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11화 (11/62)

〈 11화 〉 인류연합(人??) 육준오 대위 (4)

* * *

이미 수년 전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명령이 있었다. 그러나 잊고 있던 옛 기억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 도저히 이대로 육준오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자신의 발을 붙들었다. 김지훈은 자신의 소대장인 2소대장 상사 정경인에게 말했다.

"소대장님, 저희 정말 이대로 복귀해도 되는 겁니까?"

“…."

"소대장님,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겁니까?"

"…에이씨! 가라는데 어떻게 해! 군에서 명령 불복종은 총살감인 거 몰라?!"

"그 뭔, 개소립니까?"

"뭐, 뭣? 개소리?!"

김지훈의 뒤를 생각지 않는 당돌함에 정경인은 당황스러워 말까지 더듬었다. 정경인이 당황했거나 말거나 김지훈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지금은 전쟁 중도 아닐뿐더러 정당하지 못한 명령은 불복종해도 됩니다. 지금 중대장님 혼자 저기에 남아있는 게 정당하고 올바른 명령이라고 보십니까?"

"…"

"물론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면 정당한 거겠지만, 우리가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잖습니까?"

김지훈은 그 말을 끝으로 장갑 함정에서 내렸다. 육준오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정경인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긴 한숨을 토해내며 외쳤다.

"…어휴, 졌다. 졌어. 야, 김지훈. 네 마음은 알겠는데 말은 가려서 해라. 직속상관한테 개소리가 뭐냐! 개소리가!"

얼른 뒤따라가서 조인트를 걷어찰 생각을 하며 정경인은 무전을 개방했다.

"아, 아. 2소대원들은 들어라. 뒤끝은 절대 없으니까. 중대장님 구하러 갈 녀석들은 함선에 남아라."

<…./>

'쩝, 별수 없지. 둘이라도 가는 수밖에.'

정경인은 자신의 무전에 아무런 응답이 없자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빠르게 해치를 열고 상체를 함정 밖으로 내밀었다.

"2소대장님, 왜 이렇게 늦으시는 겁니까?"

"이러다 중대장님 죽습니다!"

"뒤끝은 절대 없으니까. 중대장님 구하러 갈 녀석들은 함선에 남아라. 가 뭡니까! 하하!"

"푸핫! 그러니까 말이야, 뒤끝은 절대 없으니까. 저 말 절대 못 믿지. 킥!"

언제 나왔는지 키득거리며 감히 자신을 손가락질하면서도 분대별로 오와 열을 맞춰서 있는 2소대원들과.

"아니, 그리고 2소대장님. 무전을 하실 거면 채널을 2소대 채널로 하시지, 1소대, 3소대도 다 들으라고 공용 채널로 통신하는 겁니까?"

"..."

비아냥대는 1소대장 김준혁과 3소대장 이철우를 선두로 분대별로 오와 열을 맞춰서 있는 1소대와 3소대원들.

'이 녀석들…!'

정경인은 의연하게 서 있는 중대원들을 보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또 김준혁의 말대로 굳이 2소대 채널로 변경하지 않고 공용 채널로 무전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엉거주춤하자 김지훈이 버럭 소리쳤다.

"아, 거, 추태 그만 부리고 빨리 내려오십쇼!"

"아, 알았어! 간다, 가!"

문.답.무.용?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녀석을 제외한 놈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미 나노봇들이 얼굴을 폐쇄한 상태였기 때문에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노, 10분 타이머 맞춰줘."

[10분 타이머 설정합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말로 여기까지 끌었다만은 이 이상은 말로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마나를 폭주시켜 신체 능력을 끌어올려 놓은 상태라 망정이지. 대비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내 뒤로 튀어 나가려는 녀석을 제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세 마리의 움직임을 모두 주시하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급속도로 증가한 반사신경과 신체 능력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세 마리가 동시에 움직인다면 지금 이 상태에선 막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지금 내 상태는 무한정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대한 억눌러서 지속할 수 있게끔 하고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는 붕괴될 것이고 마나는 폭주가 사그라듦과 동시에 고갈될 것이다.

'도대체 약점이 뭘까?'

눈알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고가 가속화된다. 2마리의 거대한 삐에로, 1마리의 작은 삐에로. 작은 삐에로의 움직임은 예상대로 큰 놈보다 빨랐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뭉개놓은 얼굴이 어느새 원상태로 복구하고 있다는 것.

