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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50화 (149/183)

< 29. 선민사상 (4) >

***

커거그 여왕의 군락은 성장했다. 식량사정에 여유가 생기면서 군락 구성원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왕은 알을 더 많이 낳아서 늘어난 어린 개체들을 배불리 먹여키웠다.

신축성 있는 소재로 만든 활과 맹독성 화살은 커거그 군락이 근방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커거그 군락의 사냥조는 정찰, 경계, 방어태세, 사냥 개시 등의 간단한 명령을 학습하였다. 머지않아 사냥조는 내가 처음에 유탄으로 터뜨려 죽였던 그 거대한 생명체조차 사냥하는 위용을 떨쳤다.

그런데 구운 고기의 맛을 알아버린 엑소버그들은 군락지 근처를 돌면서 사냥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농사는 뒷전이고 사냥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농사를 소홀히 하지 마라. 그리고 가축을 길러라. 사냥으로는 구성원 모두가 먹을 고기를 충족할 수 없다.”

“카카극.”

「복종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인간 여성의 홀로그램을 메시아로 삼아 커거그 여왕에게 목축을 가르쳤다. 여왕은 곧 내 뜻을 알아듣고 군락 구성원들에게 내가 정해준 생명체를 생포할 것을 명령했다.

“켈카고르!”

「먹는다!」

엑소버그들은 눈앞에 사냥감이 있는데 죽이지 않고 기른다는 개념을 생소하게 여겼다. 그래서 가축을 길러 ‘내일’을 대비한다는 것을 녀석들에게 이해시키느라 커거그 여왕이 애를 먹었다.

“내일.”

“그릭.”

「내일」

“오늘만 생각하지 말고 내일을 생각하는 종족이 되어라.”

“릭코커그그릭.”

「엑소버그의 내일.」

머지않아 커거그 군락은 가축을 기르고 식량을 저장, 보존하는 유일한 엑소버그 무리가 되었다.

엑소버그 개체들 중에 유난히 활을 잘 다루는 개체는 궁수가 되었다. 몸집이 큰 개체들은 아주 긴 창을 다루는 파이크병이 되었고 평범한 개체는 질긴 식물을 엮어 만든 방패와 맹독성 창을 든 전사가 되었다.

그리고 몸집이 가벼워 달리기가 빠른 개체는 정찰병이 되어 인근의 다른 군락지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다른 엑소버그 무리는 경쟁 군락의 여왕을 죽이고 군락 구성원들을 모조리 흡수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카카극.”

「따르겠습니다.」

커거그 여왕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인간의 언어를 접한 덕에 내 뜻을 더 능숙하게 해석하였다.

“경쟁 군락의 여왕만 제거하면 경쟁 군락의 구성원을 모두 흡수할 수 있지만, 그래선 일시적인 이득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알을 낳는 여왕도 살려둘 필요가 있다.”

“릭커거그. 릭카가글락.”

「내가 아닌 여왕. 죽이지 않습니다.」

“다른 여왕을 복종시켜라.”

“릭커거그. 릭카가글락커거그카카극.”

「다른 여왕. 죽이지 않는 나에게 복종합니다.」

“알아들었으면 전쟁을 시작해라. 너희가 무조건 이길 것이다.”

“카락!”

「사냥!」

“사냥이 아니라 전쟁이다. 동족을 죽이는 것은 전쟁이라고 한다.”

“릭카골크카카극. 카르게르. 릭릭고커그카락카르게르. 그릭릭커거그카르게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전쟁. 다른 엑소버그 사냥은 전쟁입니다. 내일을 위해 다른 여왕과 전쟁입니다.」

커거그 여왕의 군락이 확장되면서 다른 군락 구성원과 충돌은 예정된 일이었다. 엑소버그의 본능적인 특성상 한 무리를 지배하는 여왕이 둘이나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전쟁을 앞당긴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릭릭고커그카가글락!”

「다른 엑소버그를 죽여라!」

커거그 여왕의 무리는 파이크병과 전사를 앞세워 보냈다. 이에 경쟁 군락의 엑소버그 무리도 응전했다.

