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초월자의 의무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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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가건물에 휴머노이드가 들어와서 의자와 테이블을 놓아주었다.
베르도와 로페즈는 휴머노이드가 놓아준 의자에 앉아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동맹국이라는 말씀이신가요?”
“허허. 의미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동맹국이라고 부르죠. 상호방위조약이 관계의 첫걸음이 되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경제 협정, 무역 협정 등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말씀드리고 싶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일종의 우호국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기술약소국이라며 무시당하던 화성은 어느샌가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높아졌다.
그런 화성과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가 일찍이 형성된다면 국제사회의 외교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힘도 커지기 마련이다.
또한 신흥국가에 부족한 초기 기반을 화성에서 끌어와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화성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 유력해 보이는 신흥국가와 손을 잡아서, 다방면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들이 이민하면서 생기는 자국의 손실을 관리하기 위해선 이민을 받고 있는 나라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건 화성이나 드레이크나 서로 이득을 보는 관계다. 그것도 다른 지도자들보다 훨씬 앞서 만드는 관계다.
“화성이랑 드레이크가 그런 관계가 된다면 저야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제 고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화성은 태양계 연합의 핵심이니까요. 저는 좋습니다.”
로페즈가 별다른 조건도 없이 선뜻 수락하자 베르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예전에만 해도 두 사람 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면 참 멀리도 왔군요.”
“네. 확실히 그렇죠.”
“필리스버그 정권이 무너지고 그 와중에 제가 당선되고. 이거야 원···. 세상만사는 정말 모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때를 떠올리고 있자니, 지금 저희 둘의 모습이 보고도 실감이 안 나는군요. 허허허.”
“행성대통령 대 국민으로, 행성대통령 대 기업인으로, 이제는 같은 지도자 대 지도자로서 잘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와 드레이크 관리자님이 손을 잡는다면 양국에 밝은 앞길이 펼쳐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이곳은 옵시디아몬의 새로운 본사, 아실로마 지구라트라 불리는 초고층 하이퍼 타워다.
고층에는 하이퍼 마인드 서버센터가 있다.
- 장로회에서 에타에 해당하는 그는 여러 작업 업체에 관여하여 의뢰비를 속이고 차익을 챙긴 것입니다.
“모략의 정점이라고 해서 뭔가 싶었는데, 그냥 사기꾼이었네.”
- 현시점에서 관리자님께 아무런 위협도 도움도 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지금의 위치에 올라와보니 에타는 정말 별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마리아가 준 정보는?”
- 프랜시스 다윈(Francis Darwin). 그는 다윈 재단의 실질적 리더이자 장로회에서 3번째 일원인 생물의 정점. 감마에 해당하는 일원입니다.
- 다윈 재단의 본거지는 네메아(Nemea) 항성국가의 오펠테스(Opeltes) 구름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네메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생명공학, 유전공학, 분자생물학 등을 적극 활용하여 최신 의료기술이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하지만 실상은 인공생명체, 생체부품, 생체소재, 생물학무기, 생체병기 등 생명 분야의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여 생명의 무기화를 실현하는 곳입니다.
“네메아 정부는 그걸 알면서 다윈 재단을 밀어주고 있는 거야?”
- 그것은 파악할 수 없습니다.
장로회의 엡실론, 마리아와 거래를 성공하면서 감마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다윈 재단의 실질적 리더인 프랜시스 다윈은 장로회의 3번째 일원으로서 능력이 충분해 보인다.
작년에 붉은 행성과 유토피아에서 조우한 카르민펙토스 재단의 생체병기들은 현대의 최첨단 병기에 대응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다윈 재단의 본거지라는 곳에는 또 얼마나 무지막지한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맞서고 싶지 않은 상대야. 굳이 맞설 이유도 없고.”
로페즈는 손짓으로 자기 주변에 홀로그램을 펼친다.
옵시디아몬은 화성에서 거대기업으로 인정받은 후 화성의 1차 국가 심사를 통과하면서 입주자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입주자들은 임시 시민권을 가지며 드레이크 쌍성계가 공식적으로 국가자격을 인정받았을 때 진짜 시민권을 가지게 된다.
“화성이 주관하는 심사는 통과하는 게 당연하고···. 카르다쇼프 신우주문명에서 각국의 평가단들이 불시에 와서 심사할 거라고 했어.”
- 지금도 국제사회의 평가단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도심에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추적해. 추적해서 이 행성과 도시가 고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조성해.”
- 알겠습니다.
지금은 도시의 부족한 인구수를 휴머노이드로 채우고 있다. 국제사회의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면 화성에 있는 유토피아의 절반을 이곳으로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380만 명을 수용하는 콜로니다. 그중에 약 290만 명이 이 행성으로 들어와서 드레이크 항성국가의 국민이 될 예정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런 대규모 고밀도 계획도시를 지어둔 것이다.
