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16화 (16/62)

〈 16화 〉 튜토리얼의 끝 (5)

* * *

할버드를 밀어낸 직후 지면과 거의 맞닿을 정도로 자세를 급격히 낮추고 뛰쳐나간다. 두 걸음 만에 놀 치프틴의 다리 앞에 도착한 나는 뛰쳐나가며 쌓인 무게를 그대로 이용해 검을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둘렀다.

"깨갱!"

놀 치프틴은 처음 맛보는 고통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리고 베인 다리를 절뚝거리며 몇 걸음 더 뒷걸음치더니 이내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린다.

"크르르르! 월!월!"

'개야, 뭐야?'

낮게 으르렁대다 짖어대는 녀석을 뒤로하고 고개를 살짝 돌려 슈트를 입 부분만 드러낸 채 외쳤다.

"제가 맡고 있을 동안 도망치세요! 아니,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을 좀 챙겨주세요."

얼떨결에 도망치라고 말했다가 왠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급히 말을 수정했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였는지 병사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그 수류탄은 저한테 주고 가시죠?"

"아, 예, 옙!"

나는 방패를 든 왼손으로 수류탄을 넘겨받았다. 내가 든 방패는 팔에 끼워 손으로 고정하는 2중 고정방식이었기에 비교적 손이 자유로웠다. 조심스럽게 넘겨받은 수류탄을 쥐고 놀 치프틴을 주시했다. 그때까지 녀석은 얌전하게 짖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슬금슬금 나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검을 앞으로 내밀고 녀석이 도는 만큼 같이 따라붙으며 견제했다.

"컹컹! 월! 깨갱!"

내 눈치를 살피며 좌우로 정신 사납게 움직이던 놀 치프틴은 갑작스레 내 쪽으로 점프했다가 내가 팔을 들어 올리자 곧장 다시 뒤로 빠진다. 뒤로 빠지면서 발목의 부상이 아팠는지 깨갱대는 녀석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혼자 원맨쇼 하냐?'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곁눈질로 병사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린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지면을 박차 거리를 좁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마나 폭주는 짧은 시간 마나의 힘을 폭발적으로 끌어내 소모하기 때문에 길게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메말라가는 마력을 느끼자 조바심이 났다.

부웅.

놀 치프틴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할버드가 공기를 찢는 바람 소리와 함께 내 허리를 반 토막 낼 기세로 다가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파고들었다. 할버드가 닿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자세를 낮춰 피해낸 나는 내 머리 위를 지나치는 놀 치프틴의 손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깨개갱!"

놀 치프틴의 오른 손목이 잘리며 급기야 할버드를 놓아버린다. 왼발과 오른손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놀 치프틴은 더는 내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적의마저 상실해버린 놀 치프틴은 애달픈 울음소리를 내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도망치는 녀석의 뒤를 쫓아 오른쪽 아킬레스건을 베어내고 마지막 발악으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왼손마저 잘라내었다.

마지막으로 검을 높게 들어 놀 치프틴의 가슴팍에 꽂아 넣고 비틀자 잠깐의 경련 끝에 움직임이 멎었고 빛의 가루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크헉!"

나노봇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마나 폭주로 증폭되었던 마나가 고갈되며 급격히 몸의 힘이 빠져나간다. 근육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탈진 상태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진 나는 놀 치프틴의 가슴팍이 빛의 가루로 화해 사라지자 그대로 바닥에 떨구어져 힘없이 땅을 굴렀다.

"컥,끄윽! 큭! 끄읍…!"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지속되는데 힘이 전혀 들어가질 않는다. 고통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 자꾸만 몸이 들썩였다.

호흡을 하지 못하자 두통이 몰려오고 정신이 아득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고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썼다.

"끅…. 하! 푸읍…. 하! 하아…."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리면 잠드는 게 아니라 죽을 거라는 직감이 든 것이다. 짧지만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호흡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고 고통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꿈적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타다다닥!

"…!"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 땅을 내딛는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제기랄, 또 뭐야!

고개조차 돌릴 힘이 없어 눈알만 뒤룩 굴려보지만 희미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다행히도 인간의 실루엣이라 안심하던 찰나 몸이 들어 올려지며 간신히 잠재운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끄아아악!"

"괜찮으세요?"

나노 슈트 때문에 내 비명이 들리지 않는지 들어 올린 몸을 계속해서 흔들어댄다.

