워하기는.'
퍽!
"악! 왜 때려요!"
갑자기 정강이를 걷어차는 레이첼에게 항변하자 레이첼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으르렁댄다.
"지나가는 사람 괜히 겁주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제가 언제 겁을 줬다고……악! 알았어요, 알았어!"
주먹을 들어 올리는 레이첼을 다급히 제지하고 엘리의 손을 잡았다. 그새 또 엉뚱한 곳에 한눈을 팔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잘 따라와야지, 거기서 뭐 하고 있어."
홱!
그리고 그 손을 레이첼이 다시 낚아챈다.
"엘리 님, 어서 가요."
"네, 넵!"
서로 팔짱을 끼며 걸어가는 두 여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뒤따라갔다.
'이게 행복인가?'
오늘이 지나면 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