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우월 (1) >
***
“둘 중에 누가 먼저 선을 넘었나?”
“그거야 당연히······.”
제타는,
제록시스는 고뇌한다. 짧은 순간에 억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것 같다.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시작은 가이우스였다.
가이우스를 도구로, 태양계를 전쟁의 불씨로 삼아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려고 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자신이 세계를 정복하여 군림하려고 했다.
자신이라는 개인이 군림하기 위해선 당연히 군림하기에 적합한 이념과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시켜야 했다. 그러면 베타와 알파를 가볍게 뛰어넘고 언제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지만 웬 듣도 보도 못한 태양계의 로페즈라는 녀석이 일을 망쳐놨다. 당시에 로페즈는 장로회 소속이 아니었지만 감마의 카르민펙토스 재단을 통해 시험을 받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장 군대를 움직여 죽여버리기엔 눈치가 보였다.
나중에 로페즈의 주장으론 다이토 녀석이 먼저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그 녀석은 로페즈에게 죽었으니, 남은 악감정은 자연히 로페즈에게 쏠렸다. 그게 당연했다.
그 미운 녀석이 장로회에 들어오는 바람에 손을 대기도 어려워졌다. 알파의 터무니없는 규칙이 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용히 힘을 모으면서 로페즈를 지켜보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로페즈를 죽이려고 했다. 죽이고 싶었다.
때마침 갤리어스 국장이라는 자가 찾아와서 자신이 장로회의 델타라고 소개했다. 갤리어스 국장은 그러면서 로페즈와 옵시디아몬의 원대한 꿈을 알려주었고, 로페즈가 꿈을 이루기 위해 향할 드레이크 쌍성계의 좌표를 선뜻 넘겨주었다.
하지만 섣불리 델타와 손을 잡기엔 델타에게 전과가 있었다. 델타는 전대 카파, 공학의 정점이었던 마야 피티아의 사소한 규칙 위반을 알파에게 일러바쳐서 그녀를 숙청당하게 만든, 박쥐 같은 놈이었다.
물론 델타도 로페즈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당시에 드레이크 쌍성계의 좌표를 넘겨주면서 딱히 로페즈를 어떻게 해보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냥 막내가 하는 짓을 선배들이 아는 편이 좋다면서 좌표를 줬을 뿐이다.
그것이 델타의 함정 같아서 전대 카파, 작업의 정점인 오셀로를 이용했다. 그에게 커다란 자리를 내어주겠다면서 로페즈를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작업의 정점이라면 드레이크 쌍성계라는 외딴 곳에서 로페즈를 죽일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하지만 오셀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로페즈는 엄청난 증거수집 능력으로 오셀로를 역으로 고발했다. 끝내 오셀로는 알파의 숙청까지 당하게 되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날 알파의 숙청을 당하게 된 자는 오셀로가 아니라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다시 힘을 모으며 기회를 엿보았다. 악감정은 둘째치고 세계대전을 일으키는데 로페즈라는 존재는 눈엣가시이자 걸림돌이었으니까.
정말 증오스럽게도 로페즈는 라디에크에서 진행 중인 알 샤이탄의 작업에까지 훼방을 놓았다. 금속의 천사들이라나 뭐라나.
가이우스에 이어서 다음 도구인 알 샤이탄까지 잡으려고 하는 꼴이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이 정도면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이를 갈던 어느 날, 로페즈가 프랙탈이라 불리는 본대를 이끌고 드레이크 쌍성계로 떠났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렸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태양계에 있는 장로회의 일원은 미르니의 총수인 세를린과 옵시디아몬의 로페즈 회장밖에 없으니까.
세를린은 어차피 목성 소속이고 로페즈는 화성 소속.
그래서 가장 점령하기 쉽고 일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칠 일도 없는 천왕성을 공략했다. 동시에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전멸 직전이었던 알 샤이탄을 가까스로 쿠데타의 도구로 활용하여 라디에크 항성국가를 점령했다.
꿈에 그리던 군주국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때도 갈 길은 멀었다. 군주국이 인류를 통일하기 위해선 세계대전이 필요했고 세계대전을 일으키기에 가장 유리한 곳이 태양계였다.
예상대로 태양계 연합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저번 전쟁으로 인한 균열이 있었고 이번 전쟁은 그 균열을 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천왕성을 중심으로 시작된 태양계의 내분은···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나?”