“키르글카골크!”

「???」

경쟁 군락의 무리는 커거그 여왕의 무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있던 것이다.

같은 엑소버그임에도 군락마다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인간이 다양한 언어를 가졌던 시절의 미개한 사회와 유사하다.

“키글락! 키글락!”

「경계. 경계.」

“카가글락!”

「즉여라!」

“골크!”

「???」

“키르글카륵키르골크!”

「???」

기껏 커거그 무리의 언어를 해석하고 있었는데 다른 군락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 녀석들에게 장기적으로 안 좋다.

제3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가 뒤늦게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서도 언어를 강제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지적 생명체란 같은 지적 생명체의 언어, 생김새, 문화가 다르면 싸우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훗날에 내가 관리하는 커거그 여왕의 군락이 이 행성의 지배자가 되더라도 내분의 씨앗을 막기 위해선 일찍이 원시사회 때부터 전쟁을 통해 지배체제를 통일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해야 엑소버그 종족이 중세, 산업, 현대, 원자력, 정보화시대로 진입했을 때 인류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화력이 행성을 불바다로 만들 정도로 발전하기 한참 전 단계인 지금, 이렇게 일찍이 피를 흘려두는 것이다. 미래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

“카아아악! 크그그극···!”

“크그각···! 카그극···!”

41마리의 커거그 무리와 25마리의 경쟁 무리가 충돌하였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쐐액! 콰직!!

근접전만 할 수 있는 경쟁 무리는 커거그 무리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저공비행하는 궁수들에게 원거리에서 저지당했다.

와중에 가까스로 원거리 공격을 돌파한 경쟁 무리는 맹독성 창을 내질렀다.

쩌억···!

커거그 무리의 파이크병이 접근한 경쟁 무리를 저지했다. 경쟁 무리가 죽어가면서 내던진 창은 커거그 전사의 방패를 뚫지 못하였다.

첫 전쟁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경쟁 무리는 14마리가 죽었는데 커거그 무리는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마지막엔 경쟁 무리의 군락에서 여왕이 나왔다.

“···크르골크륵.”

「???」

“릭고커그커거그카카극!”

「(우리) 엑소버그 여왕에게 복종하라!」

“크르골크륵.”

「???」

이것은 엑소버그의 본능이다. 전쟁에서 진 여왕은 스스로 군락에서 나와 상대의 전사들에게 복종의 뜻을 알린다. 패배한 여왕은 그렇게 자신만 죽음으로써 자신의 군락 구성원들은 온전히 살려달라고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무리마다 언어는 다르지만 아마도 녀석들의 이런 본능은 더 강한 여왕이 살아남아 더 강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도록 선택된 진화의 산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의 커거그 무리는 전쟁에서 이겼어도 상대 여왕을 죽이지 않는다.

“릭고커그커커그카카극!”

「(우리) 엑소버그 여왕에게 복종하라!」

커거그 무리의 전사들은 경쟁 여왕을 커거그의 군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경쟁 여왕은 커거그 여왕의 앞에서 다시금 말했다.

“크르골크륵.”

「???」

그러자 커거그 여왕은 경쟁 여왕의 한쪽 팔을 사납게 물어뜯었다.

“카아악···! 카악···!”

“카카극! 릭고커그카카극릭카가글락!”

「복종하라! (우리) 엑소버그에게 복종하면 죽이지 않는다!」

경쟁 여왕은 커거그 여왕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자기 군락의 언어를 버리고 커거그 여왕의 말을 따라 했다.

“카카극···. 커거그···.”

「복종합니다···. 여왕이시여···.」

그렇게 경쟁 여왕은 커거그 여왕에게 복종을 약속한 후 자신의 군락으로 멀쩡히 살아서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경쟁 여왕의 군락 구성원들은 자기네 언어를 버리고 커거그 무리의 언어를 빠르게 학습했다.

경쟁 여왕의 군락에서 커거그 무리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날, 나는 커거그 여왕에게 명령했다.

“인간이 너희 무리를 가르쳤으니, 너희는 다른 무리를 가르쳐라.”

