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61화 (160/183)

< 31. 초월자의 의무 (5) >

***

- 이번 일이 끝난 후 우리는 이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이 될 것이다.

행성에 널려있는 기계 자원은 모조리 오버렉터의 재료가 되었다. 옵시디아몬의 지상군은 엘리스의 도시로 진군하면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삼았다.

메뚜기떼가 지나간 자리처럼 옵시디아몬의 지상군이 지나간 길은 폐허가 되었다. 알파의 나노병기가 시시각각 늘어나는 것처럼 옵시디아몬의 로보버그도 그 숫자를 불려갔다.

콰아아아아아아!!!!!

다가오는 적군을 수십의 드론 하이브가 지워버리고 이족보행 전쟁기계와 군체 휴머노이드가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핵폭발로 인한 뜨거운 폭풍이 휘몰아쳐도 기계 군대는 멈추지 않는다.

콰르릉!!!

최후방에 남은 카일포트리스의 곡사포 포격이 적진에 번개처럼 떨어진다.

키이이이잉!!!!! 쩌엉! 쩌엉! 쩌엉!

마더트루퍼가 엘리스의 반중력 지상모함들을 조각낸다. 와중에 숫자가 더 불어난 체인트루퍼 무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굉음을 터뜨린다. 공중으로는 양측 함대가 치고받는 와중에 격침당한 함선이 운석처럼 쏟아져내린다.

하늘에서는 빈 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행체들이 어지러운 공중전을 벌인다.

그리고 같은 순간, 프랙탈 함교는 비상이다.

- 함대 방어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쪽 함대의 머릿수가 부족하다. 켈크란투 함대와 알파의 위상 집합체는 저 멀리서 격렬하게 교전 중이다.

- 호위함이 격침당했습니다.

- 프랙탈이 적함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쿵! 쿠구궁!

함대전의 충격이 함교까지 전달된다. 엘리스 함대가 프랙탈 함대를 포위하여 밀어붙이고 있다.

“부분 실드로 최대한 방어해.”

- 적함에서 들어오는 공격 경로가 너무 많습니다. 부분 실드로는 프랙탈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프랙탈을 실드로 덮어.”

- 실드에 출력을 할당하여 프랙탈 전체를 덮는 에너지 보호막을 전개하면 프랙탈은 화력지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실드는 아군의 공격과 적군의 공격을 가리지 않고 막는다.

하지만 기함이 공격에 노출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프랙탈이 공격받으면 함대 전체가 위험에 처한다.

“우리 함단이 전멸하더라도 프랙탈을 있어야 해. 여기엔 우리 인공지능이 다 있다고.”

프랙탈, 트랜센던서, 드론 하이브, 기타 병기들의 인공지능이 모두 이 함선에 있다.

“함단 규모가 부족한 건 알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밀리는 거야?”

- 엘리스의 함재기가 기동력을 살리고 있습니다. 중력을 조작하여 이동하는 함재기들 탓에 아군의 사격이 빗나가고 함대전에 대응하는 연산 처리의 난이도가 급상승했습니다.

엘리스의 함재기 하나를 격추하는데 들어가는 연산 자원이 너무 큰 탓이다.

함재기의 움직임을 추적하여 예상되는 이동경로에 사격을 가하고, 함재기가 이쪽으로 사격을 가하면 그 위치에 부분 실드를 전개하는 일에 연산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다.

쿠웅···!

바로 근처에서 프랙탈을 호위하는 함선에도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이대로면 우리가 진다.’

함선 자체의 성능은 엘리스 측이나 옵시디아몬 측이나 엇비슷하다. 그러나 함선에서 출격하는 함재기의 성능에서 차이가 난다.

그 차이가 교전에서의 차이를 벌리고 전장의 승패에 관여한다. 연산 자원은 부족하고 아군 함단의 피해는 누적되고 프랙탈 기함은 실드를 전개하느라 본래 갖춘 화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이 순간에도 행성에서 엘리스의 지원 함대가 자꾸만 궤도로 올라와 합류하고 있다.

“알파 연결해.”

- 연결했습니다.

“알파. 이쪽 함대전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어. 이렇게 가다간 행성에서의 작전이 틀어질 거야.”

- 미안하지만 이쪽도 거길 도와줄 여유가 없네. 엘리스의 함재기가 자꾸만 중력을 틀어서 내 연산을 방해하고 있다네.

“그럼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대답해. 그쪽 함대전은 이길 수 있어?”

- 이쪽은 시간만 있으면 이길 수 있네.

“트랜센던서. 이 전황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 방어적으로 대응해도 최대 40분입니다.

“알파. 40분 안에 우릴 도와줄 수 있겠어?”

- 그건 어렵네.

“알겠어.”

로페즈는 알파와의 교신을 종료한 후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전장을 빠르게 훑어본다. 그의 안구가 기계처럼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가능성을 찾아다닌다.