태양계 전역에선 드레이크 항성국가의 홍보가 범람하고 있고 이를 평가하는 여론은 무조건 우호적이다. 옵시디아몬이 드레이크 항성국가를 건국하고 있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기업이 앞다투어 초기의 자리를 선정하려고 모여들었다.
이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사람들과 수익을 창출해보려는 이익집단들이 초기의 도시 시스템을 빠르게 채워주고 있는 상황이다.
“켈크란투 쪽 움직임은?”
- 암흑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켈크란투의 가속 방향을 특정했습니다. 제록시스는 알파에게 조종당하여 인류 영역 바깥으로 켈크란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 그리고 켈크란투에 타라누쉬의 본대로 추정되는 63개 함단이 합류하여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동 중입니다.
알파가 제록시스의 군대를 어딘가로 옮기고 있다.
“···제록시스는 새로운 주인님과 진정한 전투에 동참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 그렇습니다. 따라서 타라누쉬 본대가 합류한 켈크란투 함대는 알파의 의도에 의해 전장으로 이동 중인 것이라 추측합니다.
알파가 은하계에서 하는 일은 외계 문명 말살이다. 외계 문명이 될 수 있는 지적 생명체나 문명의 초기 단계를 형성한 지적 생명체 집단을 멸하는 것이다.
“굳이 타라누쉬의 본대를 쓸 정도로 저항이 거센 외계 문명이 있다는 뜻인가···.”
- 켈크란투 함대가 이대로 인류 영역에서 멀리 벗어나게 된다면 암흑 네트워크의 정보 전달 속도가 늦어질 것입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인류를 위한다는 이유로 외계 종족을 말살하고 있는 알파다.
드레이크 항성국가는 곧 건국될 것이고 옵시디아몬은 순탄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모든 일과 사업이 잘 풀리고 있으며 지금까지 있었던 위협적인 존재나 조직은 전부 배제하였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고, 잘 풀려서 바쁜 와중이다.
‘외계 종족을 말살하는 게 옳지 않다고 해서 알파에게 대항하는 건···.’
- 관리자님은 관리자님의 일을 하시면 됩니다. 알파의 일은 알파가 알아서하도록 두는 편이 좋습니다.
- 관리자님은 이곳 드레이크 쌍성계의 다른 행성들을 활용 가능한 행성으로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효율적입니다.
타라누쉬의 본대만 63개 함단이다. 거기에 알파의 미확인 군대까지 합쳐서 생각해보자면 그 규모는 하나의 강대국을 뛰어넘는 군사력이리라.
그런 군사력이 인류 몰래 은하계의 외계 종족을 말살하는데 쓰이고 있다.
반면에 옵시디아몬, 드레이크 항성국가의 군대는 41개 함단 규모다.
그러니까 이건 고민하는 것 자체가 괜한 낭비다.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말자. 알파는 못 이겨.’
여기에 참견해서 알파를 막는 것은 오지랖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어딘가의 외계 종족을 위한답시고 알파에게 대항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승산도 확실치 않고 그만한 피해를 감수할 여력도 없다.
‘난 바빠.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아.’
외면하자.
진화율 88%를 넘긴 트랜센던서의 말이 백번 옳다. 이건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지금은 드레이크 쌍성계에서의 일에 집중할 때다.
“···그래. 행성들 정리한 자료나 보여줘. 어디부터 개발할지 정해야 하니까.”
- 정보를 출력하겠습니다.
「메탈리아(Metalli1a): 1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금속 행성입니다. 풍부한 중원소가 매장되어 있어 자원 채굴장으로 활용성이 있습니다.」
“당장 중원소가 필요하진 않아. 다음.”
「레드스틸(Redsteel): 2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마그마 행성입니다. 중수소 기체 자원이 매우 풍부하여 자원 채굴장으로 활용성이 있습니다.」
“중수소 기체 자원도 그렇게 급하진 않고.”
「라우드마운틴(Loudmountain): 3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화산 행성입니다. 대기에는 탄소 자원이, 지하에는 방사성 원소 자원이 풍부합니다. 자원 채굴장으로 활용성이 있습니다.」
“탄소 자원이나 방사성 원소는 여기에도 있어서 당장 부족하진 않아.”
「애리조나(Arizona): 4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사막 행성입니다. 강풍에 풍화된 현무암의 암석 사막이 행성 전체의 환경이며, 기체 자원이 풍부하고 적정 중력에 가까운 중력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희토류와 광물자원이 가장 풍부한 행성으로 테라포밍 후 거주 행성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습니다.」
“거긴 일단 보류.”
