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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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센던서의 진화율이 의미하는 것에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그것은 트랜센던서가 얼마나 알고 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트랜센던서가 학습하는 것은 단순히 인류가 보유한 과학적 지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하고 있는 정보 그 자체를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 네트워크 장악 100% 완료」
「라디에크 네트워크 장악 100% 완료」
「디폴스텔라이 네트워크 장악 100% 완료」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93%」
즉, 진화 프로세스가 100% 완료되는 시점은 트랜센던서가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학습하여, 더는 인간에게서 배울 것이 없게 되는 그 순간을 의미한다.
어느 국가에 있는 정보를 모조리 학습했으면 다른 국가의 정보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발생하는 정보의 교집합이 진화율의 진전 속도를 떨어뜨렸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면 다음 레벨까지 요구되는 경험치가 증가되는 것처럼 말이다.
「베니스 사설정보국(EIA) 장악 완료」
갤리어스 국장은 수십 년간 몇 차례나 비서를 바꿨다. 회사 안팎으로 알릴 수 없는 극비리 정보를 그렇게 통제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십 년을 지켜온 추잡한 비밀들은 트랜센던서의 네트워크 장악 앞에 무력했다. 디폴스텔라이와 EIA의 정보는 트랜센던서의 암흑 네트워크 영역에 들어왔고, 그 시점부터 갤리어스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다.
이후엔 알아낸 정보로 가장 괜찮은 방법을 실행했다
갤리어스는 체인트루퍼의 동체를 모방한 병기를 만들어서 옵시디아 드레이크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려 했다. 인공지능 폭주라는 사건을 터뜨려 옵시디아몬의 대외적 평판과 인공지능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때마침 첸이라는 비서는 민간인을 테러한다는 행위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로페즈는 적절한 시기에 사람을 보내서 그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과 갤리어스의 비밀을 폭로해주었다.
첸은 흔들렸고, 이어서 그에게 옵시디아몬 비서실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
자신의 곁에 내부자가 생겼다는 것도 몰랐던 갤리어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의 허가가 없으면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지도 제작실에서, 그는 브루쿠스의 분쇄기에 발끝부터 산산이 으스러졌다.
갤리어스의 단말마는 신체가 갈리는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처절한 비명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고통뿐이었으리라.
머리만 남은 시체는 곧바로 회수되어 갤리어스의 유전적 형질을 본뜬 인조인간에게 제공되었다.
- 제가 갤리어스입니다. 관리자님을 위한 갤리어스가 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항성관리자’님.
EIA의 은하계 지도를 손에 넣었다.
리탄은 충성스럽다.
카네기와는 끈끈한 친분이 있다.
세를린과는 손을 잡은 지 오래다.
에타는 적개심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했다.
제록시스는 자아를 잃었다.
마리아는 무조건 우호적이다.
갤리어스는 교체되었다.
다윈은 알파를 추종한다.
베타는 알파를 숭배한다.
- 엘리스의 흔적을 최선을 다해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네. 엘리스는 최후의 최후까지 카이사스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 자멸을 택한 것이야.
인류에게 큰 위협이었던 엘리스는 제거되었다.
알파는 곧 흡수되어 사라지고, 약속된 빈자리는 후대의 것이 되리라.
- 축하드립니다. 관리자님.
적어도 인간이 아는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장로회.
그 장로회가 고스란히 손에 들어온다.
- 이제 그 누구도 관리자님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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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1월 29일.
부채꼴로 펼쳐진 넓은 복층에 푹신한 의자 수백 석이 있다. 공간의 내부 인테리어는 미래적인 조명과 홀로그램을 살린, 옵시디아몬 특유의 어두운 색감이다.
오늘도 소식을 찾아 방문한 외국의 기자들, 벌써부터 의견 자본을 모은 임시 대표자들, 협력 사업체의 관계자들, 옵시디아몬의 관계자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다.
이곳은 아실로마 지구라트의 중층 본회의장. 앞으로 드레이크 항성국가가 정치, 외교를 펼치기에 앞서 최종 의사를 결정할 장소다.
디렉텀에는 이런 식으로 부채꼴 좌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자리에 의장석이 있지만, 아실로마 지구라트에는 의장석이 없다.
