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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13화 (13/62)

〈 13화 〉 튜토리얼의 끝 (2)

* * *

시내는 아침이 되어서도 북적북적했다. 해가 뜨면서 많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포털 앞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몬스터는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규칙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줄이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몬스터들을 차례로 처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들과 다소 다툼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였기에 작은 헤프닝으로 끝났고 덕분에 나도 동이 틀 때까지 돌아다니다 보니 튜토리얼 퀘스트를 하나 완료하고 새롭게 퀘스트를 받았다.

[튜토리얼 ­ 몬스터 처치 3]

­ 퀘스트 설명 : 포털 속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를 종류에 상관없이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몬스터 처치 (24/100)

­ 퀘스트 완료 보상 : 잔여 능력치 5. 보급형 선택 무기.

내가 4시간가량 거리를 배회하면서 처치한 몬스터의 수는 정확히 28마리였다. 워낙 정보가 빨라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오다 보니 처음에는 줄의 개념이 없어서 시간을 낭비한 것도 있고 배가 고파 국밥집에 가서 돼지국밥도 먹고 하다 보니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구경은 잘했다만은.'

줄을 서는 개념이 잡히고 나서는 하나씩 잡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많은 수를 잡을 수는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꾸준히 인터넷을 탐색하며 정보를 수집한 것을 위안 삼을 수밖에.

지금까지도 미국과 캐나다 일부는 상태창과 포털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설로 여겨졌던 오후 2시에 발생한다는 특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설이 아닌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처음에 당황했던 나라들과 달리 미리 정보를 얻고 대비를 하기 시작한 나라들은 보다 빠르게 침착하게 상황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튜토리얼 퀘스트는 몬스터 처치3까지가 끝이었으며 그 후의 내용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포털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는 오크와 고블린으로 두 종류가 다였다.

처음 상태창을 열며 주어지는 능력치는 잠재 능력에 맞게 자동 분배된다. 사람들의 능력은 가지각색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전투와는 관련이 없는 능력을 가졌고 전투와 관련된 잠재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그들의 능력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게는 본인이 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기에 일의 능률이 올랐으므로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능력치를 얻으며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체력과 근력 등이 올라가면 손쉽게 건강이나 체격 같은 것들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것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정신력이 올라감으로써 정신적인 병에서 해방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잔여 능력치를 모두 마력에 쏟아부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체력이나 근력에 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한다. 보통은 마력을 올려도 운용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서 몸이 조금 건강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정도가 다였으니 체력을 올려 건강을 회복하고 근력을 올려 힘을 키우는 것이 몬스터들을 잡는 데에는 유리하다고 알려졌다.

그렇게 능력치가 오른 효과를 톡톡히 맛본 사람들이 좀 더 그 맛을 보기 위해 몬스터를 처치하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죽이고 싸운다는 행위는 게임에서나 쉬운 일이지 현실에서는 동물 한 마리 죽여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이나 어린아이,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포털은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처음에야 흉측한 몰골에 놀랐지만, 오크와 놀은 평범한 성인 남성, 고블린은 성인 여성 정도만 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그리 겁먹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나와 있지 않은 나만이 아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집에서 내가 재래식 호흡법을 연마할 때 대기 중의 마나를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건 마나를 느끼지 못한 게 아니라 마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포털 근처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깨달았다. 포털에서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간이 점점 흐르고 시계가 8시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본래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우르르 빠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줄은 상당히 줄어들어 몬스터를 처치하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9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비로소 튜토리얼 퀘스트를 모두 완료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더 남아서 몬스터를 처치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곧장 집으로 향해 샤워부터 했다.

"후우!"

모자만 쓰고 나갔던 터라 찝찝했는데 이제야 살 것 같네.

마무리로 스킨, 에센스, 로션, 수분크림까지 섬세한 손놀림으로 찍어 바르고 머리는 대충 털어 말리고 철퍼덕 누웠다.

