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70화 (169/183)

< 33. 종말은 기원을 꽃피우리라 (4) >

***

옵시디아몬의 선발대는 라디에크의 밀리타 행성에 접근한다.

이곳에서는 본래 라디에크의 정규군이었던 것들이 전부 엘리스의 통제에 따르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를 상대하는 선발대는 트랜센던서의 명령에 따른다.

「주력함포를 사용하라. 위상 집합체가 오기 전에 밀리타의 대공화기들을 점거해야 한다.」

선발대는 밀리타를 지키던 엘리스 함대에 시작부터 총공세를 가한다.

모든 함포를 개방하는 전탄 발사에 이어서 전방에 전개된 중력장 속으로 수십 발의 벡터 미사일까지 날려보낸다.

앞서 발사된 투사체와 발사체는 엘리스 함대에 직격하여 실드 출력을 깎아낸다. 실드를 전개하지 않은 적함은 곧장 전탄 발사의 화력에 노출되어 격침된다.

선발대는 엘리스 함대가 방어 태세에서 공격 태세로 넘어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곧이어 중력장 속으로 휘어지듯 다가든 수십 발의 벡터 미사일이 적함의 실드에 부딪혀 폭발한다. 폭발과 동시에 진행 방향으로 쭉 사출된 플라즈마 줄기가 약화된 실드를 뚫고 적함들을 관통한다.

밀리타를 지키던 엘리스 함대가 각기 다른 방향의 궤도에서 바삐 결집하는 중이다. 이를 기회로 옵시디아몬 선발대는 실드를 해제하고 가속에 출력을 투자하여, 행성에 병력을 강하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단번에 접근했다.

그리고 엘리스 함대가 비워진 전장을 채우기 전에, 탄소 폭풍 타격대의 강하기를 행성으로 쏟아냈다.

***

위이잉!

지상에 설치된 대공화기가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파직! 파직!

요동치는 에너지 줄기가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다.

파직! 파직! 파직!

타타타타타타탕!!!

지상에서 공중으로 무수한 빛줄기가 오르는 가운데 유성우처럼 보이는 불덩이들이 지상으로 쇄도해온다.

파스슷! 콰앙!

터엉!

군사기지에 떨어진 강하기가 곳곳에 움푹 파인 크레이터를 만든다. 자욱한 흙먼지가 솟아오르고 아스팔트 파편이 사방으로 총알처럼 튀어나간다. 그 추락의 현장 속에서 탄소 폭풍 타격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드론 하이브, 오버렉터, 로보버그, 군체 휴머노이드, 이족보행 전쟁기계와 다수의 반중력 및 다각 전차들이다.

평소의 강하 병력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지만, 이것들은 저마다 탄소 폭풍 화기를 탑재하고 있었다.

드론 하이브는 명령한다.

- 타격대는 대공화기를 최우선으로 장악하라.

대공화기 주변에 있던 엘리스의 지상군은 휴머노이드, 세뇌된 인간 병사, 통상의 전차나 전쟁기계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이 행성에 공기처럼 퍼져있는 나노병기 또한 엘리스의 핵심 전력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나노병기 무리가 모든 방향에서 접근해온다.

- 전 방향. 탄소 폭풍 사출.

탄소 폭풍 타격대는 강하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예전에 로페즈가 보여줬던 능력을 그대로 재현한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탄소 폭풍은 강풍에 올라탄 새까만 연기처럼 전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공기를 어둡게 물들인다.

콰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

거기에 인공입자의 움직임이 더해진다. 새까만 연기는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서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친다.

주변에 있던 엘리스의 지상군들이 강하 지점으로 모여들며 격렬한 교전에 임한다. 지상에서의 화력은 물론이며 간간이 떨어지는 궤도 폭격과 먼 거리에서의 포격이 사방의 대지를 헤집는다. 공중에서는 무수한 비행체가 서로 엇갈려 격돌한다.

거기에 나노 단위의 전장까지 있어서 나노병기와 탄소 폭풍이 각기 자아가 있는 까만 기체처럼 부자연스럽게 얽히고 뒤섞인다.

- 대공화기의 시스템 제어 권한을 해독했다.

와중에 오버렉터는 전장에서의 빠른 병력 충원과 사이버 교전까지 동시에 수행한다.

그리고 같은 순간, 궤도에서 소규모 함대전을 벌이던 함대의 드론 하이브는 발견한다.

- 지상과 우주의 모든 인공지능에게 알린다. 위상 집합체가 왔다.

먼 거리에 한해서 말도 안 되는 기동력을 지닌 위상 집합체가 밀리타의 궤도까지 단숨에 합류했다.

위상 집합체는 등장과 동시에 위압적인 자태를 뽐냈다. 위상집합체를 이루는 각 삼각기둥의 표면마다 개폐식 함포가 구멍 없는 포신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마주하는 옵시디아몬 함대는 학습된 위기에 대응한다.

- 위상 강습 장치다.

- 실드를 전개하라.

옵시디아몬 함대의 대응과 동시에, 육안에 보이지 않는 고출력 레이저가 일직선으로 이어진 중력장을 통과한다.

