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튜토리얼의 끝 (1)
* * *
"아…."
정신이 멍하다. 눈을 껌뻑이며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다 이내 손을 이리저리 뒤적여 휴대폰을 집었다.
'2시.'
오후 6시쯤에 잠들었던 것 같은데.
가위가 눌리고 꿈속에 들어가 퀘스트를 완료하고 일어나기까지 8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의식이 꺼진 후로 제법 숙면을 했는지 몸의 피로는 상당히 풀려있었다.
"끄으으으!"
기지개를 한껏 펴며 개운함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떠 있는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서브 에일리언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몽환석 조각 1개가 지급됩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전과 같이 허공에 푸른빛과 함께 가로, 세로 5센치, 높이 1센치의 반투명한 직육면체가 생겨났다. 그걸 집어 책상 위에 던져둔 다른 몽환석 조각 위에 올려놓자 서로 합쳐지며 하나가 되었다.
3개만 더 모으면 저게 뭔지 알게 되겠지.
[메인 수색 정찰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다음 중 택 1.]
[지구방위군 전투복 세트, KPS1, KPG1, KNS001]
차례로 훑어간다. 처음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전투복 세트였다.
[지구방위군 전투복 세트]
등급 : 9
설명 : 인류연합 소속 지구방위군의 전투 복장 세트이다. 구성은 상의와 하의, 전투화와 장갑으로 되어있다. 옷의 재질은 방염 처리가 된 특수 면으로 되어있으며 장갑과 군화는 트롤의 가죽을 가공하여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광검이라 불렀던 KPS1.
[KPS1]
등급 : 8
설명 : 인류연합 소속 지구방위군의 보급 무기인 플라즈마 소드이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검날이 형성된다.
플라즈마 건인 KPG1
[KPG1]
등급 : 8
설명 : 인류연합 소속 지구방위군의 보급 무기인 플라즈마 건이다. 플라즈마 탄을 장전해 플라즈마를 쏘아내는 총기이다. 플라즈마 탄알이 30발 들어있는 탄알집과 함께 구성.
마지막으로 나노 슈트 KNS001
[KNS001]
등급 : 7
설명 : 인류연합 소속 지구방위군의 보급형 나노 슈트이다. 동력원은 전기와 태양광이며, 외부의 방어봇은 육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하며 발판에 흡착 기능이 있고 방사선을 차폐 기능이 있다. 내부의 방어봇은 육체 내부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하여 장기를 보호하고 신진대사를 조절한다. 수리봇은 손상된 육체와 방어봇을 고친다.
K는 KOREA 즉, 한국을 의미했고 P는 플라즈마, S는 소드, G는 총, NS는 나노 슈트를 의미했다.
[정말로 'KNS001'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어쨌거나 나노 슈트를 선택하자 허공에 푸른빛과 함께 한 변의 길이가 20센치 정도 되는 검은색 정육면체가 나타났다. 정육면체를 집어 들자 제법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푸른빛이 사라졌다.
아직 사용자 인식이 되지 않은 나노 슈트를 들어 책상 위에 놓고 정육면체의 가장 윗부분에 손을 올렸다.
(사용자 인식이 진행 중입니다. 인식이 끝날 때까지 손을 떼지 마십시오.)
(사용자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인체와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정육면체가 잘게 갈라지며 손을 타고 몸 전체로 뻗어나갔다.
"으앗!"
'느낌 이상해!'
몸 외부를 감싸는 느낌은 꿈속에서의 경험으로 익숙했지만, 나노봇들이 육체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북했다.
(인체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노 슈트는 인식과 동기화를 완료하자마자 잠들기 전에 입었던 상처 자국을 덮더니 금방 상처 자국을 지워냈다.
"좋구만!"
뇌파와 동기화된 나노 슈트는 내가 슈트를 입는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육체 외부를 순식간에 덮었고 다시 벗는다는 생각과 함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몇 차례 기능을 확인하고 콘센트에 나노 슈트를 연결했다. 충전율이 40% 정도였기에 미리 충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체내를 관조했다.
'뇌전신공.'
내부의 마나가 일정한 경로에 따라 흐르고 몸 안에 흐르는 자그마한 전류가 조금씩 크기를 늘려가며 증폭한다. 찌릿찌릿한 전류가 생성됨과 동시에 나노봇의 양분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던 중 띠링하는 알림음과 함께 창이 하나 떠올랐다.
[능력 : 뇌전신공을 습득하였습니다.]
"후우."
'상태창.'
[상태창]
이름 : 유현
등급 : 1
능력치
체력 : 12 근력: 14 민첩 : 12 정신력 : 15 마력: 11
잔여 능력치 : 0
능력 : 입몽, 재래식 호흡법(9급), 뇌전신공(9급)
세상이 변하고 하루가 채 안 되어 상태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튜토리얼 퀘스트와 블루스톤으로 늘어난 11의 마력. 그리고 3개로 늘어난 능력창을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엄청 강한 편이겠지?'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열자 실시간 검색어는 상태창, 포털, 몬스터, 튜토리얼, 잠재능력 등의 검색어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하나씩 검색해 정리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각각의 나라에 오후 2시를 기점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상태창이 나타났다. 그리고 튜토리얼 퀘스트와 함께 포털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몬스터는 사방으로 뻗어나가 도심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혼란을 초래했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해나가며 대처했다.
