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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9화 (148/183)

< 29. 선민사상 (3) >

***

이 군락을 지배하는 여왕을 내가 지배하기로 했다.

위성 영상을 보니 반경 5㎞ 안에 다른 군락들이 더 있었다. 군락들은 서로 같은 종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여왕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것들은 서로에게 호전적인 양상이다. 원시사회에서 인간이 씨족으로 무리를 짓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나는 군대를 궤도로 보낸 후 여왕의 군락 앞에 모노리스를 설치했다. 너비 60m에 높이 25m의 모노리스는 내가 인간이었던 시절의 전신 석상을 본뜬 모습이다. 모노리스의 재질은 콘크리트, 합금과 강철이다.

모노리스 내부에는 왕실처럼 알현실을 마련하여 소수의 무장 휴머노이드를 나란히 배치했다. 그리고 왕좌에는 인간 여성의 홀로그램을 앉혔다.

“인간이다. 너희를 지배하는 인간이다.”

“카카극.”

인간 여성의 홀로그램이 이 군락의 새로운 여왕이면서 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카카극. 그르각.”

여왕은 내가 원할 때마다 성충을 모노리스에 보내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앙심인지 무력에 대한 공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군락은 확실히 나의 지배에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엑소버그(Exobug).”

“크켁르커그.”

“엑. 소. 버. 그.”

“릭···. 고커그. 릭코거그!”

나는 이것들의 종족을 엑소버그라고 칭하기로 했다.

“여왕.”

“커그가.”

“여왕.”

“커거그···.”

이 군락을 다스리는 여왕의 이름은 오늘부터 커거그(Kergerg)다. 엑소버그들에겐 이름이라는 개념이 없었는지 내가 여왕의 이름을 정해주자 기쁜 듯 날갯짓을 했다.

나는 휴머노이드를 시켜서 베어낸 식물을 모노리스 앞에 모았다. 군락 근처에서는 나무처럼 셀룰로오스를 함유한, 불이 잘 붙은 식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불.”

“릭카골크.”

“모르겠다고?”

“릭카골크!”

휴머노이드는 엑소버그 무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양손에 부싯돌을 들어 보인다. 군락 근처에는 고품질 철광석과 단단한 석영이 널려있고 이 행성은 산소 농도가 높다.

그래서 식물을 비벼 마찰열로 불을 붙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부싯돌의 불씨를 쓰는 것이 이 행성에선 훨씬 간편할 것이다.

“불.”

“크르.”

“불.”

탁!

휴머노이드가 부싯돌을 사용해 불씨를 떨어뜨린다. 그러자 그 불씨가 건조한 식물에 닿아 주변의 높은 산소 농도에 맞물려 순식간에 타올랐다.

화아악!

“카르···! 카르!”

“라클락!”

엑소버그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각자 자기 집으로 도망쳐버렸다. 저번처럼 여왕의 군락에서 어린 개체들이 알을 들고 뛰쳐나온다. 자기 집으로 도망쳤던 성충들은 맹독성 창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카르! 라클락!”

“라클락···!”

“카르는 없잖아. 라클락은 뭔데?”

“카르! 라클락!”

혹시 ‘카르’가 위험하다는 뜻인가. 그래서 저번에 그 거대한 생명체가 군락으로 달려올 때도 카르라고 한 것이고.

그렇다면 ‘라클락’은 뜨겁다, 불이다, 뭐 그런 뜻이리라.

“불.”

“라클락! 카르!”

“안 위험해. 불은 통제할 수 있어. 이렇게.”

휴머노이드는 간단한 횃불을 만들어서 들어 보인다.

“···릭카골크!”

릭카골크는 의문의 표시다. 누구냐, 뭐냐, 모르니까 알려달라는 말이다.

“라클락은 카르가 아니야.”

그렇게 알려주면서 불을 모래로 덮어 꺼버렸다. 그러자 녀석들은 불이 꺼졌다는 사실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는지 또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다.

