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암살자 나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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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란 무엇인가.
기사도(???)란 풀어서 얘기하자면 기사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사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란 건 무엇인가.
그것은 기사가 지켜야 할 덕목을 지키는 것이다.
기사의 덕목은 총 7가지로 무용(??), 성실(??), 명예, 예의, 경건(??), 겸양(??), 약자 보호 등이 있다.
첫째로 무용이란 무예를 수련하며 마음마저 갈고 닦아 용맹함을 갖추는 것이다.
둘째로 성실이란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갖출 뿐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셋째로 명예란 기사로서의 명예를 지킬 줄 알며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할 줄 아는 것이고.
넷째로 예의란 사람을 대함에 있어 예를 갖추는 것이다.
다섯째로 경건이란 모시는 주군을 공경하며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입은 무거워 분위기가 엄숙해야 하는 것을 뜻했으며.
여섯째로 겸양은 기사로서 항상 겸손하고 남에게 양보하며 사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을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약자 보호란 말 그대로 위험에 빠지거나 곤경에 처한 약자를 보호하고 그러한 행위에 있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빌어먹을 종자들은 기사의 길을 걷는자로써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드륵.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움직인다. 의자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어? 하지 마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을 뻗는 행동 자체를 보지 못하였는데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손이 마치 바위에 박힌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된다. 손목을 잡은 거야 한눈을 팔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팔에 체중을 싣고 힘을 주는데도 팔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말이 안 되는 것보다도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화가 치밀었다.
"이거 놔."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을 내뱉은 자신조차 그 냉기에 흠칫했다.
"안돼요."
그러나 그의 음성은 냉기에 닿지 않은 듯 흔들림 없이 단호하기만 하다. 오히려 시선을 돌려 포크로 구운 감자를 찍어 먹기까지 한다.
레이첼은 이토록 무기력한 상황에 부닥쳐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고 주변에서는 자신을 칭송하기 바빴다. 물론 그렇다 하여 자만하거나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덕분에 가문의 후계자로서 인정받아 곧 백작위에 오를 예정이었다.
그런 자신으로서 처음 겪어 보는 이러한 상황은 당혹스러웠고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태연한 그의 태도에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보지 않고 식판을 보고 있는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이를 바득 갈았다.
"이거 놓으라고 했다."
그제야 그가 손을 놓아주자 답답함이 한결 풀린다. 하지만 아직 치밀어 오른 화는 풀리지 않았다.
한술 뜨지도 않은 식판을 집어 들고 자신이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큰 보폭으로 다가가.
그들이 행한 것과 똑같이.
식판의 음식물을 흩뿌린다.
"뭐, 뭐야!"
그러고도 모자라 빈 식판마저 집어던졌다.
"아악!"
"이 미친…! 레이첼?!"
"네, 네가 왜……?"
"후계자도 되지 못한 남작가의 무능력자들이 예의도 뭣도 모르고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아침부터 학교 분위기 망치지 말고 좀 꺼져줄래?"
"……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해하지 마! 저 자식이 얼마나……!
3명 중 한 명이 발끈하며 열변을 토하는데 레이첼의 뒤편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한창 재밌었는데 방해하지 말지."
"너, 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본 레이첼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린다.
"너라니 엄연히 칼로스라는 멋진 이름이 있는데."
그리고 칼로스의 손에 들린 식판을 보고 뒷걸음질 치다 테이블에 둔부가 닿았다.
"그런데 말이야. 부모의 작위가 높으면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럼 나도 이렇게……어?"
가까이 다가온 칼로스가 레이첼의 머리 위로 음식물을 쏟아붓는데 레이첼이 갑자기 사라졌다.
주르륵.
음식물이 허공을 지나 바닥에 떨어지고.
"어…?"
레이첼은 갑자기 바뀌어버린 환경에 몸이 굳어버렸다.
