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54화 (153/183)

< 30. 신세대 (3) >

***

- 제타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 카파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로페즈는 제타의 자리에 찾아가 앉는다. 그리고 알파는 문 앞에 멀뚱멀뚱 서있는 카파를 일원들에게 소개한다.

“오늘 공지할 사항이 많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제타, 에타, 세타, 요타, 카파. 장로회의 현 인원 10명이 모두 모였다.

“우선은 새로운 일원, 카파를 소개하도록 하지. 카파는 ‘유통의 정점’으로 우리의 10번째 일원이 되었네.”

이번에도 알파는 먼저 일어나 박수를 친다. 자연히 다른 일원들도 알파를 따라서 일어나 카파를 환영한다.

“환영하네. 이쪽에 앉게.”

카파가 된 리탄은 카파의 기호가 새겨진 의자에 쭈뼛거리며 앉는다.

“장로회는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참, 새해가 됐으니 108년 전이네. 장로회는 2492년, 인류가 태양계 바깥으로 정착을 성공한 시대에 탄생했네. 개인의 영향력이 한 항성을···”

알파는 리탄에게 장로회의 배경과 규칙을 간단히 알려준 후 다음 단계를 넘는다.

“···본래 새로운 일원이 들어왔을 때는 우리 일원들과 차례대로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였네. 하지만 오늘은 공지할 사항이 많은 관계로 그 부분은 잠시 미루도록 하지.”

일원들은 알파의 공지라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

“제타. 일어나게.”

“예.”

로페즈는 일어선다.

“이 자리에서는 델타와 요타만 알고 있었겠지. 우선 저번에 벌어진 라디에크 전쟁에서 전대 제타는 숙청 대상이 되었네.”

그러자 에타가 질문한다.

“공석이 된 카파 님이 숙청 대상이 된 게 아니었습니까?”

모르는 일원들은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카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제타는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까. 제록시스와 로페즈의 싸움에 끝에 알파가 로페즈를 숙청한 줄 안 것이다.

“아니네. 지금 자네들이 보고 있는 제타는 전대 카파. 지능의 정점이라네.”

10번째 서열에 있던 로페즈가 6번째 서열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소식에 반감을 품는 자는 델타 말고는 없어 보인다.

“무력의 정점. 전대 제타는 현 제타가 장로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현 제타에게 위해를 가했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인류의 영역에 소란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 요타에게까지 위해를 가했지. 그때 자네는 기분이 어땠나? 요타.”

카네기는 진심을 다하여 대답한다.

“치욕스럽고 분했습니다. 그리고 미치도록 아팠죠. 저한테 그런 짓을 한 배후가 전대 제타 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장로회에서 사교성이 가장 좋기로 평가받은 인맥의 정점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다들 수긍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나서서 조사한 것이고, 어쩔 수가 없었네. 모두가 소중한 일원인 만큼 규칙을 위반했을 땐 공평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사건의 진상이 어떻든 알파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일원들의 공석이 생기면서 새로운 일원을 물색했네. 자네들과 상의하지 않고 급하게 결정한 점은 양해를 부탁하네. 공석이 너무 많아서 빠르게 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나는 이 자리까지 기꺼이 와준 유통의 정점, 새로운 카파를 받아들였네.”

그러면서 알파가 손짓하자 사전에 로페즈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리탄이 자신을 소개한다.

“아, 반갑습니다. 이번에 장로회의 10번째 일원, 유통의 정점이 된 카파입니다.”

빠른 서열은 늦은 서열의 현실 정보를 알게 된다.

“저는 일리노이 리탄. 태양계 화성의 대기업인 화이트홀 그룹의 회장입니다.”

“화이트홀?”

“화이트홀이었구나···.”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전쟁이 끝난 후엔 화이트홀의 이름이 태양계를 기점으로 우주 전역에 활발히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통의 정점이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델타는 다음 일원으로 리탄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반발심을 드러낸다.

“알파 님. 이번에도 태양계에서 새로운 일원을 뽑으신 건 어떤 의도가 있어서 입니까?”

“내게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카파가 앞으로 장로회에서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네.”

“화성에서만 두 번째이지 않습니까. 이러면 각국의 균형이 깨질 것이 염려됩니다.”

“균형이 깨질 정도는 아니라네. 알만한 자들은 다 알지 않는가? 여기 있는 제타가 곧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어차피 로페즈는 태양계, 화성을 떠나서 드레이크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그렇기에 균형 면에선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시뮬레이션 해봤네. 카파는 아주 크게 될 인물이고, 일찍이 장로회에 소속되어 내 통제를 받는 것이 옳다는 계산이 떨어졌지.”

알파의 시뮬레이션은 알파가 정의하는 인과율을 계산한다.