겉의 찝찝함은 가셨지만, 속 안의 찝찝함을 가시지 않았다.

'너무 쉽다.'

지금 상황이 게임은 아니지만,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태창과 포털이 등장하고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 시기는 오후 2시로 편의를 봐준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대가 교묘했고.

잠재 능력이라는 것을 개화하게 하고 상태창을 열기만 해도 능력치를 주었다. 그리고 몬스터라고 나타난 녀석들은 무기도 들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다가 그런 놈들을 몇 마리 잡았다고 또 능력치를 준다. 하루 만에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가 일어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평범하디 평범하던 나조차도 그러했고.

이런 상황을 만든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의도를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야 몬스터다 뭐다 혼란을 야기했지만 피해보다는 혜택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장점이 더 많았다.

'이유가 뭘까?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가….'

눈을 감고 뇌를 풀가동한다는 느낌으로 머리를 굴려봐도 모르겠다. 내가 바보인 건지 생각할수록 그저 머리만 아파져 올 뿐이다. 하나 확실한 건 오크나 고블린 따위가 끝은 아닐 거라는 것. 이건 창에 떠오른 문자 그대로 튜토리얼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최대한 지금의 능력을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일은 출근날이었지만 출근을 함과 동시에 나는 퇴사를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것이 옳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능력도 키우는 방향도 있겠지.

그러나 내 직감은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근데 이거 말하고 바로 나가는 건 좀 그런데. 이번 달까지는 해야 하나?'

회사에 정 같은 건 딱히 없지만 도리라는 게 있었다. 나는 교대 근무를 하는 생산직이었는데 내가 나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내 업무를 분담해야 하므로 일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내 자리를 맡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고 도리였다.

"하아…. 아, 몰라!"

'일단 호흡법이나 수련하고 내일 출근하면서 생각 좀 더 해봐야겠다.'

블루스톤을 코 밑에 갖다 대고 눈을 감는다. 아직 대기 중의 마나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효율적으로 마나를 쌓기 위해서는 포털 근처에서 하는 게 좋겠지만 밖에서 호흡법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집중해서 마나를 느껴야 하고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블루스톤이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지.

"스읍…! 후우우우…. 스읍…! 후우우…."

호흡은 아직 숙련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몇 번의 반복만으로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호흡하며 생각을 시작했다. 부족한 부분은 호흡의 숙련도만이 아니었다. 육체 자체가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꿈속에서 가지고 있던 육체를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육체였다. 폐는 작아서 한 번에 들이킬 수 있는 호흡의 양이 많지 않았고 몸은 무르익지 않아서 만에 하나 이 몸으로 마나 폭주 같은 것을 시도했다가는 그대로 몸이 터져 죽을 것이었다. 게다가 몸 안에서 마나가 흐르는 통로. 즉 마나 회로가 매우 비좁고 길 자체도 적었다.

몸 안으로 뻗어나가는 회로도 몸 밖으로 뿜어내는 회로도 매끄럽지 못해서 그곳을 지나는 마나는 비포장도로를 걷는 차량처럼 덜컹거린다.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하면 육체의 단련, 능력의 숙련, 마나도 쌓아야 하고 쌓인 마나로 마나 회로도 확장하고 길을 새로 뚫고 닦아놔야 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무작정 마력에 쏟아부었지만, 오늘 얻은 10의 잔여 능력치는 함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이 효율적일까?'

꿈속에서의 능력을 목표로 잡는다면 육체도 키워야 하고 마력도 늘려야 하는 상황.

'급할 필요는 없지만.'

안일하게 안주하고 있을 필요도 없지.

잠깐의 생각 끝에 육체도 마력도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운동으로 몸을 혹사하고 그 후에 호흡법으로 마나를 쌓는 방식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집 안에는 예전에 만들어둔 헬스방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헬스방만 만들어놓고 그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멀리했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핑계를 댈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차근차근 무게를 올려 나가며 몸을 혹사시켰다. 몸이 녹초가 되면 밥 반 공기와 김치, 냉동고에 박아두었던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으적으적 씹어먹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재래식 호흡법과 뇌전신공을 연마한다. 그러는 동안에 나노봇이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고 다시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 1시간, 밥 10분, 호흡법 1시간, 쉬는 시간 20분을 1사이클로 두고 6사이클 정도를 돌리자 새벽 1시가 되었다.

