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6화 (145/183)

< 28. 우월 (5) >

***

“탄소 폭풍(Carbon Storm)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져와서 대항하는 것보단 당장 화력으로 본사 부지를 불태우시는 편이 더 안전···”

“당장 가져와!!!”

이대로 알파의 숙청에 당해줄 수는 없다.

로페즈가 명령하자 드론 하이브는 동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남쪽을 향한다. 그 사이 로페즈는 멀어지는 드론 하이브를 쫓아서 계속 뛴다.

배후에서 어둠이 다가오는 감각이 꺼림칙하다. 휴머노이드의 시선 영상을 확인해보니 수십 미터, 이제는 수 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접근했다.

- 자폭하겠습니다. 계속 달리십시오.

휴머노이드 세 기가 로페즈를 등지고 멈춰 선다. 그런 직후 새까만 구름이 휴머노이드를 덮친다.

파스스···!

휴머노이드는 자폭하지 못했다. 오래된 금속이 부식되어 가루가 되는 것처럼, 휴머노이드 세 기는 알파의 휘몰아치는 나노병기에 잡아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마 나노병기와 같은 단위로 분해되었으리라.

‘휩쓸리면 무조건 죽는다···!’

개조된 몸으로 뛰고 있는데도 나노병기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지이잉!!!

로페즈는 다가오는 새까만 구름을 향해 손을 뻗어 실드를 전개한다. 그의 손끝에서 전개된 실드는 네모난 벽처럼 펼쳐져 나노병기를 가로막는다.

츠즈즈즈즈···.

나노병기는 실드와 충돌한다. 검은 구름이 기체처럼 살짝 퍼지더니 이내 실드를 뚫고 들어온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로페즈는 실드를 수정한다. 네모난 벽처럼 전개된 실드를 압축하여 두꺼운 방패처럼 만든 것이다. 그러자 검은 구름이 인공입자가 돌아다니는 실드층을 파고드는 것이 보인다.

츠즈즈즛!!!

실드를 뚫으면서 계속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로페즈는 실드를 향해 뻗은 손을 치우지 않는다. 어차피 여기서 실드를 해제하고 뛰어봤자 금방 따라잡힌다. 이젠 도망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3.2311m」

남은 거리가 대략 3미터. 그 정확한 숫자가 나노병기의 무서움을 알려온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권력자와 능력자가 장로회에 들어갔고 그중 절반 이상이 알파에게 숙청당했으리라. 그들 중 단 한 명도 알파에게 대항하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증식하고, 파괴적이며, 빠르고, 인간이나 컴퓨터나 가리지 않고 무력화하는 병기다.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알파는 저런 병기를 써서 자신만의 규칙을 어긴 일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온 것이다.

‘내 자살을 부추겼어.’

알파는 자신의 정신적인 부분을 공략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했다. 처음엔 자신을 자살로 처리하려 한 걸까.

- 탄소 폭풍을 가져왔습니다. 사정거리 안에 나노병기가 들어올 것입니다. 제가 신호하면 엎드리십시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유도한 것은, 굳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알파가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알파 정도 되는 놈의 판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내가 저항하면 숙청하기 어렵다는 거냐? 알파.”

- 죽어라.

“그래서 자살을 유도한 거지?”

- 죽어라.

“네가 숙청을 어떻게 하는 건지는 대충 알아냈어. 그러니까···”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니까 용기가 생긴다.

“원리를 알았고, 난 살아남을 거야.”

- 죽어라.

- 지금입니다.

로페즈는 잽싸게 엎드린다.

지잉!

그러면서 자기 앞에 전개한 실드를 해제한다.

후우우웅!!!!

바람이 부는 소리다. 강풍도 아니고 미풍도 아닌, 어중간한 바람 소리가 머리 위를 스친다.

수억, 수십억, 어쩌면 그 이상인 수백억의 나노튜브가 탄소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나노병기에 직격한다.

드론 하이브는 공학센터에서 휴머노이드 한 분대를 깨워서 데려온 모양이다. 14기의 휴머노이드가 자기 몸보다 큰 탄소 폭풍 방사기를 들고 서있다.

후우우웅···!

탄소 폭풍에 쓰인 나노튜브는 함대전에서 전장을 가로지르는 철갑탄처럼, 나노 단위의 전장을 가로질러 알파의 나노병기에 적중한다.

나노튜브는 기본적으로 탄소로 되어있기 때문에 로페즈의 눈엔 검은색 가랑비처럼 보인다. 가랑비보다 훨씬 얇고 많지만, 어쨌든 알파의 나노병기와 이쪽의 탄소 폭풍이 충돌하는 모습은 두 검은색이 합쳐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렇게 눈으로 보아선 탄소 폭풍이 알파의 나노병기에 효과가 있는 건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알파의 나노병기가 탄소 폭풍을 맞으면서 움직임이 조금 굼떠졌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부족하다.