'플라즈마도. 타격도 먹히지 않는다.'

수십 명의 중대원이 쏟아낸 플라즈마 폭격으로 꿰뚫린 상처조차 복구해내는 복구력. 애초에 그걸 상처라고 할 수 있나 싶다. 피해를 입으면 양초처럼 흐느적대다 원상태로 복구해버리는 몸은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무엇이었다.

'후, 뭐든 시도는 해봐야겠지.'

아.파!

"헙!"

작은 삐에로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붉은색의 머리칼을 여러 개의 송곳처럼 변형시키며 찔러오자 나는 허파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삐에로의 머리를 옆으로 빗겨 쳤다. 작은 삐에로는 측면의 벽에 송곳으로 된 머리를 꽂아 넣고는 낑낑대다 몸을 액체화시켰다.

나는 삐에로의 머리를 쳐낸 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에는 슈트 위에 마나를 둘렀기 때문에 슈트가 상하지 않았지만,삐에로의 머리에 손이 닿음으로써 마나의 소모가 상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마나의 소모는 크지 않았다.

삐에로의 신체에 마나가 닿으면 마나가 녹아내리며 소모될 것을 예상했는데 마나는 별다른 이상 없이 처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단한 상태일 때는 녹이는 능력이 잠시 사라지는 건가?'

콰앙.

나는 광검을 휘둘러 격벽과 함께 녀석을 베어보았다. 흐물흐물한 삐에로의 몸이 광검의 플라즈마에 녹으며 치익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복구된 몸은 좀 전보다 작아진 느낌. 그러나 점차 본래의 크기만큼 다시 자라났다.

가속화된 시각으로 삐에로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특이점을 찾아봤지만, 그냥 흉측하다는 것 외에는 몸을 회복하는 동력원이라든가 약점이라 할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느새 시야 한구석에 있는 타이머는 9분으로 줄어있었다.

'아직은 위험해.'

도망을 다니며 시간을 버는 것도 방법이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일렀다. 아직은 좀 더 버텨야 한다.

죽.어.라.인.간.

죽.어.

이제는 작은 삐에로와 큰 삐에로가 함께 달려들었다. 작은 녀석이 양팔을 쌍검의 상태로 만들며 휘둘러오고 큰 녀석도 양손을 합쳐 거대한 검의 형상을 만들며 내려찍었다. 그 과정에서 큰 놈의 검이 천장을 가르며 강판을 찢고 마치 장기가 쏟아지듯 강판이 받치고 있던 것들을 쏟아내었다.

지지지직.

전선같은 것들이 큰 놈들의 머리에 닿으며 지져댔지만, 전류조차 통하지 않는지 별로 개의치 않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가린 삐에로는 두 마리의 삐에로가 맹공을 펼치는 와중에도 전선의 전류가 자신을 지지는 와중에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뭐, 안 움직여주면 나야 땡큐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공격들을 큰 차이로 피해내며 플라즈마 건을 꺼냈다. 작은 오차로 피해내며 광검으로 반격하기에는 유동적인 놈들의 몸이 꽤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재차 뒤로 도약하며 일단 탄이나 다 쓰자는 생각으로 플라즈마를 난사했다.

지잉. 쾅콰광쾅쾅.

재차 쫓아오는 녀석들과 재차 뒤로 도약하며 총을 쏘는 나. 속도는 내가 빨랐으나 두 마리의 공격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뒤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못 피하면 죽는다는 생각과 거리를 벌려 움직이지 않는 한 놈이라도 떼 놓으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굴을 가린 삐에로도 내가 점차 뒤로 빠지며 멀어지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멀어져서 2대1로 만들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

부웅.

"이크!"

카가각.

가로로 길게 휘둘러진 거대한 검이 공기를 가르는 육중한 바람 소리와 함께 내 가슴팍 위를 지나 격벽을 또 갈랐다.

키.키.키.킥!

"뭘 웃어!"

작은 삐에로가 허리를 펴자마자 쌍검을 사선으로 교차해 베어오자 그대로 광검을 직선으로 내려찍어 반 토막을 내주고 그대로 뒤로 도약하며 큰 삐에로에게 얼마 남지 않은 플라즈마 탄을 모두 쏟아부었다.

콰콰콰쾅!

아.파!

'아프라고 한 거야, 미친 삐에로놈들아!'

