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튜토리얼의 끝 (4)
* * *
문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아니, 이러면 밖으로 나갈 수도 없잖아."
"다들 안으로 들어가세요!"
사람들은 출입문의 자그마한 창에 비친 참혹한 현장을 보고 금세 공황 상태에 빠졌다.
"현아, 어디 가냐?"
"밖에 나가면 무조건 죽어. 빨리 안으로 들어가."
나는 친구들을 지나치며 상황을 전했다.
"커다란 놈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세 마리야."
"오빠, 어디가?"
"안으로 다시 들어가. 밖은 위험해서 못 나가니까."
이제 막 탈의실 밖으로 나오던 김하윤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며 탈의실을 지나 공장 내부로 향했다.
본래 공장 내부는 작업복과 작업화로 갈아입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자잘한 규칙 따위는 접어두고 그대로 운동화를 신은 채 안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와중에 마나를 육체 곳곳에 퍼뜨리자 감각이 활성화되고 근육의 힘과 반응속도 또한 증폭되며 육체의 전반적인 능력이 한껏 향상된다.
복도를 빠르게 지나치고 코너를 돌아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났을 때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나노봇이 몸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아직 수령하지 않았던 보급형 무기 선택 상자에서 장검과 방패를 선택해 수령받는다.
허공에 나타난 검과 방패를 낚아채며 계속해서 달려 공장 내부에 자재를 들이기 위해 마련된 셔터를 열고 건물 밖으로 향했다.
몬스터와 군이 교전하고 있는 입구 쪽으로 가려면 삥 돌아서 가야 했다. 입구로 향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한다.
지금의 내 상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마력도 육체의 능력도 모자란 상태다.
그리고 입구에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오우거 한 마리와 상처하나 입지 않은 놀 치프틴. 마지막으로 중상을 입고 상태가 온전치 않아 보이는 오우거 하나.
목표는 그 녀석이었다. 다른 두 녀석이 군부대와 적극적으로 싸우는 틈에 뒤에서 중상을 입어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오우거를 처리한다.
그렇게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을 받는다.
'그렇게만 되면 해볼 만하다.'
"으아아악! 살려줘!"
"크워어어!"
건물을 돌아 몬스터들의 뒤쪽으로 향했을 때 뒤쪽에 빠져있던 중상을 입은 오우거가 다른 건물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입구를 틀어막은 군부대에 비해 손쉬운 먹잇감임을 직감하고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다른 온전한 녀석들과의 거리는 좀 더 벌어졌다.
'마력 폭주.'
전신에 퍼진 마나가 들끓기 시작한다. 현실에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어 위험부담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우거가 중상을 입었어도 지금 수준으로는 상대할 수 없으니까.
"끄윽!"
마력 수치가 아직 낮아 증폭의 정도가 낮음에도 시작부터 육체에 과부하가 오기 시작한다. 끓어오르기 시작한 마나는 금세 통제를 벗어나 요동치기 시작했고 아직 여물지 못한 육체는 시작부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단련되지 못한 육체는 근육이 커지다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고 좁디좁은 마나 회로 역시 강제로 확장되다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간다.
"쿨럭!"
주르륵.
속에서 올라온 피를 게워냈다. 체력을 상당히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반동이 너무 컸다. 이대로는 공격도 하기 전에 자멸할 판이었다.
[사용자의 육체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보호 시퀀스를 가동합니다.]
곧바로 나노봇이 활동하며 육체가 입은 손상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회복되는 속도보다 육체가 붕괴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도 덕분에 몸을 움직일 정도의 여력과 잠깐의 시간은 벌었다. 여력이 생기자마자 번개처럼 뛰쳐나간다.
타다다닥!
번개처럼 뛰어간다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본래 능력치가 낮았기 때문인지 증폭된 상태도 꿈속에서와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우적우적.
그렇지만 상대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거대한 몽둥이를 잃고 검게 그을려 곤죽이 된 오른팔은 제 기능을 상실했고 당장 눈앞의 먹이를 집어삼키는 데 혈안이 돼 내가 바로 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허점투성이였다.
쿵.
'뒤져라!'
말하는 순간 피를 토할 것 같아 속으로 외치며 높게 뛰어올라 검을 휘두른다.
서걱.
단단한 목뼈의 사이를 깊게 베어내며 칼날이 목을 뚫고 그대로 지나친다.
푸쉬이익!
"끄륵…. 끅!!"
몸에 비해 작다고는 하나 두껍고 커다란 목은 완전히 잘리지 못했고.
