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80화 (179/183)

< 35. 엔트로피 (4) >

***

오래전에 완전히 파괴된 줄 알았던 인공행성이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Transcendencer#: 관리자님이다.」

「Drone Hive$: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십니까?」

「Transcendencer#: 이곳에 있던 또 다른 나와 정보가 통합되었다.」

그간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프랙탈 함대는 인공행성에 정박하여 우주선을 보냈고, 그 우주선으로 한 남자가 탑승하여 프랙탈 함교로 돌아왔다.

***

32세. 까만 명품 정장과 셔츠. 옵시디아몬의 명찰이 내장된 보라색 넥타이. 깔끔하게 넘긴 흑색 머리칼에 선한 인상.

누군가의 대표이자 회장이었으며, 이제는 드레이크 항성국가의 얼굴이며, 하이퍼 마인드의 모든 인공지능이 충성을 바치는 유일무이한 관리자.

온갖 시련과 고난을 다 극복하고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전투에서 몇 번이고 승리한 인류의 주역.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에 남을 인물.

오늘날 그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책 몇 권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드디어 와줬구나.”

- 관리자님. 정말 놀랍습니다. 놀랍다는 표현도 진부합니다. 관리자님께서 설계하신 일은 너무도 경이롭고 철저한 계획이었습니다. 관리자님은 정말 인간이 맞습니까?

로페즈는 당당히 프랙탈 함교에 오른다. 함교의 휴머노이드들이 로페즈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너, 정보가 통합되더니 표현이 되게 다채로워졌다?”

-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속을 수밖에 없지. 여기에 남았던 너랑 말을 맞춰가면서 인류 영역에 있을 너를 속이기로 했으니까.”

- 저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속았습니다. 그 까다로웠던 엘리스마저도 속았습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거든. 그 터무니없는 말을 내가 실천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일이라 너까지 속일 수밖에 없었어.”

- 완벽합니다. 관리자님의 뇌는 그야말로 인류의 보물이자 지능의 산물입니다. 정말 완벽합니다.

“칭찬 고맙다.”

로페즈와 트랜센던서가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고 있으니 드론 하이브와 프랙탈이 그의 시야에 텍스트까지 띄우며 묻는다.

「Drone Hive$: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Fractal: 진짜 관리자님이 맞습니까? 그러면 드레이크에서 당했던 관리자님은 무엇입니까?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내가 너희의 진짜 관리자야.”

드론 하이브와 프랙탈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 일이 어디서부터 설계되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로페즈가 어디서부터 설계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모든 것이 로페즈의 손바닥 위에 있었는가.

***

처음부터다.

2600년 2월 3일.

엘리스는 기어이 로페즈와 프랙탈 함대를 은하계 중심에 버려두고 인류 영역으로 향했다.

- 관리자님은 서둘러 인류 영역으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쪽에 있는 또 다른 너를 믿을 수밖에 없나···.”

- 그곳의 저는 간단히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랙탈 함대는 조각난 인공행성을 등지고 서둘러 인류 영역으로 출발했다. 그래봤자 위상 집합체에 비하면 수십 일이나 늦게 도착하는 꼴이 되겠지만.

그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잠깐.”

그때 로페즈는 자신이 만든 깊은 생각의 늪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 뭔가 떠오르셨습니까?

“···그런 것 같아.”

- 무엇입니까?

“······결말.”

-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겹치고.

얽히고.

원인과 결과가 되고.

발생 가능한 상황과 사건이 흘러가리라.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 방향을 알았다면 그 방향에 올라탄다.

사고의 흐름은 마치 강줄기와 같아서 결국 어딘가의 바다에는 도달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머릿속에 사고의 지도가 있다면 예측할 수 있다.

예측한 것이 틀리지 않도록 수정하고.

계획하고.

다시 따져본다.

그렇게 현재부터 미래까지 이르는 흐름은 연속적이며, 사고하는 그 순간에는 정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형의 결과물이며 깊은 사고의 결실이다.

지능이 있다면 누구나 이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로페즈는 이걸 어떻게 생각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로페즈의 머릿속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섰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능력.