"끄억! 크하앍!"

"야, 야! 몸을 그렇게 흔들면 어떻게 해?"

"아니, 어디 다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깨워야 할 거 아냐?"

"깨우긴 뭘 깨워. 그만하고 빨리 업어!"

"내가 업어?"

"가위바위보 하든가?"

"뭘 가위바위보야, 내가 업게 비켜!"

"야, 살아있는 사람 더 없어?"

"다 죽었어. 빨리 안에 들어가자."

소란하고 익숙한 네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몸이 높이 들어 올려진다.

"끄아악!"

이 자식들. 밖에 나오지 말고 안에 숨어있으라니까. 왜 여기 나와 있는 거야?

'그리고 민기야, 제발 좀 조심히 움직여줘. 뛰지 마, 제발!'

나는 나를 업고 있는 홍민기와 나머지 친구 녀석들에게 들리지 않을 마음속 절규를 내뱉는 한편 내 의지와 상관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크악! 컥! 쁙! 빽! 캑!

소리가 참 다채롭네. 그 와중에도 뻘 생각을 하다 속으로 외친다.

'사람 살려!'

#

휘오오오!

대한민국의 재계 1위 단군그룹.

그리고 단군의 계열사 중 하나인 단군전지의 천안사업장에 위치한 높은 공장 건물 위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건물의 옥상에는 웬 사내가 서 있다.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미려한 외모의 미청년. 그는 허리까지 길게 자란 은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차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쯧. 한심하네요."

사내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경멸이 드러나 있었다.

"이제 막 이능을 깨닫기 시작한 인간 하나에게 꽁지를 말고 도망치는 꼬락서니라니…."

"그만큼 저 인간의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거겠죠. 벌써부터 저 정도의 마나 운용 능력이라니, 참 놀랍지 않습니까?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능수능란하다는 것이."

"그러게요. 인간치고는 제법 잠재력이 뛰어난 것 같네요. 그리고 단순한 운용이 아닌 것 같군요."

"예, 맞습니다. 그가 쓰는 마나 운용법은 마교의 마공과 비슷하네요. 그것도 마교중 최고라 일컬어지는 천마신교의 천마공(???)에 가까워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선이 그어지더니 그 선 안에서 검은 머리를 길게 묶은 사내가 나왔다. 은발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선이 굵직하고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검을 겁집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대단합니다. 무공도 내공심법도 익히지 못한 인간이 아무리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불과 이틀 만에 저런 몸놀림을 보이다니. 물론 검을 다루는 데에는 아직 미숙한 구석이 많지만 마나를 운용하는 능력은 칭찬할 만하군요."

"저는 무공은 잘 모르지만, 당신의 무공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 아닌가요?"

"하하, 저와 비교하는 것은 태양과 반딧불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요. 그래도 미래가 기대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직접 가르쳐보고 싶을 정도예요."

눈앞의 은색 머리의 사내에 비하면 아직 아이와도 같은 나이였으나, 그도 5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수많은 사람을 봐왔다. 하지만 저 정도의 재능은 흔치 않았다. 물론 초반에 반짝하고 지는 별일 수도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당장에는 호기심이 동했다.

'내가 직접 가르친다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

"그나저나 저자가 입고 있는 슈트와 목걸이가 눈에 띄네요. 아직 튜토리얼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노 슈트와 옷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블루스톤까지 한눈에 알아본 은발의 사내는 눈을 빛냈다. 검은 머리의 사내 역시 고개를 숙이며 동조했다.

"맞습니다. 명백히 오버 테크놀러지의 산물인데다 지구에선 구할 수 없는 광물 같은데 저도 출처가 궁금하군요."

"누군가 뒤를 봐주는 것은 아직 불가능할 텐데, 흠…. 유랑 상인이 벌써 나타났나?"

"잘 모르겠지만, 부디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군요."

"동감입니다. 그럼 이만 갈까요?"

"그러시죠."

그 대화를 끝으로 공장 건물의 옥상에서 두 사내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건물의 안으로 몸을 옮기고 나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을 주든 말든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친구 녀석 중 하나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서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이주헌이 내 가슴이 들썩이며 숨을 쉬고 있는 걸 알리고 제지해준 덕분에 살았다.