얼굴을 가린 삐에로는 나와 작고 큰 녀석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가까이 자리를 잡고는 다시 멈춰 섰다. 끼어들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공격을 하지 않을 것 같아 앞의 녀석들에게 집중했다.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잘린 삐에로가 몸을 복구하기 전에 다시 검을 휘둘러 허리를 반으로 베었다.

4조각으로 나누어진 작은 삐에로가 바닥에 널브러지자 다시금 액체화하며 슬금슬금 달라붙어 복구를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고 나도 뒤로 뺀다.'

그러나 두 삐에로에게만 정신을 집중한 것이 큰 실수였다. 가만히 멈춰 서 있던 삐에로가 줄곧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까.꿍.

얼굴을 개방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젖은 휴지 같은 점액질들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파파파팍!

"아악! 미친!"

급하게 광검으로 쳐낸다고 쳐냈건만 몇 군데 맞고 말았다. 어깨와 허벅지의 슈트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피부까지 닿자 극심한 고통과 함께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다른 삐에로들이 입은 상처를 복구하고 있는 중이어서 합공은 당하지 않았지만 큰일이었다. 못 움직이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뜨거웠던 몸 덕분에 화상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느껴졌고 통증 때문에 몸의 통제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되었다.

'7분.'

타이머를 보니 이제 남은 시간은 7분. 이제는 내가 몸을 뺀다고 하더라도 중대원들이 장갑 함정에 오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몸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현기증이 나며 몸의 통제력을 점점 잃어간다. 부풀었던 근육이 짙은 수증기를 뿜으며 더욱 부풀고 사고가 점차 단순해지며 본능에 가까운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죽여.죽여.죽여.죽여.'

"크윽…!!! 안돼!"

정신을 잃으면 분명 죽게 된다. 저번처럼.

[사용자의 육체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보호 시퀀스를 가동합니다.]

나는 한편에 떠오른 희망의 메세지에 눈을 부릅뜨고 멀어지려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호흡을 골랐다.

씩씩거리며 거칠게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속이 녹아내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함께 쏟아져나와 코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나노봇의 보호 시퀀스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열기가 그 이상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서서히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고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던 마나의 움직임은 여전히 대부분이 통제되지 않았지만, 일부는 내 의지에 따라주었다.

날.아.프.게.했.어.

죽.일.거.야.

내가 온 신경을 집중해 육체의 감각과 마나를 제어하고 있을 때 플라즈마 건에 당한 두 녀석이 육체의 복구를 끝냈고 얼굴에서 점액질을 쏴대던 녀석도 다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얼굴을 주물럭거리며 줄어든 얼굴을 복구하는 듯했다.

육체의 붕괴가 일어날 정도로 마나가 과폭주 상태에 이른 덕분인지 일련의 장면들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고 수많은 정보가 좀 더 입체적으로 뇌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과는 분명하게 줄어든 녀석들의 신체가 느껴졌고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삐에로들이 점령하고 있던 통제실에서 꾸물거리며 기어 오는 점액질. 그 점액질이 삐에로의 몸에 달라붙을 때마다 내게 공격받고 줄어들었던 몸이 다시 늘어났다. 분명 공격이 통하기는 했으나 상황실에서 흘러나오는 저 점액질이 삐에로들의 신체를 끊임없이 복구한 것이다.

그 여파로 상황실에서 거리를 벌린 지금은 삐에로들의 신체 복구 속도가 처음 맞닥뜨렸을 때보다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아마 상황실에서 거리를 벌리면 벌릴수록 복구 속도도 느려질 거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좀 전에 플라즈마 건의 탄을 모두 소모한 덕분에 이제 나에게 남은 건 광검과 나노 슈트뿐이었다. 심지어 나노 슈트는 육체의 붕괴와 열기를 억누르기도 벅찬지 좀 전에 녹아내린 어깨와 허벅지의 손상된 부위는 복구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남은 건 광검과 내 몸뚱어리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의 불안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쾅!

통제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나면 이미 움직인 후였다.

툭.

탄알을 모두 사용해버려 쓸모없어진 플라즈마 건이 다시금 거대한 검을 만들어내던 삐에로를 뚫고 날아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한다. 머리를 지탱하던 것이 사라진 삐에로의 거대한 머리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이내 액체로 변하며 자신의 몸과 융합하려는 듯 꿈틀대지만, 그곳에 머리와 융합할 몸은 남아있지 않았다.