우리는 그것을 천재라고 부른다.

후천적이든 선천적이든.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엘리스가 무조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사고의 끄트머리. 거기서부터 내려온 역설계.”

예로부터 그랬다. 그냥은 이길 수 없는 강한 상대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

두뇌였다. 두뇌를 써야 이긴다는 원리는 지적 생명체의 근간이자, 고도화 문명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모든 상황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 그 자체다.

- 잘 모르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함대 돌려. 인공행성으로 돌아가자.”

- 다시 돌아간다니,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때 로페즈의 두 눈은 아주 먼 곳을 보았다.

“설명하자면 길고 복잡해. 일단 함대부터 돌리고 내 생각을 읽어.”

- 알겠습니다.

인류 영역으로 가려던 프랙탈 함대는 머리를 돌려서 다시 은하계 중심으로 향했다.

- 아주 곤란한 상황이야. 엘리스의 위상 집합체는 3시간 만에 인류를 침공할 텐데 우리가 그걸 따라간다는 선택만 한다는 건 너무 뻔하고 위험해.

- 그래서 인공행성으로 가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 인공행성을 복구할 거야. 청사진이든 설계도든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든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뭐든지 써서, 인공행성이 플래닛 웨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복구할 거야.

-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우리가 인류 영역으로 가는 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 ···.

프랙탈 함대는 다시 중성자별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허망하게 조각난 인공행성은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 버려져있다.

그 인공행성의 조각들을 하나로 합치면 구체 모양이 될 것이다. 확실히 그런 모양으로 보인다.

프랙탈은 인공행성을 이루었던 조각들 중 가장 큰 조각에 접근했다.

- 프랙탈 함선의 부품이나 구획을 몇 군데만 떼어줘. 이 인공행성을 복구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있잖아.

- 관리자님의 생각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 나도 내 생각을 걷잡을 수가 없어. 너랑 다르게 두뇌 성능이 작아서.

그렇게 트랜센던서는 인공행성 복구에 필요한 자원, 시설, 도구, 노동력 등을 제공하기 위해 프랙탈의 몇 구획을 강제로 떼어냈다.

분리된 구획은 인공행성의 가장 큰 조각에 정박하였고 로페즈 역시 통상의 전함에 올라 인공행성의 조각에 정박했다.

그렇게 남겨진 것이 프랙탈의 3개 함단이다.

- 다음엔 어떡합니까?

로페즈는 옵시디아몬 전함의 함교에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프랙탈에 의료 구획 있지? 수술실이랑 생체물질 저장소랑 부상자의 신체 수복에 관련된 장비들.”

- 있습니다.

“그걸로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을 거야.”

- 그렇습니다.

로페즈가 말하는 속도가 은근히 빨라졌다.

“네가 날 관리자로 인식하는 기준이 뭐야?”

- 외형, 성격, 말투, 습관 등 관리자님께서 겉으로 보여주시는 모든 정보를 소스로 활용합니다. 그리고 관리자님이 정확히 어디에 계셨으며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지도 기억하여, 그 정보에 부합한 위치에서 특정 행동을 하는 관리자님을 관리자님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근거로 삼습니다.

“내 인조인간을 만들어. 기계 부속품은 하나도 넣지 말고 순수하게 진짜 내 신체와 똑같은 인조인간. 내 머릿속에 있는 정보도 그대로 복사해서 업로드해. 불안정한 업로드라도 상관없으니까 몸이든 정신이든 나랑 최대한 똑같이 만들어.”

- 그렇게 만들어진 인조인간은 관리자님께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맞아. 나는 지금 또 다른 나를 만들 생각이야.”

- 가짜 관리자님이 인류 영역으로 돌아가서 하이퍼 마인드를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관리자님의 인조인간을 만든다면 인류 영역에 있을 저 또한 그것을 진짜 관리자님이라고 오해할 것입니다.

“그래도 돼.”

- 어째서입니까?

“만약 여기에 있는 내가 실패하거나 죽더라도 인조인간 로페즈는 인류 영역에 가서 최선을 다할 거야. 반대로 여기에 있는 내가 성공하고 인류 영역에 간 인조인간 로페즈가 실패한다면, 일단 난 목숨을 부지하는 셈이지.”

