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수상한 고등학생 (2)
* * *
"아니, 잠깐만 뭐라고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다.
"저 등급 4라고요."
"아니, 어떻게…?"
의문은 의심이 되었다.
'이 자식 구라아니야?'
그도 그럴 게 고작 4일 만에 이뤘다고는 믿기 힘든 성과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내 의심을 눈치챘는지 말했다.
"파티 들어와 보세요. 파티명은 '등급 2 이상만.'"
파티창을 열어 파티 요청을 하자 곧바로 요청이 수락되며 파티원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됐다.
<2 5=""> 등급 2 이상만
ㅁ 파티 구성
[파티장] (등급 4) 우주혁
(등급 3) 유현
'진짜 등급이 4잖아?'
내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우주혁 또한 내 등급을 보고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 진짜 등급이 3이시네요?"
"2번 도전해서 겨우 됐죠. 주혁 씨는 어떻게 3등급 시험 통과하신 거죠?"
"형이신 거 같은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고2예요."
고2면 18살인가? 와, 나랑 10살 차이나네. 부럽다, 부러워! 젊음의 혈기!
"어, 어…그래. 근데 어떻게 통과한 거야? 3등급 시험 장난 아니던데?"
"아…. 운이 좋았어요. 능력이 좀 특별해서."
그는 붕대가 감긴 팔을 들어 올리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등급 5 몬스터한테는 안되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능력이길래….'
궁금했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초면에 꼬치꼬치 캐묻는 건 실례였다. 뭐, 지금 파티를 맺었으니 차차 알게 되겠지.
"그런데 등급 4면 혼자서 도는 게 낫지 않아? 한 등급 차이만 나도 엄청난 차이가 날 텐데."
"그게…. 능력을 함부로 쓸 수가 없어서 실상은 등급 2랑 별 차이가 없을 거예요."
"그래?"
나 이외의, 아니 나보다 높은 등급을 만난 건 처음이기에 궁금증을 가득 안은 채 2등급 이상의 던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메모장을 열어 곧장 향하자 이번 2등급 던전도 입장이 가능했다.
'놀 평원이라.'
[던전 : 놀 평원 (2등급)]
던전 형태 : 필드형.
추천 인원 : 3~5인.
보스 유무 : 유.
현재 상태 : 입장 가능.
던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 : 29일
던전 내부로 진입하자 놀 치프틴을 처치하라는 퀘스트창과 함께 나무 한 그루 없이 평평한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솨아아아.
뻥 뚫린 공간으로 시원한 바람이 여과 없이 달려든다.
"주혁아, 던전에 들어오면 공기가 너무 좋지 않냐?"
"아, 네. 그렇네요…. 하하."
'녀석. 어려서 그런지 2등급 던전인데도 긴장 많이 했구만?"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검을 질끈 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등급이 높아도 애는 애였다.
우주혁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럼 가볼까?"
"네!"
들판 위에는 잡초인지 뭔지 모를 풀이 무릎까지 자라있었고 놀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며 평원에 서식하는 물소 떼와 가젤 등을 사냥하고 있었다. 놀 무리의 뒤편에는 놀 치프틴이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무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아니, 저거 물소 같은 거 잡아가서 팔면 돈 좀 되지 않을까?'
회사를 그만두니 돈벌이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이 미쳤다. 뭐, 이제 막 퇴사한 참이라 돈이 없지는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졌으니 생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정 돈이 없으면 상점에서 금이라도 사서 팔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될 거 같지는 않았다.
'일단은 전투에 집중하자.'
이번에는 우주혁도 있겠다 마나를 최소화해서 사냥해볼 생각이었기에 허투루 전투에 임할 수가 없었다.
놀 무리는 도망가는 물소 떼의 엉덩이에 화살과 칼침을 놓으며 생기 넘치는 사냥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물소들도 가만히 맞고 있지는 않았고 뒷발질을 하거나 기다란 뿔을 들이밀며 화를 내었고 그럴 때마다 놀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가 물소가 뒤를 보이면 다시 따라가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놀 한 마리가 물소의 뒷발에 얻어맞고 비명을 내지른다.
깨갱!
그리고 물소 역시 뒤처진 한 마리가 집중 공격에 결국 몸을 눕히고 만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놀들은 끝까지 추격해 기어코 한 마리의 물소를 더 땅에 눕히고 나서야 사냥을 멈춘 놀들은 물소를 곧장 먹지 않고 물소의 시신 앞에 얌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뒤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놀 치프틴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물소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다시 뒤편으로 빠지고 나서야 뒤늦게 하나 남은 물소를 먹기 시작했다.
"양아치네."