오우거는 피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며 씹고 있던 것을 뱉어냈다. 잘근잘근 다져져 다진고기처럼 되어버린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고 하나 남은 손으로 피가 치솟는 목을 부여잡은 오우거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곧 쓰러질 것처럼 쓰러지지 않는 오우거에게 다시 한번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바닥을 거칠게 밟는다.
쾅!
콘크리트 바닥에 작은 돌가루가 흩날림과 동시에 내 몸이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비틀어진 허리가 펴지며 마나가 가득 실린 방패가 오우거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비로소 몸과 분리된 목이 중력에 이끌려 바닥과 마주하고 빛나는 광휘가 오우거의 몸과 머리를 감쌌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고블린이나 오크가 쓰러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빛이 휘날리며 창이 떠오른다.
[튜토리얼 보스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이 2가 되었습니다.]
[등급 상승 보상으로 '인벤토리'가….]
[등급 상승 보상….]
잡다한 것을 볼 시간은 없다.
나는 곧장 시야를 메우는 홀로그램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유현
등급 : 2
능력치
체력 : 20 근력: 16 민첩 : 13 정신력 : 15 마력: 16
잔여 능력치 : 20
능력 : 입몽, 재래식 호흡법(9급), 뇌전신공(9급)
그리고는 바로 체력에 잔여 능력치 5를 부여한다. 망가진 몸이 조금 회복되며 육체가 붕괴되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이미 심각히 무너져버린 육체의 밸런스는 붕괴를 멈추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체력에 5의 능력치를 더 투자하자 그제야 육체가 붕괴되기를 멈추고 회복을 시작한다.
"퉷! 후우…."
입 안에 머금고 있던 피를 내뱉고 한숨을 돌린다. 아직 잔여 능력치가 남아 있지만, 함부로 투자할 순 없었다. 마력에 능력치를 투자한다면 늘어난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육체가 붕괴될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육체적인 능력을 올리기에는 효율이 좋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건 지금 자리를 뜨고 안전한 곳에서 몸을 완전히 회복한 후에 마력을 올리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도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었다. 물론 나와는 관계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생명은 소중한 것이기에…. 는 개뿔.
그냥 내가 호구인 게 문제다.
다행히 그렇게 바보 같은 호구는 아닌지라 무작정 달려들진 않았다.
'생각해보자.'
오우거와 놀 치프틴. 어느 한 몬스터도 쉬운 몬스터가 없었다. 오우거에게 잡힌다면 그대로 몸의 위아래를 잡고 늘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고통을 느끼게 될 테고 한 번의 타격이라도 허용한다면 커다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풍선 터지듯 몸이 터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놀 치프틴과 싸우는 건 쉬운가?
오히려 그것이 더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 내 민첩은 고작 13으로 마력 폭주로 증폭되었다 한들 놀 치프틴의 속력을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속력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인식하기도 전에 날아드는 공격을 어찌 막겠는가.
콰앙!
쾅쾅쾅쾅!
전차포의 발포임이 울리고 폭연 사이로 잇따라 철을 거세게 가격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수류탄 투척!"
"수류탄 투척!"
"수류탄 투, 크헉!"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차와 오우거의 실루엣을 향해 수류탄 세례가 퍼부어진다. 피아를 가리지 않은 처절한 몸부림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연기가 걷히며 빛의 가루가 함께 휘날렸다. 오우거 한 마리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수류탄을 던지는 와중에도 놀 치프틴은 병사들을 계속해서 베어나갔고 이제 남은 건 고작 일개 소대뿐이었다. 그리고 오우거와 함께 마지막 전차마저 파괴되었으니 상황은 더욱더 절망적이었다. 물론 전차가 남아 있었다고 해도 놀 치프틴에겐 무용지물이었겠지만.
"다 끝났어. 씨발, 개 좆같은! 어차피 뒤질 거면 가는 길에 수류탄이라도 한 방 먹여주마."
틱.
안전 클립을 제거한 후 안전핀마저 뽑고 비장한 표정을 짓는 작대기 4개의 남자. 병장이었다.
"하, 씨발. 전역이 얼마 안 남았었는데…."
그러나 비장하던 눈가가 이내 축축해지며 눈물을 머금었고. 마지막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혼잣말은 내 생각을 멈추게 했다.
효율을 버리고 모든 것을 지금의 한순간을 위해 쏟아붓는다.
"크르르르."
으르렁거리는 놀 치프틴이 자신을 인식조차 못 한 병사에게 할버드를 휘두르고.
카앙!
거대한 할버드와 작은 방패가 맞부딪힌다.
"아직 안 끝났어요."
푸르게 빛나는 방패가 거대한 할버드를 도리어 밀어버리고. 수류탄을 꽉 쥔 채 굳어 있는 병사에게 보이지 않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우러 왔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