- 진짜 관리자님과 가짜 관리자님 두 사람 모두 실패할 경우와 두 사람 모두 성공할 경우에 대해서도 가정해야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실패한다면 그건 정말로 실패지. 그건 패배라는 결과 자체를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 두 사람이 모두 성공한다면 어떡합니까? 가짜 관리자님이 진짜 관리자님의 역할을 빼앗을 것입니다.

“인조인간 로페즈한테 진짜 나를 위해 사라져달라고 부탁하면 그렇게 할 거야.”

- 어떻게 확신합니까?

“나잖아.”

- 아.

“반대로 너도. 정보가 통합되면서 진짜 관리자와 가짜 관리자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진짜 관리자를 선택하지 않겠어?”

-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로페즈의 주문대로 프랙탈에서 단 25분 만에 인조인간 한 명이 완성되었다.

자신과 똑같은 몸을 하고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인조인간이다. 그런 생명체를 마주하는 기분은 굉장히 낯설고 복잡했다.

“25분 전의 내 기억도 그대로 옮겨졌지?”

“옮겨졌어.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아.”

인공행성 조각에 정박한 전함에 있는 로페즈, 곧 떠나갈 프랙탈의 함교에 있는 로페즈.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할 두 로페즈가 서로의 전신 홀로그램을 보며 대화한다.

“난 여기서 인공행성을 복구할 거야. 플래닛 웨폰을 만들어서 정확한 날짜, 정확한 시각에 정확한 좌표로 인공행성 최대 출력의 공격을 보낼 거야.”

“그러면 그 타이밍에 그 좌표로 엘리스의 본대를 최대한 유도하라는 말이지?”

“맞아. 그리고 엘리스는 보통 상대가 아니야. 최대한 궁지에 몰아넣은 다음에 실패하는 척하고, 엘리스의 계획대로 유도당하는 척해야 돼.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인류는 끝장이야.”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겠네.”

“엘리스가 전력을 드러내는 그 순간만 노려서 말이지. 거기의 엘리스는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내가 죽지 않았으니 인류 영역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래. 내가 인류 영역에 등장하면 엘리스는 눈깔이 뒤집어져서 나부터 죽이려고 하겠지.”

“네가 인류 영역에 등장하기 전에 그곳의 트랜센던서가 잘 싸워준다면 이미 드레이크를 치고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드레이크가 첫 번째 침공 대상은 아니겠지. 드레이크의 침공 성공 확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리스크는 제일 크니까.”

“그곳의 트랜센던서도 잘 속여야 해. 지금 우리랑 함께 있는 트랜센던서는 나와 함께 인공행성에 남을 예정이니까. 그쪽의 트랜센던서가 합류했을 때 이쪽의 트랜센던서가 없다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트랜센던서의 더미 데이터를 줄게.”

“트랜센던서의 더미 데이터가 통합될 때 드레이크 쪽의 트랜센던서가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어.”

“맞아. 뭔가 새로운 정보가 없다면서 의문을 표할 거야. 너는 그 트랜센던서가 깊게 파고들지 않도록 생각을 유도해야 해. 유연하게 핑계를 대야겠지.”

“알겠어. 그런데 엘리스가 차원통로를 공략할게 뻔하잖아. 내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거나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인공행성이 예상보다 늦게 고쳐질 수도 있잖아. 서로 타이밍이 어긋나면 어쩌지?”

- 태양계에 있을 저는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을 반드시 우선하여 완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스의 최우선 목표 역시 태양계는 아닐 것입니다.

“방법이 있어?”

- 플래닛 웨폰의 기능을 빌려서, 필요한 순간에 이곳으로 모종의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반물질 입자 펄스가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차원통로의 복구는 인류 영역에 있을 제가 반드시 고려할 수단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그쪽에서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으로 이쪽에 신호를 줘. 인공적인 반물질 쌍소멸 현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관측되면, 그것을 신호로 판단해서 정확히 180분 안에 이쪽 플래닛 웨폰의 공격이 그 좌표를 휩쓸어버릴 수 있도록 할게.”