“···아.”
알파에 이어서 델타가 그를 몰아붙인다.
“정신이 나갔나 보군. 알파 님께서는 자네와 로페즈 중에 누가 먼저 시작했냐고 물으셨다. 이 이상 끌지 말고 당장 대답하게.”
알파 앞에서는 고뇌하는 것조차 통제를 받는 것 같다.
누가 먼저 시작했냐고.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예. 알파 님. 그거야 물론···”
미쳤다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솔직하게 대답하겠나.
“전적으로 로페즈가 먼저 위해를 가한 것 같습니다.”
알파는 되묻는다.
“같습니다?”
“예. 알파 님. 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알파 님께서는 모든 진실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알파 님께서는 저와 로페즈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그렇습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델타가 발끈한다.
“이 녀석이 알파 님께서 보시는데 어디서 잔머리를···!”
“델타. 말하는 도중에 참견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그래. 제록시스. 내가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인가?”
“로페즈 그 녀석. ‘지능’의 정점 말입니다. 태양계 최대의 인공지능, 정보력, 기술력, 하이퍼 마인드를 소유한 대기업 옵시디아몬의 회장 로페즈 말입니다.”
제타는 알파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주 당당한 태도로 확실하게 따진다.
“로페즈 정도 되는 놈이라면 제가, 제록시스가 제타라는 것은 지금쯤 이미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제가 알파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알파 님께서는 로페즈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로페즈가 제 정체를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
“녀석이 라디에크에 쳐들어와서 제가 탑승 중인 켈크란투 함대를 ‘직접 공격’하고 있는 지금도 말입니까?”
그러나 알파는 제타의 입놀림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질문은 내가 하고 있네.”
“예.”
“그래서 자네의 대답은, 로페즈가 먼저 자네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말인가?”
“예. 심지어 제 정체를 알고 있는 지금도 말입니다.”
알파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만 돌아가 보게.”
“···이대로 가면 됩니까?”
“자네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지 않나.”
알파는 이번에도 당사자에겐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처분을 바랍니다. 알파 님.”
“자네의 대답은 잘 들었네.”
***
수세에 몰린 반군 함대는 행성의 지원을 받기 위해 라딘 센터로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행성의 방어 시스템을 돌파한 연합군은 라딘 센터의 방어위성을 격추하고 대다수의 지대공 화기를 점령하였다.
라딘 센터의 대공화기와 연합군 함대의 함포사격 사이에 놓인 반군 함대는 궤멸 직전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알 샤이탄의 기함 켈크란투는 수많은 연합군 함대에 포위당하여 최후의 발악을 한다.
“군주님···.”
“프랙탈을 공격해라!!!”
이 모든 실패의 근원인 로페즈.
제록시스는 그가 탑승하고 있는 프랙탈을 공간 소거 중력장으로 짓이겨버리려는 것이다.
같은 순간 프랙탈 함교의 로페즈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막을 수 있지?”
- 엔진 출력의 75%를 실드로, 20%를 역추적 중력장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연합군 함대에 유일한 공포였던 켈크란트의 주무기가 엄청난 크기의 중력장을 전개한다.
- 중력장 연산 완료. 충분히 대응 가능합니다.
프랙탈을 중심으로 별빛이 왜곡되는 순간, 프랙탈 함대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보호막이 전개된다. 동시에 왜곡되던 별빛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켈크란투의 공세가 막혀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연합군 각국의 함장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화성 측 피해는 전무합니다!”
“저걸 막다니···. 말도 안 되는 무적함대로군.”
“저게 화성의 기함이라고 했나?”
“옵시디아몬의 기함, 프랙탈입니다.”
“정확히는 이번에 화성 정규군으로 편성된 옵시디아몬이라는 대기업의 지휘주력함이라고 합니다.”
“그 기술약소국이었던 화성에서 저런 기업이···.”
엔진 출력을 공간 소거 중력장으로 토해낸 켈크란투는 실드도 전개하지 못하여 연합군 함대의 가혹한 함포사격에 노출되었다.
마지막으로 켈크란투를 지키던 반군 함대가 하나둘씩 격침당하고 홀로 남겨진 켈크란투는 엔진의 출력이 충전되는 대로 실드에만 사용하여 등딱지에 숨은 거북이처럼 가만히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연합군 함대 전체의 화력을 기함 하나가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는 게 현실이었다. 점차 실드를 뚫고 들어오는 공격이 켈크란투에 적중하면서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연합군 전체에 어떤 전략을 약속했던 로페즈는 화성의 총사령관에게 교신을 보낸다.
