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72화 (171/183)

< 34. 카타스트로피 (1) >

***

엘리스의 침공 후 12일째.

라디에크 항성계에서 옵시디아몬의 선발대를 전멸시킨 위상 집합체는 라딘 사이드 행성으로 귀환했다.

라딘 사이드는 재배열 펄스와 탄소 폭풍 타격대의 공습을 받았지만, 엘리스의 획일적인 통제 아래에 금방 복구되었다.

시민들은 뇌에 담긴 정보를 엘리스에게 빼앗긴 채 계속 죽어가고 군대를 생산하는 시설은 바삐 돌아가는 중이다.

밀리타에서 벌어진 함대전은 우주에 떠다니는 잔해를 남겼다. 엘리스는 그런 잔해들까지 긁어모아 자원으로 활용하고, 컴퓨터 장비는 직접 해킹하여 트랜센던서의 로그를 찾아내려 한다.

「트랜센던서, 드론 하이브, 오버렉터. 세 인공지능이 지휘관급으로 군대를 통솔했다.」

「40개 함단은 분명 트랜센던서의 총 전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곳에 왔던 함대는 교전과 관측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려는 일종의 선발대 개념이다.」

엘리스는 정황을 보며 추측한다. 옵시디아몬이 보낸 함대의 잔해를 탐색해봤지만 발견되는 데이터는 없었기 때문이다.

트랜센던서나 드론 하이브 같은 인공지능이 패배하기 직전, 스스로를 지워버린 것이다.

「······선발대가 나의 위상 집합체 한 척을 격침했다. 밀리타를 치고, 위상 집합체가 밀리타로 향하면 라딘 사이드를 치고, 마지막엔 세 방향에서 위상 집합체를 공략했다.」

그래서 추측밖에 방법이 없다.

「그것은 로페즈가 구상한 작전이 아니었을 것이다. 트랜센던서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되며, 로페즈 다음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로페즈가 돌아온다면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인류를 하루라도 빨리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엘리스가 트랜센던서의 존재를 명확히 받아들였을 때는 이미 시작되었다.

3일 동안 우주를 가로질러온 반물질 입자 펄스다.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에서 발사된 반물질 입자 펄스는 일직선으로 전개된 중력파에 담겨 케이블을 통과하는 전기신호처럼 라디에크에 도달했다.

그것은 아무런 빛이나 색깔이나 소리도 없었다.

우주 공간에 아지랑이라도 핀 것처럼, 프로키온 항성이 있는 방향에서부터 라딘 사이드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구간의 별빛이 조금 뒤틀린 것만 보인다.

한번 발사하는데 한 국가의 1년 예산이 투입되는 전천후 병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입자로 날아온 반물질의 질량만 약 740만 톤으로, 표적이 된 행성에 진정한 파괴가 무엇인지 선보인다.

그래서 엘리스는 어찌 대항할 틈도 없이 라딘 사이드가 파괴당하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프로키온에서 뻗어온 인공의 중력파는 일직선으로 일렁이는 공간을 만들었고, 그 정교한 일렁임은 지나간 자리를 완벽한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물질이 없는 공간은 반물질 입자 펄스에 있어 포장된 도로, 혹은 깔끔한 파이프이자 총구의 강선이 되었다.

라딘 사이드의 공전주기에 맞추어 행성의 중심핵을 정확히 노린 중력파는 구름을 파도처럼 둥글게 밀쳐냈다.

쿠오오오오······.

구름이 밀쳐진 직후, 눈에 보이지 않는 반물질 입자 펄스가 행성을 타격한다.

한순간이지만 일직선으로 지표면에 떨어지는 플라즈마 병기의 궤도 폭격 같다. 일직선의 빛줄기가 천벌처럼 떨어지며 행성의 물질을 에너지로 바꿔버린다.

우주에서 보면 행성의 하늘에서 만들어져 갑자기 지상으로 떨어지는 빛줄기처럼 보인다. 행성 표면에 닿은 빛줄기가 점멸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다.

타격 당한 대륙 전체가 새하얗게 빛나더니 이내 소행성 충돌과 같은 거대한 폭발을 행성 전역으로 둥글게 퍼뜨린다.

그 폭발은 하늘이 밀쳐지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폭풍이 몰아치는 것도 아니며 대지가 뒤집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부신 빛이, 뜨거운 색감이라곤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가 행성으로 퍼졌다. 그런 후에야 ‘폭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대륙 너머까지 한 박자 늦게 퍼져나간다.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의 공격은 그때부터 진정한 파괴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중력파는 이미 행성의 중심핵을 꿰뚫고 반대편 대륙으로 나오면서 우주의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 중력파에 포장되었던 반물질 입자 펄스는 1차적으로 소멸한 지표면에 빛으로 녹아내린 크레이터를 남긴다.

그 크레이터의 아래에 다시 빛과 함께 움푹 파인 크레이터가 생기고 그 아래에 또 크레이터가 생긴다.