물론 슈트를 개방하고 말을 했으면 가슴 졸일 일도 없었겠지만 아직 얼굴을 공개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가능한 한 내 능력을 숨기고 싶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느꼈는데 일을 잘하는 사람은 부림을 많이 당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찾는 사람이 많았다.

가늘고 길게 피곤하지 않고 적당히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게 꿈인 나로선 능력을 밝히는 건 독이다.

타이머를 설정하지 않아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시간은 지났을 때 마나 탈진 상태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고갈된 마나는 고작 10분의 1 정도밖에 안 차올랐다.

"어, 일어났어요?"

휴게실에 모여 티비를 보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은 내가 몸을 일으키자 다가와서 관심을 보였다. 나는 양손을 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책상 위에 놓인 방패와 검을 챙겨 들었다.

"어어, 어디 가세요?"

나는 배를 매만지며 배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휴게실을 나섰다. 일부러 휴게실이 있는 2층 화장실이 아닌 1층까지 내려온 나는 화장실이 아닌 자재 창고로 향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속으로 외쳤다.

'퀘스트.'

[튜토리얼 ­ 보스 몬스터 처치 2]

­ 퀘스트 설명 : 붉은 포털 속에서 출현하는 보스 몬스터를 종류에 상관없이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보스 몬스터 처치 (1) 튜토리얼 종료 시 보상 정산. 튜토리얼 종료까지 남은 시간 [20:24:37]

­ 퀘스트 완료 보상 : 보스 몬스터 처치 수* 1000 업.

퀘스트 창이 갱신돼 있었다. 도대체 저 업이란 게 뭐지? 업이라는 글자에 초점을 맞추자 곧 창 하나가 떠오른다.

[업]

­ 설명 : '상점'에서 사용하는 화폐.

'상점에서 사용하는 화폐라.'

아직은 못쓰나 보네.

'인벤토리.'

허공에 네모 칸 다섯 개가 일렬로 정렬되어 떠오른다.

'호오. 이게 인벤토리….'

사용 방법은 한눈에 봐도 알 것 같았다. 검을 들어 네모 칸 안에 가져다 대자 검이 네모 칸 속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비어있던 칸에 검의 모양이 생겨나 칸을 메웠다. 마찬가지로 방패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이번에는 검 모양이 새겨진 칸을 터치해보았다.

칸이 다시 비워지며 허공에 검이 떠오른다. 떠오른 검을 잡고 다시 빈칸에 가져다 댔다.

"흐음. 좋네."

'검과 방패가 한 칸에 같이 들어가지 않는 건 아쉽지만.'

검과 방패를 인벤토리에 수납한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 조심스레 나노 슈트를 해제했다.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꽤 와 있었다.

­ 부재중 전화 류문상 반장님(22), 민기(17), 010­73…. (3),...

­ 민기 : 현아, 어디야!

­ 김지원 : 오빠, 연락이 계속 안 되네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 하윤 : 오빠, 괜찮아? 어디 간 거야?

­ 주헌 : 야, 유현타!

나는 일단 우리 조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 다들 어디심까?

­ 성진 : 야, 현아. 어딨었어. 빨리 휴게실로 와.

­ 아 ㅇㅋㅇㅋ. 글로 갈께.

휴게실로 다시 돌아가자 B조와 D조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야, 현아 어디 갔었던 거야!"

"아, 화장실에 있었어."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는데?"

"저어기, 우리 쪽 말고 다른 쪽 화장실 갔어. 거기가 탈의실에서 더 가까우니까."

"근데 전화는 왜 이렇게 안 받아. 카톡도 안되고."

"무음이라 몰랐어. 됐고, 형들은 어디 갔냐?"

"형들, 여기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각형 휴게실로 갔어."

"그래?"

우리 회사는 축전지 회사로 각 공정마다 원형, 각형, 폴리머로 나누어진다. 나는 화성 공정의 원형 출하 쪽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휴게실도 마찬가지로 원형, 각형, 폴리머로 나누어지고 거기서 또 성별로 나뉜다.

'뭐, 오늘로 여기서 일하는 건 마지막일 테지만.'

꼼짝없이 누워있는 동안 여러 생각을 하며 결심했다. 회사와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부로 일을 관두고 능력을 갈고닦는 데 힘쓰기로.

나한테 돈보다는 목숨이 훨씬 중요했다.

'당연한 얘긴가?'

"다른 사람, 다친 사람은 없어?"