어느새 자신은 누군가의 품 안에 안겨있었고 그녀를 안고 있던 누군가는 천천히 그녀를 자리에 앉히며 예의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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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레이첼을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에게 포크와 나이프를 쥐여주었다.
"한 입씩 다 먹어봤는데 독은 없네요. 그리고 식판 쏟아붓는 데 왜 가만히 있습니까? 가마니세요?"
"어? 어…, 어? 뭐라고?"
현대의 수준 높은 개그를 구사했는데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레이첼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어휴, 정신 차리고 식사하시라고요."
그런 레이첼을 그녀의 친구들에게 맡기고 자신을 칼로스라고 지칭한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 레이첼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거기, 무슨 소란이야!"
그러다 웬 오우거를 축소해놓은 것 같이 생긴 사람이 호통을 치며 식당에 들어오자 그대로 발길을 돌려 의자에 앉은 남자를 둘러싸고 있던 세 명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몬스터야, 사람이야? 어쨌든 나이스 타이밍…! 이라기엔 조금 늦게 오셨네.'
그래도 관리자 같은 사람이 왔으니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레이첼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아니, 학교가 원래 이래요?"
"……."
'허, 이 사람들도 상태가 별론데?'
그녀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멈추고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더니 또다시 폭풍 질문을 해왔다.
"방금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나, 난 보지도 못했어! 대박!"
"저, 저랑 사귀어 주세요!"
"……."
마지막은 뭐냐.
어쨌건 소란했던 아침 식사시간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레이첼과 그녀의 친구들은 오전에 교양수업이 있었기에 그대로 3층의 강의실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강의실 밖에서 대기했다.
아무리 호위 기사라지만 수업 시간에 강의실 내부까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뭐, 수업 중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또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가는 정말 곤란했다.
'말려도 들어먹지를 않으니 원. 그나저나 이제 뭘 하지?'
강의실 앞의 복도를 보자 나처럼 호위 기사의 신분으로 학교에 나온 기사들로 가득했다.
학교의 보안이 취약한 것은 아니지만 귀족 자제들 같은 경우는 호위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싶었다.
'장비가 삐까뻔쩍하네.'
기사들은 학교인 만큼 완전무장한 풀 플레이트 메일이 아닌 가벼운 경갑 차림었지만 그럼에도 착용한 장비들이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에 비해 내가 착용한 장비는 초라한 편에 속했다. 마찬가지로 경갑 차림이었지만 용병 로한으로 활동하고 있다가 왔기에 장비가 군데군데 해진 상태였다.
'흠….'
옆에 서 있는 기사에게 말이나 걸어볼까 하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내가 생각보다 낯을 가려서.
바닥에 주저앉는 나를 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기사들이 힐끔 쳐다본다.
'고생들 많습니다.'
낯은 가려도 사람들 시선은 신경 안 썼기에 그대로 벽에 기대 눈을 감는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입몽. 잠재 능력의 발현. 상태창. 몬스터. 던전……. 일단 생각나는 대로 단어를 떠올려본다.
'아이반이라고 했었나?'
오크로서 며칠 살았더니 벌써 일주일은 된 기억처럼 희미하다.
자신을 의 관리자이자 지구의 담당자라고 소개한 정체불명의 존재.
그가 말하길 튜토리얼을 끝내며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한다고 했다.
상점, 던전, 세계수 등이 모두 지원이라는 뜻.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다면 지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근데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는 끝으로 도태되는 사람, 지역, 나라는 파괴될 것이라고 겁을 주었지만 그건 지원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끄응."
아, 머리 아파. 이건 패스.
손등을 이마에 가져다 대자 미미한 열기가 느껴진다.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을 이어갔다.
입몽.
잠재 능력의 발현으로 얻게 된 능력.
꿈을 그저 꾸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현실감 있는 꿈속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통용되는 기억과 현실에서 수령하는 퀘스트의 보상까지 있다.
'도대체 어떤 원리인 거지?'
