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52화 (151/183)

< 30. 신세대 (1) >

***

자택에서 로페즈는 휴머노이드에게 립스틱을 넘겨준다.

“이것으로 알파의 위협은 배제된 것으로 여겨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미친놈이랑은 엮이기 싫어.”

“알파는 관리자님께서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알파가 관리자님의 이용 가치와 잠재성을 제대로 평가하여 특별 취급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 사실을 알아냈다. 은하계로 진출한 인류가 지금껏 외계 문명과 조우하지 못한 이유, 차원통로의 관리자들이 사실은 알파의 거대기업이었다는 것, 그리고 알파는 인공지능도 인간도 아닌 복합적 지능체였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알파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인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인간 우선주의라는 선민사상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

“걔가 마지막엔 나보고 새로운 제타라고 했지.”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타의 자리는 관리자님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제록시스는 죽었고 알파와 이야기는 잘 마무리했다.

“내가 제타의 자리에 올라가면 델타가···. 갤리어스 꼰대가 가만히 있을까?”

“갤리어스 국장이 알파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일은 갤리어스가 관리자님을 향한 적개심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갤리어스는 무력의 정점인 제록시스나 기술적 특이점인 알파만큼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장로회에서 4번째로 높은 갤리어스가 자신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경계할 요소다.

“베니스 사설정보국은 디폴스텔라이 항성국가에 있어.”

“권력의 정점, 베타에 해당하는 인물도 디폴스텔라이 항성국가의 항성대통령입니다.”

처음엔 화성. 다음엔 태양계. 그다음엔 라디에크. 이번엔 디폴스텔라이 차례다.

“디폴스텔라이의 네트워크를 장악해. 굳이 급할 것 없으니까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진행시켜.”

“알겠습니다.”

할 일이 많다.

***

2600년 1월 8일.

유토피아에는 다양한 기업의 지점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는 당연히 화성의 대기업, 화이트홀도 있다.

「화이트텍(Whitetec) 유토피아 지부」

「내부 협력체 회의실」

검은 정장을 입은 옵시디아몬 측과 하얀 정장을 입은 화이트홀 측 관계자들이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다. 옵시디아몬 측 상석은 레나가, 화이트홀 측 상석은 리탄이 차지했다.

“함선의 정밀 회로를 궤도조선소에서 공급하는 방식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저희의 분자 공장을 탑재하여 함선의 건조 프로세스를 크게 단축하는 방식이죠.”

“분자 공장의 정밀성과 효율은 확실히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분자 공장을 들이는 비용으로 함선 관련 상품의 셀링 활성화가 될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화이트홀의 궤도조선소는 유토피아의 모듈 절반이 드레이크로 떠났을 때 화성의 주력 조선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투자와 같은 개념으로 도입하면 절대 손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성 최대의 궤도 건축물로 자리 잡은 유토피아는 구획의 절반 이상을 드레이크 쌍성계로 옮길 것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한 옵시디아몬의 입장에서 당연한 수순이지만, 화성의 국가적 입장으론 손해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베르도는 로페즈에게 유토피아를 사고 싶다고 제안했고, 로페즈는 행성대통령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베르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로페즈와 협상하였고 그 결과, 화성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써서 유토피아의 일부만이라도 구매하여 궤도에 남기는 식으로 이야기가 된 것이다.

자연스레 화이트홀은 옵시디아몬과 화성 정부의 흐름에 올라타 지금껏 없었던 급성장을 겪고 있다. 옵시디아몬과 화성 정부의 지원도 있고 작년에 벌어진 전쟁의 여파가 화이트홀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태양계에서는 함선을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무역시장을 화이트홀이 상당 비율 점거했다.

결과적으로 화이트홀은 시가총액 82조로 화성에서 시가총액 3위를 달성하였고 지금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오비탈플래닛을 뒤쫓고 있다.

물론 오비탈플래닛도 옵시디아몬과 손을 잡으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오비탈플래닛 특유의 대규모 건축사업은 성장성보다 안정성을 지향한다.

때문에 화성 정부까지 나서서 지원하고 있는 화이트홀은 어느 협력체보다도 성장세가 남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네요.”

