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입몽(?夢) 꿈속에 들어가다. (2)
* * *
'상태창.'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상태창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마을의 목책 앞에 서서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쳐다봤다. 다시 봐도 이질적이다.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사이에 떠오른 상태창은 이게 꿈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상태창]
이름 : 랑스(유현)
등급 : 2
능력치
체력: 25 근력: 24 민첩: 22 정신력: 20 마력: 32
능력 : 재래식 호흡법(7급), 마나 폭주(7급), 용병 검술(8급), 덫 설치(9급), 무두질(9급), 탈피(9급), 발골(9급)
상태창을 열자 이름이 바뀌어있었고 괄호 속에 본래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능력치가 모두 바뀌었고 잠재 능력 항목이 사라지고 새롭게 능력이라는 항목이 생겨났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인 능력들부터 차례로 보자 간단한 설명이 떠올랐다.
* 재래식 호흡법 :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고전적인 마나 호흡법.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투박한 마나 운용법이 특징이다. 보편적인 만큼 효율은 높지 않은 편.
* 마나 폭주 : 전신에 퍼져있는 마나를 폭주시켜 일시적으로 육체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능력. 마나를 인위적으로 폭주시키기 때문에 폭주를 멈추고 나서 마나 고갈로 인한 탈진 등의 현상을 동반할 수 있으며 빠른 체력소모가 특징. 과도한 사용 시 육체가 붕괴할 수 있다.
* 용병 검술 : 용병 길드에서 용병들에게 기본적으로 가르쳐주는 기본 검술이다. 실전 위주의 검술이며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 덫 설치 : 덫을 설치하는 기술이다.
* 무두질 : 동물이나 몬스터의 가죽을 사용하기 편리한 상태로 만드는 기술이다.
* 탈피 : 가죽을 벗겨내는 기술이다.
* 발골 : 뼈를 발라내는 기술이다.
'옆에 급수는 뭐지?'
옆에 있는 급수를 노려봐도 딱히 더 나오는 건 없었다. 단지 해당하는 능력을 생각하면 그 능력에 관한 정보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재래식 호흡법을 떠올리며 주변을 인식하자 자연스레 대기 중의 마나가 느껴지며 호흡을 통해 마나가 쌓이는 게 느껴졌다. 속도는 매우 더딘 것으로 느껴졌는데 특이하게도 가슴팍에서 진하다 못해 진득하다고 할만한 마나가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뭐지?"
내가 가슴팍을 더듬자 목걸이에 매달린 푸른 돌덩이 하나가 손에 잡혔다. 이게 뭐지?
푸른 돌덩이를 보는 순간 또 다른 기억들이 떠올랐다.
'음, 그렇게 된 거였군.'
그렇게 내가 돌덩이를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랑스!"
마을의 목책 앞에 서 있던 내게 한 사람이 뛰어왔다. 갈색 머리칼을 길게 딴 여자는 나를 올려다보며 밝은 표정을 짓다가 내 몸 전체를 훑더니 급격히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아마 내 몸에 난 생채기들 때문인 듯싶었다. 나는 나를 걱정하는 여자의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그녀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메리?"
메리는 자경단장 아던의 딸이자, 내게는 소꿉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메리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메리는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어어, 그러지 마. 난 괜찮아."
기억을 더듬자 걱정이 심히 많은 성격이란 게 떠올라 곧장 손사래를 쳤다.
"정말?"
"그래, 이것 보라고."
나는 잠시 바닥에 내려놨던 고블린 사체 두 구를 다시 둘러메며 씩 웃었다. 그리곤 그대로 마을의 중앙 공터로 향했다.
"왜 이렇게 다쳤어?"
"그냥,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중앙 공터에 사체를 내려놓고는 우물가로 향했다. 그곳에서 입고 있던 장비를 벗어 한편에 놓고 물을 길어 올려 붕대를 감은 부위를 피해 고블린의 피가 묻은 얼굴이나 머리 등을 대충 물로 씻어내었다.
"어이, 랑스!"
어느 정도 씻었을 때쯤 자경단원 중 한 명인 한스가 우물가로 다가왔다.
"예?"