그 인과율에는 화성에서 리탄이 로페즈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으리라.

“자, 그러면 이쯤에서 각자의 의견을 묻도록 하겠네.”

장로회의 의견조사다.

“우선 새로운 카파가 들어온 것에 이견이 있는 자가 있다면 거수해보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전대 제타를 숙청한 것에 이견이 있는 자가 있다면 거수해보게.”

알파의 뜻에 이견은 없다.

“다른 사항이 있는 자는?”

알파의 뜻에 이견은 없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있었다. 그자는 당연히 델타다.

“전대 제타의 숙청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원의 손실로 새로운 카파를 들인다는 결정사항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계속하게.”

“하지만 전대 카파의 자리에 있던 지능의 정점이 단번에 제타의 자리를 차지해야만 했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제타의 자리는 선배의 축에 들어가는 책임 막중한 자리입니다. 막내였던 자가 1년도 안 돼서 선배 자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 않습니까. 물론 알파 님께서 지능의 정점을 편애하신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이번에 뽑으신 막내가 현 제타의 주변에 있는 인물이라고 하니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내가 카파에 해당하는 일원으로 저 자를 뽑은 이유는 방금 설명하지 않았나.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내겐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개념이 없기에 편애 또한 없네. 객관적이고 정확한 계산으로 결정한 일이네. 지능의 정점이 제타의 자리에 있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야.”

“그래도 이건 좀······.”

“더 구체적으로 가자면, 무력의 정점이 가진 ‘무력’이 지능의 정점이 가진 ‘무력’보다 약했다는 것이네. 반면에 지능의 정점은 ‘무력’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전대 제타의 능력을 추월하고 있지. 사실상 지금을 기준으로 지능의 정점은 감마나 베타와 비등할 정도로 성장하였네.”

늘 과묵한 베타가 딱 한마디 던진다.

“현 제타 님이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라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네나 감마의 자리를 아래로 옮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제타가 공석이 된 덕분에 이런 조치가 가능했던 것이네.”

감마는 이번에도 맹목적으로 알파의 뜻을 따라간다.

“델타 님. 알파 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좀 인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현 제타 님께서 그간 시련을 딛고 성장한 것에 박수갈채를 보내도 부족한 판에···.”

그리고 요타와 세타까지 나서서 간접적으로 로페즈의 편을 들어준다.

“저도 현 제타 님이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이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제가 전대 제타 님께 무슨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제 코뼈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맞아요. 지능의 정점은 지능이니까, 다방면에서 정점에 가까운 능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요. 이번에 알파 님께서 내려주신 조치는 아주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로페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2인자와 3인자가 무조건 알파를 따른다. 알파가 내 편이 되었으니까 2인자와 3인자도 사실상 내 편이 된 거야. 카네기와 세를린 총수는 진작에 내 편이었고.’

델타는 베타, 감마, 엡실론, 제타와 나란히 선배 축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알파는 로페즈의 편의를 봐주는 입장이 되었고 베타와 감마는 무조건 알파를 추종한다. 엡실론은 워낙에 변칙적인 일원이라 목소리의 힘을 따지는 것에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타는 자신의 편이었던 전대 제타까지 스스로 내치고 말았다.

때문에 로페즈를 적대하는 델타는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의 힘을 잃게 되리라.

마치 직장 내에서 실세의 태도가 바뀌어 은근한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엔 다 자업자득이다. 갤리어스 국장.’

프녹스를 죽게 만든 원인에는 갤리어스가 크게 한몫했다. 그때 로페즈의 가슴속에 새겨진 복수심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언젠가 내 손으로 죽인다. 분쇄기에 산 채로 넣어서 갈아버리겠어.’

“흠. 혹시 델타와 비슷한 뜻을 가진 일원은 없나? 있다면 거수해보게. 정말 괜찮으니까.”

모두가 침묵한다. 싸늘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 침묵 속에서 델타는 입을 다물고 만다.

“···없는 것 같군. 나도 그렇고 다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 이쯤에서 넘어가는 게 좋겠네. 델타.”

“예. 제가 잠시 잘못된 마음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알았다니 다행이네. 공지가 많아서 의견도 많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매듭이 금방 지어졌군. 자네들을 보니 내 조치가 옳았다는 확신이 들어서 다행이네. ···그리고 형식적으로나마 다 같이 제타를 축하하도록 하지. 축하하네. 제타.”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새로운 제타 님.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그리고 카파. 자네는 장로회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으니 그자에게 물어서 기본적인 것들을 알아내도록 하게. 내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알겠지?”

리탄은 로페즈를 떠올리며 즉답한다.

“예! 알파 님! 하하.”