게다가 화이트홀은 유토피아의 함선 및 우주선 생산량 중 절반 이상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토피아의 절반이 떠나면서 손실될 궤도조선소의 생산력을 화이트홀이 보강하는 것이다.

궤도조선소 건설에 있어 옵시디아몬, 화이트홀, 화성 정부와 오비탈플래닛까지 연계한 이 프로젝트의 회의는 오후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레나 비서님.”

리탄은 회의가 끝난 후 떠나려는 레나를 조용히 불러 세웠다.

“네. 회장님. 무슨 일이시죠?”

“시간이 좀 늦긴 했는데···.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같이 드실래요? ”

리탄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레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저녁이요? 저랑 리탄 회장님이랑요?”

“남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하하.”

“아, 네.”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 로페즈 님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것도 있고요.”

레나는 휴대전화를 살짝 들여다보며 일정을 확인하는 시늉을 한다. 오늘 일정이 더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행동해서 생각할 시간을 잠시 버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괜찮으려나. ···그래도 리탄은 예전부터 회장님이랑 이런저런 일이 많은 사람이었지.’

로페즈와 초창기부터 함께한 인물로는 자이칸과 리탄이 유일하다.

‘자이칸 씨는 개인적으로 좀 물어보려고 해도 너무 과묵한 성격이고···.’

자이칸에 비해 리탄은 대화 상대로서 부담이 덜해 보인다. 살짝 웃고 있는 표정에서도 악의는 없는 것 같고 애당초 리탄이 로페즈나 옵시디아몬에 악의를 가질 사람도 아니긴 하다.

예전에 호되게 당하고 충성을 맹세했다는 소문을 사내에서 들었으니까.

그리고 리탄은 얼굴도 제법 잘생긴 편이다.

“그러죠.”

마침 그녀도 로페즈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그의 개인적인 요청을 받아주었다.

이후 사석에서 레나와 리탄의 대화는 점점 솔직하게 무르익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유토피아에서 저녁식사를 끝낸 후 헤어지려다가, 서로 같은 생각을 도달했다.

‘제길, 아직 못 알아낸 게 있는데···. 어쩌지? 내 주제에 로페즈 님의 비서한테 술 먹자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화이트홀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랑 다음에 또 약속잡기엔 부담스러운데. ···이건 흔치 않은 기회잖아.’

각자 자기 차량으로 가려던 두 사람은 동시에 멈춰서 시선을 마주한다.

리탄이 먼저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아무튼 오늘 회의 수고 많았어요. 비서님. 로페즈 님한테는 가끔 내 이야기 좀 전해주세요. 하하하.”

“잠깐만요. 회장님.”

“네. 왜요?”

“이대로는 부족하지 않아요?”

“···.”

그녀는 리탄 역시 자신처럼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 간파했다.

그래서 먼저 제안한다.

“마침 근처에 제가 애용하는 주점이 있거든요. 이참에 서민체험이라도 해보시는 건 어때요?”

리탄이 이를 거부할 리가 없다.

“아주, 아주 괜찮네요. 그런데 옵시디아몬 비서실장님도 서민은 아니지 않아요?”

“그러니까 같이 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회장님. 저희는 서로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술 들어가면 알고 싶은 것을 더 솔직하게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비서가 대기업의 회장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태도부터가 놀랍다.

“하하. 지금 나랑 정보전이라도 하자는 말씀인가요?”

“네. 그럼요.”

“나한테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없는데. 로페즈 님만 빼고.”

“그 로페즈 회장님이 바로 저희의 공통 관심사잖아요?”

“물론이죠.”

레나는 생긋 웃는다.

“그럼 가시죠. 아,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저 지금 회장님 꼬시려는 거 아니니까요.”

“나도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사심 있어서 비서님 쫓아가는 거 아니에요.”

이 사석은 어디까지나 공통 관심사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로페즈 때문이다.

***

“그게 로보버그의 첫 등장이었구나···.”

“진짜···. 레나 씨는 몰라요. 절대 모릅니다. 그것들이 천장에 붙어서 막, 눈깔 수백 개가 내려다보는데 와···. 이건 뭐···. 그 자리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죠.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렀다니까요.”

리탄과 레나는 술잔과 술병을 사이에 두었다. 레나는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리탄은 취기가 올랐는지 얼굴이 살짝 빨갛게 됐다.