처음에는 경찰과 군대 등이 투입되어 몬스터를 막아내고 시민을 보호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반전되었다.
상태창이 나타남과 동시에 생겨난 잠재능력. 튜토리얼 퀘스트를 수행함으로 얻은 보상들.
사람들은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몬스터를 사냥하며 빠르게 강해진 것이다. 상황은 빠르게 호전되다 못해 사람들은 몬스터를 잡기 위해 밖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을 판이었다.
'이게 대체…?'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가관이었다.
포털 맛집 강원도 고성에 와봤습니다.
내 잠재 능력은 XXXX?
튜토리얼 모두 깼습니다. 튜토리얼 정보 및 보상 공개.
몬스터를 잡기 위해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벗어나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자신이 얻은 잠재능력을 자랑하는 사람들. 자신이 얻은 정보를 풀어놓는 사람들 등.
하루도 채 안 되어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속도로 적응을 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 사람들이 그러했다.
개인 방송을 하는 BJ, 유튜버 등의 사람들은 저마다 길거리로 나가 방송을 하고 있었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마치 RPG 게임이 처음 오픈하고 사냥터가 미어터지듯 거리를 사냥터처럼 점거하고 있었다.
이미 튜토리얼 퀘스트를 모두 완료했다는 영상만 해도 수두룩했고 자신이 알아낸 각종 정보와 팁들을 끝없이 쏟아냈다.
'아니, 잠들기 전만 해도 밖에 나온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내 경험과 현실의 괴리에 홀린 듯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섰다.
"허허."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동안에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으음?'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고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데 벌써 심상치가 않다. 다른 라인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고 입구 쪽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도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고로 지금 시간은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키이익!
"엇?"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고블린 한 마리가 무언가에 쫓기듯이 단지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뛰기 시작했고.
키에엑!
제비가 날듯이 뛰어올라 내리꽂는 점프 펀칭이 고블린의 안면에 정확히 틀어박히며 고블린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앗싸! 개꿀!"
나는 그 광경을 보자 등 뒤로 식은땀 한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잠에서 깨고 좀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우월감에 빠져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뛰어 입구를 나섰다.
입구를 나서자마자 보인 것은 길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푸른빛을 내뿜으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포털과 그 포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홀린 듯 사람들을 지나쳐갔다.
포털 앞에 깔판을 깔고 쭈그려 앉은 채 휴대폰을 하는 사람. 포털 앞의 벽에 기대어 휴대폰을 하는 사람.
"아저씨! 거기 제 자리에요!"
"여기 아무도 없었는데요?"
"잠깐 편의점 갔다 온 거예요!"
"자리 비웠으면 끝이죠."
"아니…!"
포털 앞, 자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주말도 아닌데 시내로 갈수록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혼란은커녕 포털과 몬스터는 유희 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두정동 먹자골목에 도착하자 길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포털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포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 틈새에 끼어 뭘 하나 구경했다.
'어? 저 사람은?'
포털 앞의 저 남자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같은 회사 동료로 큰 키와 커다란 덩치 때문에 한 번만 봐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인물. 고대한 이었다.
이윽고 포탈에서 고블린과 오크가 한 마리씩 나왔다. 고대한은 씨익 웃으며 웃옷을 벗어 던졌다.
"거대화!"
고대한의 외침과 함께 안 그래도 2미터에 달하던 키가 30센치가 더 자라나며 덩치도 더욱 커졌다.
"와아아아!"
찰칵찰칵.
사람들의 환호성과 카메라 촬영음 속에 고대한이 오크와 고블린 앞에 섰다. 그리고 한껏 힘을 주자 근육이 쩍쩍 갈라지며 더욱 사람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기대감 속에 몬스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키익!
취이익!
손톱을 날카롭게 세운 채 고대한의 등으로 점프해 마구 할퀴기 시작한 고블린과 고대한의 전면을 양 주먹으로 마구 내려치는 오크.
그러나 몬스터의 공격에도 그의 표정은 평온할 뿐이었다. 내가 봐도 저건 공격을 당하는 게 아니라 놀아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유치원생이랑 어른 정도의 차이잖아.'
오히려 포즈를 바꿔가며 건치 미소를 뽐내던 그는 이내 손을 뻗어 고블린과 오크의 다리를 잡아 들고 바닥에 내려찍었다.
콰앙!
몬스터의 육신이 바닥과 부딪치며 살가죽이 터지고 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귀를 울리고 두 마리의 몬스터가 빛으로 화해 사라진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나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손바닥을 마주쳤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