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선 주인공인 내가 현실에선 은거기인-8화 (8/62)

〈 8화 〉 인류연합(人??) 육준오 대위 (1)

* * *

“허억!”

발작하듯 상체를 곤두세웠지만 웬일인지 주위는 조용하다. 괜히 뻘쭘해져서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둘러본다.

"으음…."

금속의 면으로 둘러싸인 이질적인 공간, 폐쇄된 공간 속에 유일한 창이라면 금속 문에 달린 자그마한 창 하나가 다였다. 나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바닥에 발을 딪고 의자를 밀어보려 해도 의자는 고정되어 있는 듯 밀리지 않았다. 엉덩이의 묘한 부착감에 팔걸이에 힘을 주자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어억?"

허공에 떠오른 몸을 허우적대다 급하게 의자를 잡아당겨 앉는다. 착 하는 느낌과 함께 엉덩이와 의자가 밀착되며 달라붙었다.

"대체 뭐야 이건?"

대체 어떤 배경으로 와 버린 거냐. 그나마 다행인 건 섬광이 터져 나오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시작하자마자 뭔가를 맞닥뜨리는 급박한 상황은 펼쳐지지 않은 것이다. 급박하진 않았지만, 환경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팔을 휘둘러보니 느껴지는 건 무중력의 부력감. 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고 힘을 빼니 공중에 편안히 떠 있는다. 비단 팔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그랬다.

"허어."

'우주에라도 온 건가?'

그에 대한 답변은 몰려오는 기억의 파노라마가 해주었다.

"큭!"

이번에도 역시 짜릿한 두통을 동반한 기억의 전송에 머리를 부여잡는데 뇌를 울리는 음성과 함께 무언가 내 몸 전체를 뒤덮었다.

<사용자의 뇌파="" 불안정="" 감지.="" 보호="" 시퀀스를="" 가동합니다.=""/>

음성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음성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뇌로 직접 전달되는 듯한 기괴한 감각은 나노슈트로 부터 전해지는 파동이었다. 그 감각을 끝으로 점차 두통이 사그라들었다. 한결 편안해진 머리를 굴려 기억을 더듬자 이 몸 주인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차곡차곡 정리된다.

'상태창.'

[상태창]

­ 이름 : 육준오(유현)

­ 등급 : 2

­ 능력치

체력: 25 근력: 38 민첩: 30 정신력: 28 마력: 21

­능력 : 종합 무기술(8급), 뇌전신공(7급)

인류연합(人??) 소속 지구방위군 제8군단 101 우주기갑여단 145 기갑수색중대 중대장 육준오 대위.

육준오는 과거에 용병대를 꾸려 용병대를 이끌던 용병대장이었다. 그렇게 용병 생활을 하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용병대는 해산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에 용병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된 육준오는 그 사건을 계기로 용병 생활을 청산하고 폐인처럼 살아가게 되지만 과거의 인연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인류연합에 들어와 나랏밥을 먹게 된 상황…. 이라는 게 기억의 요약이다.

'그나저나 인류연합이니 지구방위군이니 거창하기만 하고 속 알맹이가 없구만?'

마나를 제외한 능력치는 랑스와 같거나 높았지만 상태창에 표시된 능력은 고작 2개가 다였다.

­ 종합 무기술 :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기술.

­ 뇌전신공 : 뇌기를 다루는 호흡법.

설명도 간단하네.

'입몽(?夢).'

[이미 꿈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출몽(出夢) 조건이 활성화됩니다. 퀘스트 완료, 또는 사망.]

[꿈속의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메인 ­ 수색 정찰]

­퀘스트 설명 : 대위 육준오는 우주 경계 중에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181 기보대대 2중대의 중대 함선 201호를 발견하고 신호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는 201호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수색 정찰 작전을 수행키로 한다. 201호의 이상을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할 것.