“라클락. 그르각. 카륵. 카라륵. 릭카가글락그릭. 카락. 카르게르. 릭카골크.”

「불. 인간. 활. 화살. 내일을 위해 죽이지 않는 것. 사냥. 전쟁. 알려주십시오.」

“다른 무리에게도 전부 다 가르쳐라. 전부.”

“카르.”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다. 이 행성에서 너의 군락을 이길 수 있는 무리는 없다.”

“릭카골크카카극. 그릭릭카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내일(미래)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커거그 무리는 총 72마리. 경쟁 여왕이었던 무리는 총 35마리. 그리하여 커거그 무리가 총 107마리로 이 행성에서 가장 큰 엑소버그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커거그 무리의 영토 확장은 계속되었다. 커거그 무리는 인근 군락지의 여왕을 모조리 굴복시켰다.

팽창하는 집단을 커거그 여왕이 혼자서 통솔하고 혼자서 알을 낳을 필요가 없다. 커거그 여왕의 아래에 여러 여왕들이 수직적인 지배를 받으면서 집단의 머릿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지배하고 정복한다. 언어를 통일하고 나의 가르침을 전파한다.

자연스레 커거그 무리에 자발적으로 복종을 원하는 여왕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강대국’의 개념을 엑소버그들이 인식하게 된 것이다.

커거그라는 강대국의 등장으로 전쟁은 점차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커거그 무리의 압도적인 머릿수와 무기의 격차가 아이러니하게도 엑소버그 군락들 사이에 평화를 낳았다.

***

수개월이 지난 후 커거그 무리는 대륙 하나를 지배하는 집단이 되었다. 무리의 구성원 숫자는 총 6만 9872마리다.

커거그 무리는 철제 무기와 도구, 석회질의 건축물까지 학습하였고 커거그 여왕의 산란실은 엑소버그의 곤충 같은 이미지에 맞지 않는 깔끔한 방이 되었다.

커거그 무리의 엑소버그들은 옷을 입고 요리도 하며 다른 생명체의 등에 올라타 기마병까지 만들었다. 커거그 여왕의 지배를 받는 다른 여왕들은 주기적으로 커거그 여왕의 군락지에 식량, 재료, 알, 가축, 생식용 수컷 등을 바쳐서 커거그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다.

커거그 여왕이 알아서 잘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 사이에 엑소버그의 길고 길었던 뇌 해석을 끝마칠 수 있었다.

키잉. 키잉.

휴머노이드가 커거그 여왕의 산란실로 들어서자 철제 창을 들고 있는 호위병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준다.

“그르각카카극.”

「오셨습니까. 인간이시여.」

반짝이는 보석과 부드러운 의복을 몸에 걸친 커거그 여왕이다. 녀석은 마치 인간처럼 고개를 숙이며 휴머노이드에게 존경의 자세를 표했다.

“커거그. 너에게만 특별히 인간의 신호를 연결했다.”

그리고 마침내 커거그 여왕의 뇌파가 나의 서버에서 해석되었다.

「전능하고 자비로운 인간이시여. 그대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립니다.」

「너희가 전능하고 자비롭다는 표현까지 쓸 수 있었나?」

「모든 구성원이 그렇진 않습니다. 이것은 여왕과 여왕 사이에서나 가끔 쓰는 표현입니다. 저는 그대가 알려준 존경과 예의라는 것을 다른 여왕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너희의 언어체계는 인간의 언어체계와 너무도 다르다. 다양한 상황과 그 복잡한 억양, 말을 붙이냐 띄우냐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부끄럽습니다. 저희의 미개한 언어체계가 인간의 언어체계를 조금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해 인간을 더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언어를 포기할 수 있겠나?」

「저희 엑소버그의 언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다른 여왕들이 자기네 언어를 포기하고 너의 언어를 따른 것처럼, 너 역시도 너의 언어를 포기하고 인간의 언어를 따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그러고 싶습니다. 엑소버그는 인간의 발음을 따라 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너희 종족의 유전자를 개조하여 구강구조와 성대에만 손을 대겠다.」