[상태창]

­ 이름 : 유현

­ 등급 : 1

­ 능력치

체력 : 14 근력: 16 민첩 : 13 정신력 : 15 마력: 12

­ 잔여 능력치 : 10

­ 능력 : 입몽, 재래식 호흡법(9급), 뇌전신공(9급)

열심히 몸을 혹사한 덕분에 능력치가 많이 올랐다. 체력과 근력이 2씩, 민첩과 마력이 1씩 올랐고 정신력은 오르지 않았다. 마나는 아직 회로를 넓히는 것보다 쌓는 데에 초점을 맞췄는데도 1밖에 오르지 않았다. 아니, 1이나 오른 건가?

"어오, 힘들어."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육체는 고강도의 운동과 나노봇의 회복을 거칠수록 점점 더 힘이 차오르는 느낌이었고 오랜 시간의 단련 끝에 정신만이 피폐해졌다. 강해지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기에 생기는 높은 성취감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근무는 후근으로 3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근무시작 전에 조회나 인수인계까지 생각한다면 2시 4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봐야 하니 2시 전에는 회사에 도착해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1시 2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샤워를 하고 쌓여있던 단톡방 글과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글을 보다 보니 어느덧 3시가 되어 눈을 감았고.

오늘은 어떤 꿈을 꿀지 기대 반 두려움 반 속에 잠에 빠져들었다.

꼬끼오! 꼬끼오오오!!

"엥?"

잠에서 깼을 때는 거친 알람 소리와 휴대폰 액정의 1시 20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거 꿈도 안 꾸고 자버렸네.'

허탈한 심정은 뒤로 하고 얼른 씻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버스에 탑승했다. 가는 도중에 보니 여전히 많은 사람이 포털 앞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이런 풍경이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버스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보니 '피지, 뉴질랜드 사망자', '피지, 뉴질랜드 피해'라는 검색어가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뭐지?'

뉴스 기사 하나를 클릭해 들어가자 사진을 시작으로 보도 내용과 영상이 떠올랐다.

­ 상태창과 포털이라는 기현상이 나타난 지도 48시간이 된 피지와 뉴질랜드에서는 ‘튜토리얼 ­ 보스 처치’라는 퀘스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퀘스트의 내용은 붉은 포털에서 나타나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피지와 뉴질랜드 각지에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붉은 포털이 등장하였는데요. 여기서….

기사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기사 메인에 있는 사진. 그 사진 속에는 아파트 2층 높이는 될 법한 키에 온몸이 거대한 근육으로 뒤덮인 막대한 체구. 잔뜩 찌푸려진 인상과 고집스런 입을 비집고 나온 거대한 송곳니. 아름드리나무를 통째로 뽑은 것 같은 커다란 붉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몬스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첨부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고층에서 찍었는지 위에서 밑을 넓게 비추면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흔들리며 도심에서 푸른색의 포털 앞에서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는 사람들을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상을 찍고 있던 사람의 말소리가 영상으로부터 들려왔다. 뉴질랜드 영어였는데 자막이 달려 있었다.

­어? 이게 뭐지?

­자, 잠깐만. 저기, 저기!

카메라가 위로 들리며 영상의 화면이 허공을 배회하다 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흥분한 듯한 음성과 함께 다시 밑으로 향한다. 다른 포털의 대여섯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붉은 포털이 불길하게 일렁이며 나타났다.

푸른 포털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이 붉은색의 포털이 나타나자마자 그 앞으로 몰려들었고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나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듯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포털에서 거대한 손이 하나 불쑥 튀어나오자 그제야 사람들은 헐레벌떡 뒤로 물러나며 경계했다. 그러나 허공을 더듬던 거대한 손은 뒤로 물러나던 사람 중 하나를 낚아챘고 이윽고 거대한 손의 주인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냈다.