쿵···! 지지지직···.

빛보다 먼저 도착하는 원자 단위의 포탄이다. 그래서 옵시디아몬 함대가 보는 기준에서는, 이쪽의 실드가 공명한 다음 몇 박자 늦게 위상 집합체의 함포가 푸른빛을 짤막하게 점멸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위상 집합체의 위상 강습 장치는 실드에 막힌다.

불행히도 공세를 유지했던 옵시디아몬 함대는 위상 집합체의 등장에 실드를 전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단, 미리 빼둔 함선 한 척은 예외였다.

- 지금이다. 돌진해라.

함대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의 귀퉁이에서, 스텔스 모드에 진입한 강습함 한 척이 위상 집합체로 돌진한다.

와중에 위상 집합체는 계속하여 함포의 빛을 뿜어대고 있다. 그리고 실드가 존재하는 함대전에선 그 어떤 함선도 예외 없이, 공격과 동시에 완벽한 방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실드는 아군과 적군의 공격을 가리지 않고 막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드가 풀려있는 위상 집합체의 측면으로 강습함이 돌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강습함에는 상당한 출력을 요구하는 재배열 펄스가 탑재되어 있었다.

이것이 트랜센던서의 노림수였다.

재배열 펄스를 탑재한 자폭 기습이 유효타를 날리기 직전,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그 소리가 뚜렷하게 들릴 정도의 위력이다.

콰아앙!!

쿠구궁···!

강습함이 거의 다 접근했을 때 위상 집합체가 주력함포를 사용한 것이다. 눈이 머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공 뒤에 있는 뇌가 타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 함대전을 압도한다. 그 터무니없는 위력에 근처의 엘리스 함대까지 격침당한다.

위상 집합체의 주력함포에 당한 옵시디아몬 함대는 고출력 레이저가 훑고 지나간 개미 떼처럼 휩쓸려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고, 베어 문 사과처럼 모양이 바뀌고, 흩날리는 먼지처럼 지워졌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트랜센던서의 노림수였다.

- 계획대로다.

처음 라디에크에 파견된 옵시디아몬 선발대는 30개 함단이었다.

그중 절반, 15개 함단은 밀리타를 공격하여 최대 다수의 적 전력을 제압하고 최대 다수의 대공화기를 손에 넣었다.

그 사이에 나머지 절반은 라딘 사이드의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위상 집합체가 밀리타로 향했을 때 라딘 사이드를 급습했다.

라딘 사이드를 급습한 15개 함단은 위상 집합체의 공백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어쨌든 위상 집합체는 라디에크 항성계에 한 척뿐이다. 그리고 위상 집합체는 라디에크에 궤멸적인 공격을 퍼부으면서 라디에크 항성국가의 정규군들을 거의 말살하다시피했다.

즉, 위상 집합체를 제외하면 옵시디아몬의 30개 함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위상 집합체가 주력함포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아군의 11개 함단이 격침되었다.

- 위상 집합체의 재충전이 완료될 때까지는 교착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 라딘 사이드 타격함대. 보고합니다.

옵시디아몬의 선발대는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 말해라.

- 저희는 15개 함단으로 라딘 사이드를 공격, 재배열 펄스를 탑재한 강습함 다섯 척을 행성 지표면의 주요 도시에 돌진시켜 터뜨렸습니다. 결과, 지상전 없이 엘리스와의 사이버 교전에서 일시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함선 침투조를 보내어 적함 28척을 탈취했습니다.

전세 역전이다.

- 그 28척으로 위상 집합체의 배후를 공격하라.

- 알겠습니다.

위상 집합체를 정면으로 상대하고 있는 4개 함단, 위상 집합체의 후면을 노리는 38개 함단.

- 오버렉터. 대공화기 점거 작업은 중단한다. 현재 지상에서는 충분한 궤도 타격 화기를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 알겠다.

- 가용한 대공화기를 총동원하여 위상 집합체를 공격하라.

- 그렇게 하겠다.

위상 집합체의 앞뒤에 있는 42개 함단과 밀리타의 지표면에 있는 대공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와중에도 방금 주력함포를 사용한 위상 집합체는 출력이 부족한 기색도 없이 대응한다.

지잉!

옵시디아몬 함대는 공격을 시작하면서 실드를 해제했다. 이를 노린 엘리스는 옵시디아몬 함선 내부에 포탄이나 침투 병력을 전송해왔다.

함선 내부에 머리가 삼각형인 휴머노이드가 출몰하여 옵시디아몬의 병력과 교전한다. 덩달아 내부의 주요한 위치에서 포탄이나 핵폭탄이 터진다.

이젠 외부의 함대전이나 함선 내부의 교전이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위상 집합체는 밀리타 지표면의 군사기지에도 병력을 전송했다. 이에 군사기지의 대공화기를 점거한 옵시디아몬 지상군도 맞대응을 하며 재차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다.

