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신세대 (2) >
***
- 관리자님.
“왜?”
로페즈는 퇴근한 다음에도 집에서 홀로그램 키보드를 조작하고 있다. 현대전에서 나노 단위의 전장이 다른 거시적 전장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이다.
- 레나, 리탄과 관련해서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내가 나서서 처리해야 되는 일이야?”
- 장로회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장로회···.”
듣기만 해도 싫다.
- 관리자님께서 직접 보시고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
오후 10시쯤에 술자리가 끝난 후 레나와 리탄은 주점 근처의 주차타워 쪽으로 걷는다.
주차타워로 가는 길은 주점과 오락시설이 밀집한 거리다. 번화가라고 부르기엔 건물의 높이가 낮은 편이고 늦은 시간엔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레나 씨는 이런 장소가 좋은 거예요? 분위기가 약간 뒷골목이나 망한 대학가 느낌인데.”
“고급스러운 것보단 여유롭고 조용한 게 좋더라고요. 아, 대학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유토피아에 교육기관이 들어올 예정이에요.”
“화성 정부에서요?”
“아니요. 옵시디아몬이 자체적으로요. 그래서 정식으로 학교라는 말을 붙일 수 없어서 초등학원, 중학원, 고등학원, 사립대학교라는 식으로 간데요.”
“그러면 교사는 휴머노이드가 해요?”
“애들 가르치는 교사는 당연히 사람을 써야죠. 나중에 옵시디아몬이 드레이크 항성국가로 인정받으면 학원은 전부 학교가 될 거예요. 지금 교육기관을 검토하는 건 그 준비단계죠.”
“우리 로페즈 님은 큰 그림을 참 잘 그리시네. 이번에 그쪽 사병들은 전부 경찰로 쓰기로 했다면서요?”
“드레이크 항성국가는 경찰 대신 치안군이라는 개념이에요. 장갑차, 전차, 공격 헬기, 중무장 화기까지 있어서 거의 군대나 다름없죠. 평소에 순찰할 때도 각종 기능이 탑재된 전투복과 자동화기를 장비하고 다닐 거예요.”
“도시 치안에 그 정도 공권력이면···. 총기소지 허용하려고요?”
“네. 어차피 요즘 세상에 돈만 있으면 총 구하는 건 어렵지도 않으니까요. 차라리 모두에게 허용하기로 했어요. 총기를 음지에서 관리하느니 차라리 양지에서 관리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하긴···.”
“재밌지 않아요?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일이요.”
“보고 있으면 신기하죠. 그런데 난 뭐를 만들면 돈 때문에 만들지, 로페즈 님처럼 진짜 필요해서 만들지는···”
툭!
지나가던 사람이 리탄과 어깨를 부딪혔다.
“아. 깜짝이야.”
“뭐야, 이 새끼···.”
놀랍게도 먼저 욕설을 한쪽은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뭐요? 새끼?”
파랗게 염색한 머리칼, 귀에 꽂힌 피어싱, 문신으로 꽉 채운 오른팔, 청바지에 통이 큰 박스 티셔츠, 딱 봐도 리탄보다 큰 체격에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다.
그리고 리탄보다 더 취한 사람이다.
“아저씨. 똑바로 안 보고 다녀?”
“이 좆만한 새끼가 누구보고 똑바로 보라 말라야? 어깨 부딪혔으면 서로 사과부터 하는 게 정상 아니냐?”
“씨발 뭐라는 거야 꼰대 새끼가···.”
리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바짝 다가선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이제 갓 스무 살 넘긴 것 같은데,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도 안 보고 사냐?”
그러자 레나가 리탄을 말린다.
“됐어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저희가 많이 마셔서요.”
레나는 그러면서 리탄에게 눈치를 준다.
순간 발끈했던 리탄은 또 의외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하···. 됐다. 그냥 보내줄게. 가라.”
리탄은 그대로 취객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렇게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야, 야. 어디 가? 너희 커플이냐?”
“무시해요. 회장님, 그냥 가요.”
“예, 예···.”
그러나 취객은 그대로 자리를 피하려던 두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야 이 씨발, 야. 보내주긴 뭘 보내줘? 좆밥새끼가 꼴에 여자친구 앞이라고 참는 척하냐? 와···! 하, 나 씨발.”
“참아요. 회장님.”
“놔보세요.”
끝내 리탄은 레나를 뿌리치고 취객의 코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간다.
“다시 말해봐.”
“뭐, 씨발놈아. 어쩔 건데.”
“너 안 되겠다.”
불필요한 기싸움에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퍼억!