놀 치프틴이 물소 한 두 마리가 아니라 물소 떼 전부를 죽일 힘이 있었음에도 나서지 않고 놀들이 사냥을 마칠 때까지 구경만 하다 힘겹게 잡은 물소 두 마리중 하나를 냉큼 물고 가 버리는 얌체 같은 짓을 하자 내가 성질이 났다.
"어휴 속없는 놈들. 쯧쯧."
일상인 듯 신경 쓰지 않고 물소를 열심히 뜯고 있는 놀들을 보며 혀를 차자 옆에서 우주혁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못 봤어? 놀들이 사냥한 걸 놀 치프틴이 냉큼 물고 가 버리는 거?"
"네? 여기서 그게 보여요?"
"뭐야 너….안 보여?"
"너무 멀잖아요."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마나로 시력을 강화하면 충분히 보일텐데?
나는 의아해서 검에 마나를 불어넣고는 말했다.
"너 이거 해봐."
"우와! 형,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하나만 묻자. 너 마력이 몇이야?"
"마력이요? 5요."
"5...?"
대체 어떤 방식으로 3등급 시험을 통과한 거야?
"네! 아…. 그거 마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어. 그렇지."
나는 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너, 놀 치프틴 맡을 수 있겠어?"
"네, 한 번 해볼게요."
우리는 물소를 뜯고 있는 놀 무리와 놀 치프틴에게 곧장 달려갔다. 거의 다 왔을 때 나는 우주혁을 힐끔 보고는 양 떼 속을 향해 뛰어드는 늑대처럼 놀 무리를 헤집었다. 물소의 사체에 얼굴을 묻고 있는 놀 열 마리 중 네댓 마리가 단숨에 목이 베어 절명한다.
황급히 고개를 쳐드는 나머지 녀석들도 칼질 두어 방에 생을 달리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놀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며 달려든다.
"흠…."
'이 정도는 마나를 쓰지 않아도 충분하겠는걸?'
마나를 쓰지 않고 오롯이 육체의 능력만으로 놀을 상대해 간다. 느릿느릿한 검을 피해 벌어진 기다란 주둥이에 검을 찔러넣는다.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로 쳐내고 검을 빼내 근처에서 서성이는 놀에게 곧장 휘두른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반응하지 못하는 놀이 목을 떨구며 쓰러지고 이어서 다른 놈들도 차근차근 그와 같은 꼴이 돼버린다.
중간에 검이 부러지는 바람에 당황하긴 했지만, 놀이 죽으며 떨군 무기 중 상태가 괜찮은 것을 집어 들어 계속해서 상대했다.
확실히 마나를 쓰는 게 더 빠르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모든 놀을 처리하고서 옆을 바라보자 우주혁과 놀 치프틴의 싸움이 아직 한창이었다.
"저게 뭐지?"
다소 어벙해 보여서 등급 4라는게 확실한데도 믿음이 가지 않았던 그는 온몸에 반투명한 검은 기운을 넘실대며 놀 치프틴과 맞서고 있었다. 시력을 끌어올려 유심히 살펴봐도 검은 기운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 둘의 공방전은 꽤나 치열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혁을 감싸고 있는 검은 기운이 점점 짙어지더니 놀 치프틴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더욱 짙어진 검은 기운의 우주혁에게 압도당한 놀 치프틴은 결국 목을 내어주고 말았다.
'저 꺼림칙한 기운은 뭐지? 마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 같긴 한데….'
거리가 있는데도 불길하고 흉악한 기운이 여실히 전해진다.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창을 닫으며 우주혁에게 다가가자 그는 인벤토리에서 붕대를 꺼내 손에 감고 있었다.
"주혁아, 다쳤어?"
"아, 아니요. 괜찮아요."
아직 붕대가 덜 감긴 팔을 보니 피부가 칠흑같이 검었다.
"그 팔이 네 능력이라고 했지?"
"네, 근데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조절이 힘드네요."
"야, 너 눈이…!"
붕대를 감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흰자위가 없이 모두 검었다.
"아, 이거요? 조금 있으면 돌아와요."
우주혁의 말대로 붕대를 다 감고 시간이 지나자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검은 기운은 대체 뭐야?"
"흑화라는 능력인데 소환수의 능력을 끌어오는 거라고만 쓰여 있어서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소환수?"
"네, 이 친구가 제 소환수예요."
그가 붕대를 감고 있는 팔을 들어 올리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팔이 네 소환수라고?"
"네, 지금 팔에 깃들어있어서. 힘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붕대로 감아놔야 해요."
"되게 특이하네.“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는 이해 못 했지만 이해한 듯 넘어간다.
"제가 봤을 땐 형이 더 특이하신데요? 능력이 뭐예요?"
"나는 뭐, 이런 거지."
검에 마나를 싣는 걸 다시 한번 보여주고는 물었다.
"그런데 그 기운….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몸에 이상은 없는 거야?"