“이 정도 깎았으면 된 것 같습니다.”
- 직접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만 잘 해주세요.”
***
켈크란투의 장갑 표면에 옵시디아몬의 문어처럼 생긴 우주선 수십 척이 달라붙는다.
이윽고 켈크란투의 내부로 군체 휴머노이드, 체인트루퍼, 스텔스기동타격대가 침투하여 반군들을 내부에서 학살하기 시작한다.
키이이이잉!!!
통로는 굴러다니는 체인트루퍼에 의해 마비되고 각 무기고는 군체 휴머노이드의 습격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천장에 달린 포탑은 새까맣게 쇄도하는 로보버그 무리에 찢겨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붉은 조명이 어두운 함교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다. 넓은 함교의 중심에 서있던 제록시스는 자신을 둘러싼 홀로그램을 보며 체감한다.
‘졌다.’
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겪어왔던 경험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다. 자신이 패배하였다고.
“군주님. A동 진입로가 돌파당했습니다.”
“섬멸타격대가 전멸했습니다.”
“그만.”
제록시스는 허공에 손짓하여 홀로그램을 꺼버린다.
“더는 듣고 싶지 않다.”
홀로그램을 꺼버렸다는 것은 지휘를 그만두었다는 뜻.
지휘를 그만두었다는 뜻은 더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
더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항복 전언을 보내라.”
“예.”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자신은 영광스러운 전투에 목숨을 바치는 말단들과 다르다. 비록 이렇게 패배하여 전쟁의 불꽃은 꺼져버리겠지만, 가슴속의 야망이라는 불꽃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래서 이렇게 패배하고도, 비참하게 항복 전언을 보내고도 그의 의지는 그대로인 것이다.
“군주님···.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심각한 상황에 문제가 한둘인가? 뜸 들이지 말고 말해.”
“항복은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뭐?”
“그러니까 그게···. 연합군은 군주님과 반군들을 모조리 체포하겠다고 합니다.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그러면 후퇴한다! 켈크란투만 살려서 가속해!”
“연합군이 켈크란투를 중력장으로 포위했습니다. 중력장을 뚫기 위한 실드와 가속에 필요한 엔진 출력이 부족합니다. 방금 공간 소거 중력장을 전개한 터라···.”
이길 수도 없고 항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이대로 켈크란투에 꼼짝없이 갇혀서 지금 A동 진입로를 돌파한 무리에게 체포당할 판이다.
“지, 진입로부터 방어해!”
그가 소리치는 순간, 함교의 문 너머에서 총성과 찢어지는 굉음이 들려온다.
타타타타탕!
키이이잉! 쩌엉···!!!
붉은 천으로 장식된 합금 문이 폭발적으로 부서졌다. 문의 잔해를 밟고 들어오는 휴머노이드 무리가 실드 방패를 들고 있다.
“막아!!!”
그 즉시 함교의 어둠 속에 숨어있던 개조인 반군 수십 명이 에너지 소총을 발포한다. 그러자 휴머노이드 무리의 배후에서 수백 기의 로보버그가 함교로 난입하여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선사한다.
쐐애애애액!!!!
퍼퍼퍼퍼퍼억···!
조금이라도 저항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초는 지났을까. 아마 4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최정예 개조인 수십 명이 당한 것이다.
“오지 마! 씨발···!”
수십의 시체가 미동도 없다. 아군도 없이 함교에 홀로 남겨진 제록시스는 붉은 권총을 꺼내어 무작정 방아쇠를 당겨댄다.
카앙! 카앙! 카앙!
권총의 총구에서 번개 같은 빛줄기가 일직선으로 점멸하며 굉음을 낸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의 실드 방패에 모조리 막혀버렸다.
카앙! 카앙! 카앙!
“으으으으아!!!”
카앙! 카앙! 틱···!
공허한 울림이다.
권총에 충전된 에너지를 다 소모했다.
틱···! 틱···.
방아쇠를 당겨도 총구는 불을 뿜지 않는다.
“개새끼들···.”