「옵시디아 드레이크: 5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암석 행성으로 현재 관리자님이 계신 곳입니다.」
「호킹(Hawking): 6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암석 행성입니다. 적정 중력에 가까운 중력 수치와 희박한 대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하의 광물 매장량은 다른 행성에 비해 척박한 편입니다. 하지만 일부 영역의 얇은 얼음층 밑에 담수 바다가 있어 테라포밍 후 거주 행성으로 적극 활용할 가치가 있습니다.」
“담수···. 알겠어. 다음.”
「크라니카(Cranica): 7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얼음 행성입니다. 근접 탐사 결과, 단단한 얼음 지각 밑에서 깊이 610㎞의 지하 바다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지하 바다에서 생태계를 형성한 토착 해양 생명체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미약한 중력 수치와 중심핵의 부재로 인해 테라포밍은 불가능하지만, 해상 도시와 심해 연구소 및 심해 시설 등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가즈벨리칸(Gazvelikan): 8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목성형 가스 행성입니다. 수소와 헬륨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하나의 활용 가능한 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메니야(Domeniya): 가즈벨리칸과 동주기 자전을 하고 있는 화산 위성입니다. 하지만 그 부피와 질량은 행성에 필적합니다. 모성을 향한 면은 내부 물질이 중력에 이끌려 화산 활동이 활발합니다. 화살 활동의 반대쪽 면에는 현무암 황무지가 있으며, 마그마에는 풍부한 철광이 유동체로 녹아있습니다. 테라포밍이 가능하지만 화산이 뿜는 온실기체를 주기적으로 빼주어야 합니다. 활용성이 다양합니다.」
“여긴 당장 개발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환경이야. 다음.”
「알트블루버(Altblubber): 9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목성형 가스 행성입니다. 가즈벨리칸과 마찬가지로 수소와 헬륨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개의 활용 가능한 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토시(Atosey): 가니메데와 비슷한 암석 위성입니다. 활용 가능한 자원은 별로 없으나 부피와 질량이 행성에 필적하여 테라포밍에 용이합니다.」
「라아시(Lasey): 척박하고 작은 암석 위성입니다. 지각은 철, 니켈의 철질 암석입니다. 중력이 미약하여 테라포밍은 불가능합니다.」
「포르시(Forsey): 라아시보다 더 작은 암석 위성입니다. 규소 광물이 주성분인 소행성이 알트블루버의 중력에 사로잡힌 것으로 추측됩니다. 마찬가지로 중력이 약하여 테라포밍은 불가능합니다.」
“여기도 나중에 천천히 개발하면 돼. 다음.”
「페이다(Fayda): 10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암석&얼음 행성입니다. 암석 행성의 지각을 표면의 드라이아이스가 덮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성 내부 물질을 손보면 테라포밍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은?”
「블루스틸(Bluestee): 11번 공전궤도에 위치한 얼음 행성입니다. 드레이크 쌍성계의 마지막 행성이며, 행성 질량의 96% 이상이 드라이아이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산화탄소 자원 채굴장 이외의 활용 가치는 없습니다. 테라포밍 또한 불가능합니다.」
로페즈는 결정한다.
“이거, 4번째 사막 행성. 애리조나부터 개발하자. 희토류는 언제나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고 애리조나는 본래 기체와 중력이 있어서 테라포밍에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돼. 당장은 우리 도시도 다 못 채웠으니까 애리조나엔 광산부터 개발하고 테라포밍은 천천히 진행시켜.”
-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레나 씨 좀 불러줄래? 화성에서 유토피아랑 화이트홀 관련해서 미팅 또 잡아야 해. 거대기업 되면서 세금 빠졌으니까 세를린 총수님이랑 광물 거래비도 조율해야 하고.”
- 리탄의 화이트홀 미팅은 레나 비서가, 세를린의 미르니 미팅은 관리자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으로 알면 되겠습니까?
“맞아.”
-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리면서 레나를 호출하겠습니다.
***
장로회의 사이버 공간에서 알파는 베타에게 말한다.
“그쪽으로 사람들이 가지 않게끔 조치 좀 부탁하겠네.”
“예. 알파 님.”
“그래. 이제 자리 좀 비켜주겠나.”
“다른 일원과 나누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 일에 로페즈의 도움을 받기로 했네.”
“···타라누쉬 본대를 모두 손에 넣으셨는데, 설마 그래도 전력이 부족한 것입니까?”
“전력은 충분하네. 난 단지 로페즈가 더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네. 장차 나와 함께 자발적으로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일을 로페즈와 하려는 것이야.”
“아, 이해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없어지더라도 로페즈가 내 빈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지. 이번 일을 마치고 로페즈의 내면에는 변화가 생길 것이라 믿네.”
“그 친구도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알파 님의 한걸음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
“고맙네. 어서 들어가 보게.”
“예. 건투를 빕니다.”
미래를 건 마지막 파도가 오고 있다.
< 31. 초월자의 의무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