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76화 (175/183)

< 34. 카타스트로피 (5) >

***

2600년 3월 1일. 엘리스의 침공 후 28일째.

UNF 함대가 이스페라를 해방시키고 엘리스의 인공행성에서 다윈 재단의 생체 함대가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드레이크에 위상 집합체 15척이 출몰했다.

그리고 같은 순간에 드론 하이브의 보고다.

「Drone Hive$: UNF 함대는 루비코와 이스페라에서의 교전으로 전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런데 UNF 함대가 태양계에서 전력을 회복하는 중에 위상 집합체 2척의 기습을 받았다는 긴급 회신입니다.」

엘리스가 다른 함대도 없이 위상 집합체 2척만으로 태양계에 기습을 가했다는 소식.

「Transcendencer#: 엘리스가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위상 집합체 2척이라면, 그 2척은 엘리스의 본진을 버리고 태양계에 온 것이다.」

어쨌든 이쪽을 도와 움직일 수 있는 외부 지원세력이 이 순간만큼은 없어졌다.

「Drone Hive$: 다른 문명에 지원은 요청할 수 없습니다.」

「Transcendencer#: 그렇다. 오로지 우리의 힘으로 방어해야 한다.」

드레이크에서는 추가로 생산된 함대를 라디에크에 두 번, UNF에 한 번 보냈다. 그래서 당장 드레이크에 있는 옵시디아몬 함대는 프랙탈도 없이 65개 함단밖에 되지 않는다.

65개 함단이면 웬만한 국가 하나에 맞먹는 군사력이지만, 상대는 위상 집합체 15척이다.

자력으로 방어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격차는 전략으로 어떻게 뒤집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트랜센던서는 다가오는 위상 집합체 측으로 교신을 보낸다.

「엘리스. 만약 우리가 항복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너를 없앨 것이다.」

「항복하지 않는다면?」

「너를 없앨 것이다.」

「알겠다.」

이윽고 위상 집합체 15척과 옵시디아몬의 65개 함단이 우주에서 충돌한다. 위상 집합체는 저마다 순차적으로 주력함포를 사용하고 옵시디아몬 함대는 이에 대응해 함선과 함재기들을 최대한 넓게 산개하여 교전에 임한다.

그러자 엘리스는 이런 대응을 알고 있었다는 듯, 위상 집합체 5척을 돌려서 이곳의 수도 행성, 옵시디아 드레이크에 보내고 말았다.

***

도시의 바깥으로 갈수록 자연친화적이며, 도시의 중심으로 올수록 미래적인 디자인의 옵시디아 대도시다.

지금 옵시디아가 있는 면은 항성을 등지고 있어 밤이 내려앉았다.

수백 개의 방어위성이 궤도로 접근하는 위상 집합체를 향해 인공하전입자병기를 뜨겁게 쏘아 올린다. 지상의 가우스 대공포, 플라즈마 대공포, 벡터 미사일 발사대, 전쟁기계가 하늘을 향해 무엇이든 쏘아 올린다.

검은 하늘이 비명을 지르고 그림자 같은 구름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흩어져 퍼진다.

행성 규모의 대공 화력망은 대기권의 공기를 가열했고 가열된 공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투둑···. 투두둑···.

쏴아아아아아···.

드넓은 도시에 비가 쏟아진다.

쏟아지는 비와 반대 방향으로, 행성에서 치솟은 빛의 소나기가 행성 바깥으로 나간다.

위상 집합체들은 실드를 전개하여 이를 받아내면서도 행성으로의 접근을 멈추지 않는다.

도시에 있는 시민들의 눈으론 거꾸로 치솟는 유성우라도 보는 것 같으리라.

“지하로 대피하십시오!”

“외계 함선의 침공입니다!”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 병기가 도심을 가득 채웠다. 드론 하이브나 휴머노이드들이 시민의 대피를 안내한다.

누군가의 비명소리, 겁에 질린 소리, 빗물을 밟는 소리가 도심을 어지럽힌다. 이 도시를 밤에도 찬란하게 빛냈던 에너지는 남김없이 전투에 대동되었다.

도시 전체가 암흑에 휩싸이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빨리 좀 뛰라고!”

“어머니 그냥 나오세요! 지금 그 사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쪽으로 갑시다!”

“여긴 어디야?”

“옷이 다 젖었어···.”

“너무 어두워요.”

“결국 왔어···! 결국 놈들이 왔다고···!”

전쟁을 앞둔 민간인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까.

“치안군은 지금 즉시 하이퍼 마인드가 안내하는 장소로 집결하길 바랍니다.”

“진짜 싸우는 거야? 그 미친 외계 함선들이랑?”

“다녀올게요.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그것들이 여기까지 왔다고 하잖아! 저 하늘에서 폭죽놀이라도 하는 줄 알았냐?!”

“오늘이 죽는 날인가, 하고 싸우려고.”

“저는 가보겠습니다.”

“이거 놔! 가서 싸우는 수밖에 없어!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잖아. 어차피 지면 다 죽는 거라고! 내가 도망쳐서 숨으려고 이 옷 입은 것 같아?!”

“괜찮아요. 금방 돌아올게요.”

“자기야, 애들 좀 부탁할게.”

전쟁을 앞둔 군인의 심정은 또 어찌 헤아릴까.