다른 사람들의 능력도 충분히 비현실적이지만 내 능력의 경우는 정도를 벗어났다는 느낌이 강했다.
'꿈속의 기억과 물건을 현실로 가져온다……. 흠….'
그리고 꿈이란 게 본래 비현실적이기 마련인데 입몽을 통한 꿈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마치 실존하는 세계처럼.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다. 너무 현실 같아서.
'이 꿈은 과연 꿈일까, 아니면 실존하는 다른 세상의 존재에게 내가 들어온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미간을 찡그리고 사고를 가속한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가고 이내 머리를 쥐어뜯는다.
"……으아아악! 모르겠다!"
드륵!
강의실 문이 열리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여교수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기! 조용히 좀 하세요!"
"앗! 죄송합니다!"
에이씨, 안 할래. 깊게 생각해봤자 뚜렷한 답도 안 나올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밑층으로 향했다.
'음료수나 마셔야겠다.'
음료수와 함께 케이크와 비스킷 따위의 디저트를 즐기다 시간에 맞춰 강의실로 올라갔다.
내려간 김에 레이첼과 친구들의 간식거리도 챙겨왔기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레이첼에게 간식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친구분들이랑 같이 드세요."
"이게 뭐야?"
"간식거리 좀 사 왔습니다."
"와아아! 잘 먹을게요!"
"로한 경, 센스 짱짱!"
"앗싸, 치즈 케익!"
좋아하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들과 달리 레이첼의 표정은 뭔가 불편해 보였다.
"나중에 의뢰비로 청구해."
'아, 그것 때문에?'
"제가 사드리고 싶어서 사드린 건데요, 뭐."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레이첼이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냈다.
"네가 왜?"
'어차피 들고 가지도 못할 돈 막 쓰는 거다. 왜.'
"아가씨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기사의 덕목 아니겠습니까?"
내가 능글맞게 대꾸하자 레이첼이 발끈했다.
"네가 무슨…!"
"역시 멋져요! 로한 경!"
"얼른 가요!"
나와 레이첼은 그녀의 친구들에게 등이 떠밀려 3층의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잠깐의 디저트 타임을 즐기고 다시 강의실로 향했다.
밑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오전 수업은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걱정과 달리 점심시간 역시 별일 없이 흘러갔고 오후의 기사 수업이 시작됐다.
교양 과목과 달리 전공이라 할 수 있는 기사 수업은 특이하게도 반이 편성되어 있었고 그 강의실은 의자와 책상이 놓인 게 아니라 기사들의 훈련장을 본 떠 놓았다.
'그래서 학급 친구라고 소개한 건가?'
조이의 소개를 떠올리고 있자 레이첼이 말했다.
"들어와. 곧 수업 시작해."
"네?"
"기사 수업은 참관 가능하니까 상관없어."
"아…."
강의실 안에 들어가니 레이첼의 말대로 학생들과 따로 떨어진 뒤편에 호위 기사들이 서 있었다. 나도 그 근처로 가 섰다.
'아, 이거 좀 별론데.'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치를 안 본다지만 학생들과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는데 바닥에 나자빠져 있을 수는 없었기에 지루함에 속만 타들어 갔다.
'빨리 끝나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창밖에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온 레이첼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로한!"
"응? 왜요?"
그녀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손을 끌고 강의실 앞으로 향했다. 강의실 앞으로 가자 중년의 교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허, 고맙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지도를 위해 선뜻 나서주시다니 제자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예?"
'뭔 소리하는 거야, 이 아저씨가?'
"자, 검을 받으시지요."
교수가 내민 칼날이 없는 무인검(無??)을 얼떨결에 받아들자 그가 강의실 벽면의 무인검 하나를 더 빼 들더니 갑자기 우렁찬 사자후를 터뜨렸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소!!!"
'아놔! 좀 쉬자, 좀!!!'
지루하긴 했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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