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1화 (140/183)

< 27. 커튼콜 (5) >

***

“지금부터 국제사회가 알 샤이탄을 쓸어버릴 겁니다.”

같은 순간에 제록시스는 당혹감을 표출한다.

“연합군이 이렇게나 빨리 왔다고···?”

7개의 연합과 1개의 대기업, 1개의 거대기업으로 맺어진 연합은 맹렬한 속도로 라딘 센터의 전장에 합류한다.

알 샤이탄의 총 전력인 81개 함단은 연합군 앞에 갑자기 작아 보인다. 화성 함대, 옵시디아몬 함대, 그밖에 다른 국가들의 함대가 결집하여 146개 함단을 이룬 것이다.

- 저 비열한 족속들을 지워라!

- 오늘부로 제록시스의 독재는 끝날 것이다!

- 전 함대! 라딘 센터로 가속하라!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는 함대전에 있어 압도적인 화력 차이를 낳았다.

알 샤이탄의 함대가 전개하는 실드는 연합군의 화력을 버텨내지 못한다.

뚫린 화력망으로 투사체와 발사체가 들어오면 알 샤이탄의 함선과 함재기가 차례차례 격침당한다.

우주 공간에 터지는 수많은 폭발들이 대부분 알 샤이탄 쪽에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부 화력은 알 샤이탄 함대를 지나쳐서 배후의 라딘 센터까지 도달하여 행성 표면에 간간이 불꽃을 일으킨다.

프랙탈은 로페즈에게 질문한다.

- 차원통로의 관리자들이 이 많은 연합을 설득한 것입니까?

“그것도 있고. 태양계 연합의 지도자들이 힘을 합친 것도 있어.”

- 태양계에선 내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지도자들이 어떻게 힘을 합쳤다는 것입니까?

“천왕성을 격파하고 태양계에서 싸울 명분이 사라진 거야.”

***

개전 당시부터 소극적이었던 수성은 예외다.

금성 PP는 로페즈의 뜻대로 토성과 곧장 종전협정을 맺은 후 목성의 선전포고를 기꺼이 받아냈다.

화성은 드레이크 쌍성계에서 돌아온 옵시디아몬 함대와 함께 고립된 천왕성을 대대적으로 공습하였다.

와중에 목성은 금성과 실질적인 교전 없이 토성부터 빠르게 정리하려고 했다.

토성은 천왕성에 보냈던 군대를 돌려서 목성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했다.

그리고 목성이 토성을 정리하기 전에, 화성과 옵시디아몬의 군대가 먼저 천왕성을 밀어버렸다.

천왕성의 차가운 표면은 뜨겁게 타오르는 크레이터가 뒤덮어 달처럼 변했고 천왕성의 도시는 함락했다.

천왕성의 궤도에 있던 대규모 콜로니들은 함대전에 휘말려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었고 천왕성을 점거한 알 샤이탄 함대는, 천왕성의 안위 따위 생각하지 않는 무자비한 공세에 간단히 궤멸당했다.

자연스레 혼자서만 태양계의 전쟁을 이어가는 입장이 된 목성은 매우 난처해졌다.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전쟁을 그만두자니 강대국의 체면이 서질 않고, 전쟁을 계속하자니 침략자 같은 역할이 되어서 또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목성은 토성과 금성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알 샤이탄을 노릴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리고 목성이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하이퍼 마인드에서 알아차렸다.

딱 그 시점에서 로페즈는 베르도를 부추겼다.

“등만 살짝 밀어주면 움직일 겁니다. 토성은 목성과 그만 싸우고 싶어 하고, 수성은 다수의 의견에 쉽게 휘둘립니다. 그리고 금성은 각하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할 겁니다.”

“확신할 수 있는가?”

“네. 확신합니다.”

“태양계 지도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자네는 다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제가 아니라 하이퍼 마인드가 다 알아냈습니다. 각하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각국의 지도자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요.”

“매번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인공지능이군.”

“각하께서 저번에 전술정보교환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제공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알겠네. 내가 국민의 불안을 덜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라면···. 해야만 하겠지.”

그렇게 베르도가 나섰다. 목성이라는 거인의 등을 밀기 위해서 말이다.

태양계 각국의 지도자가 모인 태양계 연합 회의에서 베르도는 로페즈와 사전에 입을 맞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은 태양계의 대의를 위해 다 같이 거짓말을 하자는 이야기였다.