“아주 위급한 사태에는 치안군도 전투에 참여합니다. 네. 지금이 바로 그 위급한 사태입니다. 지금부터 거짓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외계 함선 15척이 현재 드레이크 항성계에서 함대전을 벌이고 있으며, 도중에 5척이 전장에서 이탈, 옵시디아 드레이크로 접근했습니다.”

치안군을 통솔하는 엑스턴 총사령관은 하이퍼 마인드를 대신하여 호소했다.

“저도 직접 함선에 올라 이 도시를 최우선으로 수호하겠습니다. 인공지능 병기와 하이퍼 마인드가 싸우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전황이 매우 불리하다고 해서 저희 치안군이 적에게 죽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증스러운 적을 죽이러 가는 것도 아니며, 하이퍼 마인드의 명령 때문에 전쟁터로 투입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지키러 가는 겁니다.”

“가정을, 회사를, 도시를, 궤도를, 아군을, 신념을, 나라를, 이 나라의 국민 여러분과 저마다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러 가는 겁니다.”

“이 용기 있는 행동에 전황이 불리하고 유리하고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저희 치안군은 하이퍼 마인드와 함께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전쟁 소집에 단 한 명의 치안군도 이탈하지 않았다. 치안군이 아니더라도 전투 경험이나 전투 의지가 있는 시민들이 기꺼이 총을 들고 도시의 곳곳에 자신들을 배치시켰다.

그 사이에 위상 집합체 5척은 옵시디아 드레이크까지 접근하여 주력함포를 사용했다.

엘리스의 무자비한 폭격은 로페즈가 만든 문명을 먼지로 분해해버릴 기세였다.

도시 위에 있는 유토피아, 방어위성, 궤도 건축물들이 대규모 정전을 감수하고 모든 출력을 합쳐 에너지 우산을 펼친다.

지이이이이잉!!!

우산처럼 펼쳐진 실드는 파멸적인 빛줄기를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산란시켰다.

에너지 우산의 끄트머리로 산란되어 행성으로 떨어진 빛줄기는 대기권에 닿는 즉시 열핵융합 폭발과 플라즈마 폭풍을 일으켰다. 그 포화의 아래에 있던 도시 건물들은 처참하게 휩쓸려 불타올랐다.

그 불꽃이 빗줄기에 꺼지기도 전에 폐허가 된 도시 구획으로 무인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위상 집합체 5척의 위상 강습 장치는 엄청난 숫자의 군대를 지상에 전송시켰다.

엘리스의 군대가 출몰한 위치는 주로 도시의 외곽 경계선 쪽이다. 그곳들은 궤도의 에너지 우산이 위상 강습을 막아주지 못하는 위치였다.

휘이잉!!!

상공으로 전송된 전폭기들이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시동을 건다. 그것들이 일제히 도심으로 향하고 도심에서 즉각 날아온 옵시디아몬의 드론 파이터 편대가 어지러운 공중전을 벌인다.

철컥! 위이잉!!!

척! 척! 척!

지상에 전송된 엘리스의 기계 군단이 반중력으로 부양하며 도심을 향해 진격한다. 그리고 도심 방향에서 온 치안군과 옵시디아몬 지상군이 이에 맞서 싸운다.

파스스스스스스스!!!!

눈에 보일 정도로 밀집한 나노병기가 새까만 바람처럼 움직이며 건물을 깎아내고 그 숫자를 불려간다. 마찬가지로 옵시디아몬의 탄소폭풍도 새까만 토네이도가 되어 엘리스의 나노병기와 뒤섞여 나노 단위의 전쟁을 벌인다.

콰아아아아아아!!!!

옥상에 대기하던 드론 하이브 무리가 거리로 플라즈마를 사출하고 옥상에 전송된 반중력 전차가 그런 드론 하이브를 노려 플라즈마 구체를 기관총처럼 연사한다.

콰장창! 쐐애애애액!!!

무수한 로보버그가 건물의 창문을 깨고 쏟아져 나와 자아를 가진 물결처럼 쇄도한다.

도시의 외곽 경계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교전이 벌어진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발사체가 도심의 안팎을 오가며 도로에 떨어지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비행체의 잔해가 시도 때도 없이 추락한다.

핵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탄소폭풍이 거대한 에너지 방벽을 펼치며 도시를 보호한다. 체인트루퍼가 골목길에서 구르며 엘리스의 지상군에게 돌진한다.

반중력 포드를 양탄자처럼 쓰는 엘리스의 휴머노이드 보병들이 거리를 나아간다. 와중에 하수도를 뚫고 나온 메뚜기처럼 생긴 브루쿠스가 엘리스의 휴머노이드를 분쇄기로 갈아버린다.

콰아아아아!

쿠우웅!!!

도심에서 날아온 옵시디아몬 수송기가 건물 사이를 비행을 하면서 거리에 병력을 투하한다.

쿵! 쿵!

“네놈들이 관리자님의 땅을 파괴하게 두지 않겠다.”

콰아앙!!!

테슬라포트리스가 엘리스의 반중력 전차를 전방으로 집어던진다. 군체 휴머노이드가 테슬라포트리스 앞으로 진군하면서 엄폐도 없이 총격을 가한다.

키이이이이이이잉!!!!!!

“온 사방이 적군이다. 내가 다 갈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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