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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9화 (9/62)

〈 9화 〉 인류연합(人??) 육준오 대위 (2)

* * *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매캐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우욱!"

결국 비위가 약하고 경험이 부족했던 중대원들이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며 정적을 깼다.

암녹색 액체에 상반신이 녹아내려 뒤에 있던 벽면과 하체가 하나가 되어버린 선원, 반대로 하반신이 녹아내리고도 얼마간 살아있었는지 상체의 끊어진 척추로부터 흘러나오는 묽은 액체와 검붉은 피를 바닥에 길게 낭자한 채 기어간 흔적을 남긴 선원. 그 선원의 부러진 손톱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생을 마감한 후에도 부릅떠져 있는 두 눈은 이들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똑똑히 알려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고통으로 얼룩진 선원의 눈을 쓸어주었다.

'...복수는 제가 하겠습니다.'

종교를 믿진 않았지만, 고통스레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비상 개폐문을 열고 들어간 함선의 내부는 그야말로 그로테스크의 절정이었다. 기괴하게 꺾이고 얽혀 뭉쳐놓은 선원들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얼굴이 난자된 선원 등 끔찍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중대장님, 이건 에일리언 아닙니까?"

1소대장 김준혁 소위의 물음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모두 시체로부터 떨어져라!"

중대원들이 시체로부터 떨어지고 장갑 함정에 있는 조종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액체 질소탄 발사!"

"예, 옛!"

장갑 함정에 장착된 액체 질소탄이 발사되자 아직도 시체와 함선의 강판을 녹이고 있던 액체들이 허옇게 얼어붙는다.

"각 소대는 흩어지지 말고 뭉쳐서 행동한다! 2소대 전방, 3소대 중앙, 1소대는 후방을 맡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 앞뒤 사람 챙겨!"

"예!"

메뉴얼대로라면 흩어져서 수색을 실시해야 한다. 그게 정석이지만 일개 중대가 이렇게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면, 아니 실제로 괴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에서 흩어져서 수색을 한다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다. 이럴 때는 유동성 있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사주경계 철저히 하고 수색 실시한다. 이상 발생하면 바로 보고해!"

"예!"

우리는 숨을 죽인 채로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질척이는 암녹색 액체에 사망한 선원들의 시체 사이사이로 에일리언의 사체도 한 구씩 섞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허리가 반토막나거나 뭉쳐있는 시체의 훼손 방식이 석연치 않긴 하지만…. 암녹색 액체와 함선 하부의 구멍으로 보아 예상되는 개체는 에일리언이었다. 그리 위험한 개체는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걸까?

'설마 퀸이라도 탄 건가?'

기억을 되짚어보면 에일리언 퀸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중대 하나가 이렇게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가는 길에 에일리언의 사체도 종종 보이긴 했지만, 사체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리고 우리가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에일리언 하나가 통로의 한 곳에 선 채로 멀뚱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윤기가 흐르는 검고 단단해 보이는 갑피를 두르고 있고 길고 둥근 형태를 띤 머리와 머리의 무게 때문인지 살짝 굽어진 등과 얄팍하지만 재빨라 보이는 몸체. 그리고 입안을 비집고 뚝뚝 떨어지는 암녹색의 산성액.

[에일리언]

­ 등급 : 1

­ 소형 몬스터. 무리 생활을 하며 우주에서도 살아남는 우주의 바퀴벌레라 불리는 몬스터. 입안에서 뿜어내는 산성 액은 강철도 녹일 정도.

'음?'

그새 변화가 생겼는지 저번 랑스 때와는 다르게 에일리언을 보는 순간 정보가 떠올랐다.

<에일리언 발견!="" 발포합니까?=""/>

왼쪽 귀를 울리는 무전에 손을 들어 제지한다.

"발포 금지!"

정말 에일리언 퀸이라도 와 있는 건가? 저런 녀석들로는 중대급의 함선을 뚫을 수 없을 텐데. 고민을 해봐도 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마나로 기감을 퍼뜨려 눈앞의 개체 외에도 다른 개체가 있는지 확인했다. 기감에 걸리는 게 녀석뿐인 걸 확인하자. 나는 전신에 마나를 퍼뜨리며 허리춤에서 광검을 빼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손잡이에 마나를 쏟아 넣자 붉은색의 빛나는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손잡이로부터 솟아올랐다.

"나 혼자 간다."

나는 내 할 말만 나직이 내뱉은 후 바닥을 박차며 에일리언에게 뛰어들어 단박에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일반적인 칼이었다면 목을 베어내는 순간 산성으로 이루어진 에일리언의 피가 터져 나오며 피해를 유발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광검은 플라즈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베는 순간 녀석의 상처를 고열로 녹여 깔끔하게 목만 떨어뜨려 해치울 수 있었다.

캬악…!

그러나 우주의 바퀴벌레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닌지 목이 떨어져서도 주둥이를 놀리려는 녀석의 입에 재차 광검을 찔러넣고 마무리로 가슴팍에 검을 꽂아 넣자 그제야 생명 활동을 멈추고 잠잠해진다. 그와 동시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서브 ­ 에일리언 처치가 활성화됩니다.]

[서브 ­ 에일리언 처치]

­ 퀘스트 설명 : 181 기보대대의 중대 함선 201호를 점령한 에일리언을 처치할 것.

­ 퀘스트 완료 조건 : 에일리언 처치(1/100)

­ 퀘스트 완료 보상 : 몽환석 조각 1개

"후우."

