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5화 (144/183)

< 28. 우월 (4) >

***

- 오늘 널 숙청하겠다. 로페즈.

“그냥 들어와라. ···알파 이 씹새끼야.”

위잉!

로페즈는 뇌파를 보내 회의실의 문을 원격으로 열어젖힌다.

문 너머에는 어둠만이 있을 뿐이다. 천장의 조명이 다 꺼졌고 환한 햇살을 투영하던 창문은 먹칠이라도 한 것처럼 어둡게 변했다.

“트랜센던서!”

- ···오······ 있···

어두운 통로 한쪽에 자이칸이 서있다.

“자이칸 씨!”

대답이 없다.

로페즈는 자이칸의 품속에서 권총을 뽑아든다. 그리고 주변의 어둠을 경계한다. 사물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당장 여기에 있어선 안 될 것이 보이진 않는다.

“트랜센던서! 프랙탈! 드론 하이브! 아무나 대답해!”

- ······오류.

처음 듣는 기계의 목소리다.

“누구야?!”

- 테슬라대대 본사중대 사옥경호소대 D분대 군체 휴머노이드 근접경호원 D-880입니다.

그는 유일하게 대답하는 휴머노이드의 위치를 파악한다. 바닥을 투시해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1층에서 로비를 통과해 이쪽으로 달려오는 휴머노이드 한 기가 보인다.

“저거 너야?!”

- 그렇습니다.

로페즈는 뛴다. 멈춰버린 사원들을 지나쳐서 엘리베이터 앞에 도달한다. 뇌파를 보내 원격으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려 하지만 역시나 작동하지 않는다.

덜컹!

수동으로 비상계단을 열고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같은 순간에 아래쪽, 1층에 있는 D-880 휴머노이드가 소총을 들고 바삐 올라오고 있다.

쿵···! 쿵쿵쿵!

“···!”

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머리 위의 계단을 올려다본다.

아무것도 없다.

쿵! 쿵! 쿵!

그러나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어떤 파장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탕! 탕! 탕!

로페즈는 자이칸의 권총으로 창문을 쏜다. 그러나 본사의 견고한 창문은 에너지탄을 맞아도 깨지지 않는다.

“휴머노이드!”

- 예. 관리자님.

“나 뛰어내린다! 1층으로!”

- 알겠습니다.

콰장창!

그는 총으로 쏴도 깨지지 않는 창문을 주먹으로 깨버린다.

“윽···!”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건물만 이상한 거야. 바깥은 정상이다!’

그는 스스로 재생하려는 유리 파편을 팔로 걷어버리고 창틀에 발을 올린다.

- 가지마아아아아아아!!!

뒤쪽에서 샌디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온다. 하지만 속지 않는다.

‘거짓말···! 당신은 별동연구소에 있잖아!’

터억!

로페즈는 망설이지 않는다. 179층에서 지상으로 몸을 내던진다. 허공에 던져진 몸이 유토피아의 인공 중력에 이끌려 아래를 향해 맹렬히 추락한다.

“크으으읏···!”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지면의 풍경이 추락하고 있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중력에 맡겨진 몸속 내용물들이 이상한 감각으로 두둥실 뜬 느낌이 되어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적응한다.

“휴머노이드!!!”

- 관리자님.

- 관리자님을 받아라.

- 제가 가겠습니다.

아래에 있던 휴머노이드 몇 기가 동시에 대답하며 추락 예상지점으로 몰려든다. 도로변에 있던 드론 하이브도 연결을 복구했는지 주변의 차량들을 밀쳐버리며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다.

그리고 로페즈는 순식간에 지면까지 추락한다.

지이잉···!

드론 하이브가 로페즈의 몸에 실드를 입혔다. 휴머노이드 세 기가 로페즈를 향해 팔을 뻗었다. 로페즈는 체내의 충격에 대비한다.

콰앙!!!!

“관리자님. 현재 하이퍼 마인드는 발신지를 알 수 없는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로페즈는 휴머노이드의 여섯 손바닥 위에 떨어진 자세다.

“으···. 갈비뼈랑 다리가 부러졌어···.”

“의학센터로 모시겠습니다.”

신경을 조작한 덕분에 통증은 없다.

“···아니야. 자가회복할 수 있어. 그보다 주변을 경계해.”

그는 아스팔트 위에 가까스로 일어서서 회복을 시작한다.

“드론 하이브. 하이퍼 마인드 전체가 마비된 거야?”

“원리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곳 본사 부지에서는 관리자님을 제외한 인간들이 모두 전신마취와 같은 상태에 빠졌습니다.”

로페즈는 그 말을 듣고 유토피아의 천장 너머를 올려다본다.

‘본사 부지 바깥은 멀쩡하다.’

우주 공간의 비행체들은 평소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당장 지원 가능한 병력은?”

“이 자리에 있는 저희가 전부입니다.”

