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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25화 (25/62)

〈 25화 〉 수상한 고등학생 (1)

* * *

꼬끼오오!!!

"하암…!"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보니 8시였다. 날짜가 며칠이나 지났다든가 팬티에 똥오줌을 지렸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꿈속에서 며칠을 있어도 현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건가?"

숙면을 한 듯 몸 상태는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정리를 시작했다. 서브 퀘스트의 보상인 몽환석을 책상 위의 몽환석과 결합하자 이제 높이가 3센치가 되었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의 보상으로는 '오거환'을 받았다.

[오거환]

­ 등급 : 5

­ 설명 : 오우거의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영약.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체력이 낮은 사용자가 복용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 제한 : 체력 50 이상.

처음으로 제한이 있는 물품을 습득했다. 아직 내 체력은 30에 불과했기에 이걸 사용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듯싶었다.

"흠…."

이번 꿈에 들어가면서 4등급의 몬스터와 현재의 내가 얼마큼 차이가 나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평균치가 70에 달하는 능력치는 단순한 수치로 따져도 내 두 배가 넘는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기를 쓰고 덤벼도 이길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당분간은 3등급 시험에는 도전하지 않는 거로 결론을 내리고 욕실로 향했다.

머리를 감기 위해 웃통을 벗었는데 조각처럼 갈라진 근육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와, 개 쩌는데?"

몸을 좌우로 비틀어 보기도 하고 어깨를 펴고 가슴과 복근에 잔뜩 힘을 줘보며 온갖 포즈를 잡아 본다.

"오, 마이 가쉬!"

마지막으로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넘기며 미소를 짓는다.

"자식, 잘 생겼어."

한동안 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머리를 감고 세안을 마친다.

"아, 아침 뭐 먹지."

회사에 출근할 때는 회사에서 세 끼를 다 해결했기에 뭘 먹을지 걱정하는 일은 쉬는 날 말곤 없었는데 앞으로는 매일 고민해야 할 듯 싶다.

밥을 해 먹자니 만사가 귀찮아져서 침대에 몸을 던져 배달 앱을 살펴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상점창을 열었다.

'1등급짜리 던전 한 번 돌면 퀘스트 보상이 100업에…. 몬스터 처치하면서 얻는 업이 플러스 알파인데…. 상점에서 사 먹는 게 싸게 먹히겠는데?'

상점을 둘러보다 내 마음에 꽂힌 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안심+등심 스테이크 세트'였다. 가격은 30업으로 꽈배기에 비하면 10배에 달하는 액수였지만 포인트가 많이 쌓여있던 덕분에 부담 없이 질렀다.

"오!"

30업을 지불하고 나니 은은한 빛과 함께 허공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심, 등심 스테이크와 익힌 채소, 볶음밥이 담긴 검은 플라스틱 접시가 생겨난다.

접시를 조심히 받아들자 접시와 음식에 서려 있던 빛이 사라졌다.

"아나…."

막상 음식을 받고 나니 생각이 났다. 집에 숟가락과 젓가락은 있었지만, 포크와 나이프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상점을 뒤적여 '은 포크&나이프'를 구매했다. 가격은 200업이었다.

혹시 모를 위생에 관한 걱정에 포크와 나이프를 씻고 사진까지 한 장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후에야 식사를 시작했다.

"오, 맛있다."

스테이크의 굽기 정도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미디움을 선택했고 내 입맛에 맞게 적절히 구워진 스테이크의 맛을 음미하고 있자 스토리를 본 지인들에게 DM이 오기 시작한다.

지인과의 DM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하다 보니 금세 접시가 비었다.

"잘 먹었다!"

식사까지 마친 나는 이를 닦고 곧장 나갈 채비를 마쳤다.

'오늘은 빈 던전이 많으면 좋을 텐데.'

어제는 등급 시험이다 뭐다 해서 맛보기로 1등급 던전밖에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오늘은 2등급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길을 나서자 목요일 아침인데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한데 따로 경찰이 관리하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법무기 소지죄니 뭐니 할 줄 알았는데 아직 나라에서도 현 상태와 관련된 법안을 내놓지는 못한 모양이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주변 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끄고 휴대폰을 켠다. 어제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2등급 던전의 위치를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그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고블린 부락.'

[던전 : 고블린 부락 (2등급)]

­ 던전 형태 : 필드형.

­ 추천 인원 : 3~5인.

­ 보스 유무 : 유.

­ 현재 상태 : 입장 가능.

­ 던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 : 29일

다행히 비어있었다. 보이는 내용만 봤을 때는 어제 입장한 1등급 던전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는데 보스가 있다는 것과 던전 개방까지 남은 시간이 더 길다는 차이가 있었다.

포털에 손을 뻗자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주의! 3~5인의 파티에게 적합한 던전입니다. 정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던전 내부로 진입하자 도시의 텁텁한 공기와 달리 상쾌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숨을 깊게 들이켜 숲의 진하고 청량한 산소를 흡입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배경은 숲이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리고 창이 하나 떠올랐다.

[던전 ­ 홉 고블린 처치]

­ 퀘스트 설명 : '던전 ­ 고블린 부락'의 보스 몬스터인 홉 고블린을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홉 고블린 처치. (0/1)

­ 퀘스트 완료 보상 : 1000 업.