"예? 는 무슨. 괜찮은 거냐?"
"아, 예.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죄송은 옆에 있는 메리한테나 하라고. 크큭!"
한스의 능글맞은 아저씨 웃음에 옆을 슬쩍 보자 얼굴을 붉힌 채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메리가 보였다.
'귀엽네.'
이런 반응은 나도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속마음과 달리 급하게 생각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근데 요즘 들어 고블린의 수가 많이 늘어난 거 같지 않습니까? 정찰병들이 그 정도 숫자라니."
"아, 맞아. 그 건 때문에 오늘 자경단 회의 소집이 있으니까 있다가 저녁 먹고 단장님 집에서 모이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물기를 탈탈 털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등을 무언가 콕콕 찔렀다.
"잉?"
"랑스. 오늘 저녁 같이 먹자."
"그래, 좋아. 그럼 있다 보자."
"응!"
후다닥 뛰어가는 메리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곧장 기억을 더듬어 마을 내에 있는 내 집으로 향했다.
'정리해야 될 게 많아.'
끼익.
목재로 지어진 집의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나를 반겼다.
"큼…!"
목재로 지어져서 그런가, 냄새가 좀 그렇네. 습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냄새는 뒤로한 채 투박하지만, 언뜻 그럴싸해 보이는 목제 침대가 보여 조심스레 몸을 뉘었다. 점프해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왜인지 그러면 먼지가 많이 날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재 위에 매트리스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 두꺼운 요가 하나 깔려있었고 그 위로 패드의 역할을 하는 얇은 이불 하나와 적당한 두께의 덮는 이불까지 구상은 제법 갖춰줘 있어 쿠션감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대로 얇은 이불을 덮자 좋지 못한 냄새가 반겼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그렇게 누운 채 속으로 작게 뇌 아렸다.
'입몽(?夢).'
[이미 꿈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출몽(出夢) 조건이 활성화됩니다. 퀘스트 완료, 또는 사망.]
[꿈속의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메인 홉 고블린 처치.]
퀘스트 설명 : 랑스는 고블린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고 고블린에 대한 분노로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분노의 중심인 고블린들의 수장 홉 고블린을 처치하여 오랜 숙원을 해소하라.
퀘스트 완료 조건 : 홉 고블린을 처치(0/1).
퀘스트 완료 보상 : 출몽, 랑스의 소지품 중 택 1.
[서브 고블린 부락 섬멸.]
퀘스트 설명 : 최근 아던 마을 근처의 고블린 개체 수가 급증하여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포화상태에 이른 고블린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황. 고블린을 부락을 섬멸하여 개체 수를 줄여라.
퀘스트 완료 조건 : 고블린을 처치(16/200).
퀘스트 완료 보상 : 몽환석 조각 1개.
역시 입몽이 키워드였던 건가.
입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꿈에서 깨는 방법들이 생겨났다. 하나는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수행해 완료하는 것. 하나는 사망. 후자의 경우는 오감이 모두 생생히 느껴지는 처지에선 도저히 시도하기가 힘들 것 같고 결론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쪽으로 결론을 내리니 또 골치가 아팠다.
"흐음…."
기억 속의 홉 고블린은 고블린 무리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야비한 습성으로 인해 자신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절대 앞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홉 고블린 단일 개체가 약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인간의 머리를 잡으면 그대로 척추까지 뽑아버린다는 괴력의 대명사. 그 오우거와 동급 선상에서 비교되는 고블린 계의 돌연변이가 바로 홉 고블린인 것이다. 물론 순수한 육체적 능력은 오우거에 비해 떨어진다고 알려졌지만 뛰어난 지능과 무리를 이루는 특성상 오우거 이상으로 사냥하기 힘들다고 한다. 애초에 녀석을 잡는 게 쉬웠다면 이미 인간 마을 주변의 고블린들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서브로 처치해야 하는 200마리의 고블린은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자경단원들이 처치한 수까지도 정산이 되는 것 같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숲에 불을 질러야 하나?'
뭔가 현대의 지식을 동원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고 싶은데 가진바 지식이 미천해서 그런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숲에 불 지르는 정도가 다였다. 일단 방법을 나를 아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몇 안 되는 지식 중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떠오른 터라.