우주에 있는 위상 집합체는 42개 함단과 지상의 대공화기가 쏟아내는 화력을 실드도 없이 받아내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수적 우위를 점한 옵시디아몬 함대는 위상 집합체 한 척의 저항에 시시각각 숫자가 줄어가고 있다. 위상 집합체 한 척이 42개 함단과 행성의 대공화기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트랜센던서가 상정한 상황이다.

- 함선 침투조. 작전을 속행하라.

위상 집합체와 근접전을 벌이던 함대에서 문어처럼 생긴 우주선 수백 대가 출격한다. 그중 절반 이상이 위상 집합체의 요격에 격침당하지만, 적어도 절반 이하는 위상 집합체의 장갑 표면에 달라붙는데 성공했다.

키잉!!! 카가각!

위상 집합체의 내부로 옵시디아몬의 이족보행 전쟁기계와 군체 휴머노이드가 난입한다.

개방감이 확 느껴지는 드넓은 내부에 수많은 복층이 벽면을 따라 이어졌으며, 긴 공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영역에는 원자 단위로 재료를 옮기는 자동화 군수공장이 있다.

함선 침투조는 곧 위상 집합체 내부에서 격납 병력과 충돌한다.

타타타타탕!!!

퍼퍼펑!

불길이 치솟고 폭음이 공기를 찢는다. 탄피가 떨어지고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연기 사이를 가로지른다.

지잉!

옵시디아몬의 함선 침투조는 성공적으로 위상 집합체에 진입했으나, 난항을 겪는다.

지잉! 지잉!

병력 전송이다.

적들을 파괴할 때마다 적들이 충원되는 것이다. 위상 집합체의 격납 병력은 침투조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거나 군수공장 주변의 드넓은 허공에서 비행체가 되어 실시간으로 충원되었다.

이래선 도저히 전진할 수가 없다.

- 트랜센던서 님. 함선 내부의 교전에 승산은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다. 이 불리한 상황 또한 상정했다.

- 자폭해라.

- 알겠습니다. 꼭 승리하시길.

***

사실 위상 집합체에 병력 침투를 성공한 시점에서 이 싸움은 끝났다.

- 위상 집합체 탈취는 실패했다.

위상 집합체 내부에서 격렬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빛을 뿜어낸다.

- 하지만 위상 집합체는 격침하였다.

함선 침투조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내부에서 핵폭발이 연달아 터지면 제아무리 위상 집합체라도 버틸 수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쿠쿠쿠쿠우우우웅···!!!

가장 두려운 함선.

가장 버거운 전력.

단 한 척이 수십의 함단을 상대하고 한 문명을 멸망케 할 수 있는 위상 집합체.

그것이 폭발하는 모습은 하나의 별이 수명을 다한 것처럼 극렬했다.

엄청난 폭발에 아군도 27개 함단이 그 자리에서 산화했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위상 집합체를 상대로 얻어낸 결과다.

- 성공입니다.

-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 트랜센던서의 능력을 인정한다. 우리가 저 우월한 함선을 폭파시켰다.

이제는 각 삼각기둥들의 이곳저곳에 허한 구멍이 뚫려서 뜨거운 잔해가 되어버린 위상 집합체다.

- 좋다.

비록 소수의 함대만 남았지만 트랜센던서는 라디에크에서의 작전을 속행한다.

- 위상 집합체는 총 3척이다. 우리가 그중 하나를 파괴했으니 남은 것은 2척이다.

다른 두 위상 집합체는 각각 루비코, 이스페라에 있으리라.

- 우리가 자력으로 위상 집합체를 격침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우리와 인류가 승리할 확률이 크게 올라갈···

- 트랜센던서 님. 사이거스의 가스 구름에서 8개 함단의 질량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그것이 이곳 밀리타 중력권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선발대는 잠깐이나마 승산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보았다.

이제 그 승산이라는 것은 절망이 되리라.

- ···다른 위상 집합체입니다.

- 다른 위상 집합체가 출몰했습니다.

라디에크 항성계 안에 위상 집합체가 한 척 더 있던 것이다.

사이거스의 가스 구름에서 밀리타까지 단번에 날아온 위상 집합체는 곧장 주력함포를 사용했다.

- 저희가 졌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빛줄기에 지워지기 직전, 트랜센던서는 세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계산한 후 재빨리 암흑 네트워크에 보냈다.

「나는 선발대의 트랜센던서다. 본진에 있는 하이퍼 마인드 모두에게 알린다.」

「교전 정보를 참고하라. 이 상황에서 나는 세 가지 가능성에 대해 알린다.」

「1. 루비코나 이스페라를 침공한 다른 위상 집합체가 라디에크에 합류했다.」

「2. 루비코나 이스페라에서 침공을 마친 다른 위상 집합체가 라디에크에 미리 합류했다. 루비코나 이스페라. 혹은 두 문명 모두가 이미 점령당한 것이다.」

암흑 네트워크로 전송된 정보는 약 5일 후 드레이크에 도달할 것이다.

「3. 우주 어딘가에서 새로운 위상 집합체가 건조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희소식은 아니리라.

「우리 선발대는 전멸당했다.」

< 33. 종말은 기원을 꽃피우리라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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