등급 2 던전의 보상은 정확히 0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 창을 치워버리고 감각을 활성화해 주변의 소리와 냄새에 집중하자 숲을 돌아다니는 동물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이 근처에는 없는 건가?'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제야 고블린의 냄새와 소리가 느껴졌다.

어제의 던전과 다른 점은 보스의 유무만이 아니었다. 1등급 던전의 몬스터가 3~5마리씩 뭉쳐있던 것과는 달리 이곳은 부락을 형성하며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한데 뭉쳐있었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로 추정되는 홉 고블린까지.

추천 인원이 3인 이상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등급 2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등급 2의 몬스터와 등급 1의 몬스터 수십 마리까지 상대하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보통은 그렇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지.

스르륵.

나노 슈트가 전신을 덮었고.

부웅부웅.

인벤토리에서 검과 방패도 꺼내었다.

'응?'

근데 검도 방패도 뭔가 상태가 이상했다. 검은 날이 우둘투둘했고 방패도 면이 고르지 못했다.

'어제 지원이 도와줄 때 마나를 두르지 않아서 그런가.'

등급 1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마나를 두르지 않았더니 금세 이가 나가버린 것이다.

'9등급 무기의 한계구나.'

그래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기에 움켜쥐고 몸 안의 마나를 끌어 올린다.

'마나 폭주.'

마나가 끓어오르며 신체의 능력이 향상된다. 거기에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사고 또한 가속화된다.

핏. 툭.

반응조차 하지 못한 홉 고블린의 머리가 데구루루 떨어져 내린다.

키익?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고블린의 머리도.

그 옆에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두 마리 고블린의 머리도.

모두 떨어져 내린다.

푸시이이. 철푸덕.

근처의 고블린이 사체가 되어 쓰러지고 뒤늦게 동료의 죽음을 깨달은 고블린은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고 스러진다.

"후우!"

정확히 51구의 사체 속에서 고블린에 대한 연민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롯이 나의 강함만을 체감했다.

물론 등급 4의 괴물들을 생각하면 아직 멀었지만. 4일 전의 평범했던 나와비교하자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났다.

폭주하는 마나를 잠재우고 몸속의 마나를 살펴보니 4분의 1가량이 소모되었다.

마나를 폭주시키고 나서의 마나 소모도 극심했지만 마나가 폭주하는 과정, 잠재우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마나가 소모되기 때문에 잠깐의 사용으로도 전체 마나의 4분의 1이나 날아간 것이다.

게다가 몸 전체가 뻐근해지며 근육의 피로감이 상당하다. 본래 낼 수 없던 힘을 쏟아낸 반동이었다.

끊임없이 몸의 이상을 회복시켜주는 나노 슈트가 없었더라면 사용 자체가 꺼림칙한 힘이었다.

'웬만하면 마나 폭주를 사용하지 않고 싸우는 버릇을 들여야겠네.'

업을 효율적으로 쌓기 위해선 힘을 오래 유지하는 방식으로 싸워나가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무분별한 마력 사용을 하면 앞으로 3번의 던전을 더 도는 것으로 마나가 고갈될 것이다.

생각을 가다듬고 이번 던전에서 얻은 업을 계산해보니 총 1300의 업이 들어와 있었다.

던전 퀘스트 보상으로 1000, 고블린이 마리당 2였으니 홉 고블린이 200인 셈이다.

'이거 등급별로 업 차이가 엄청나잖아?'

이렇게 되니 3등급의 던전은 대체 어느정도의 업을 줄지 궁금했다. 1등급에서 2등급은 0이 하나 더 붙었는데 만약 3등급에서도 0이 하나 더 붙는다면 한 번에 1만이나 되는 업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는 홉 고블린의 사체에 다가갔다.

[전리품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팟.

"오오!"

홉 고블린이 사라진 자리에는 3개의 물품이 떨어져 있었다. 역시 보스 몬스터라는 건가.

'홉 고블린의 도끼, 고블린의 마비독, 홉 고블린 가죽.'

홉 고블린의 도끼는 등급 8의 양날 도끼였고, 고블린의 마비독은 고블린들이 마비침에 사용하는 독으로 등급은 9였다. 홉 고블린의 가죽은 말 그대로 홉 고블린의 가죽이었고.

나는 가죽을 제외한 전리품을 인벤토리에 챙기고 던전을 나섰다.

"엇?"

"...?"

던전을 나오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르고 팔에는 웬 붕대를 감은 남자가 나를 보고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바, 방금 이 던전에서 나온 건가요?"

몸이야 요즘 능력치를 올려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앳된 것이 중, 고등학생쯤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요?"

"혼자서요?"

"왜 물으시죠?"

"아니 아니, 등급 2 이신 거죠?"

"아뇨?"

"아니라고요? 그럼 어떻게……아!"

서로 질문을 이어가는 이상한 그림이 되어버렸지만, 저 이상한 차림새를 보고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질문을 하고 혼자 궁리하던 끝에 뭔가를 알아차린 듯 감탄사를 내뱉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랑 파티하시지 않을래요?"

"싫은데요?"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저 등급 4예요."

이내 경악한다.

"뭐, 뭐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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