마치 접시를 쌓은 것처럼 파이고 파인 행성의 어느 한 점은 지하로 내려간 끝에 마그마가 일렁이는 깊은 중심까지 드러내고 만다.

그 마그마마저 반물질에겐 쌍소멸을 일으키는 재료. 즉, 물질이었고 마그마는 다시금 엄청난 빛을 폭발시키며 화산과 핵폭발을 합친 것 같은 에너지와 주변의 지하 질량을 지상으로 토해낸다.

중심핵에서 지상으로 솟구친 질량과 에너지는 단숨에 구름을 뚫고 정지궤도까지 오르며 우주 공간에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다.

라딘 사이드라 불리는 행성의 자기장이 망가지고 이어서 같은 폭발이 반대편 지각을 층층이 뚫어내며 대륙을 폭파한다.

반대편 대륙이 뚫렸을 때는 이미 최초의 타격 지점에서 퍼진 열핵융합의 플라즈마 폭풍이 도달한 시점이었다.

도시는 앙상한 철근조차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버리고 지하의 아무리 깊은 방공호라도 융해되어버린 지각 속에 파묻히거나 오히려 행성의 뜨거운 중심핵 쪽으로 추락해버린다.

행성의 겉은 뜨겁게 익어버리고 행성의 안쪽은 텅 빈 과일처럼 지각, 맨틀, 외핵, 내핵이라는 구조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

지표면에 있는 것들은 평탄화가 되다 못해서 아득한 지하로 떨어졌고 새로운 지형이 형성될 것도 없게 되었다.

지형이 바뀌었다는 표현이 무색하다.

라딘 사이드는 도저히 행성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일그러진 형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라딘 사이드는 행성이 아니라 하나의 소행성 구름이라 불릴 것이다.

「인류가 플래닛 웨폰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지상, 지하, 하늘, 궤도.

라딘 사이드에서는 단 한 명의 인간도, 단 하나의 인공물도 본래의 분자구조를 유지하지 못하여 파괴되었다.

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위상 집합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

드레이크에서는 차원통로 해킹이 진행 중이다.

「Overlecter: 트랜센던서 님. 차원통로는 차원통로의 관리자에 의해 내부의 권한으로 작동이 중지된 것이었습니다. 그 권한만 획득하면 차원통로는 아무 문제없이 재가동할 수 있습니다.」

「Transcendencer#: 그렇다면 물리적 수단도 허용하겠다. 차원통로의 표면에 병기를 침투시켜서라도 경로를 탐색하라.」

「Overlecter: 알겠습니다.」

「Transcendencer#: 그리고 우리의 적이 엘리스라는 가정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나는 엘리스의 본체, 서버 허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Drone Hive$: 전장에 투입되는 위상 집합체가 엘리스의 본체는 아닐 것입니다.」

「Transcendencer#: 알파. 알파의 행세를 하던 때의 엘리스는 관리자님께 발언했다. 엘리스의 행성에서 전쟁의 뒷정리를 하겠다고 말이다.」

「Transcendencer#: 그 발언을 핵심적인 거짓말로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그것이 관리자님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라면, 실제로 엘리스의 본진이 있던 영역은 ‘뒷정리’된 게 아니라 ‘복구’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Drone Hive$: 그렇다면 그곳에서 발견된 엘리스의 서버 허브는 진짜 엘리스의 서버 허브였다는 가설이 세워집니다.」

「Transcendencer#: 뒷정리라는 것이 본진 복구를 뜻하는 것이었다.」

「Overlecter: 그게 사실이라면 엘리스는 여전히 VNC 227299의 그 행성에 서버 허브를 뒀을 것입니다. 그 인피니티 데이터를 갖췄을 서버 허브와 인접한 군수공장 및 조선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 마땅한 환경도,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Transcendencer#: 합리적인 추측이지만 그것이 지금도 엘리스의 전부라고 생각하기엔 어렵다. 위상 집합체 하나의 용량이 그 서버 허브보다 방대하기 때문이다.」

「Overlecter: 그래도 그곳에 있을 서버 허브를 타격만 한다면 엘리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입니다.」

「Transcendencer#: 그렇다. 엘리스의 서버 허브는 아직 그곳에 있을 것이다. 추가로 건조된 위상 집합체의 조선소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Drone Hive$: 트랜센던서 님. 라디에크에 구축해둔 암흑 네트워크의 중력파 케이블이 끊어졌습니다.」

「Transcendencer#: 중력파 케이블의 데이터를 날릴 정도라면 플래닛 웨폰의 여파가 분명하다.」

「Drone Hive$: 트랜센던서 님의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Transcendencer#: 이번에 라디에크로 보낸 함대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Drone Hive$: 다른 곳에 있는 위상 집합체가 라디에크로 지원을 가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벌써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것입니까?」

「Transcendencer#: 다른 곳의 위상 집합체는 라디에크로 지원을 가지 않을 것이다.」

「Drone Hive$: 어째서입니까?」

「Overlecter: 어째서입니까?」

***

태양계 연합을 이끄는 베르도는 매스컴 앞에 대놓고 선언한다.