"아, 그것 때문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파티원을 구하려고 했어요."
"왜?"
"이게 지금 능력치를 많이 올렸는데도 일정 이상 능력을 끌어올리면 몸에도 정신에도 이상이 오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몸은 운동을 심하게 한 것처럼 뻐근해지고 정신은 좀 화가 많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긴 자주 쓰면 이상해질 것 같아서 파티를 구하고 있었어요."
"그렇구나."
"형은 괜찮아요?"
"나? 나도 심하게 사용하면 똑같아. 온몸에 힘이 없고 그래. 대신 너처럼 화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고."
"부럽네요."
"네가 더 부럽다. 나는 등급 4짜리 몬스터는 아직 엄두가 안 나던데. 근데 그 정도로 등급 4짜리 몬스터를 해치우는 건 힘들 것 같은데."
"아, 다른 능력이 더 있긴 한데. 너무 위험해서 현실에서는 쓸 수가 없어요. 저도 죽을 수 있거든요. 등급 시험은 그 능력 덕분에 통과했어요."
"아…."
대강 어떤 느낌인지는 알았다. 왜 파티를 구하는지도.
"그럼, 다음번에는 내가 보스를 맡을게. 우리 번갈아 가면서 하면 되겠다."
"네, 좋아요!"
놀 치프틴에게서 전리품을 습득하자, 2개의 전리품이 떨어졌다. 놀 치프틴의 할버드와 놀 치프틴의 가죽.
놀 치프틴의 할버드는 등급이 8이었는데 크기가 5미터에 달해서 우리가 사용하기에는 좀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도 버릴 수는 없었기에 인벤토리가 넓은 우주혁에게 가죽까지 모두 양보했다.
밖으로 나와 새로운 던전에 가기 위해 내가 메모장에 적어둔 2등급 던전의 위치를 보여주자 우주혁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형, 여기에 다 나와 있어요."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던전="" 위치.=""/>
"잉? 이게 뭐야?"
우주혁의 휴대폰을 받아들어 그 내용을 살피자 두정동의 지도안에 던전의 위치들이 작은 동그라미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던전의 등급과 형태, 이름까지도 모두 기재되어 있었고 등급에 따라 표시하는 원의 색깔도 달랐다.
"아니 이런 게 있었어?"
"다른 지역도 다 있어요. 사람들이 던전의 정보를 올리면 관리자가 검토해서 등록한다고 하더라고요. 앱으로도 만들 예정이라던데요?"
"아이고야. 엄청 빠르네."
괜히 메모장에 적어놓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알게 된 나와 우주혁은 저녁때까지 함께 2등급 던전을 찾아 돌아다녔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 시내 쪽에 있는 2등급 던전은 이미 다 털려있었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이동하자 드문드문 비어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돌아다니던 중에 3등급의 던전도 지나쳤는데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호기심에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이미 클리어된 후였다.
등급 3의 몬스터는 나도 잡긴 했지만 한 번 죽었던 전적이 있던 만큼 위험했기에 아직 도전할 생각은 못 했는데 벌써 공략된 것이다.
우주혁도 그렇고 괴물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은 나는 겸손을 마음에 되새겼다.
'겸손하자, 겸손. 그리고 정진하자.'
바뀌어 버린 세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발전을 꾀해야 할 것 같다.
저녁 시간이 되고 통금 시간이 있는 우주혁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내일의 만남을 기약했다.
나도 더 던전을 돌아 볼까 하다가 마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집으로 향했다.
'업도 3만이 넘게 쌓였고.'
집에 가자 문 앞에 새로 주문한 원판들이 도착해 있었고 들뜬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 헬스방으로 들어갔다.
"오우."
300킬로그램의 원판을 꽂아 넣자 느낌이 확 오기 시작한다. 마나 폭주를 간간이 사용하며 육체에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더 만족스러웠다.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지경까지 몸을 혹사하고 나서야 운동을 멈춘 나는 기분 좋은 근육통을 느끼며 샤워를 마치고 아침에 시켰던 스테이크 세트를 무려 4개나 흡입한 후에야 침대에 누웠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노 슈트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한편 비어버린 마나를 채우기 위해 호흡법을 연마했다.
도중에 잠들어버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눈을 뜨자 눈앞에 메세지 몇 개가 떠 있었다.
[근력이 2만큼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2만큼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2만큼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2만큼 상승했습니다.]
마나 폭주로 인한 육체의 과부하와 마나 회로의 과부하, 그리고 전투와 운동 등으로 육체가 입은 데미지가 나노봇으로 인해 회복되며 한층 성장한 것이다.
오늘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았음을 수치로 확인하자 성취감이 전에 없이 차올랐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이런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나 싶다.
내일이 기대되는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눈을 감았다.
이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