도망쳤던 녀석들은 잠시 후 건물 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더니 호기심에 다시 꺼진 모닥불 앞으로 몰려들었다.

“라클락은 카르가 아니야.”

“라클락···. 릭카르.”

“릭카르?”

“그르각라클락릭카르.”

인간. 불. 위험하지 않다? 그런 뜻인가.

어쨌든 녀석들의 본능에 새겨진 불에 대한 공포는 사그라든 것 같다.

서로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니까 인간의 언어를 엑소버그의 뇌에 업로드하거나 엑소버그의 뇌를 이쪽에 다운로드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더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당장 내가 알고 있는 뇌과학은 인간이 알고 있는 생명체와 인간의 뇌에 한정되는 기술이니까.

“라클락! 릭카르!”

“라클락! 릭카르! 릭카르!”

이후 엑소버그들은 불을 다루다가 신이 났는지, 밤에 횃불을 들고 춤을 추다가 자기네 농장 하나를 홀랑 태워먹었다.

“카르! 카르! 카르! 라클락!”

“키글락! 키글락!”

“카르!”

나는 그 농장이 전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알려주었다. 불은 통제할 수 있지만 다루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불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농장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라면 싸게 먹힌 셈이다.

“불은 경계해야 해. 라클락은 카르도 아니고 릭카르도 아니야. 라클락은 아니라 키글락이야.”

“라클락! 키글락···!”

이것으로 엑소버그들은 화재의 위험성을 깨달았으리라.

***

여왕은 알을 낳거나 군락에 명령을 내리는 것 말고는 업무가 없다. 그래서 휴머노이드 하나를 여왕의 산란실에 보내서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뇌과학은 생명체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엑소버그의 뇌에 대한 해석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렇게라도 의사소통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손가락. 그렇지. 그렇게 펴.”

“릭카골크.”

엑소버그는 사물을 가리킬 때 한 손을 뻗는다. 나는 그 행위에 좀 더 구체성을 더하기 위하여 손가락질을 가르쳤다. 여섯 개의 손가락 중에 검지가 되는 부분만 펴도록 하는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인간. 나는 인간이다.”

여왕도 손가락으로 휴머노이드를 가리키며 따라 한다.

“그르각.”

이어서 휴머노이드는 여왕을 가리킨다.

“여왕. 너는 여왕이다.”

여왕도 자신을 가리킨다.

“커거그.”

“그렇지.”

휴머노이드는 여왕의 주변에 널린 알과 그 알을 옮기는 어린 개체들을 빙 둘러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엑소버그. 너희들은 엑소버그다.”

“릭고커그.”

“너는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빨리 배우네.”

“릭카골크릭카르.”

“릭카골크릭카르? 무슨 뜻이야?”

휴머노이드가 말끝을 올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여왕은 인간의 언어가 가진 특징을 이해했다. 말끝을 올리면 대체로 의문형이 된다는 것을.

“릭카골크릭카르···. 커거그릭카골크릭카르.”

모르니까 알려달라, 위험하지 않다···. 여왕 모르니까 알려달라, 위험하지 않다.

여왕이 말하려는 건 그 뜻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말이야?”

여왕은 제스처까지 해가면서 설명한다.

“릭카골크. 키글락. 릭카골크키글락.”

“릭카골크는 누구냐, 뭐냐, 모르니까 알려달라. 키글락은 경계하는 소리고. 그러면 릭카골크에 키글락을 붙여서 말하면 또 다른 뜻이 되는 거야?”

“···릭카골크. 릭카르. 릭카골크릭카르.”

“맞네. 단어를 붙이면 비슷한 의미의 다른 뜻이 되는구나.”

언어체계가 인간과는 다르다.

“저번에 우리를 처음 봤을 때 릭카골크키글락이라고 했지. 정체를 밝히라는 뜻이네. 대충.”

“릭카골크키글락. 릭카골크릭카르.”

“릭카르는 카르의 반대말이고. 그러면 릭카골크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데···. 카르, 릭카르의 뜻이 위험하다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여왕은 까맣게 타버린 횃불을 들더니 그 횃불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라클락키글락.”