- 효과가 있습니다.

“그거 설계도 내 머릿속으로 보내!”

로페즈는 탄소 폭풍의 설계도를 받는다. 그의 심장에 있는 분자 공장이 체내 물질을 분해하여 탄소를 뽑아내고 그 탄소로 나노튜브를 만들어낸다. 심장에서 생산된 나노튜브는 심장의 강력한 펌프질에 의지하여 로페즈의 대동맥으로 뻗어간다.

로페즈는 다시금 손을 뻗는다.

주변에 있던 인공입자가 로페즈의 제어를 받는다.

콰자자작!!!

그의 손바닥이 까맣게 변하면서 핏물을 토해냄과 동시에 새까만 나노튜브를 사출한다. 사출된 나노 튜브는 탄소 폭풍이 되어 실드를 이뤘던 인공입자에 부딪힌다. 그리고 인공입자는 로페즈가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후우웅···! 후우웅···!

탄소 폭풍이 새까만 토네이도가 되어 전방의 나노병기 구름을 돌파한다. 로페즈가 일으킨 토네이도다. 그것에 휩쓸린 나노병기 구름은 흩어지고 옅어져서 조금씩 사라져간다.

“으으으으으!!!”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트랜센던서나 하이퍼 마인드의 도움 없이 이 정교한 작업을, 이 복잡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계산하고 하고 있으니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본사 타워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진 검은 구름이 다 걷히질 않았다. 알파도 대응을 시작했는지 검은 구름이 세 갈래로 나눠져서는 어느새 양옆으로 다가오고 있다.

본사에 있던 것까지 전부 여기로 보낸 것이다.

“내 왼쪽, 오른쪽으로도 쏴!”

- 알겠습니다.

후우웅!

알파의 나노병기를 몰아내고 있는 토네이도의 양옆으로 탄소 폭풍이 까맣게 몰아친다. 로페즈는 거기에 인공입자를 더하여 토네이도 두 개를 더 일으켜 보인다.

- ···관리자님. 지금 무엇을···

세 갈래로 다가오는 나노병기를 토네이도 세 개로 밀어낸다. 알파가 일으킨 검은 구름은 점차 옅어지고 로페즈가 일으킨 검은 토네이도는 계속 커진다.

로페즈의 손끝에서 조종되는 검은 토네이도는 검은 구름과 충돌하여 그 주변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현장이다.

콰콰콰콰콰콰콰!!!!!

110m 이상으로 높이 치솟은 검은 토네이도에 검은 구름이 붙잡혀 강제로 회전당한다. 그 모습이 마치 파괴를 파괴로 제압하려는 두 재해의 힘 싸움 같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검은 형상이 공중에서 얽혀 서로를 잡아먹는 가운데 그 움직임은 모두 로페즈의 손끝에서 조종된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드론 하이브는 처음으로 ‘경이롭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 존경합니다. 관리자님.

꾸욱!

로페즈가 주먹을 쥐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전방의 세 토네이도가 흩어져 사라졌다.

화아악!!! 파스스······.

가까스로 알파의 나노병기를 정리했다.

불꽃이나 폭발 없이, 나노 단위의 전장에서 승리하여 깔끔하게 지워낸 것이다.

“알파. 아직 거기에 있냐?”

이제 알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다리가 무너진다.

털썩!

로페즈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그리고 다시 멀쩡한 세계를 눈에 담는다. 알록달록한 지옥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주변 풍경의 색채가 선명한 빛깔을 되찾는다.

온전히 가시광선으로 보이는 세계다.

사원, 사병, 휴머노이드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 회장님! 어디로 가셨어요?!

- 알파를 상대로 한 교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드론 하이브의 교전 기록을 프랙탈 님과 트랜센던서 님께 제공하겠습니다.

- 회장님. 본사 보안실입니다. 급하게 교신하여 죄송하지만 방금 하이퍼 마인드도 잡아내지 못한 시스템 침입이 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회의 끝나고 바로 올라오셔서 확인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 관리자님. 무사하십니까?

트랜센던서다.

“빨리도 온다.”

- 하이퍼 마인드 서버센터의 양자컴퓨터 내부 회로에 물리적 손상이 복구되기까지 연산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암흑 네트워크로 관리자님께 접근하려 했으나 무언가가 차단막을 형성하여 저를 방해했습니다.

“너를 집중 마크했나 봐. 알파의 나노병기가 본사를 습격했어.”

- 테슬라대대 본사중대 D-3번 드론 하이브의 보고를 확인했습니다. 관리자님께서 나노병기와 교전하신 덕분에 저를 차단했던 나노병기까지 관리자님께 이동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거 우리도 관측할 수 있어. 다양한 파장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 해당 사항도 확인했습니다. 유토피아 구획 전체를 대상으로 나노병기의 움직임을 감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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