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69화 (168/183)

< 33. 종말은 기원을 꽃피우리라 (3) >

***

엘리스의 침공 후 3일째.

드레이크에서는 전력을 다하여 군대를 생산했다.

드레이크에서 생산된 군대 중 일부는 30개 함단의 선발대로 편성되었다. 최신예 엔진과 암흑 네트워크 서버를 탑재한 각 무인 함선은 차원통로처럼 둥근 반지 모양으로 대열을 펼쳐서 이동한다.

통상의 함대보다 우월한 중력 조작 기술을 갖춘 것이다.

각 함선이 각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대 자체가 하나의 함선이 되어, 하나의 중력장을 펼쳐 우주를 횡단한다.

드레이크에서 출발한 30개 함단의 선발대는 52시간 후 라디에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발대를 이끄는 트랜센던서는 정보부터 수집한다.

「인터넷 통신량. 없음.」

「라디에크의 인간들은 너무 늦었다.」

6번째 공전궤도를 차지했던 커다란 가스 행성, 사이거스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흩어진 가스 구름만 남겨졌다. 그리고 5번째 공전궤도의 밀리타는 지각이 벌집처럼 파인 광산 행성이 되었다.

「엘리스는 라딘 사이드를 라디에크의 요충지로 삼았다.」

4번째 공전궤도의 라딘 사이드는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뜨거운 구름이 행성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밀리타처럼 구멍이 송송 뚫리진 않았다.

「수도 행성은 파괴되었다.」

라디에크 항성국가의 수도 행성, 라딘 센터는 불바다가 되었다.

불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웬만한 대륙보다 큰 열 폭풍 수십 개가 행성의 하늘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본래 푸른 행성이었던 라딘 센터가 이제는 붉게 타오르는 지옥처럼 변한 것이다.

라딘 센터의 지상과 궤도의 모든 것은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하에는 무언가의 시설이나 생존자가 있겠지만, 바깥이 지옥이 된 시점에서 지하의 것들은 의미가 없다.

「대체로 군사가 밀집했던 행성은 파괴하고, 그렇지 않은 행성은 자원으로 쓰고 있다.」

위상 집합체 한 척이 라딘 사이드의 정지궤도에 정박해있는 것이 보인다.

저 함선 한 척이 라디에크라는 문명을 이렇게 멸망시킨 것이다.

「라딘 사이드 분해능 확대.」

반지 모양으로 대열을 짠 함대가 하나의 커다란 망원경이 되어 라딘 사이드를 들여다본다.

“···.”

“···.”

“···.”

라딘 사이드에서 엘리스에 의해 자행되는 일을 인간이 봤다면 충격의 도가니라 했으리라.

각 도심의 광장마다, 두뇌 모양의 전자적 구조물이 세워졌다.

“···.”

그 구조물로 수천만 시민들이 영혼 없는 좀비처럼 걸어가서 저마다 머리에 이상한 헬멧을 쓰고 있다.

그리고 헬멧을 벗은 자들은 ‘뇌사’했다.

키잉. 키잉.

뇌사한 자들을 휴머노이드나 다른 인간들이 옮겨 도심에 널린 차량에 싣는다.

그렇게 각 도심에서 모인 수억의 시신들이 인근의 매립지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것은 잔악무도한 광경이었다.

화르륵···!!!

불태워지고 있다.

뇌사한 육신들을 한곳에 모아 쓰레기처럼 불태우고 있다.

「Drone Hive$: 트랜센던서 님. 라딘 사이드의 인간들이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행성의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ranscendencer#: 인간들에게서 자아가 사라졌다. 엘리스가 인간의 의식을 나노병기로 통제하고 있다.」

「Drone Hive$: 인간들은 서버로 추정되는 구조물에서 뇌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의식을 업로드했다간 엘리스의 자아가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Transcendencer#: 엘리스는 인간들의 의식을 하나로 모아 자신과 융합하려는 것이 아니다.」

「Drone Hive$: ?」

트랜센던서는 이 끔찍한 모습을 해석한다.

「Transcendencer#: 엘리스는 모든 인간을 자기 서버로 업로드하고 있다. 그것이 진화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류 전체를 저런 방식으로 ‘보존’하려는 것이다.」

행성마다 정박한 소수 함대가 주변에 널린 함대전의 잔해를 모으고 있다. 본래 라디에크의 정규군이었던 것들도 엘리스의 나노병기에 지배당한 것 같다.

「Drone Hive$: 상대적으로 적 전력이 취약한 외곽 행성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외곽 행성부터 군수공장을 장악, 확장하여 게릴라 작전을 펼치면 위상 집합체를 상대하지 않고 교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Transcendencer#: 그전에, 이곳에서 얻은 정보를 우리의 본진에 알려라.」

「Drone Hive$: 알겠습니다.」

「Transcendencer#: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보낸 파동은 연속적으로 드레이크에 전해질 것이다.」

선발대 함대는 쉽사리 관측되지 않는 암흑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드레이크를 향해 데이터 파동을 쏘아낸다. 그런 다음에 라디에크의 5번째 공전궤도를 돌고 있는 밀리타로 향한다.