“그래. 불은 경계한다.”

여왕은 자신과 휴머노이드를 번갈아 가리킨다.

“커거그카카극.”

“인간에게 복종한다.”

그러더니 여왕은 자기 뒤에 고이 숨겨둔 부싯돌까지 꺼내선 불붙이는 시늉을 한다.

“라클락릭카르.”

“그러니까 그 두 단어를 왜 붙이냐고. 라클락. 릭카르. 이렇게 말하면 불은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잖아.”

그 순간, 여왕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킨다.

“커커그릭카골크릭카르.”

그러더니 다시 불붙이는 시늉을 한다.

“라클락릭카르.”

마지막으로 휴머노이드를, 정확히는 휴머노이드의 머리를 가리킨다.

“그르각릭카골크릭카르.”

이제야 알겠다.

“카르, 릭카르는 쉽다, 어렵다라는 의미도 내포하는 거야?”

“릭카골크릭카르.”

여왕은 또 자기 머리를 가리킨다.

“커거그. 릭카골크릭카르. 커거그릭카골크릭카르.”

“네가, 잘 배운다고? 네 머리가 쉽다고? 간단하다고?”

“카카극!”

이 한마디를 해석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해결하고 단어를 붙여서 문장을 만드는 일은 나중에 뇌과학으로 해결해야겠다.

당분간은 인간이 애완동물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쪽이 계속 인간의 언어와 문장을 말해주면 엑소버그들도 조금씩 배워나갈 것이다.

***

저번에 유탄으로 죽인 거대한 생명체는 구워진 사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체를 먹기 좋게 잘라서 엑소버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먹어. 켈카고르.”

“카르켈카고르.”

「위험을 먹습니다.」

엑소버그의 언어 해석을 돕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뇌 해석이 끝나기 전까지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래. 카르는 먹을 수 있어.”

투시 분석 결과, 녀석들의 소화기관은 잡식성이다. 녀석들은 농사를 짓거나 열매를 따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가끔씩 배가 너무 고플 때만 작은 곤충을 잡아먹어 육식을 한다.

그리고 이 행성에 퍼져있는 다른 엑소버그 무리의 군락을 관찰해본 결과, 아주 굶주린 군락에선 사냥이나 동족상잔도 서슴지 않는 것 같다.

“카르켈카고르! 카르!”

「위험을 먹습니다! 위험!」

“아니야. 굶주리지 않아도 고기는 먹을 수 있어. 위험하지 않아.”

“카르. 카르.”

「위험. 위험.」

「어렵습니다. 어렵습니다.」

“카르 고기는 먹어본 적 없잖아? 그것도 구운 고기라면 더더욱 먹어볼 기회가 없었겠지.”

소화기관이 완벽한 잡식성인데 배가 고플 때만 육식을 한다는 것은 녀석들에게 손해다. 농사를 지어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초식인데, 자발적으로 육식도 할 줄 알아야 엑소버그가 선택할 수 있는 식량의 범주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늘어난 영양섭취로 성충까지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고, 그래야 성충들이 다른 군락의 성충들보다 상대적으로 큰 체격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카르는 먹을 수 있어.”

휴머노이드는 카르를 입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한다.

“카르···.”

「위험합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대한 생명체를 먹는다는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같은 엑소버그들인데 이렇게나 다르다. 어젯밤에 여왕은 휴머노이드가 고기를 먹으라고 시키자 아무 망설임도 없이 고기를 먹었는데.

“여왕도 고기를 먹어. 인간도 고기를 먹어. 커거그켈카고르. 그르각켈카고르.”

“켈카고르···.”

「먹습니다···.」

자기네 여왕과 인간도 고기를 먹는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하나둘씩 익은 고기를 집어서 입에 넣는 모습이다.

아마 놀랐을 것이다. 엑소버그의 구강에도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미뢰가 있으니.

“켈카고르···! 카르켈카고르!”

「먹는다···! 위험을 먹는다!」

“카르. 카르.”