“우리 집 꼰대한테 황금 골프채로 처맞아서 쇄골 부러졌을 때도 그렇게 무섭진 않았는데···.”

“아, 그래서 그날 이후로 인공지능 모듈 로열티가 화이트홀만 4%였던 거예요?”

“그건 나중 일인데, 비슷하죠. 저는 그냥 깨갱거리면서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뭐야. 기울었던 회사가 갑자기 막 잘 되는 거예요.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요?”

“떠들썩한 일이 터졌죠.”

“와, 씨! 그분이 PP까지 잡은 겁니다! 조직폭력배랑 놀던 그 인간이! 도대체 감찰부에 그 현조라는 놈이랑은 어떻게 친해진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니까요. 트, 하이퍼 마인드가 사람의 마음까지 대신 얻어주는 건 아니잖아요.”

“확실히 그건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네요.”

어느새 레나는 적게 말하고, 많이 듣고 있다.

술이 들어간 2차 정보전은 레나의 압승이다.

“그래서 요즘엔 로페즈 님한테 좀 서운하다니까요. 나랑 뭐 하자는 이야기가 예전보다 뜸하길래 아, 요즘엔 오비탈플래닛이랑 놀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뭐? 미르니? 갑자기 미르니가 튀어나왔어요. 아무리 옵시디아몬이 커졌어도 그렇지, 도대체 거기 총수랑 로페즈 님이 어떻게 만났다는 거예요? 레나 씨는 알아요? 어떻게 했는지.”

“저야 모르죠. 그때 회장님은 자리를 자주 비우셨어요. 어떤 날에는 멀리 출장 가시면서 자이칸 씨도 그냥 두고 갔다니까요. 흉흉한 일도 많았고···. 뒤에서 우리가 모르는 커다란 일을 하시나 보다 싶었죠.”

“그거 전쟁입니다. 내가 보기에 로페즈 님은 그때 전쟁 막으러 돌아다닌 거예요. 갑자기 행성대통령 경호까지 막 하고···. 아무리 봐도 그런 거 같아.”

“저는 다 이겼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작년 말에 터졌던 전쟁도 그렇고요.”

“그러니까요.”

리탄은 와인을 들어서 잔에 따르려다가 멈칫한다.

와인이 다 떨어졌다.

“우리 로페즈 님이 이겨서 다행이죠. 나도 로페즈 님 쪽으로 줄을 탔으니까···.”

그러더니 리탄은 자연스레 와인 옆에 있던 맥주를 자기 와인잔에 따른다.

‘좀 전엔 비싼 와인만 마신다고 하더니···.’

의외로 리탄은 와인이 아닌 술도 잘만 마셨다.

“솔직히 다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로페즈 님 없었으면 나도 이 자리엔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은 진짜 하나도 없어요. 진짜 하나도 없는데, 로페즈 님은 아직도 날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아···.”

리탄은 울상이 되었다.

“에이, 언제 적 일인데요. 그리고 저희 회장님은 그런 거 머리로만 생각하시지, 마음에 담아두시는 분은 아니세요.”

“나는 이 유토피아가 참 좋아요. 보세요. 이 늦은 시간에 경호원 한 명도 필요 없다는 거. 얼마나 편리합니까? 누가 도촬하거나 도청할 걱정도 없어요. 나 죽이려는 놈들이나 내 뒤를 캐려는 것들도 어차피 여기선 다 걸리니까. 그래서 유토피아의 범죄율 0%가 말이 0% 지, 현실 세계에서 뭔가를 0%로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그게 인공지능의 감시와 예방 덕분인데 그런 거 싫어하는 사람도 의외로 있더라고요. 감시 카메라나 블랙박스만 보면 기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사생활 침해라던가 그런 거로요.”

“그렇죠. 그래서 난 여기가 참 편해요.”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네.’

“진짜, 진짜 편해요. 저 답답하고 복잡한 화성으로는 내려가기도 싫을 정도로. 여기는 천장이나 창문을 보면 우주가 확 펼쳐져 있잖아요.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걸 체감하는 기분은 뭐랄까···. 새로운 자신을 찾게 해준다는 느낌일까···.”

“알죠. 그 느낌.”