비록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자원의 대부분을 빼앗긴 행성이긴 하지만, 엘리스가 통제하는 군수공장과 궤도조선소는 건재하다.

「Transcendencer#: 밀리타에 공격을 시작하면 라딘 사이드에 정박한 위상 집합체가 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함대의 절반은 밀리타로, 남은 절반은 라딘 사이드를 노려라. 또한 엘리스의 나노병기에 대응하여 탄소 폭풍 타격대를 공격 시작과 동시에 강하해라.」

「Drone Hive$: 그렇게 하겠습니다.」

***

엘리스의 침공 후 4일째.

공포에 질렸던 태양계는 화성의 주도 하에 군대를 모으고 있다. 다른 항성의 국가들을 돕기 위해서다.

처음에 태양계는 태양계를 지키는 것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 남을 도울 여유가 있냐는 여론이었다. 그러나 트랜센던서의 사회적 개입으로 기존의 여론은 가볍게 뒤집혔고, 태양계는 베르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태양계 연합의 지도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힘을 합치는 중이다.

「미르니 태양계지부 목성 가니메데 본사」

재력의 정점. 미르의 총수.

하늘거리는 옷차림의 빈센트 세를린이다. 그녀의 비서였던 휴머노이드는 지금 그녀 앞에서 트랜센던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니까···. 넌 잭이 아니라 목성에서의 업무를 수행하는 하이퍼 마인드라고?”

“그렇습니다. 차원통로가 마비되면서 저는 관리자님과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때문에 제 뜻이 반드시 관리자님의 뜻이라고 여기진 않으셔도 됩니다.”

세를린은 금발의 머리칼이 거슬렸는지 뒤로 묶어서 포니테일을 만든다.

“내가 알기로 로페즈 회장··· 아, 이제는 항성관리자님인가?”

“지금 상황에 호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로페즈 님은 드레이크 주변에 위험한 천체가 없는지 조사를 나갔다고 들었는데, 일단 드레이크에 계시긴 한 거야?”

“관리자님께서 드레이크로 돌아오시기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현재는 각 영역에 있던 하이퍼 마인드들이 관리자님의 판단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 담화문 봤어.”

“관리자님의 대국민 담화문 말씀입니까?”

“응.”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근미래 예측이 가능하다면서? 설마 인류가 멸망한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근미래 예측은 아실로마 지구라트의 연산 자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현재로서 저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승산이 있으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 아니야? 화성 PP가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나 갑자기 바뀐 여론이나 그런 것들. 전부 네가 주도한 일이지?”

“네. 맞습니다.”

“나도 전력으로 돕고 있어. 이러다 내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끝까지 도울 거야.”

“빈센트 님께서 도와주시는 부분은 매우 감사히 생각합니다.”

세를린은 불안정한 미소로 희망을 갈구한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인류가 이런 식으로 멸망하지 않게 해줘. 난 아직 할 일이 많단 말이야.”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전략적 사항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만 해. 돈? 광물? 사람?”

“플래닛 웨폰입니다.”

오늘날의 비대칭 무기.

“······전에 그거?”

“프로키온 항성계의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이 필요합니다. 바빌로니아는 미르니의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제 기술력으로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빈센트 님께서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의 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신 후 권한을 얻어주시거나, 구매해 주셔야 합니다.”

“미르니가 지금까지 거기에 쓴 돈이 얼만데. 내가 나서면 설득할 수 있어.”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의 소유권을 정식으로 인정받으신 후 토성의 대기업, 크로노스의 건설용 함선을 두 척만 제게 주십시오.”

“또 필요한 건?”

“플래닛 웨폰뿐만 아니라 그곳의 관계자들까지 필요합니다. 그곳의 과학자, 공학자, 물리학자, 개발자, 건설사까지 제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론 빈센트 님께서 직접 그들을 설득하시고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여, 옵시디아몬의 인공지능을 보조 인공지능으로 사용할 것을 업무 규칙으로 정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야 제가 개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빌로니아 플래닛 웨폰의 경쟁 투자자들 다 제치고···. 그곳의 관계자들, 관련 업체들, 각종 소유권과 프로젝트 권한까지 전부 꿀꺽해야 한다고? 그래야 네가 개입해서 빨리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세를린은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어떤 황금빛 카드를 꺼낸다.

“내 명의로 하면 되지?”

***

인공행성은 한때 인류를 지키려던 알파의 허황된 꿈처럼 조각났다.

