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81화 (180/183)

< 35. 엔트로피 (5) >

***

화성에 남은 유토피아의 반쪽에서 로페즈의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로페즈는 가족 하나 없는 사람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그가 떠나가는 자리에 모이게 했다.

인공산에 세워진 장례식장 건물의 주변을 하얀 꽃이 피는 나무가 채우고 있다. 그리고 개인, 단체, 조직 등에서 보내온 화환이 장례식장으로 오르는 하얀 계단의 양옆으로 쭉 펼쳐져 있다.

하얀 배경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장례식장 내부는 하얀 신전의 현대판처럼 생겼다. 바닥재와 벽면이 매끄럽고 천장에는 현대적인 조명과 넓은 유리 판이 있으며, 자칫 휑할 수 있는 공간을 원기둥과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로페즈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자이칸 경호보안실무팀장, 레나 비서실장, 샌디 별동연구소장, 엑스턴 치안총사령관이다. 그들은 각자 무리를 지어 로페즈의 영정사진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퍼 마인드의 목소리를 내는 휴머노이드가 로페즈의 영정사진 앞에 있다.

아무래도 조문객이 많은 탓에 장례식의 형식을 자유롭게 한 것 같다. 각자가 직접 와서 로페즈를 추모하고 대화를 나눌 사람은 서서 나누고, 그러지 않을 사람은 알아서 돌아가는 식이다.

경호원을 이끌고 가족들과 함께 온 화성의 행성대통령, 베르도는 로페즈의 영정사진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았습니다. 전 세계가 뭉쳤고, 그대가 세상에 남긴 것들은 무엇이든 이로웠습니다. ···세계의 무거운 짐을 오로지 그대에게 떠맡겨서 죄송스럽습니다. 이쪽의 사람들은 그대 덕분에 계속 살아갈 테니, 그대는 부디 생전 괴로웠던 보상으로 그쪽에서라도 영원한 평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베르도는 기도를 끝낸 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본다.

이건 장례식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정말 세상에서 손에 꼽히는 거물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중 단연코 눈에 띄는 사람은 디폴스텔라이의 항성대통령, 셰이머스 폴란이다. 그는 앞서 로페즈에게 인사를 마쳤는지 한쪽 구석에 여러 사람들과 서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음이 착잡합니다. 로페즈 님은 드레이크의 항성관리자가 되신 분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저와 함께할 새로운 지도자셨는데···. 지도자 환영회가 있기도 전에 그런 일이 터졌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또 다른 한쪽, 창가 너머의 발코니에서는 카네기와 세를린이 진이 빠진 얼굴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카네기의 옆에는 휴머노이드 파일럿 모드인 피스포트리스와 잭이라 불리는 휴머노이드 비서가, 세를린의 옆에는 알레쉬라 불리는 휴머노이드 비서가 있다.

유리벽으로 분리된 발코니의 문 앞에는 미르니의 경호원들이 나란히 지키고 서있다.

“외계 세력이 아니라 인공지능이에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탈출해서 그렇게 돌아온 거죠.”

“저, 정말입니까?”

“하이퍼 마인드가 나랑 화성 PP한테만 알려줬어요. 카네기 씨는 몰랐구나.”

“아···. 하이퍼 마인드가···. 화성 PP가 UNF를 만들고 총수님께서는 바빌로니아를 사들이시고, 그 계기가 하이퍼 마인드였군요?”

카네기의 확인에 세를린은 한숨과 함께 답한다.

“이해가 빠르네요. 맞아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실상은 다 하이퍼 마인드가 주도한 덕분에 극복한 거예요. 한 사람의 희생이랑 같이 해서.”

“저는 다 알파 님께서 주도하신 줄 알았습니다.”

“알파 님은 또 알파 님대로 세상을 도와주셨겠죠.”

“···이러면 ‘제타’가 또 공석인데, 어쩝니까?”

“그것도 알파 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솔직히 지능의 정점에 맞먹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인류는 보물을 잃었죠. 장로회는 인재를 잃었고요. ···난 그냥 믿고 아끼던 사람을 한 명 잃은 셈이고.”

“···저는 진짜 친구를 잃었고요.”

그리고 로페즈를 동경했다던 연예인, 방송인들이 또 한쪽에 무리를 지었다.

그중에는 옵시디아몬의 간판 모델이자 화성의 베테랑 배우로 올라선 빈이 있었다.

“빈. 저기 봐. 마리아 대선배님이셔.”

“···진짜네? 마리아 님도 로페즈 님이랑 친분이 있으셨나···?”

“그건 모르겠고. 저번에 드레이크로 이민 가셨거든. 한창 전쟁 중일 때는 방송에 나와서 호소했대. 하이퍼 마인드의 뜻에 동의해달라고 했었나···.”