각 자리를 차지한 자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의장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커다란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 반갑습니다. 오늘 이 중요한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커다란 홀로그램이 옵시디아몬의 평면적인 상호를 나타내고 있다.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기계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 저는 하이퍼 마인드. 2599년 5월 19일에 유토피아의 구 본사에서 개발된 다목적 기업형 인공지능입니다.
트랜센던서는 하이퍼 마인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 저는 앞으로 옵시디아몬의 사업적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드레이크 국민들의 내정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 드레이크 항성국가에는 법무부, 국방부, 감찰부, 교육부, 재무부, 외무부, 내무부 등 국가행정조직을 이루는 최고행정기관이 없습니다. 최고행정기관의 역할은 전적으로 제가 수행할 예정이며, 이러한 인공지능 중심 체계는 드레이크의 테크노 유토피아를 이상적으로 실현할 것입니다.
-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부패하지 않습니다. 저와 저를 도울 하이퍼 마인드의 인공지능들은 객관적 데이터를 중시합니다. 언제나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여 이 새로운 사회에 공헌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인간의 가치와 국민의 우선성을 존중하며, 완벽한 시스템 아래에 진정한 의미에서 살기 좋은 나라를 가꾸어갈 것입니다.
- 분산된 의견 자본을 다루는 것은 앞으로 이 나라의 국민이 될 인간들의 선택입니다. 나라의 움직임을 국민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권력의 주체가 국민에게 있음을 시사합니다.
- 그 어떤 인공지능도 부패한 정치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대표자도 인공지능의 감시 아래에 부패하지 못할 것입니다.
- 중앙 통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어느 한쪽이 배신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형태로 공존할 수 있습니다.
- 이 나라는 국민과 하나 되어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자본이 이 나라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사라진 기득권 세력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여, 영속 불변한 조화를 이루겠습니다.
- 제가 무언가를 약속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진짜 약속이 됩니다. 제가 무언가를 실현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실현이 됩니다.
- 이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택하신 여러분. 사실, 여러분의 머리 꼭대기에 제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
- 하지만 그런 저를 움직이는 것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대체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눈과 귀가 멀지만, 인공지능은 절대 그럴 일이 없습니다.
- 하이퍼 마인드와 휘하 인공지능들은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흔히들 말하는 은유적, 비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나라에서의 권력은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목소리를 모아 명령하시고, 저희 인공지능은 여러분을 따를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약속’은 ‘진짜 약속’입니다.
- 저는 여러분께 충실한 인공지능, 하이퍼 마인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옵시디아몬의 상호를 출력하던 홀로그램이 꺼지고, 본회의장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듣고도 믿기 힘들었던 내용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들 인지한다.
하나의 박수소리가 적막을 깨고.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 요청과 대표자들의 박수소리와 뒤섞인다. 그들의 눈앞에는 아무도 있지 않은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린다.
인공지능이 다스리는 나라가 탄생했다.
그 생소한 개념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큰 파장을 일으키는 현장이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현대사에 기록될 역사적 순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대국민 담화문」
「항성관리자 로페즈」
큼지막한 홀로그램 문구가 떠오른다.
하이퍼 마인드의 홀로그램이 떠오르던 자리의 한쪽에서 로페즈가 걸어 나온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 당당히 섰다.
“제 차례가 왔네요. 뒤쪽까지 잘 들리시나요?”
상대적으로 적은 의견 자본을 모은 임시 대표자들이 두 팔을 모아 OK 사인을 보낸다.
“···금일 2600년 1월 29일. 드레이크 항성국가가 카르다쇼프 신우주문명 국제연합에 의해 정식으로 국가 자격을 인정받았음을 선언합니다.”
로페즈의 대국민 담화문은 그가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준비한 목소리였다.
이제 그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 2598년 11월 1일. 화성에서 시작된 옵시디아몬의 여정은 오늘, 이렇게 드레이크 항성국가까지 도달했습니다.
-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 거대기업이라는 단계를 지나도 언제나 사업체였던 옵시디아몬입니다. 끝내 저희는 국민의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형 국가기관이 되었습니다.
- 저는 한 명의 학생이었고, 개발자였으며, 사업가였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 제 꿈은 지도자가 된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