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인류연합(人??) 육준오 대위 (3)
* * *
너.넨.누.구.야?
음의 높낮이가 거의 없어 더 기괴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거북하게 울려 퍼진다.
"사격 개시!"
콰콰콰쾅!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사된 플라즈마가 거친 굉음을 울리며 삐에로에게 적중했다. 수 차례의 폭음 끝에 온몸이 벌집이 되어버린 삐에로의 흉측한 모습이 드러났다.
아.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녹아내리는 양초처럼 흐느적거린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던 몸도 흐느적거리며 흘러내려 비워진 몸이 순식간에 다시 메꿔졌다. 그리고 구멍 난 육체가 다시 메꿔지자 금세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저걸 육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건 육?이라기 보다는 액?에 가까웠다.
아.프.다.고!
삐에로는 흘러내리는 팔을 거대한 검의 형태로 만들어 굳히더니 그대로 후방의 병사들에게 휘둘렀다. 단번에 서너 명의 병사들의 육신이 토막 나 쓰러지자 나는 다급히 뒤로 뛰어가며 나노 슈트를 얼굴 부분만 개방한 채로 소리쳤다.
"잠깐!"
이어서 검으로 된 팔을 재차 휘두르려던 삐에로가 내 외침에 휘두르던 팔을 멈춘다.
뭐.야?
말을 하기에 말을 걸어봤는데 다행히도 말이 통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나노 슈트로 얼굴을 덮으며 은밀히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소대장들은 애들 데리고 함정으로 복귀해서 수색 결과 보고해."
<네?/>
"잔말 말고 어서!"
각 소대장이 망설이며 나와 삐에로를 번갈아 바라보다 천천히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다들 장갑="" 함정으로="" 이동한다.=""/>
어.디.가?
삐에로가 내 뒤로 빠져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몸을 움직이려 하자 다시 한번 얼굴의 슈트를 개방하고 말했다.
"멈춰!"
넌.뭐.야?
"이크!"
검의 형태를 한 삐에로의 팔이 쇄도해오자 가까스로 피해내며 물러선다.
'거대한 몸집에 비해 상당히 빠르다.'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지?"
너.네.가.먼.저.공.격.했.잖.아.
"아니! 먼저 공격당한 건 우리 쪽이다! 네가 반 토막을 내버린 저 시체가 안 보이냐!"
말을 하면서 뒤를 슬쩍 보자 아직도 이쪽을 주시하며 천천히 뒷걸음질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간부들 뭐하냐! 빨리 안 뛰어가?!"
내가 호통을 치자 그제야 뒤돌아서 줄행랑을 친다. 어휴. 답답하긴.
어.디.가!
"어디 가긴 뭘 어디가!"
누.구.야?
인.간?
녀석의 뒤로 2마리의 삐에로가 고개를 기형적으로 꺾은 채 비척거리며 걸어왔다. 하나는 2미터 정도로 다른 녀석들에 비해 작았지만 그만큼 날렵해 보였고 다른 하나는 5미터의 크기로 원래 상대하던 삐에로와 크기는 비슷했으나 양손을 X자로 교차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2등급 3마리라….'
솔직히 쫄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강단 있게 소리친다.
"왜 우리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거냐!"
나는 일단 아무 말이나 던져놓고 다시 나노 슈트로 얼굴을 감싸며 무전을 보냈다.
"중대 함선에 복귀하면 바로 수색 결과부터 보고해! 무조건 그게 1번이다!"
<예!/>
대답을 듣자마자 시간을 계산한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1시간도 넘게 걸렸지만, 그거야 기도비닉이니 안전이니 다 유지하면서 오느라 그런거고. 전력으로 뛰어간다면 5분이면 족하다. 거기에 장갑 함정을 타고 함선으로 복귀하는데도 5분 안팎이겠지.
'앞으로 딱 10분만 더 버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얼굴을 개방한다.
핍.박?
괴.롭.혀?
우.리.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아무 말이나 내뱉다 보니 방금 한 말도 기억이 안 나네.
'마나 폭주.'
나는 몸 안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다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래! 작고 힘없는 인간들을 왜 괴롭히는 거냐!"
그.야.
재.밌.으.니.까.
얼굴이 보이는 삐에로 두 마리가 까드득 거리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삐에로도 어깨를 들썩거린다. 그러다 2미터의 날렵해 보이는 녀석이 돌연 정색하고 눈을 부릅뜨더니 앞으로 뛰쳐나갈듯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도.망.못.가.
예의 그 고저가 없는 기괴한 말투와 함께 일순간에 내 뒤를 지나쳐가려는 녀석의 얼굴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푸륵?
'니가 아무리 빨라봐야 지금의 나보단 느릴거다.'
지점토처럼 뭉개진 녀석의 얼굴에 대고 얄밉게 속삭인다.
"응, 아냐. 도망 잘 가."