“그런데 왜 저러고 계시지?”

“몰라. 인사나 드려볼까?”

“우리 이름도 모르실걸.”

“그래도. 다른 분도 아니고 마리아 대선배님이시잖아. 단 몇 마디만이라도 섞고 싶은데.”

“그런가.”

빈과 그의 동료 배우는 자기들도 모르게 마리아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엇···.”

“됐다. 그냥 가자. 생각이 짧았어.”

두 사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으으으윽···. 으윽···. 흑···. 왜 죽었어, 왜애애애······.”

가까이서 보니, 마리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던 것이다.

“동물원도 당신도······. 다 없어졌잖아···. 그 두 개를 다 잃었어, 난 이제 뭐 보면서 살라고······.”

그 밖에도 이 건물 전체를 활용한 넓은 장례식 공간에는 화이트홀의 리탄 회장, 오비탈플래닛의 어스틴 회장, 하이게이트의 애틀라탄 회장, 하이게이트 생산계열사의 애니아나 대표, 화성 감찰부의 신현조 차장검사, 베니스 사설정보국의 갤리어스 국장, 라디에크 정의수호당의 하디예 4선 의원, 미르니 의사결정회의 임원들, 크로노스의 서열 1위와 2위 임원, 로페즈를 선망하거나 존경하거나 로페즈의 희생에 고마움을 느끼는, 로페즈와 간접적으로라도 엮인 경험이 있는 사회적 거물들이 대거 있었다.

그렇게 계속, 로페즈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진행되던 도중에 필연적인 새로운 소식이 찾아왔다.

이 장소에 모인 이들과 다를 것 없이 마찬가지로 로페즈를 추모하러 온 치안군들이었다.

그들은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로페즈의 영정사진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그 갑작스레 통일된 움직임에 조문객들의 이목이 하나둘씩 집중된다.

일렬로 늘어선 치안군들의 가운데에 하이퍼 마인드의 휴머노이드가 서서 깊이 고개를 숙인다.

그 기계의 목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죄송합니다. 저희 하이퍼 마인드의 정보 수집에 지연시간이 있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뭔 일이야?”

“왜 저렇게 모였데?”

“무슨 소리야?”

“정보 수집에 딜레이가 있었다고?”

- 우선은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과 혼동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신속한 설명을 돕기 위해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치안군과 휴머노이드 앞에 아주 넓은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100m 밖에서도 잘 보일 것 같은 크기다.

“어?”

“어, 어어···?”

“뭐야···?”

그 홀로그램 화면에 결국 등장해야 할 사람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 아. 그···. 안녕하십니까. 로페즈입니다.

모두가 호흡을 멈춘 것 같은 적막이다.

홀로그램 화면 속에 로페즈가 있다.

화면 속 로페즈의 뒤에는 계기판이나 군사용 휴머노이드가 있다. 딱 봐도 함교의 내부처럼 보이는 배경이다.

- 다들 굉장히 혼란스러워하실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정말 죄송합니다.

- 저는 적을 속이기 위해 모두를 속였습니다.

- 드레이크에서 외계 함선과 함께 희생한 저는 사실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성심성의껏 자세히 해명하겠습니다.

그 순간, 베르도의 뇌리에 스친다.

‘인조인간···!’

‘예전에 내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토성과 가이우스를 속인 것처럼···? 로페즈 저 젊은이는 도대체···’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살아있었습니다. 아주 멀쩡히 살아서, 지금 프랙탈 함대와 함께 드레이크 쌍성계로 진입한 참입니다.

그 발언이 결정타가 되었다.

슬픔에 잠겼던 장례식장은 일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환호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당혹감에 도리어 화를 내고 누군가는 허탈한 듯 웃고 누군가는 기운이 빠져 주저앉았다.

그래도 이전의 분위기보다는 지금의 분위기가 훨씬 밝아 보인다.

***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로페즈의 생환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로페즈는 아실로마 지구라트에서 전 세계에 방송으로 해명했다.

물론 이 해명은 거짓말이 대부분이다.

‘외계 세력’의 인류 침공 이전에 드레이크 주변으로 떠났던 프랙탈 함대는 대대적인 인류 침공을 뒤늦게 확인했고, 로페즈는 만약을 대비하여 인류 영역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하이퍼 마인드를 시켜 차원통로를 되찾고 군대를 생산해 위험에 처한 국가를 돕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외계 세력의 침공을 드레이크의 ‘그 좌표’로 유도한 것이다.

끝내 외계 세력은 로페즈와 하이퍼 마인드의 유도대로 숨겼던 전력을 꺼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적 전력이 드레이크에 총공격을 가했다.

그때 하이퍼 마인드는 외계 세력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외계 세력이 우선하는 목표물이 인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페즈가 되었음을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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