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현실 (2)
* * *
"카, 칼 좀 내려놓고 말하세요!"
"에구머니나! 죄송해요!"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사람한테 칼을 들이대면 어떻게 해?"
급하게 칼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린 아주머니는 칼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5층 총각 맞죠? 저희 딸 좀 구해주세요!"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왜 이래! 저 사람이 무슨 이유로 우리 딸을 구해?"
아저씨가 내 팔을 붙잡은 아주머니의 손을 떼어놓자 아주머니가 갑자기 악을 쓰며 소리쳤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은 우리 소원이가 죽었으면 좋겠어? 어? 죽었으면 좋겠냐고!"
"아니, 그래서 우리가 내려온 거 아니야. 우리가 소원이 구하면 되는데 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냐고."
"저, 저 괴물들을 우리가 무슨 수로 당해?"
"어휴."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아주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끄집어내고 말했다.
"우리가 못 당하는 걸 저 사람은 당해낼 수 있어?"
"키, 키도 훤칠하니 듬직해 보이는구만, 뭘!"
"그래도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안 될 말이야."
나는 슬그머니 엘리베이터 바닥에 있는 식칼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밀어내고 다시 한번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힙니다.
"5, 5층 총각!
"에이, 이 사람이 그래도!"
말리는 아저씨 덕분에 엘리베이터의 문은 잘 닫혔다. 그러나 나는 곧장 5층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흐음…."
[고블린]
등급 : 1
인간형의 소형 몬스터. 작고 민첩하며 마비독을 자주 이용하고 무리를 이루는 특성을 지녔다.
'현실에서는 몬스터에 관한 정보도 나타나는 건가?'
가까이서 본 고블린들의 손에는 무기랄 것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8마리의 고블린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 마력은 6. 꿈속에서 랑스의 모습이었을 때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되는 수준. 거기다 육체적인 능력도 정신력도 모두 떨어진다.
몸 안에 흐르는 마나를 느껴본다. 검에 두르기에는 애매하고 육체를 강화하는 것도 전체적으로는 무리이고 한 부위 정도만 강화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모든 것이 완전하지 못한 상황.
문이 열립니다.
"초, 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익키익!
나는 공동현관의 문을 열었다.
키에엑!
몸의 자세를 낮게 숙인 채 양팔에 마나를 집중시킨다. 그대로 왼팔의 프라이팬을 들어 올려 왼쪽을 방어하는 한편. 오른손의 식칼을 역수로 쥐어 사선으로 내려찍는다.
단숨에 제일 오른쪽에 있던 고블린이 목이 꿰뚫려 눈을 뒤집는다. 칼을 그대로 뽑아내려는 순간.
"엥?"
얼빠진 소리를 내며 빛이 되어 사라지는 고블린을 쳐다봤다.
'뭐야 이게?'
키익!키이익!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고블린 3마리가 마구잡이로 달려들며 차 위에서 소란을 피우던 고블린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고.
일련의 상황 속에 떠오르는 창을 주시한다.
[튜토리얼 몬스터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잔여 능력치 5가 지급됩니다.]
'상태창'
나는 곧바로 상태창에서 모든 잔여 능력치를 마력에 투자하였다. 상태창의 마력 수치가 변화한 순간 놀랍게도 마치 처음부터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마나가 생겨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마나를 하체에 집중시키며 땅을 디뎠다.
쿵.
몸에 달라붙은 고블린 3마리가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왼팔을 잡아당겨 단단히 고정한 후 다시 한번 땅을 딛는다.
프라이팬으로 용병 검술의 기초 기술 실드 어택을 전개하자 중앙에 있는 고블린 하나가 허공을 날았고 그와 동시에 오른쪽 고블린의 가슴팍을 식칼로 찔렀다.
키에엑.
고블린이 빛으로 화해 사라지기도 전에 칼을 놓고 왼편에 있는 고블린의 뒤통수를 잡고 니킥을 날린다.
퍼걱.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의 고블린이 빛으로 화해 사라지고 바닥에 나뒹구는 식칼을 다시 집어 든다.
실드 어택에 나자빠진 고블린 1마리를 뒤로하고 달려오는 4마리의 고블린에게 마주 달려가며 점프한다.
"아뵤!"
오른발을 쭉 뻗으며 화려한 이단 옆차기를 선보이자 그대로 고블린 한 마리가 목이 꺾이며 절명한다.
'뭐가 이렇게 쉽지?'
고블린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나 약해져 있었다. 몬스터 중 최약체인 고블린의 강점인 재빠른 몸놀림을 이용한 마비독과 단검 등이 위협이 되었는데 그것들을 빼놓자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키익. 키익!
녀석들은 상대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우왁!"
이단옆차기를 한 빈틈이 너무 컸는지 고블린 1마리가 결국 내 왼쪽 옆구리를 깨물었다.
'아오, 침착했어야 했는데.'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한데 상대가 쉽다고 느껴 너무 방심했다.
나는 후회하며 식칼로 녀석의 목을 찌르고 남은 2마리는 경각심을 갖고 철저하게 식칼과 프라이팬을 사용하여 해치웠다.
마지막으로 실드 어택에 쓰러진 고블린의 마무리를 위해 몸을 돌리자 7층 아저씨가 골프채로 고블린을 내려찍고 있었다.
끼엑!
빛이 되어 흩어지는 고블린을 무심하게 바라보다 입을 삐죽 내밀었다.
흠, 뭔가 손속에 사정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동물도 죽여본 적이 없지만 꿈의 영향인지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생명체를 죽였는데도 거리낌 같은 게 전혀 없었다.