마력은 낮았지만 육체 능력이 높아서인지 적은 마력으로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한 개체뿐이었기에 나 혼자 나선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총을 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를 동반하기 때문에 안에 얼마나 많은 개체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총을 발포하는 건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았다. 또 에일리언 외의 무언가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에일리언은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두 마리가 아닐 거다. 개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맞닥뜨린 개체 수가 적을 때에는 총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왼쪽 귀에 달린 이어폰 모양의 무선통신기를 누르며 지시를 내리고 사족을 달았다.

"그리고 눌러서 말해라. 누가 지금 항상 말하기로 해놨냐?"

<죄, 죄송합니다!=""/>

우리가 에일리언들을 하나하나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갈수록 선원들의 시체는 점점 많아졌다. 그만큼 에일리언의 사체도 늘어났지만 길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를 옭아매는 위화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노 슈트를 착용하고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광검과 플라즈마 건으로 무장한 인간들이 에일리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물론 선원들의 숫자가 적었다면 기습적인 공격에 당할 수도 있지만, 기습에 당했다기에는 선원들의 시체가 너무 많았다. 기습으로 가능한 숫자가 아닌 것이다.

뭔가가 있긴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니 알 수 없는 불안감만 커져갈 뿐이었다.

하부의 탄약고와 의류 및 식량들이 저장되어 있는 보급 창고를 지나 중앙의 생활관까지 진입하며 벌써 100이 넘는 에일리언을 해치웠다. 그 와중에 활성화된 서브 퀘스트는 이미 완료되었고.

[서브 ­ 에일리언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은 현실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이번 퀘스트를 완료하고 현실에서 보상을 수령하면 이걸로 몽환석 조각은 2개째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조만간 알게 되겠지.'

함선의 중앙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일리언 외의 특이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고 있다.

'아직 뭔가 더 남았다는 얘기겠지.'

긴장을 놓지 않고 수색을 이어나가던 중 앞서나가던 중대원 중 하나가 손을 거수하며 무전을 날렸다.

<중대장님!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무전을 날린 중대원의 말에 앞으로 나가보니 여태껏 봐왔던 것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자취가 남아있었다. 에일리언의 점액에 녹아있던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발톱에 찢긴것마냥 강판이 길게 찢겨져 있었다.

에일리언은 분명 아니었다. 놈들의 작은 손과 발로는 사람의 피부를 할퀴어 찢는 정도가 한계였다.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에. 어떤 것은 3개. 어떤 것은 1개….'

크기도 찢긴 결의 개수도 모두 달랐다. 그리고 갈라진 면적이 매끈한 것도 있고 녹아있는 것도 있다. 바닥에는 목과 배, 무릎이 동강 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바닥을 구르는 머리에는 표정이 없었다. 죽음의 순간에 마땅히 드러나야 할 무언가가 없는 것이다. 일그러지지도 그렇다고 눈을 부릅뜨지도 않은 채 내비치는 흐리멍덩한 동공은 마치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모양새.

나는 손바닥으로 시체의 눈을 쓸고 후방의 1소대로 향하며 지시했다.

"계속 전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관과 행정반을 지나 상황실의 앞까지 도착한 우리는 찢겨져있는 상황실의 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황실 전체에 퍼져있는 희멀겋게 끈적이는 점액질은 에일리언의 산성액과는 달리 산성을 띠고 있지는 않았으나 점도는 더 끈적해 보였다. 바닥뿐만 아니라 천장과 옆의 벽면까지 끈적한 점액질로 범벅이 되어있는 상황실 내부에는 에일리언은 없고 웬 거대한 삐에로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몸에 비해 머리가 굉장히 컸는데 그로 인해 녀석들의 극도로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표정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고 어떻게 보면 흉측하기까지 한 그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막연한 불안감과 불길함이 일어났다.

[???]

등급 : 2

­ 설명 :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

홀로그램 창도 녀석의 정체를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등급이라도 적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중대장님…?/>

"쉿. 다들 동작 그만."

나노 슈트로 인해 삐에로에게 소리가 들리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침묵을 명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인 덕분에 아직 삐에로들은 우릴 발견하지 못한 상황. 게다가.

[수색을 완료했습니다.]

방금 떠오른 창으로 인해 여기 있을 이유는 사라졌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택지는 본래라면 하나일 것이다. 수색을 종료하고 함선으로 복귀하여 보고하는 것. 그것으로 퀘스트는 종료되고 나는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그리고 현실에서 지금 이 몸이 장비하고 있는 나노 슈트나 광검 등을 보상으로 받는다면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돼 내 전력에 보탬이 될 것이다.

"끄아아악!"

"제발! 누구 없습니까!"

"흑흑! 살고 싶습니다!"

한가지 발목을 잡는 것은. 희멀건 점액질에 몸이 묶인 선원들의 절절하고 애타는 부르짖음이었다.

물론 이것은 모두 꿈일 뿐일 테지만 한순간 내 감정을 요동치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저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타입이었다.

나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천천히 손을 들어 지시를 내렸다.

"수색은 여기까지 기도비닉(????) 철저히 유지하고 장갑 함정으로 돌아간다. 대답은 생략."

우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천천히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 때는 후방엄호를 맡았던 1소대가 전방을 맡고 전방을 맡았던 2소대가 후방엄호로 임무를 바꾼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면 뛰어가라고 명령을 내릴 참이었는데 지시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전이 울렸다.

<주, 중대장님!=""/>

"대답은 생략이라…!"

말을 하다 말고 께름직한 느낌에 뒤를 돌자 제일 후미에 있던 중대원 한 명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허공에 붙들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허공에 붙들린 중대원의 아래로 상반신을 잃고 중심도 잃은 하반신이 휘청거리며 쓰러지고 쓰러진 하반신을 커다란 발이 즈려밟았다.

꽃을 밟듯 사뿐히 내려앉은 커다란 발에.

우드득.

소리를 내며 하반신이 터져나갔다.

너.넨.누.구.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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