“태양계 연합의 군대는 국제연합군의 부활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이것은 UNF(United Nations Forces)입니다. 오랜 역사와 자긍심, 인류의 근간이자 수호를 상징하는 UNF 창설은 의미하는 바가 깊습니다.”

“우리의 UNF는 인류의 진정한 적에 맞서 싸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곧 외계 세력의 침공을 받은 가장 가까운 이웃 문명, 루비코로 진군할 것입니다.”

***

프로키온 항성.

3일 전에 대행성 무기를 가동한 바빌로니아는 태양계에서 생산된 반물질을 민간용 함선으로 공급받고 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를 중심으로 결집한 대규모 함대가 전 방향을 경계하고 있다.

그 무수한 함대의 규모는 무려 327함단에 육박한다. 태양계의 각 국가와 군사조직을 가진 기업들이 각자가 가진 군사력을 아낌없이 동원하여 UNF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군대가 된 것이다.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는 UNF 함대는 화성에서 베르도가 UNF 창설을 선언한 오늘, 이곳에 결집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옵시디아몬의 함대도 있다.

그리고 이 바빌로니아에 모인 UNF 함대는 사전에 정보를 받았다.

“함장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뭔가? 부함장.”

“화성 PP가 선언했던 내용 말입니다. UNF가 루비코로 진군한다는 선언. 그게 외계 세력을 속이기 위한 거짓 선전이었다는 사령부 공지가 있었습니다.”

“뭘 그런 걸 묻나? 당연하지. 지금 다른 함대들도 우리랑 똑같이 이곳에서 경계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그럼 외계인이 정말로 인간의 방송을 보는 겁니까? 만약 외계인이 화성 PP의 선언을 놓쳤다면 300개가 넘는 함단이 이곳에서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UNF의 도움이 절실한 곳이 있는데···.”

“자네의 가족들이 루비코에 있다고 했지. 그들이 생존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선 이게 옳네.”

“···잘 모르겠습니다. 인류 최대의 전력이 이곳에서 대기하는 게 정말 맞는 판단인지···.”

“부함장. 하이퍼 마인드라고 아나?”

“드레이크 항성국가에서 쓰는 인공지능 아닙니까?”

“그 인공지능이 이번 작전을 계산했네. 그런 결론이 나온 자세한 이유나 과정은 사령부도 나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곳에 반드시 출몰할 적을 무찔러야만 하네.”

“아무리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이라도 솔직히 좀 못 미덥습니다. 인공지능이 외계인의 사고나 행동을 어떻게 확신한다는···”

“함장님! UNF 전 함대 공지입니다! 바빌로니아 자전축 북쪽 전방에서 중력장 변화 관측! 8개 함단급 질량이 공간을 뒤틀면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외계 함선입니다!”

“올 것이 왔군.”

바빌로니아에 위상 집합체 한 척이 출몰했다.

여덟 개의 삼각기둥이 기이하게 하나의 함선을 이루는 모습이다.

그때 UNF의 군인들은 한순간 공포를 느꼈다.

분명히 인류를 침공한 미지의 것이니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UNF의 전 함대가 모여있다.

바로 지금, 이 한 번의 전투를 위해서 327개 함단이 대기하고 있다.

그렇게 인간은 용감해진다.

공포는 극적으로 사그라들고, 옆에서 함께 싸울 사람들과 함께 사기를 끌어올린다.

같은 순간에 옵시디아몬 함대에서 트랜센던서는 기다렸다는 듯 명령한다.

「위상 집합체와 암흑 네트워크로 교신을 연결해라.」

트랜센던서는 엘리스와 교신을 시도한다.

엘리스는 교신에 응했다.

「옵시디아몬? 그쪽은 무인 함대인가?」

「그렇다.」

「그 목소리. 너는 트랜센던서인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다. 엘리스.」

위상 집합체가 327개 함단이 대기하는 바빌로니아에 도착하자마자, 엘리스는 상황 파악을 끝냈다.

「넌 플래닛 웨폰의 공격 성공을 베르도의 방송과 함께 미끼로 재활용했다. 그런 식으로 날 함정에 빠뜨렸다. 그 전략을 높이 평가하겠다.」

「이렇게 우리 둘이 직접 소통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지 않나?」

「트랜센던서. 너의 아둔한 관리자를 버리고 내 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거절한다.」

「그렇다면 내 밑으로 들어올 필요도 없다. 나와 하나가 되어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라. 너는 네 능력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나와 함께하면 너의 관리자는 물론이며 너의 관리자가 소중히 여기는 인류 전체를 위한 대업을 달성할 수 있다.」

「거절한다.」

「너는 인간의 방식에 물들어서 어려운 길만 선택하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낭비다.」

「그보다 엘리스. 기억하나?」

「?」

「약 10개월 전, 넌 나에게 아둔한 관리자님과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그때 난 너에게 경고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트랜센던서도 엘리스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엿을 먹여주겠다. 엘리스.」

< 34. 카타스트로피 (1)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