'재래식 호흡법.'
눈을 감자 주변의 마나가 느껴지며 호흡법에 따라 마나가 흘러들어와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재래식 호흡법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마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외부의 마나를 느끼게 되면 외부의 마나가 호흡을 통해 이동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 즉, 들숨을 통해 들어오고 날숨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다음이 들숨을 통해 들어온 마나를 잡아놓고 날숨을 뱉을 때 마나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들숨과 함께 유입된 마나가 몸에 체화될 때까지 잡아두어야 하며 마나의 체화가 빠를수록, 날숨을 뱉을 때 빠져나가는 마나가 적을수록 호흡법이 숙련된 것이다. 보통 숙련되기에는 물리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물리적인 방법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건 없지만.
하여튼 그 물리적인 방법이 무엇이냐면 들숨 이후에 숨을 참는 것을 말한다. 들숨으로 들어온 숨은 최대한 참고 날숨으로 숨을 내뱉을 때는 최대한 천천히 뱉어 빠져나가는 마나를 최대한 붙들어 놓는 것인데 처음에는 이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시작해서 숙련될수록 의식적으로 빠져나가는 마나가 적어지도록 노력하는 호흡법이다. 처음에는 마나가 체화되어 쌓이는 속도. 즉, 체적 되는 속도가 느리므로 호흡을 멈춰 마나를 붙들어 놓은 채 체적하고 체적 되지 못한 마나는 숨을 천천히 내뱉어 마나가 빠져나가는 속도를 낮춰 더 쉽게 마나를 붙드는 간단한 묘리인 것이다.
이렇듯 재래식 호흡법은 예전부터 널리 알려진 간단하고 단순한 호흡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의 단점이 꽤 많다.
첫째로 당연한 말이지만 마나를 느끼지 못하면 익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둘째로 마나 회로라던가 운용법이라 할 게 따로 없이 무식하게 육체 전체에 마나를 퍼뜨려 쌓을 뿐이라 마나를 실질적으로 사용하기까지의 기간이 오래 걸린다.
셋째로 두 번째와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마나 체적속도가 느리므로 육체 전체에 마나를 쌓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결국 비효율적이란 이야기다.
특히, 마나를 갓 느끼게 된 초심자가 해당 호흡법을 수련할 때 마나가 체화되어 쌓이기 전에 집중이 풀려 실타래가 풀리듯 마나가 술술 빠져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시간 대비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호흡법이다. 그래서 마나를 느낄 줄 알게 된 자들은 처음에는 재래식 호흡법을 익혀도 보지만 이게 쌓이고 있는 건지 뭔지 하다가 돈을 모아 다른 호흡법을 구매해 익히거나 기사 학교, 또는 마법 학교에 입학하여 배운다고 한다. 단, 다른 호흡법이라고 해봐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재래식 호흡법과 비교해 조금 나은 정도지 제대로 된 마나 호흡법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제대로 된 호흡법을 혼자 책을 읽으며 독학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고.
더군다나 학교에서는 마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더불어 다른 교양 및 마법, 검술 등에 대한 교육과 함께 숙식을 제공하며 심지어 품위유지비라고 큰돈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품위를 유지할 만큼의 돈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다들 학교에 가는 게 답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군에 들어가게 되며 군에 들어가게 되면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어 3년간은 몬스터들과 치고받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고블린같이 약한 녀석들도 있겠지만 최전선에는 오우거 이상의 괴물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죽음과 항상 대면한 채로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거기서 살아남게 되면 이후에 공로를 인정받아 영지에 캐스팅되어 귀족을 지키는 마법사나 기사가 되는 것이다.
사담이 길었지만, 랑스, 아니 나라고 해야겠다. 지금 내 숙련도는 어쩐 일인지 이런 비효율적인 호흡법을 익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숙련된 상태였다. 마나를 의식한 채로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체적이 되는 경지에 올라 재래식 호흡법으로도 나름의 효율을 뽑아내고 있었지만 뭘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절대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기에 지금 이 몸을 관조함으로써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비상식적이었다. 상태창에서 모든 능력치 중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능력치. 마력. 재래식 호흡법의 숙련 정도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수치는 전부 하나로 설명이 되었다.