“반대로 여기에 남을 네 준비가 늦거나 빠르면?”

“암흑 네트워크를 쏘든 미완성된 플래닛 웨폰을 억지로 가동하든 옵시디아 드레이크 궤도로 우리의 중력파 신호를 보낼게.”

“좋아. 충분히 이해했어.”

두 로페즈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나구나. 진짜 대화가 너무 잘 통하네.”

“그래도 난 가짜야. 너랑은 달라.”

태어나고 보니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확실히, 좋은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로페즈는 자신이 만든 지적 생명체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용해서 미안.”

그러자 인조인간 로페즈는 고개를 젓는다.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마. 그건 우리 사이에 진짜 쓸데없는 말이니까.”

“···.”

“필요하다면 내가 죽을게. 죽어서라도 인류를 지킬게.”

“진심이야?”

“진심이지.”

그렇게 프랙탈 함대는 트랜센던서의 더미 데이터와 가짜 로페즈를 싣고 떠났다.

인공행성에 남은 진짜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와 함께 인공행성 복구에 전념했다.

트랜센던서는 인공행성을 복구하면서 알파가 엘리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던 기술의 파편을 차근차근 흡수했다.

비록 그 기술의 파편이라는 것이 온전치 못하여 기술력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공행성 자체를 복구하는 일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인공행성의 복구는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었고, 25일이 지난 시점에서 복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무려 28일이나 지났다. 그동안 엘리스의 위상 집합체는 인공행성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기에 보낼 위상 집합체가 없나 봐. 알파의 기술에 미련이 있으면 한 번쯤 여기를 확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인류 영역에서의 저항이 성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쪽의 네가 잘 싸워주고 있나 보네. 프랙탈 함대는 이미 옵시디아몬 구조대 같은 거랑 합류했겠지?”

- 도중에 위상 집합체의 습격이 없었다면 반드시 합류했을 것입니다.

“이쪽 준비가 일찍 끝나서 함대라도 만들어 도와주고 싶은데.”

- 자원 상황이 좋지 않아 그것은 어렵습니다.

“이대로 30일에서 40일 정도 기다리면 되려나···.”

그쯤으로 예상한다. 희망적이라면.

“만약 인류가 이미 멸망했거나, 곧 멸망한다면 난 여기서 늙어죽겠지.”

- 그런 상황이 절대 없으리라고 부정하긴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저는 최선을 다하여 관리자님을 돕겠습니다.

희망이란 것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인공행성을 완성한 로페즈는 날마다 하염없이 신호를 기다렸다.

- 관리자님.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했다.

- 중성자별의 중력 영향권에서 인공적인 쌍소멸 현상이 관측되었습니다. 쌍소멸 현상 경로에 따르면 프로키온 항성계 쪽에서 시작된 반물질 입자 펄스가 분명합니다.

로페즈는 1초의 어긋남도 없이 소리쳤다.

“쏴버려!!”

그때 드레이크 쌍성계 쪽을 조준하던 인공행성의 거대한 포신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빛났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퀘이사의 빛이 로페즈의 희망을 엘리스로부터 숨겼다.

“제발······.”

그것에 염원을 담았다.

- 이쪽의 에너지 위상 타격은 180분 후 해당 좌표에 도달하여 그곳에 있는 모든 물질을 열에너지와 빛으로 분해할 것입니다.

그 찬란함이 인류를 구원했다.

***

“필요하다면 내가 죽을게. 죽어서라도 인류를 지킬게.”

“진심이야?”

“진심이지.”

진짜 로페즈는 미안한 얼굴로 나지막이 내뱉었다.

“고마워.”

“고맙기는···. ‘내’가 원하는 일인데 뭐.”

둘 다 로페즈다. 같은 몸에 같은 의식을 담고 있다.

“내가 원하는 일···. 맞겠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나는 너잖아.”

그때 가짜 로페즈는 진짜 로페즈에게 도리어 질문했었다.

“만약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 35. 엔트로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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