“데이터 소실이 있을 수 있어. 알파는 이 세계에서 내 정보를 지워버리려고 할 거야.”

“그럴 줄 알고 제 동체에 관리자님의 데이터 백업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침착하게 하나씩 따져보자. 현상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초능력이 아니야. 마법도 아니야.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

알파의 숙청이 초능력이나 마법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 자신이 모르고 하이퍼 마인드의 인공지능이 모르는 것.

‘알파는 기술적 특이점이다. 우리보다 우월한 기술력이다.’

드론 하이브는 로페즈의 생각을 읽는다.

“현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알파에겐 하이퍼 마인드 전체의 기술력을 초월하는 수단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까 계단이나 회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근원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까맣게 변했다. 창문의 성분이 바뀐 것은 아마도 아니다. 아까 창문을 깨버렸을 때 유리 파편이 스스로 재생하려 했으니까. 그 성질은 그대로였다.

‘잠깐, 유리 파편이···.’

계단에서 검은색 창문을 깼더니 그 창문은 유리 파편이 되었다. 언제 검은색이었냐는 듯 투명한 조각이 되어서 깨졌다. 그리고 햇빛이 들어왔다.

“드론 하이브! 회의실 녹음기록 열람해봐!”

“열람했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녹음되진 않았어? 회의실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의 목소리라던가, 시끄러운 소음이나 괴성 같은 거!”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들었던 저주의 목소리는 실제로 있었던 소리가 아니다. 다시 말해, 공기가 진동하면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환각···. 환청···.’

그는 자신의 몸속을 점검해본다. 그의 통제를 받는 인공세포와 나노봇이 상처를 회복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심장이나 주요 장기의 활동에 문제는 없다. 혈관을 통해 흐르는 혈류도 지극히 정상적이다. 혈관 안에 이물질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환각. 환청.’

뇌다.

로페즈는 자신의 뇌를 점검해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무엇을 찾으셨습니까?”

알파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인지 비밀이 밝혀졌다.

“나노기술이었어.”

체내, 뇌 안에 알파의 나노병기가 들어온 흔적이 있다. 다행히도 로페즈의 뇌에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나노봇이 있어 외부 물질의 침입을 방어해낸 것이다.

하지만 나노병기에 대응할 수단이 자신의 체내에만 있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의 체내가 아닌 곳은 알파의 나노병기에 무방비하다는 뜻이 된다.

“저희도 나노기술은 보유하고 있습니다.”

“알파는 우리가 아는 나노기술 이하의 단위까지 있는 것 같아. 아무튼 우리의 분자 생물학으로 알파의 무기를 관측할 수 있어. 정확히는, 알파의 무기가 대강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어.”

“더 구체적인 관측 도구가 필요합니다.”

“나노 계측기. 가용한 파장은 모조리 활용해. 너의 눈, 내 눈, 휴머노이드의 눈, 카메라, 연구실 장비, 로보버그, 뭐든지 다.”

“확인했습니다.”

드론 하이브가 확인했다고 말함과 동시에 로페즈도 확인한다.

“미친···.”

드론 하이브는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전자 광선, 이온 광선 등 무언가를 관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을 총동원하여 데이터를 모았다. 그렇게 모인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해석하여 로페즈의 눈에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금 로페즈가 보고 있는 세상은 알록달록하면서도 흐릿한, 어린이의 낙서 수천 개를 겹쳐서 악몽처럼 투영한 것 같다.

이상하게 요동치는 색감 속에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저런 걸 상대로 도망칠 수 있나···?”

250층 높이의 본사 타워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타워의 각 창문으로 까만 기체가 먹구름처럼 새어 나온다. 1층 출입문에서도 새까맣게 빛을 흡수하는 먹구름이 명백히 이쪽으로,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

마치 어둠이 다가온다는 표현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것 같다.

“우선은 이동하셔야 합니다.”

로페즈는 드론 하이브 한 기, 군체 휴머노이드 세 기와 함께 본사 부지의 남쪽으로 뛴다.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것은 당장 육안으로 확인된다.

“저것들이 본사에만 있는 게 아니야!”

가로등이나 주변 시설이나 차량 등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저것들이 다 나노 단위의 병기다. 알파의 숙청 도구다.

가까이 가면 흔적도 없이 당해버릴 것이다.

“알파의 나노병기에는 이동속도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주선은?!”

“근처에 정박한 우주선은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대로 도시까지 가야 돼?”

“그렇습니다.”

“저것들이 도시로 난입하면? 나 잡으려고 다 망가뜨리고 부숴버리면?”

“그것은 저희가 고려할 사항이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관리자님의 안전입니다. 필요하다면 유토피아를 포기해서라도 도망치셔야 합니다.”

싫다.

그런데 여기서 마냥 싫다고 하는 것은 어리광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무조건 싫다고만 할 수는 없다.

‘여긴 내 유토피아야···. 싫어···. 그건 싫다고···.’