“제타가 된 지능의 정점. 자네에게는 그 아래 일원인 에타, 세타, 요타, 카파의 정보를 정리해서 전송하도록 하겠네.”

로페즈는 에타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예. 알파 님.”

“다들 각자 일로 바쁜 와중에 모여줘서 고맙네. 내 공지는 이것으로 끝이니 해산할 사람은 해산하도록 하게.”

베타가 말한다.

“알파 님. 이번에 은하계 업무랑 전대 카파에 관련해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 우리는 나가서 이야기하세. 다들 수고가 많았어.”

“살펴 가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알파와 베타가 접속을 종료한 후 남은 일원들은 각자 인사를 나누며 하나둘씩 접속을 종료한다.

마지막엔 로페즈, 리탄, 엡실론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리탄은 머뭇거리며 로페즈를 부른다.

“그···. 제타 님?”

“···.”

“···.”

로페즈는 엡실론과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엡실론은 아무 목소리나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나한테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저기, 제타 님?”

“리탄 씨는 들어가세요. 나중에 간단한 것들 알려줄게요.”

“아, 예! 알겠습니다.”

리탄은 이 자리가 어색했는지 서둘러 접속을 종료했다.

이제 로페즈와 엡실론만 남았다.

“헤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부끄럽게···.”

“반응이 늦으셨는데요? 하하.”

엡실론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로페즈에게 확 다가들었다.

‘깜짝이야···.’

“저기요. 로페즈 씨.”

“네. 엡실론 님.”

“이 폐쇄적인 공간에 우리 단둘이 남았어요.”

“아······. 그러네요. 하하···.”

진짜 뭐 하는 인간인지 궁금하다. 문화의 정점이라는 엡실론은 태도나 성격이 굉장히 비이성적이다. 그리고 로페즈는 엡실론에 대해선 뭐하나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전쟁은 어땠어요?”

“전쟁이요?”

“로페즈 씨가 라디에크에서 제록시스 녀석 때려잡았잖아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런 걸 왜 묻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만···. 승리했으니까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엡실론은 로페즈의 바로 앞에서 턱을 괸다.

“그거 알아요? 최고의 저격수는 적들의 머리를 쏘지 않는데요.”

“그러면요?”

“다리를 쏘죠.”

“왜요?”

“그래야 적군이 아파서 막 소리 지르고, 살려달라, 도와달라 그러면서 엉엉 울죠.”

“···네?”

“그러면 그 옆에 있던 놈들이 동료를 구하겠다고 막 달려온다는 거예요. 어떻게든 끌고 가서 안전한 엄폐물 뒤에 숨기려고요. 아하하하하!!!”

좀 전엔 수줍게 웃었으면서 이번엔 웃음소리가 갑자기 괴상해졌다.

“하하···. 예···.”

“그러면 저격수는 동료를 구하러 온 놈들까지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술인가요?”

“아름···. 보통 그런 걸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

“네에에? 왜 그렇게 생각해요?”

“어···. 음···. 전장이잖아요? 전장에서 아름다운 일은 거의 없더라고요.”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야.”

엡실론은 로페즈의 양 뺨을 두 손바닥으로 감싼다.

“엡실론 님···?”

“저는 봤어요. 로페즈 씨의 그 우월한 병기들이 나약한 육체를 찢어발기는 현장을요. 그건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어요. 로페즈 씨는 예술가의 기질이 있다니까요?”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하.”

“그래서 저는 로페즈 씨가 더 좋아졌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저랑 만나실래요?”

“···농담이시죠?”

“한 번만 만나주세요.”

문화의 정점. 장로회의 5번째 일원 엡실론.

이것은 가치가 있는 정보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로페즈는 머릿속의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린다.

“저야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의도로···?”

“로페즈 씨랑 거래를 하고 싶어요!”

“무슨 거래요?”

“그건 만나서 이야기해요! 제가 옵시디아몬으로 메일 보낼 테니까 꼭 받아주세요! 받아주실 거죠? 헤헤···.”

절대 평범한 거래는 아니리라.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걸 보니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대충이라도 내용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좀 납치해주세요.”

그런 말을 이렇게 툭 내뱉을 수 있다니.

“죄송하지만 저는 작업자가 아닙니다. 저희 회사도 작업 업체는 아니고요.”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아, 제발요.”

도대체 뭘까.

“···거래라고 하셨으니까, 그 대가는요?”

“그 대가를 여기서 말할 수가 없네요. 아슬아슬하게 규칙에 걸려가지고. 헤헤···.”

“무언가의 정보인가요?”

“네! 정보! 로페즈 씨는 정보 좋아하잖아요.”

“오직 이 거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에요?”

“네!”

머릿속의 계산기는 치우자. 일단 엡실론의 정체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득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 30. 신세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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