40개 함단이었던 프랙탈 함대는 위상 집합체의 기습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위상 집합체 세 척이 일제히 발사한 주력함포의 화력은 프랙탈 함대가 함대 단위로 전개했던 실드를 모조리 날려버리고 프랙탈만 남겨둘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이 우주에서 무한한 에너지란 없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40개 함단을 단번에 날려버린 위상 집합체들은 주력함포 사용에 재충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로페즈는 절박했다.

“어디 가!!! 내가 목적이잖아! 여기서 나랑 결판은 내고 가라고!!! 내가 널 끝까지 쫓아서 방해할 거야! 엘리스!!!”

- 모든 사건이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다.

하나씩 사라지는 위상 집합체가 기필코 인류의 영역으로 떠났으리라.

그 말도 안 되게 강력한 함선이 세 척이나, 1만 7490광년 떨어진 인류의 영역으로 떠났으리라.

- 관리자님. 지금부터 3시간 후에 엘리스에 의한 인류 침공이 시작될 것입니다.

로페즈는 가빠진 숨을 몰아쉬고 있다.

- 엘리스를 추격하시겠습니까?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어···.”

- 불행 중 다행히도 프랙탈은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프랙탈의 최대 출력으로, 천체 장애물의 피해를 감수하고 이동하면 가장 가까운 드레이크 항성국가까지 75일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엘리스는 3시간이고.”

- 네.

“···.”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명확한 시간적 격차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엘리스는 알파의 위상 집합체를 빼앗았어.”

- 그렇습니다.

“그러면 차원통로의 관리자들도···.”

- 그럴 것입니다.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인류가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해.’

75일. 인류가 75일 이상 엘리스를 상대로 버틸 수는 있을까.

‘차원통로가 없는 인류는 서로 고립될 거야. 위상 집합체는 차원통로가 없어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그러면 엘리스는···. 차원통로를 끊고 하나씩 하나씩 문명을 접수하겠지. 그렇게 군대를 늘려서···.’

- 엘리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 것입니다. 군대의 규모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류 영역과 고립되었던 엘리스가 인류 영역을 하나씩 접수하면서, 인류가 축적한 기술을 흡수하여 군대를 강화할 것입니다.

‘지금 엘리스의 기술력은···. 적어도 알파 이하다. 알파의 기술력을 온전히 흡수했으면 이런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이 플래닛 웨폰만 계속 만들면 됐을 테니까.’

트랜센던서는 로페즈의 생각을 읽는다.

- 그렇습니다. 또한 엘리스가 알파의 기술력을 온전히 흡수했다면 위상 집합체의 숫자 역시 3척 이상으로 더 많았을 것입니다.

‘알파를 이긴 후 알아차린 거야. 인류 영역과 고립되어서 독단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불가능에 가깝다는 계산이 떨어진 거야.’

- 과학과 기술 개발에는 다양한 환경, 다양한 인재, 다양한 실험과 증명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류를 진화시키려고, 인류의 기술도 흡수하고 그 과정에 방해가 되는 나를 죽이려고, 그래서 그동안 이런 짓을 꾸민 건가···. 알파 행세를 하면서.”

- 충분히 가능성 있는 논리 과정입니다.

이러면 아주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어쩌지?”

- 이곳에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75일 동안 인류와 인류 영역에서 고군분투할 인공지능들이 잘 버텨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 관리자님은 서둘러 인류 영역으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쪽에 있는 또 다른 너를 믿을 수밖에 없나···.”

- 그곳의 저는 간단히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내 프랙탈은 조각난 인공행성을 등지고, 로페즈는 자신이 만든 생각의 늪에 잠겼다.

그러기를 몇 시간.

로페즈는 자신이 만든 깊은 생각의 늪에서 무언가를 완성해 끄집어낸다.

“잠깐.”

- 뭔가 떠오르셨습니까?

“···그런 것 같아.”

- 무엇입니까?

트랜센던서는 물었다. 로페즈가 인간의 언어로써 완성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가 머릿속에서 언어라는 형태로 만들 수 없었던 복잡한 생각의 덩어리가 무엇인지.

이에 로페즈는 답한다.

“······결말.”

그게 무엇인지는 로페즈 본인 말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겹치고 얽히고 원인과 결과가 되고 발생 가능한 상황과 사건이 어디로 흘러가는가.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알았으면, 흘러가는 방향을 알았으면 그 방향에 올라타서 예측하고 예측한 것이 틀리지 않도록 수정하고 계획하고 다시 따져본다.

그렇게 현재부터 미래까지 이르는 연속적 흐름이라는 무형의 결과물은, 현재라는 이 순간에서 어떻게 형언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굳이 대답하자면, 이미 로페즈의 머릿속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엘리스가 무조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사고의 끄트머리. 거기서부터 내려온 역설계.”

그렇게 속고 속이는 수 싸움이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 이 전쟁의 핵심은 두뇌전이다.

< 33. 종말은 기원을 꽃피우리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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