­퀘스트 완료 조건 : 중대 함선 201호 수색(0/1). 수색 결과 보고(0/1).

­퀘스트 완료 보상 : 출몽, 육준오의 소지품 중 택 1.

흠…. 이번에는 서브 퀘스트가 없는 건가? 그런데 이번이 고작 두 번째지만 정말 해괴망측하기 그지없는 꿈이다. 인류연합이니 우주 수색이니 이런 말도 안되는 꿈을 대체 어떻게 꾸는 거지? 세상이 이미 정상이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지만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똑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방 안에 하나밖에 없는 철문의 창으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익숙한 물음에 익숙한 대답이 흘러나온다.

"들어와."

푸쉬이.

문이 열리며 옷깃에 중사 계급장을 부착한 짧은 머리의 남자가 들어왔다.

"대장님. 특이사항 보고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대장님이냐? 호칭 똑바로 하라고 했지?"

나는 다부진 체격의 중사 김지훈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윽,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그래, 김지훈 중사. 무슨 일이지?"

"지금 막 201호의 비행이 멈추었습니다. 아마 가동 연료가 모두 소진된 듯합니다."

"그래?"

이놈의 꿈은 기가 막히게도 상황이 딱딱 들어맞는다. 뭐,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어쨌든 김지훈의 말에 조종실로 향해 전면의 화면에 비치는 중대 함선 201호를 바라보았다. 물고기처럼 유선형의 곡선을 그리고 있는 은빛의 함선은 연료를 모두 소진하고 전력만 남아있는지 이따금 불빛만 점등하며 멈춰있었다. 전력은 돌고 있지만 응답은 할 수 없는 상황. 필시 선내에 무슨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박필태 하사, 201호에 다시 한번 신호보내봐."

"예, 중대장님."

"그리고 김지훈 중사는 중대원들 수색 정찰 준비해서 출항대로 집결하라고 방송해."

"예! 중대장님!"

<아, 아,="" 행정반에서="" 알려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중대원들은="" 수색="" 정찰="" 준비해서="" 출항대="" 앞으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방송이 중대 함선에 울려 퍼지자마자 나노 슈트를 몸에 두른 중대원들이 행정반에 몰려와 일사불란하게 무기를 분출 받고 출동 준비를 시작한다. 채 5분이 되기 전에 모두 출항대 앞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빠릿빠릿하게 잘하네.'

"박필태 하사."

"예, 중대장님"

"응답 없지?"

"예! 현재까지 응답 없습니다!"

"그래, 함선 잘 지키고 있어라."

박필태 하사를 포함한 본부 소대는 중대 함선에 남아 함선을 지켜야했기 때문에 심심한 당부를 전하고 자리를 나섰다. 우주라니…. 기억을 받았어도 전립선에 힘이 들어가며 움찔대는 게 제법 긴장이 됐다. 창밖으로 펼쳐진 칠흑같은 어둠과 그 어둠을 수놓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은 아름다운 공포였다.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우주의 찬란함 속에 몰려오는 두려움과 허탈감을 마주하자 천문학자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말이 십분 이해되었다.

우주에서 시선을 돌려 몸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나노슈트의 안정감을 느끼며 심호흡하자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매끈하게 이어진 나노슈트를 매만지며 출항대로 향했다.

출항대에 도착하자 9대의 장갑 함선과 3대의 초전자포 함선 3대 앞에 중대원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전체 차렷! 중대장님께 대하여…!"

"생략! 자, 지금부터 명령 하달하겠다."

"예!"

"1소대는 201호에 도착하면 바로 비상 개폐문 개방하고 비상 개폐문 미개방 시 개폐문을 제거한다. 2소대, 3소대는 1소대가 개폐문을 개방함과 동시에 바로 진입 하고 1소대는 진입하는 2소대, 3소대를 후방에서 엄호한다. 진입한 2소대, 3소대의 내부 진입이 완료되면 1소대도 마저 진입 후 개폐문을 닫는다. 그 후엔 평소에 훈련하던 것처럼 나누어져 수색 개시한다. 알았나?"