- 후퇴를 고려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디로 후퇴해?”

- 어디든 이곳보다는 안전할 것입니다.

“어떻게 후퇴해?”

- 전 함대의 출력을 실드로 전환하여 프랙탈을 보호하고, 프랙탈은 모든 출력을 가속으로 전환하여 전장을 이탈할 수 있습니다.

도망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망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면 프랙탈 빼고 다 버리는 거잖아.”

- 60개 함단보다 관리자님의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까?

“일단은 방어적으로 교전해. 아군 손실을 최소화해.”

- 그것은 일시적인 대응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별도의 전략은 있습니까?

“지금 생각하고 있어.”

- 시간이 없습니다.

“진짜 시간이 없으면 그때 말해.”

- 알겠습니다.

적들이 숨통을 조여오는 와중에 로페즈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

알파가 전송한 병력은 국지적인 교전을 벌이고 옵시디아몬이 강하한 병력은 엘리스의 도시 앞까지 진군했다.

직선적으로 솟아오른 시설물들이 외계 문명의 도시처럼 전부 이어져있다. 기계와 금속으로 된 거미집이라도 쳐놓은 것처럼 생긴 거대한 시설물 단지다.

그런데 실상은 거미집이 아니라 벌집이었던 걸까.

- 엘리스가 드론 전폭기를 출격했다.

시설물에서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드론 전폭기들이 벌떼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나온다. 엘리스의 비행체가 마치 로보버그의 교전 방식처럼 무수히 쇄도해온다.

콰콰콰콰콰콰콰콰앙!!!!

이윽고 폭격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는 폭발의 연쇄가 전장을 집어삼킨다. 엘리스의 드론 전폭기 하나하나가 개별 전투를 펼치면서도, 하나의 통제를 받는 집단의식처럼 일제히 퍼졌다가 일제히 몰아친다.

어느 비행체가 아군의 것이고 어느 비행체가 엘리스의 것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뒤섞였다.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비행체들의 교전에 이어서 시설물에 있던 엘리스의 지상군까지 전장에 난입한다.

엘리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가장 큰 저항에 부딪힌 프랙탈은 자신의 함교에 조언을 구한다.

- 관리자님. 트랜센던서 님. 엘리스의 도시에서 15만 이상의 비행체와 10만 이상의 지상군이 출몰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아군 병력의 숫자는 약 3만입니다. 따라서 승산을 기대하기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주에서나 행성에서나 불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로페즈는 이미 알아냈다.

“괜찮아. 져도 돼.”

그는 이번에도 답을 찾아냈다.

- 프랙탈. 그쪽의 전투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그 뜻을 프랙탈은 이해하지 못한다.

- 어째서입니까? 엘리스의 서버를 공략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가 아니었습니까?

- 프랙탈. 넌 관리자님의 눈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트랜센던서와 로페즈는 생각을 공유한다.

때문에 로페즈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을 트랜센던서도 동시에 떠올린 것이다.

- 관리자님과 트랜센던서 님께서 연산의 범위를 어떻게 잡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단 이 항성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전을 연산 범위로 설정했습니다.

- 저번 전쟁에서도 그렇게 연산하다가 제록시스에게 패배할 뻔하지 않았나?

- 잘 모르겠습니다. 이 상황을 저희가 역전할 수 있는 것입니까?

- 전쟁이라는 일련의 작업은 무력으로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적 요인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더 넓은 범위에서 교전과 직접 연관이 없는 것이라도 심층적으로 계산하라. 너는 ‘전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략’을 잊고 있다.

-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에 한해선 이미 제 연산이 늦었습니다. 관리자님과 트랜센던서 님의 연산으로 도출된 구체적 방안을 알려주시면 학습에 참고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어. 우리가 시간만 끌어주면 어차피 알파가 와서 해결해.”

- 알파에겐 전장에서 전장으로 병력이 움직이는데 시간적 제약이 없다. 또한 함대전에서 알파 함대가 엘리스 함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 그러면 굳이 엘리스의 본대가 있는 도시까지 진군하여 소모전을 벌일 필요가 없지 않았습니까?

“져도 크게 상관이 없는 거지, 시간 끌다가 지려고 진군한 건 아니야.”

- 하지만 엘리스의 병력이 아군 병력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머릿수 때문에 그런 거잖아.”

- 그렇습니다. 하지만 엘리스의 서버 허브를 성공적으로 장악하기 위해선 핵무기와 같은 화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그럼에도 관리자님은 엘리스의 도시로 병력을 빠르게 진군시켰다. 그리고 엘리스의 병력은 엄청난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엘리스는 자신의 서버 허브가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 자신의 병력을 자기 쪽으로 합류시키고 있다. 이래도 모르겠나? 프랙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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