광검으로 벨 걸 그랬나? 녀석의 얼굴을 잡은 손을 보자 잠깐 닿은 것뿐인데도 녹아내렸고 녹아내린 장갑을 나노 봇이 빠르게 복구하고 있었다.
'슈트만 믿을 게 아니라 마나를 둘러야겠는걸?'
[사용자 내부의 비정상적인 열기 감지. 보호 시퀀스….]
"작동하지마!"
아직 조절한다고 조절하고 있었지만 마나 폭주로 인한 열기를 나노 슈트가 감지하며 보호 시퀀스를 작동하려 하자 다급히 말렸다.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보호 시퀀스 작동을 중지합니다.]
작.동.하.지.마?
"뭘 다 따라 하고 있어? 하여튼 이 뒤로는 못 간다. 괴물 자식들아."
마치 벌레떼가 기어 내려오는 것처럼 내 얼굴을 나노봇들이 덮어갈 때 마지막으로 녀석들에게 경고했다.
"이제부터는 문답 무용이다!"
일단 시동은 걸어놨다. 김지훈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생각했다.
오늘의 육준오는 뭔가 이상하다. 처음 보고를 했을 때만 해도 그렇다. 비행을 멈춘 201호의 상황을 보고하였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빠르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평소의 귀차니즘 가득하던 육준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작전 시작과 동시에 201호 함정의 하부에 나 있는 거대한 구멍을 봤을 때는 또 어떤가? 평소라면 진입은 고사하고 그 구멍을 보자마자 뒤로 돌아가서 201호의 수색 결과 에일리언에게 점령당했다고 어림짐작하여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개체 수가 너무 많아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사족을 달았을 것이다. 그래야 추후에 다른 외계생명체가 발견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그러나 빠져도 심하게 빠져있던 자신의 상사는 갑자기 원리원칙주의자가 되어서는 누가 봐도 위험이 도산해 있을 것이 뻔한 함선 내부로의 진입을 명했다.
처음에는 후방의 1소대로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그럼 그렇지.'
언제나처럼 뒤에 빠져서 지시만 내리겠지 싶었다. 그러나 처음 에일리언을 발견하고 맹수처럼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김지훈을 전율케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의 든든한 등.
그리고 그 후로도 솔선수범하여 선두에서 에일리언들을 베어내고 마지막에는 플라즈마 건조차 통하지 않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의 앞을 홀로 가로막고 전 중대원들을 후퇴시키기까지 했다. 그 일련의 행동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었다.
오늘 그의 모습은 우주 용병 시절,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을 감명받게 하고 이끌어 주던 우상, 용병대장 육준오의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 용맹하게 빛나던 과거는 임무 수행 도중 용병대가 괴멸 수준으로 붕괴되었던 한 사건 이후로 빛이 바랬다. 백에 달하던 용병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네 사람. 육준오와 김지훈, 그리고 죽기 일보 직전의 치명상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져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두 명뿐이었다. 사건이 있던 그 날, 육준오는 육준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사망한 용병대원의 유가족들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였고 용병대를 해산하였다.
그 후로 술과 마약을 하며 폐인처럼 살아가다 우연히 술집에서 과거의 인연을 마주한다. 그렇게 폐인이 되었던 육준오는 용병 시절 육준오에게 은혜를 입었던 한 군인의 설득 끝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죽어있었다.
어느 날 그의 소식을 듣고 군에 들어가 그가 있는 부대로 지원까지 하여 오랜만에 그를 보았을 때 이미 그는 자신이 알던 육준오가 아니었다. 별다른 의지도 목표도 없이 한달 한달을 아니,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군에서 받게 된 봉급을 모두 살아남은 용병대원들과 유가족들에게 보내고 있었으니 그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쓸데없는 죄책감.'
김지훈은 그날의 일을 육준오의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누가 오더라도 그날의 일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몬스터들이 파놓은 함정. 그것은 개미지옥이었다. 용병대장인 육준오도 그의 용병대원들도 함정에 빠지고서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육준오가 이끌고 있던 용병대는 육준오를 주축으로 기세 좋게 승승장구하고 있었기에 몬스터들이 꾸민 이깟 함정, 열정으로 부숴주겠다며 호기롭게 싸워나갔다.
사방을 점거한 몬스터들이 몰려들 때 육준오는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한복판에 뛰어들며 몬스터들을 도륙했고 그에 힘입어 다른 용병대원들도 태세를 정비하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착실히 막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문제는 아무도 그렇게까지 몬스터가 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00, 200, 500, 1000…. 분명 천은 넘었을 것이다. 그날 용병대가 도륙한 몬스터의 숫자는.
그러나 몬스터의 함정을 모두 파쇄하고 녀석들의 살점을 모두 도려내고 났을 때 서 있던 사람은 오로지 육준오 뿐이었다. 그리고 그조차도 온몸이 피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었다. 그 참담한 현장에서 김지훈은 몬스터의 사체인지 인간의 시체인지 모를 무더기 속에 쓰러진 채 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의 절규를.
“으아아아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