점액이 된 머리는 바닥을 녹이며 한없이 줄어들었다. 사실 머리를 맞추려고 했는데 방향의 제어가 불가했다.

작은 삐에로가 무너져 내린 큰 삐에로를 보고는 눈을 끔뻑인다.

뭐.야?

짐짓 괴상망측하던 얼굴을 더 일그러뜨린다. 그리곤 곧장 내게 쇄도해 들어오는데.

"하암!"

하품이 나올 정도다.

어.디?

"여기."

크.악!

!!!

작은 삐에로는 어느새 자신을 지나쳐 뒤로 이동한 나와 어느새 신체가 산산조각이나 쓰러져 있는 얼굴 가린 삐에로를 보았다.

아, 이제 얼굴 가릴 손이 없으니 얼굴 가린 삐에로는 아닌가?

예의 얼굴에서 점액 화살 수십 개가 쏘아졌지만, 그보다 많은 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펑!

수많은 선이 허공을 지나 얼굴에 새겨짐과 동시에 수박 터지듯 머리가 터져 점액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작은 삐에로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입을 뻐끔거리며 기괴한 눈깔을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었다. 통제실로부터 꿈틀거리며 다가오던 점액질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는지 통로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작은 삐에로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니들은 대체 뭐냐?"

삐에로는 자신의 머리통이 이미 잘려 내 광검 위에 들려있는지도 모르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나는 손목을 털어 머리를 허공으로 띄웠다. 그리고 광검을 옆면으로 휘둘러 삐에로의 머리를 멀리 쳐냈다. 전력이 모두 소모되어 앞이 캄캄한 통로의 끝자락으로 날아가는 삐에로의 머리를 보며 상황실로 들어갔다. 점액질로 가득 들어찬 상황실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알들이 있었고 주변의 인간 시체들을 영양분 삼는지 바닥에 있는 점액질이 인간의 시체를 녹여 자신의 부피를 키우고 있었다.

"흠…."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선원들은 안타깝게도 이미 죽어있었다. 푸르죽죽하게 늘어진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오른 채 마지막까지도 살기를 원했는지 초점 없이 부릅떠진 눈을 감겨주었다.

점액질로 가득 찬 상황실을 향해 한동안 묵념을 하고 상황실을 나섰다.

"으윽!"

점차 사그라드는 열기와 쪼그라들기 시작한 마나, 그리고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몰려드는 피로감에 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데.

"응?"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뜀박질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마주 뛰어갔다.

"헉!"

"중대장님!"

중대원들은 내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보였는지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플라즈마 건을 빼 들었다. 느리다, 느려. 자식들아.

"하아, 너네 여기서 뭐 하냐?"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온다.

"중대장님, 괜찮으십니까?"

김지훈이 소대장들과 중대원들을 제치고 내 앞으로 와서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너네 여기서 뭐 하냐고."

나는 순간적으로 조인트를 깔뻔하다가 가까스로 멈추고는 안도했다. 큰일 날뻔했네. 아직 힘의 잔재가 남아있어 지금 상태로 조인트를 걷어찼다가는 아무리 나노 슈트를 착용하고 있더라도 무릎째로 다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김지훈이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내 행동을 보지 못했는지 건방지게 역질문을 해왔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중대원이 중대장님을 혼자 두고 갑니까?"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보고하라고 했잖아."

"조종수 한 명은 함정에 태워 함선으로 복귀시켰습니다. 어차피 보고는 한 명만 있어도 될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지훈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어휴, 여기 상황은 내가 정리했으니까. 다들 함선으로 복귀한다."

"예?"

"예? 는 무슨 빨리 돌아가!"

그렇게 우리는 중대 함선으로 복귀하기 위해 장갑 함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갑 함정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떠오른 메세지.

[수색 결과 보고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출몽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여기 남아서 이곳의 정보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1초라도 빨리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노 슈트로 인해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마나 폭주의 여파로 시작된 고통은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극렬한 통증으로 이어져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덕분에 김지훈에게 업혀 가고 있는 실정이라 정보를 알아보기는커녕 점점 심해지는 고통에 당장 쇼크사할 판이었다.

"예!"

생각할 것도 없이 내뱉어진 말과 함께 티비가 꺼지듯 내 의식이 꺼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