몬스터라서 그런 것일까.
그런 의문들을 품고 있는 와중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몬스터 처치2]
퀘스트 설명 : 포털 속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를 종류에 상관없이 처치할 것.
퀘스트 완료 조건 : 몬스터 처치 (6/10).
퀘스트 완료 보상 : 잔여 능력치 5.
새롭게 퀘스트가 갱신된 것이다. 그렇게 퀘스트를 읽고 있을 때 7층 부부가 다가와서 내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이고, 고마워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아까 보니까 물린 것 같던데…."
아, 맞네. 나 물렸었지?
급하게 상의를 들어 올리자 옆구리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아악!"
보니까 아파!
"괘, 괜찮아요, 총각?"
"아, 안 괜찮…."
"흐아앙!"
생색을 내려는데 7층 여자가 차 밖으로 나와 울음을 터뜨리자 7층 부부가 얼른 달려가 여자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우리 딸. 괜찮아? 많이 무서웠지. 엄마, 아빠 왔으니까 이제 괜찮아. 괜찮아."
"얼른 집에 들어가자."
짝짝짝짝.
"멋있다!"
"와아아!"
"멋있어요!"
갑자기 들리는 박수 소리와 함성에 뒤돌아보자 베란다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엄지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짜증이 났다.
'양아치들…. 아니지, 내가 호구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공동현관으로 걸어가 출입문을 열었다.
"저 일단 들어오시죠?"
부둥켜 안고 있던 세 사람은 얼른 손을 풀고 아파트 내부로 들어왔다.
7층 가족이 들어오는 걸 보며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립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데.
"으아앙!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7층 여자가 와락 껴안았다.
"헙!"
내가 깜짝 놀라 여자의 손을 풀며 몸을 돌리자 다시 한번 달려들어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린다.
"흐어엉!"
"우앗!"
나는 어색하게 7층 부부를 돌아보다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줬다.
"괜찮아요?"
"흐에엥. 고마워요, 딸꾹! 진짜. 나중에, 딸꾹! 나중에, 딸꾹!"
기묘한 광경에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해가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를 보자 왠지 모르게 꿈속에서 봤던 메리가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7층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는 손을 치우며 바로 사과했다.
"앗,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워낙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아서 잠시 현실감각이 떨어진 모양이다. 꿈속에서는 몰라도 여긴 현실이다. 이런 행동은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기에 다급하게 몸을 떨어뜨리자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괜찮아요!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나는 여자의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7층 아주머니를 보자 식은땀이 흘렀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돕고 사는 거죠, 뭐."
"그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고마워요, 총각! 그나저나 지원이 너 어디 다친 데 없어?"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엄마. 그리고 다쳐도 저분이 다치셨겠지. 오빠 다친 데 없으세요?"
여자가 아주머니를 나무라자 나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다. 된사람이구만.
그렇지만 이 이상 엮이고 싶진 않다. 이 사람들과 엮이면 내가 도움받을 일보다 도와줄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5층의 버튼을 누르자 몇 초 안 되어 엘리베이터가 멈추었고.
"저는 괜찮습니다. 다들 얼른 들어가셔서 안정을 좀 취하세요."
나는 얼른 빠져나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 오빠!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아, 괜찮습니다! 그럼 쉬세요~!"
띠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휴."
조금 다치긴 했지만 별 탈 없이 끝났구만. 나는 옷을 다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옆구리에 엉긴 피를 씻어냈다.
"크으…!"
상처에 물이 닿자 금방 쓰려온다. 엉긴 피가 씻겨 내려가자 상처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구멍 4개가 송송 뚫려있었다. 구멍이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피가 멈추질 않아서 휴지를 왕창 풀어 구멍 위에 얹어 놓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상태로 마나의 흐름에 집중해 옆구리의 끊어진 흐름을 다시 잇는다.
"끄아아악!"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집중을 잃지 않고 속으로 되뇌었다.
'살이 차오른다. 살이 차오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등허리에 맺힌 땀이 점차 식어갈 때쯤 고통이 멎었다.
"어우, 피곤해. 어우, 너무 피곤한데."
붉게 물든 휴지를 떼어내고 다시 한번 옆구리를 씻어내자 피는 멈추고 둥글게 패인 4개의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 좀 누워있어야겠다."
배고픈데 졸린 느낌에 터덜터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다.
"아이고…."
삭신이 쑤신다, 쑤셔.
딱 10분만 눈 감고 있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가위가 눌려버렸다.
"으으…."
불쾌한 기분과 함께 의식은 깨어있지만, 몸이 꿈적도 하지 않는 상태가 돼버린다. 어차피 10분만 눈을 감고 있을 생각이었으니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고 그냥 가위에 눌린 채로 쉬려 하는데 귓가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젠장할…!'
소음은 점차 괴랄하게 변질되더니 이윽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뜨자 눈앞이 요란한 회색의 환각으로 만영했다. 그것은 요란하게 꿈틀거렸는데 환청과 합해지면서 마치 수천 명의 사람이 뒤섞여 절규하는 것 같았다. 끔찍한 광경에 눈을 질끈 감고 가위에서 깨기 위해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는데 가위는 풀리지 않았고 잠시 후 삐 하는 이명과 함께 숨 막히는 고요가 찾아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다시 눈을 살며시 뜨자 세상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어느새 내 육체의 감각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의지만은 남아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냈을 때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에 하얗게 빛나는 점 하나가 찍히더니 그 점으로부터 눈이 멀 듯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중력이 존재치 않는 우주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