“사실 천왕성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것에는 화성의 책임도 있습니다. 천왕성 민간시설의 피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태양계에서 군주국을 몰아내긴 했지만, 어쨌든 화성이 주도한 이번 작전 때문에 천왕성의 도시가 무너지고, 수많은 콜로니가 함대전에 휘말려 불태워졌습니다.”

순식간에 태양계의 반군을 몰아낸 화성이다.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될 일에 화성 PP가 잘잘못을 따져가며 유감을 표하자, 금성 PP가 입을 연다.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성은 태양계의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로페즈의 말대로 금성 PP는 화성에 굉장히 우호적으로 변했다. 토성을 밀어버리려던 금성의 태도를 무슨 수로 이렇게나 바꿔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도는 로페즈가 암암리에 무언가를 했다고 여기며, 금성 PP의 태도가 바뀐 이유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이렇게 태양계에서 알 샤이탄은 몰아낸 결과가 되었습니다. 본래 알 샤이탄을 몰아내면서 태양계에서의 전쟁이 끝나기를 희망했지만, 이 상황에 목성 측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베르도의 질문이 화살처럼 날아가 목성 SP에게 꽂힌다.

목성 SP는 방어적인 발언부터 내뱉는다.

“그···. 이번에 금성은 통일전선의 규약을 위반했습니다. 토성은 태양계 연합과 회의도 없이 단독으로 천왕성에 개전을 선포했고···. 화성은 민간군사조직의 힘을 빌려서 천왕성을 불바다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목성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려는 태도다.

그리고 베르도는 당장 목성 SP의 반응을 보면서 내심 놀라워한다.

‘진짜 로페즈가 말한 그대로 반응하잖아?’

“···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당한 말씀이죠.”

“그러니까 그쪽들이 우리 목성을 비난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도 전쟁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주장에 토성 SP만 노골적인 반감을 표한다.

“정말로 전쟁을 하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우리랑 같이 천왕성을 치는 게 수순이었겠죠.”

“토성 측에선 아무런 연락이나 공지도 없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1분 1초가 급박한 공습 상황에 그런 식으로 말을 맞추는 것을 보고 탁상공론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토성 SP의 적대적인 반응까지···.’

베르도는 이 대화의 흐름이라는 정답지라도 보고 온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된다.

“자, 이쯤하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미래.

미래는 현재가 괴롭고 불안하고 싫을수록 특히나 갈구하게 되는 단어다.

이제 모두가 베르도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태양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신우주문명 지도자 연합’에 보고하면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겠죠. 이 자리의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국가적 이미지의 실추. 지도자를 향한 비난은 대다수의 지도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잘못한 것이 하나씩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도는 수성에, 금성에, 목성에, 토성에,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책임의 화살을 날린다.

“···수성은 방관했고. 금성은 섣불리 선전포고를 하고 손바닥 뒤집듯 목성과의 규약을 어겼습니다. 저희 화성은 전쟁에 민간군사조직을 대동해가며 천왕성에 심대한 피해를 입혔고 태양계의 전쟁을 사전에 막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베르도는 조목조목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을 말한다.

“큰 힘에 큰 책임이 있는 목성도 금성처럼 섣불리 선전포고를 했고, 금성이 규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금성에도 선전포고를 하는, 그 강대한 군사력으로 알 샤이탄이라는 주적을 내버려 두고 이웃과 싸우는 기행을 벌였습니다.”

“토성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무거운 죗값을 치르고 있는 입장임에도 또다시 앞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누구보다도 빨리, 태양계 연합에 어떠한 사전 의사 표명도 없이 단독으로 말입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선생님에게 혼나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거나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것이고, 심하면 국제사회의 제재까지 받게 될 겁니다. 신우주문명 지도자 연합에서 도태되어 태양계에 대한 신뢰와 우호가 추락하고, 그 심대한 타격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아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우리의 안일한 태도와 광적인 선택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베르도의 진심이 홀로그램을 넘어서 태양계 전역에 퍼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도자입니다. 동시에, 정치인입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이 모든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희 모두가 입을 맞춰서, 다 없던 일로 합시다.”

목성 SP는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다.

“진지하게 듣고 있었는데 이 무슨···. 여기서 전쟁이 터졌고 당장 상황은 어떻고! 이런 것들이 지금도 전 세계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미 다 엎질러진 판인데 뭘 어떻게 없던 일로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제가 요점을 빠뜨렸군요.”