실은 모른다. 모르지만 그냥 어울려주고 있다. 리탄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로페즈의 과거 이야기가 흥미롭기 때문에.

“그냥 나도 그 드레이크라는 곳 완성되면 화이트홀 본사 거기로 옮겨버릴까 싶다니까요. 그래도 되나?”

“회장님이라면 환영하실걸요?”

“진짜요?!”

리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관심에 안달 난 아이처럼 되묻는다.

“진짜, 진짜 환영할까요? 내 말은···. 진심으로요! 사업적으로 환영하는 거 말고 진심으로.”

그 모습을 본 레나는 은근한 안쓰러움을 느낀다. 화이트홀 회장인 리탄의 어두운 배경은 그녀도 대강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리탄 회장님은 저희 회장님이랑 만나실 때 굳이 비즈니스로만 만나려고 하세요?”

“네?”

“그냥 사적으로 술이나 한잔하자고, 골프나 같이 쳐보자고 말씀드릴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묻자 리탄은 확실히 보편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에이, 레나 씨가 뭘 모르시네. 그건 아니죠.”

“뭐가요?”

“위치가 안 맞잖아요. 나는 화이트홀 그룹 회장이고 로페즈 님은 무려 옵시디아몬 코퍼레이션의 회장이신데. 두 기업의 시가총액 차이가 얼마나 큰지 레나 씨도 알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게 왜 상관이 없어요?”

“상관없잖아요. 세상 사람들 다 상관없다고 생각할걸요? 그 정도는.”

리탄은 완강히 부정한다.

“아니요. 상관있죠. 저처럼 낮은 사람이 로페즈 님 같은 분한테 요청하긴 뭘 요청해요?”

“일개 비서실장인 저도 회장님한테 술 한잔하자고 했는걸요.”

“뭐라고요?! 레나 씨가 로페즈 님한테?!”

“아니요. 오늘 제가 리탄 회장님한테요. 그렇잖아요.”

“···아. 그건 뭐···. 아니, 레나 씨는···. 레나 씨가 아니라···. 비서님은 로페즈 님의 비서니까···. 그래서 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지 않나?”

“리탄 회장님은 사람의 뒷배경을 너무 신경 쓰세요. 계속 그러시면 진짜 ‘자기 사람’은 계속 없을걸요? 처세술이랑 친목은 구분하셔야죠.”

리탄은 머리가 아픈 듯 미간을 찡그린다.

“아······.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틀렸던 거예요?”

“네. 그건 확실히 틀렸다고 생각해요.”

“씨···. 아빠한테 배운 건데. 그러면 어떡해요?”

“저희 회장님이랑 사적으로 이야기도 하고 싶고 친목도 다져보고 싶고 뭐 그러시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씀을 해보세요.”

“솔직하게?”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주시겠죠. 화이트홀 시가총액이 옵시디아몬 시가총액이랑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로페즈 님은···. 그건 그렇지···. 그렇죠. 다시 생각해보니까 레나 씨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 회장님.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시죠?”

리탄은 흐느적거리는 제스처를 취한다.

“2600년, 새해가 밝았고, 나는 서른 살이고, 결혼할 여자 찾고 있어요. 남자 안 좋아합니다.”

레나는 리탄으로부터 대강 듣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었다. 리탄이 말해준 로페즈의 과거와 옵시디아몬의 초창기 배경은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정보전은 끝이다.

“···벌써 10시 20분이네요. 이제 나갈까요?”

“아, 네. 그럽시다. 너무 오래 놀았네요. 하하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참! 레나 씨. 이거 받아요.”

“이게 뭔데요?”

“나한테는 필요 없어요. 그런데 이게 또 명품 브랜드라서 버리기엔 아깝거든요.”

레나는 손바닥을 펼쳐 리탄이 준 물건을 확인한다.

“레나 씨랑 나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레나 씨가 위치에 상관없이 행동하라고 했잖아요? 지금 단계에서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회장님···. 이러시면 저 오해하는데요.”

“하하. 오해하실 거면 마음껏 오해하시고. 뭔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드론이 가져왔는데 주고 싶은 여자가 있어야죠. 남자한테 줄 수는 없는 거라.”

“잘 쓸게요. 고마워요.”

레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자그마한 립스틱이었다.

< 30. 신세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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