"예!"

"그리고 포반은 포격 준비하고 밖에서 대기한다."

"예!"

나는 1소대 1분대의 장갑 함정인 101호에 탑승해 눈을 감았다. 도착할 때까지 재래식 호흡법이나 해볼까?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몸은 뇌전신공이라는 특이한 호흡법을 가지고 있었다.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자 기억에 따라 몸 안의 마나가 일정한 경로로 흐르며 뇌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렇게 뇌기로 변형된 마나는 속속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육체 내부에 존재하는 나노봇들의 작용이었다. 뇌전신공은 뇌기. 즉, 전기를 다루는 호흡법이고 나노슈트는 태양광 에너지와 전기 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뇌전신공을 운용해 전기가 생성되자 그 에너지를 날름 받아먹은 것이다.

나는 나노슈트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그 기능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나노슈트의 나노봇에는 2가지 종류가 있었다. 육체의 내부와 외부를 방어하는 방어봇, 그리고 육체의 손상을 복구하며 나노봇의 수리, 생산하는 수리봇이 존재한다. 외부 슈트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하고 내부 슈트는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으로부터 내부의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자체 자력을 발생하는 기능으로 함선 내에서 걷고 뛰는 걸 가능케 했다.

대강의 기능을 하나씩 살펴봤을 때 1소대 2분대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브라보,브라보, 여기는="" 알파.=""/>

"브라보 송신."

<전방의 201호="" 함선의="" 갑판에="" 이상징후="" 발견="" 이상.=""/>

"정확한 징후 말할 것 이상."

<함선의 중앙="" 하부="" 갑판이="" 크게="" 뚫려있음="" 이상.=""/>

"야, 화면 확대해봐."

"예, 알겠습니다."

장갑 함정 전면의 시야를 표시하는 화면이 확대되며 어느새 가까워진 201호의 모습을 더 확연히 표시했다.

201호의 외부 갑판은 무전대로 함선의 중앙 하부 갑판이 일정치 않은 모양으로 크게 뚫려있었고 회색인 갑판의 뚫려있는 부분 근처가 암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게 보였다.

'암녹색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몬스터가 하나 있었지만 자세한건 들어가 봐야 알 것이다.

"전 소대에 명령 하달한다. 이상징후가 있는 부분으로는 돌입하지 않으며 작전대로 1소대는 비상 개폐문을 연다. 이상."

"알파 확인, 이상."

<브라보 확인,="" 이상.=""/>

<찰리 확인,="" 이상.=""/>

<델타 확인,="" 이상.=""/>

<에코 확인….=""/>

<폭스…./>

차례로 울리는 무전을 끝으로 우리는 작전대로 함선 후미의 하단에 있는 비상 개폐문으로 향했다. 장갑 함정 9대가 모두 후미에 도달하자 1소대의 탐사함정 3대 중 102호에서 기계손이 뻗어 나와 비상 개폐문을 여는 작업을 진행하고 얼마 후 102호로부터 무전이 들려왔다.

<여기는 브라보,="" 여기는="" 브라보.="" 비상="" 개폐문="" 개방하겠다,="" 이상.=""/>

"알파 확인, 이상."

<찰리 확인,="" 이상.=""/>

<델타 확인,="" 이상.=""/>

<에코…./>

<.../>

전 탐사함정이 비상 개폐문의 옆으로 빠지자 비상 개폐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델타, 에코, 폭스, 골프, 호텔, 인디아가 먼저 투입하여 동선을 확보하고 알파, 브라보, 찰리가 그 뒤를 엄호하며 투입한다, 이상."

내 무전을 끝으로 장갑 함정 9대가 후미의 비상 개폐문을 통해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으로 진입한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암녹색 액체에 범벅이 돼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린 201호의 선원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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