"어, 뉴스 보니까. 자극하지 않는 이상 건물 내부로는 보스 몬스터가 안 들어온다더라."

"아까도 군인들이랑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나 봐."

"아하, 그래?"

'그것참 다행이네. 그래서 이렇게 편안히 쉬고 있었구만?'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편히 쉬고 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고 수긍한다. 그리고 자리에 없는 또래 몇몇이 생각나 물었다.

"대승이 형이랑 현규 형, 성곤이도 각형으로 갔어?"

"아, 흡연자들은 담배 피우러 갔어."

"그렇구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안전에 크게 위협이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후. 내 걱정을 해준 김하윤과 김지원에게 연락해 안부를 전했다. 다행히 나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김지원 쪽도 별 이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식당 건물로 모여 남은 식자재로 식사를 하였고 사내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잠을 자는 동안은 젊은 남자들이 제비뽑기로 불침번을 섰고 날이 밝았다. 나는 틈틈이 목걸이 형태로 착용하고 있던 블루스톤을 코에 갖다 대고 호흡법을 행한 덕분에 마나를 모두 복구할 수 있었다.

'별일 없이 지나갔네.'

근데 이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퀘스트.'

[튜토리얼 ­ 보스 몬스터 처치 2]

­ 퀘스트 설명 : 붉은 포털 속에서 출현하는 보스 몬스터를 종류에 상관없이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보스 몬스터 처치 (1) 튜토리얼 종료 시 보상 정산. 튜토리얼 종료까지 남은 시간 [20:24:37]

­ 퀘스트 완료 보상 : 보스 몬스터 처치 수* 1000 업.

적극적으로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옳은 방향이 아닐까?

퀘스트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일단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하자.'

티비 속 뉴스에는 먼저 상황이 발발한 뉴질랜드와 피지의 현재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 뉴질랜드와 피지에서 오늘 오후 2시를 기점으로 거리를 점령한 모든 몬스터들이 사라졌으며, 포털 또한 모두 사라졌다고 밝혔습니다.

"와아아!"

"다행이다!"

"집에 갈 수 있어!"

식당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기뻐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오빠, 우리 집으로 갈 수 있대!"

"그래, 다행이다. 갈 때 같이 가자."

식당에 모이면서 부쩍 친해진 김지원과 대화를 나누며 뉴스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 사람들에게 지급되었던 퀘스트 역시 사라졌고 뉴질랜드와 피지 곳곳에 같은 외형과 복장을 한 남자가 하늘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뉴질랜드 현지에 나가 있는 TOBS 김중기 기자 연결해서 지금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김중기 기자 나와계시죠?

잠시 후 화면이 두 개로 나뉘며 오른쪽 화면에 마이크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 네, 현장에 나와 있는 김중기 기자입니다.

­ 어려운 상황일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서 뉴질랜드에 나타나 거리를 점령한 몬스터들과 포털이 사라졌다는 소식까지 전해드렸는데 지금 뉴질랜드의 현지 상황은 어떤 상태인가요?

­ 네, 몬스터와 포털이 모두 사라졌지만, 시민들은 아직도 공포에 떨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각지의 하늘에 보시는 것처$#%#^#!

화면이 하늘로 향하는 순간 기자의 말이 뭉개지고 화면이 일그러졌다.

­ 김중기 기자? 김중기 기자!

­ @!#!@#!@#입니다.

화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며 마이크를 쥔 김중기 기자를 비추었다.

­ 김중기 기자님, 하늘에 뭐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 하늘에 !@#!@$%$%#$%#

다시 화면이 하늘을 비추자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 김중기 기자? 김중기 기자!

다시 한번 아나운서가 기자를 불러보지만 이내 무슨 사인을 받았는지 화면이 하나로 변했다.

­ 네, 연결이 고르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오늘 뉴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뭐야, 이게?'

다른 곳의 뉴스도 모두 똑같았다. 하늘을 비추는 순간 연결 상태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2시가 되면 몬스터와 포털이 사라지고 뭔가가 하늘에 나타난다는 사실만을 안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2시가 되어 사람들이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왔다.

"실례합니다만 감사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기다란 은발을 찰랑이는 미청년이 새하얀 정장과 망토를 두르고 하늘에 떠 있었다. 그는 이윽고 한쪽 가슴에 손을 얹고 남은 한 손으로 펄럭이는 망토를 살짝 집은 채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지구인 여러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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