하지만 저것에 대항할 수단이 없다면 당장은 드론 하이브를 따라 도망치는 것이 무조건 옳다.

‘싫으면 생각해. 싫으면 생각하라고!’

어떻게 대항할까.

나노 단위의 병기가 본사 전체를 장악하고 사전에 주변까지 퍼져서 도주 수단을 차단하고 있다. 딱 봐도 알파가 도주 수단을 남겨뒀을 리가 없다.

‘플라즈마 방사기를 뿌릴까···? 아니야. 저만한 크기를 불태우려면 열핵융합 폭발을 각오하고 써야 해.’

그러면 본사 부지는 물론 본사 부지에 있던 사원들까지 자기 손으로 불태워 죽이는 꼴이다.

‘중력을··· 아니야. 단위 부피당 질량이 달라.’

카르민펙토스 재단 때처럼 본사 부지의 중력을 강화해도 저 나노병기들은 멀쩡하게 움직일 것이다. 저 나노병기들은 비행체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중력을 강화해서 저것들의 질량에 가해지는 무게를 더하더라도 그다지 바닥에 잘 붙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것들을 확실히 붙잡을 정도로 중력을 대폭 강화하자니 또 본사 부지의 사원들이 위험해진다.

‘도대체 뭐로 만든 거야? 뭐로 만들었길래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냐고···.’

아무리 작은 병기라도 저만한 숫자가 들어왔으면 하이퍼 마인드가 잡아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아니야. 잡아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잡아낼 수 있었어.’

그 증거로 지금 가용한 관측 도구들을 이용해 저것들을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이퍼 마인드는 저만한 규모의 나노병기가 유토피아에 들어왔으면 진작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가설이 세워진다.

‘처음엔 저만한 숫자가 아니었다는 건가···. 처음엔···.’

증식했다.

저것들이 처음엔 소수만 들어와서 알게 모르게 증식한 것이다.

“관리자님. 제가 플라즈마를 사출하여 적대적 나노병기의 숫자를 줄여보겠습니다.”

화력으로 진압하는 건 안 된다.

“의미 없어! 없애도 더 생길 거야! 저것들은 스스로 숫자를 불리는 병기야!”

“하지만 이대로라면 피해 영역이 확대될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본사 부지를 포기하시고 적대적 나노병기를 단번에 처리하시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알파의 나노병기를 본사 부지와 함께 통째로 파괴해버리자는 말이다. 유토피아의 민간 도시에 피해가 확대되는 게 싫다면 본사 부지를 희생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본사 부지에 있는 사원들도 민간인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에게 더 소중한 사람들은 도시에 있는 시민들이 아니라 본사에 있는 사원들이 아닌가.

그래도 단순히 목숨의 숫자를 저울질하자면 본사 부지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

‘그럴 수 없어. 당장은.’

지금 중요한 것은 저울질이 아니다. 두 선택지 중에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다간 더 좋은 수를 떠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쪽으로 생각이 휘말려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두 비극밖에 없게 된다.

인공지능은 상황을 분석하고 쌓인 데이터를 참고하여 몇 가지 선택지를 도출하고 그중 확률이 높은 방안을 선택한다.

“이대로라면 관리자님은 물론이며 유토피아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본사와 도시. 냉정하게 어느 것을 포기할지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자신은 인간이다. 인공지능만큼 분석력이 뛰어나지도, 방대한 데이터를 참고하지도, 정확한 선택지를 도출하지도, 확률을 계산하지도 못한다.

‘방법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도 자신은 인간이다. 경험이 있고 경험에서 오는 감이 있다. 그 감이라는 것이 부정확하긴 하지만 때때론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선택지는 없어도 돌파구는 늘 생각해왔다.

확률을 계산하진 못해도 ‘가능성’은 찾아낼 수 있다. 상황에 주어진 절대적인 선택지란 없다. 선택지란 자신이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확률과 가능성의 미묘한 차이다. 그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다.

“방법이···. 방법이 있어···!”

그는 기어코 떠올렸다.

“어떤 방법입니까?”

“드론 하이브! 남쪽 공학센터에 프로토타입 무기 있지? 저번에 드레이크에서 공학자들이 가져온 그거!”

드레이크의 해저를 뚫은 실험적인 시추공. 그 행성에서 발견된 원자 충진율이 매우 높은 듀얼 풀러렌을 나노튜브로 접어서 만든 것. 그 신기술은 공학적 병기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나노튜브로 만든 ‘나노 단위의 발사체’다.

목표물을 찔러서 가루로 갈아버리는 신무기.

그게 있었다.

“탄소 폭풍(Carbon Storm)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져와서 대항하는 것보단 당장 화력으로 본사 부지를 불태우시는 편이 더 안전···”

“당장 가져와!!!”

이대로 알파의 숙청에 당해줄 수는 없다.

< 28. 우월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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