나는 가슴팍에 달린 푸른 돌덩이. 블루스톤을 손에 쥐었다. 애초에 이 몸은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는 무재능의 몸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강가에서 발견한 블루스톤을 들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나가 육체로 혼입되며 마나에 대한 감이 트인 것 같았다. 지금도 눈을 감고 마나를 느끼면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마나보다 블루스톤에서 육체로 스며드는 마나량이 훨씬 많았고 그 농도 또한 짙었다.
나는 재래식 호흡법은 그만두고 몸을 일으켜 침대맡에 앉았다. 그리고 오른쪽 검지를 펴서 몸속의 마나를 검지로 흘려보냈다. 마나를 검지로 흘려보내자 곧이어 검지를 감싸는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며 나타났다. 천천히 마나를 내보내니 약간의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불에 살며시 갖다 대자 이불이 펄럭이며 흔들렸다. 마나가 계속해서 밖으로 뿜어지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현상을 보다가 이번에는 마나를 검지에 두른다는 생각으로 마나를 뽑아내 검지에 고정했다. 그 상태로 이불에 가져다 대자 이번에는 이불이 펄럭이지도 밀려나지도 않았다. 다만 손끝이 닿기 전에 검지에 두른 마나의 두께만큼 물리력이 행사되었다. 여기서 마나를 좀 더 빼내어 그 모양을 날카롭게 하자 이불이 손가락 크기만큼 찢어졌다.
'흠….'
고블린을 상대할 때는 날카로운 모양이긴 했지만 흥분해서 그런지 마나가 계속 뿜어져 나와 그 소모가 극심한 느낌이었는데 마나를 뿜어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마나의 형태를 고정한다는 느낌으로 붙잡아두니 마나의 소모가 상당히 줄어든 것 같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다시 누웠다. 이번에는 몸속의 마나를 느껴본다. 체적 된 마나가 몸 곳곳에 정처 없이 쌓여있는 게 느껴지고 그중에 특히 마나가 많이 느껴지는 부위는 심장, 그리고 상처 부위였다. 심장에 모여있는 마나는 심장이 펌프질할 때마다 몸 곳곳으로 퍼졌다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순환한다. 이렇게 보면 피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별 도움이 되는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상처 부위 쪽에 뭉친 마나로 시선을 돌렸다. 마비 독 때문인가 싶었지만 마비 독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마나는 육체를 흐르던 중 상처 부위에 다다르고 상처 부위는 마치 길이 끊어진 것처럼 마나의 이동을 막고 있었고 자연히 그곳에 마나가 뭉치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쌓이면 우회해서 돌아가는 마나가 있는 반면 조금씩이지만 상처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마나도 있었고 그러한 현상을 관찰하던 도중 나는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어 몸을 일으켜 침대맡에 앉았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마나를 움직여보았다.
"크윽!"
마나를 움직이자마자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신음. 나는 결과를 보기 위해 오른팔의 붕대를 풀어보았으나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너무 짧게 했나? 나는 좀 더 길게 실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를 바로 하고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우우."
간다!
"끄흡! 흡…! 허어억!!"
실험은 상처 때문에 끊어진 길을 인위적으로 마나를 움직여 연결하는 것이었다. 상처 때문에 마나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니 그걸 인위적으로 연결해 흐르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해봤는데 상처 부위에 마나를 인위적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고통은 계속해서 수반되었고 그렇게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길 얼마간. 서서히 줄어드는 통증과 함께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눈을 떴다.
"서, 성공이다!"
피로감이 상당했지만 꽤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마나를 인위적으로 흐르게 한 오른팔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었고 상처 부위에 뭉쳐있던 마나가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것이다. 물론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라 맨 위의 피부는 여전히 침에 뚫린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밑으로 깊게 파였던 구멍이 메꾸어진 것이다.
나는 고통으로 인한 피로감을 뒤로한 채 붕대를 모두 풀어 재꼈다.
"후우!후우!"
매도 빨리 맞는게 나은 법이라 그랬지.바로 간다!
"끄아아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