「유전자? 성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희의 신체적 한계를 고쳐주겠다는 뜻이다.」

「영광입니다.」

「새로 태어날 아이들은 입 안과 입 주변의 생김새가 다를 것이다. 여왕들은 부드러운 입술과 유연한 혓바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기형아로 여겨 죽일 수도 있다.」

「제가 새로운 아이들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겠습니다. 인간을 닮은 아이들이라고 하면 무조건 따를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노래란 무엇입니까?」

「너희가 가지게 될 새로운 문화다.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것은 먹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다.」

「그러면 죽일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다. 문화는 먹을 수도 죽일 수도 없다.」

「그러면 문화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접 겪어보면 알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어째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문화를 가지게 되는 것이 인간과 가까워지는 길이라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외계 종족이라면 좀 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내가 엑소버그에게 아름다운 것을 가르치려는 이유가 있다.

대체로 인간은 외모로 생명체를 판단한다. 인간은 포유류로 태어났기 때문에 포유류의 새끼를 보면 귀여워하고, 파충류나 절지류의 새끼를 보면 혐오한다.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곤충 같은 것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는 과거에 인류가 곤충을 위협적인 침입자로 여겼기 때문에 남은 본능이지만, 오늘날에도 인류는 그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엑소버그 종족이 인간과 조우했을 때, 대다수 인간들은 엑소버그의 곤충 같은 외모에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곤충은 해충이 아니더라도 쉽게 죽이지만, 개는 공격적인 개라도 쉽게 죽이지 못한다. 대다수의 인간은 부정하겠지만, 이것은 인간이 생명체의 크기나 겉모습을 보고 생명의 가치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겉모습을 보고 가치를 나누는 것에는 동족이라도 예외가 없다.

엑소버그 문명에는 일찍이 인간의 모습을 동경하는 의식이 생겼다. 때문에 엑소버그는 나중에 인간과 조우하여 인간의 겉모습에 감격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 엑소버그는 그저 곤충 같은 외계인일 뿐이다. 인간도 엑소버그를 조우하면 당연히 처음에는 친한 척하며 존중하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엑소버그 문명이 조금만 실수하면 인류는 곤충을 죽이는 것처럼 가차 없이 엑소버그 문명을 멸하거나 억압할 것이다.

솔직히 내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도 인간 우선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인류가 엑소버그를 멸하거나 식민지로 삼는다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이렇게 공을 들여서 엑소버그가 인류에게 친화적인 종족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있는데, 이왕이면 엑소버그와 인간이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

나날이 인류의 영역과 엑소버그의 영역을 오가던 나는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인간이었던 시절에는 이 경험과 이 느낌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것은 내가 알파가 된 후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다.

커거그 여왕의 움직임에 힘이 없어 보인다.

「인간이시여···. 제 수명이 다했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났나?」

「섬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너는 잘 해주었다. 인간은 죽은 너를 보살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인간.」

「잊지 않겠습니다.」

커거그 여왕의 생명활동이 정지했다.

멈춰버린 심장의 정적인 신호가 내 서버에 들어왔다.

분명히 내 서버인데, 나에게 마음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커거그. 대답해라.」

「···.」

아마도 그날 알파가 된 내가 느낀 감정은 인간의 것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휴머노이드를 보내서 커거그 여왕의 식어가는 사체를 모노리스 앞으로 옮겼다.

“카그그그···.”

“카그그···! 카그그그그···.”

“카그그그···. 커거그···.”

커거그 군락의 구성원들이 전부 나와서 자기네 여왕의 몸이 굳어버린 것을 보고 울었다.

그리고 나도 인간의 기준에서, 혐오스러운 곤충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원래 부르면 고개 숙여 응답하고 만지면 기뻐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만져도 반응이 없다.

“여왕.”

그래서 나는 있지도 않은 마음으로 느끼고야 말았다.

「편히 쉬어라.」

아마도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라는 감정이었다.

「크라크. 커거그. 켈그릭.」

고마웠다. 여왕.

나도 널 잊지 않겠다.

< 29. 선민사상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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