리탄은 30대 남성, 일반인이었고 취객은 20대 초반의 남성, 운동을 조금 배운 일반인이었다. 아주 짧은 싸움의 결과는 리탄의 첫 주먹질 후 젊은 취객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왜 나를 건드려?! 씨발! 너도 내가 만만해?! 야! 일어나 이 새끼야!”
“아! 잠깐, 잠깐, 머리 때리지 마! 머리는 때리지 말라고!”
그냥 길거리 싸움이었다. 싸움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추한 다툼이었다. 패배한 리탄은 바닥에 엎어져서 취객의 발길질을 받아내고 있다.
퍽!
“머리는 때리지 말라고! 너 진짜 죽여버린다! 한 번만 더 머리 때리면···”
“내가 너 같은 새끼 수십은 잡고 다녔어! 이런 새끼는 꼭 처맞아야 배우지! 어?!”
레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취객을 가로막는다.
“일 크게 만들지 마세요.”
“너도 죽여버리기 전에 비켜. 나 화나면 아무도 못 말려.”
“술 때문에 일 크게 만들지 마세요. 그쪽이 이 사람 밟을 수 있는 건 이 시간대 이 장소에서 단 한 번만 가능한 일이에요.”
“난 여자라고 안 봐줘, 씨발년아.”
취객의 주먹은 레나의 왼뺨을 노리는 궤도로 날아들었고 레나는 취객의 주먹이 자신의 뺨에 닿기 전에 그의 아래턱을 휴대전화로 강타했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어으···?”
취객은 머릿속이 뒤흔들리는 감각을 맛보며 비틀거리더니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털썩!
바닥에 엉덩이를 부딪쳤다.
엉덩이를 부딪친 통증이 올라오기도 전에 턱뼈가 쪼개지는 감각이 한 박자 늦게 밀려들어온다.
“아아악!!!”
레나는 그가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리탄부터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이전과 같은 정중한 말투로 임한다.
“죄송합니다. 유토피아에서 이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아···. 저 양아치 새끼. 내가 술만 안 마셨어도···. 에이.”
“네?”
“잘 싸우시네요. 역시 그쪽 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하하하···! 쿨럭!”
리탄의 반응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혹시 많이 다치셨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그, 비서님. 아니, 레나 씨.”
“예. 회장님.”
“그런 딱딱한 말투는 그만해도 괜찮지 않겠어요? 우리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뜻이었다.
“아···. 네. 일단 이 일은 제가 처리하겠, 할게요.”
“뭐야! 너! 일리노이 리탄이냐?!”
취객은 바닥에 앉은 그대로 리탄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알아봤는데도 반말이냐 이 새끼야? 상황 파악이 안 돼?”
리탄이 쏘아보자 취객은 오히려 당당해진다.
“말 많고 탈많던 화이트홀 회장! 씨발! 그 애비에 그 자식까지 구린내는 똑같네! 오늘 이거 폭행으로 고소할 거야! 너희 둘이서 2 대 1로 나 구타한 거라고 지금!”
“고소해봐. 고소해보라고 새끼야. 할 수 있으면 마음껏 해. 그런데 너 고소할 돈은 있냐? 나는 뭐 씨발, 변호사로 군대도 만들 수 있는데.”
“뭐, 뭐···.”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가, 자신 있어?”
취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신? 있지. 이거, 오, 오늘 이거 인터넷에 다 올려버릴 거야. 디렉텀에 민원도 넣을 거라고. 네가 거리에서 시민 때리고 갑질하고 다닌 거잖아. 너, 넌 이제 좆됐어.”
“이봐요. 학생.”
레나는 마치 어린이를 혼내는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또박또박 말해준다.
“내가 학생한테 존댓말하고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왜 그랬던 것 같아?”
“안 궁금해, 씨발년아.”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그거 실수 한 번으로 인생 끝나버리면 너무 가혹하잖아. 네가 술 처먹고 살인을 했니, 강간을 했니? 어깨 부딪혀서 술김에 화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뭐?”
“지금 네가 보여주는 태도.”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바뀌어버린 레나의 말투에, 그녀 앞뒤의 두 사람은 혼나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스물 초반 같은 얼굴인데. 몇 살이니?”
이제 취객은 혼나는 청년이 되었다.
머리로 그녀의 말을, 사람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인데요.”
“네가 초면에 새끼라고 하면서 밟아버린 저 아저씨는 올해로 서른 살이야. 네가 초면에 죽여버린다고 했던 여기 이 씨발년은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고. 저 아저씨는 화이트홀 회장이고 나는 옵시디아몬 비서실장이야. 이제 네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이해가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