­오, 신이시여!

­오우, 미친미친미친!

이어폰으로 전달되는 사람들의 경악성을 들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녀석을 보는 순간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마른침을 재차 삼켰다. 오우거, 오우거다.

꿈속의 기억이지만 나는 저 몬스터를 알고 있었다. 커다란 키와 거대한 체구, 그리고 그에 걸맞은 괴력과 두꺼운 가죽. 오우거의 괴력은 자신보다 키가 큰 나무를 단번에 박살 낼 정도였고 아름드리나무를 뿌리째 뽑아 휘두르기로 유명했다. 녀석의 가죽은 너무 두껍고 질겨서 롱소드 따위로는 깊게 찌르지 않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약점이라고 한다면 육중한 몸에 비해 다소 작은 머리와 목이었지만 높이가 너무 높았다. 심지어 놈은 체구에 맞지 않게 빠르기까지 했다. 나는 마른 입을 다시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오우거는 자신의 손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과 주변을 둘러싼 인간들을 한차례 훑어보더니 손에 들린 인간의 상체를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물러나고 군인들이 총기로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졸였다. 가만히 멈춰있을 때 전차로 포를 쏘았어야 했다.

오우거는 큼지막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무릎을 크게 구부리며 안 그래도 거대한 허벅지 근육을 더 크게 부풀렸다. 그리고 무릎이 쫙 펼쳐진 순간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가며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단번에 십수 명의 사람들의 육신이 터져나간다. 뒤늦게 나타난 전차가 포를 발사했지만 움직이는 오우거를 맞추기에는 조준 속도가 너무 느렸다. 차라리 조금 더 기다렸다가 멈췄을 때 발포했어야 했다. 거대한 포성이 울려 퍼지며 오우거를 스치듯 지나간 포탄 하나가 건물에 직격하자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늦었다. 오우거가 전차의 위험을 알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전차는 두 대였는데 오우거는 바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자신의 가까이에 있던 전차 위로 떨어져 내리며 전차를 내리찍었다. 육중한 체중이 실린 공격에 전차의 두꺼운 장갑이 움푹 찌그러졌다. 올라탄 채로 재차 전차의 장갑을 내려찍는데 공격 하나하나가 포탄처럼 거대한 굉음을 내었다. 전차를 몇 번이나 내리치던 오우거는 이윽고 포신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포신이 순식간에 구부러지며 꺾일 때 다른 전차에서 쏘아낸 포탄이 오우거에게 직격하며 뿌연 폭연이 흩날렸다.

­쿠워어어!

폭연을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허공으로 샘솟는다. 영상에서 벗어났지만 10중 8, 9는 오우거겠지. 역시나 내 예상대로 영상에서 벗어났다가 다른 전차로 떨어져 내리는 그것은 오우거였다. 단, 오우거의 상태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왼팔이 뜯겨나가고 왼팔로부터 이어진 어깻죽지와 가슴팍까지 심한 화상을 입은 거로 보인다. 그러한 중상에도 불구하고 오우거는 하나 남은 손으로 남은 전차의 장갑을 뜯어내고 포신을 우그러뜨렸다.

­크와아아아!

전차 두 대를 무력화시킨 오우거는 하늘을 향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주변에 있던 일반인들이 모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고 간부로 보이는 한 군인이 뭐라고 소리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가슴팍에 있던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 땅이 울리는 굉음이 여러 차례 울리며 수류탄이 터져나간다.

쿵.

마침내 오우거가 쓰러지며 그 육체가 빛의 가루로 환하여 사라졌지만 환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상은 수류탄으로 깊게 팬 바닥과 아직 그 자리에 남아 붉게 일렁이는 포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큰일 났군."

피지와 뉴질랜드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오우거는 진정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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