제록시스는 주변을 곁눈질한다. 함교의 부하들이 바닥에 널브러져서 살짝 붉은 조명 아래에 핏물을 고이게 하고 있다.
처억! 처억!
휴머노이드가 순식간에 함교로 들이닥쳐서 그를 둥글게 에워싼다. 천장에는 수백의 로보버그가 달라붙어서 징그럽게 날개를 떨고 있다.
제록시스는 처절하게 외친다.
“이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 정도로 저물어버릴 태양이 아니야!!!”
“이걸로 끝이 아니면 뒤에 뭐가 있는데?”
“···!”
듣기만 해도 살인 충동이 끓어오르는 목소리.
보고만 있어도 찢어버리고 싶은 얼굴.
하찮은 것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저 눈빛이 은은한 안광을 발하고 있다.
“이 씨발새끼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와?!”
로페즈.
“어디긴. 저항할 힘도 없는 패배자의 함교지.”
틱···! 틱···!
제록시스는 로페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구는 공허한 울림만 내뱉는다.
“개새끼···! 네가 내 모든 걸 망쳤어···!”
“꿇어.”
터억!
제록시스는 자기 무릎이 바닥에 닿는 충격을 느낀다.
“으···! 끄으으으으윽!!!!”
아무리 힘을 주어도 자세가 바뀌질 않는다. 비굴하게 무릎을 꿇은 그대로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고개가 멋대로 들어올려져서 로페즈를 보게 된다.
“무슨 개수작을···.”
은은한 안광을 발하고 있는 로페즈가 이쪽으로 손아귀를 뻗고 있다. 초능력이라도 쓰는 것처럼.
“이제부터 나를 섬겨. 제록시스.”
제록시스는 혈압이 터질 뻔했다.
“이 좆도 모르는 꼬맹이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하냐 개새끼야!!!!”
“개처럼 기어 다니고 싶어?”
“으···! 으으···. 끄으으으으아아아아!!!!!”
손이 멋대로 움직인다. 손이 멋대로 바닥을 짚는다. 무릎을 꿇었던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펴진다. 손과 발바닥으로 바닥을 짚는 자세가 되기 직전이다. 개처럼.
“아아아아아아아!!! 으으으아아아아!!!”
뚜둑···! 뚜두둑···!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굴욕에 저항하려고 했더니 근육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억지로 움직인다.
뚜두둑···!
그러다 근육이 말을 듣게 되면서 제록시스는 가까스로 원래 자세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허억···! 헉···! 허억···!”
“두 가지 중에 선택해. 이제부터 무슨 자세로 나를 대할지.”
“···개처럼 기거나 무릎을 꿇으라고?”
“그래.”
제록시스는 안면을 일그러뜨린다.
그리곤 대답을 선택한다.
“좆까 이 씨발새끼야.”
“···.”
“너 나 못 죽이지? 씨발, 연합군이 갑자기 왜 안 때리나 했더니만···.”
애당초 반군 함대를 공격하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켈크란투까지 없애버리면 끝날 전쟁.
굳이 중력장을 펼치고 함대를 펼쳐서 이런 수고를 들이고 있다는 점. 의도가 훤히 보인다.
“크크, 내가 감옥에 들어가도 어차피 전쟁은 또 터질 거야. 왠지 알아? 내가 탈옥해야 되거든.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날 어떻게 세뇌라도 시키려고 하겠지. 그런데 난 뇌를 개조해서 세뇌가 안 통할 거다.”
“진심으로?”
“그럼 진심이지 새끼야.”
“아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고.”
“뭐?”
“내가 왔잖아.”
“뭔 개소리야?”
로페즈는 무릎 꿇은 제록시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
제록시스는 강제로 로페즈와 눈을 마주한다.
차갑다. 은은한 안광을 발하고 있는 동공이다. 가까이서 마주하자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그의 시선에서 어딘가 인간의 느낌이 나질 않는 것 같다. 여차하면 죽임당할 것이다. 그런 위험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새끼는 대체······.’
원래 이런 놈이었나. 전쟁이 싫다고 빽빽거리는 착한 이미지 아니었나. 지금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무슨 사악한 꿍꿍이라도 있는 괴물을 상대하는 기분이다.
“프랙탈에서 지휘하고 있어야 할 내가 이 함교까지, 이렇게 직접 들어왔잖아. 왜겠어?”
이 미친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괴물 같은 놈···.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 28. 우월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