「위험. 위험.」

“켈카고르!”

「먹을 수 있다!」

먼저 맛본 녀석이 다른 녀석들에게 맛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카르!”

「위험하다!」

“카르켈카고르!”

「위험은 먹을 수 있다!」

“카르. 카르. 카르키글락!”

「위험. 위험. 위험은 경계!」

“카르릭카르! 그르각켈카고르! 커거그켈카고르!”

「위험은 위험하지 않다! 인간 먹는다! 여왕 먹는다!」

“릭카르! 켈카고르!”

「위험하지 않다! 먹는다!」

결국 엑소버그들은 구운 고기의 맛을 깨닫게 되었다.

“고기 맛을 알았어? 켈카고르?”

“켈카고르!”

「먹을 수 있다!」

「먹는다!」

“거기 너, 들고 있는 창 가져와.”

이제 다음 단계는 사냥이다.

“활과 화살에 대해서 알려줄게. 너희는 시작부터 맹독성 활촉을 배우는 거야.”

미개한 사회에서 선진문명을 세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전쟁과 정복이다.

“이건 너희가 자주 쓰는 맹독성 식물의 즙이야. 맞으면 아파. 죽어.”

“릭카골크! 카가글락!”

「모릅니다! 살해!」

「알려주십시오! 죽이는 것!」

“이건 너희가 들고 있는 창보다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도구야. 무기라고 해. 무기. ···아니다. 활이라고 하자.”

“릭카골크! 카가글락!”

「알려주십시오! 죽이는 것!」

“활.”

“카륵!”

「활!」

“화살.”

“카라륵!”

「화살!」

이 미개한 것들이 전쟁 명분이라는 심오한 뜻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래서 전쟁의 명분으로 구운 고기의 놀라운 맛을 알려준 것이다.

어쩌면 이 미개한 것들에게 있어 구운 고기라는 개념은, 성욕보다 유혹적인 것이며 마약보다 큰 쾌락을 주는 것이 되었으리라.

“활과 화살. 죽인다. 먹는다.”

“카륵카라륵카가글락켈카고르!”

「활 화살 죽여서 먹습니다! (?)」

“켈카고르! 켈카고르!”

「먹는다! 먹는다!」

“죽여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카가글락! 켈카고르!”

“카가글락! 켈카고르!”

「죽인다! 먹는다! (반복)」

“지금도 다른 군락들은 앞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게 너희의 본성이고 생명체의 본성이다. 인간도 너희와 같다.”

“카륵카라륵릭카골크.”

「활, 화살이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활, 화살을 모릅니다.」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시대에 그런 본성을 지닌 생명체라면 무조건 이겨라. 너희가 인간에게 복종한다면, 인간은 너희의 군락이 승리하게 해주겠다.”

“그르각! 카카극!”

“카카극!”

「인간! 복종합니다!」

「복종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엑소버그들에게 사냥을 가르치고 있는 나는, 녀석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카카극! 릭코커그카카극그르각!”

「복종합니다! 엑소버그는 인간에게 복종합니다!」

전쟁이 있어서 화학이 발달했고 공장이 생겼으며 로켓이 개발되었다. 인류는 그런 원리를 비효율적으로 거친 탓에 수천 년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300년을 잃어버렸지만, 이 엑소버그들은 인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원시사회 단계에서 미리 전쟁을 벌이고 정복을 끝낸다. 그렇게 엑소버그 문명은 화기가 개발되기 전에 하나의 나라로 통합될 것이다.

그런 배경 위에 내가 개입한다면 엑소버그가 현대 문명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좋다. 인간에게 영원히 복종해라. 엑소버그.”

수천 년이라는 세월도 필요 없다. 나에겐 인류의 역사라는 정답지가 있다. 그러니 이 녀석들에겐 길어야 40년이면 충분하다.

엑소버그는 40년 안에 컴퓨터와 우주선을 만들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인류의 영역으로 전파 신호를 뿌릴 것이다.

그게 내 계획이다.

< 29. 선민사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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