요점.

“이미 알려진 사실을 은폐하는 게 아니라, 각국의 실수만 없던 것으로 하자는 뜻입니다.”

베르도는 차근차근 자신의 뜻을 설명했다.

수성은 방관하지 않고 화성에 물자를 지원하는 등 간접적으로 알 샤이탄에 대항했다.

금성과 목성은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토성에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는 천왕성 군주국을 교란하기 위함이었다.

화성은 옵시디아몬의 함대가 돌아오기까지 천왕성 군주국의 공격성을 줄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했다. 또한 이번에 천왕성이 불바다가 된 것은 알 샤이탄의 비열한 전술 때문이었다.

토성은 천왕성 군주국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제일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며 기꺼이 금성과 목성의 교전에도 응했다. 그것은 저번 전쟁에서 토성이 국제적으로 저지른 전쟁범죄의 죗값을 치르기 위한 자발적 희생이었다.

알 샤이탄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거대한 연극에서 죽은 아군들은 모두 인조인간.

파괴된 함선의 절반 이상은 홀로그램.

전사자의 유가족들에게 전달된 공지는 혹여나 국내에 있을 알 샤이탄 공작원을 속이기 위한 거짓.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고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화성의 칼이 태양계의 반군을 몰아냈다.

전쟁에 직접 피해를 입은 민간지역은 천왕성뿐. 토성의 민간지역인 타이탄이 목성에 공격당하기 전에 모든 계획을 완료했으니, 덮을 수 있다.

매스컴에는 알 샤이탄의 만행을 쏟아낸다. 이쪽의 실수로 과한 피해가 있는 사건들도 전부 알 샤이탄의 인질극이나 비열한 전술 등으로 포장한다.

이 거대한 거짓말에 필요한 수단은 옵시디아몬의 기술력이며, 경이롭게도 트랜센던서는 이것이 가능하도록 태양계의 모든 정보흐름을 제어하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무려 ‘한 사람 한 사람’ 단위로 말이다.

“전부 알 샤이탄이 잘못한 일이 되는 겁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그들이 한 짓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예측했다.

“···우리 태양계 연합이 차원통로의 관리자들과 협력하여 알 샤이탄을 척결하는데 어느 국가보다도 앞장 서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비난의 화살을 모두 피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은 알 샤이탄이 받아낼 겁니다. 독재자, 전체주의, 공산국가라면 다들 치를 떱니다.”

태양계는 비난을 받는 입장에서 탈출하여 정의롭게 악을 심판하는 입장으로 서둘러 움직이기를 꾀한 것이다.

***

- 관리자님의 판단은 제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전략이었습니다.

- 프랙탈. 관리자님과 나는 약 2억의 증거를 조작하고 약 3500만의 인조인간을 생산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이곳에서의 전투는 네가 연산하라.

“다음은 쉬웠지. 국제사회의 여론이 알 샤이탄을 엄청나게 비난하고 때마침 차원통로의 관리자들이 국제적인 연합군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태양계가 앞서 자원하니까 눈치만 살피던 국제사회에서 루비코, 이스페라, 코르코바두, 슬라브까지 연합에 동참한 거야. 가만히 있으면 욕먹을 것 같아서.”

천왕성의 반군을 빠르게 몰아내고 태양계의 내분을 즉시 끝내버린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 연합군이 이렇게나 이른 시기에 라디에크로 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이것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의 중요성이다. 국가들을 움직이는 가장 빠른 수단은 여론이다.

- 알겠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저도 하이퍼 마인드로 복귀하여 해당 내용을 최우선적으로 학습하겠습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프랙탈의 초토화 분광기가 다시금 빛을 뿜는다.

이어서 루비코의 반짝이는 기함이 핵분열의 에너지를 일직선으로 사출하며 반군 함대를 일렬로 그어버린다.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이스페라의 초록색 기함이 중력 조작 장치가 탑재된 우주선 크기의 반물질 탄두를 보내어 반군 함대에 태양 같은 형상의 불꽃을 일으킨다.

코르코바두는 함대 전체가 스텔스 모드로 진입하여 반군 함대에 코뿔소처럼 물리적인 충돌을 가한다.

슬라브의 표준규격 이상의 함재기들은 말도 안 되는 숫자의 핵미사일을 근접전에서 쏟아내며 개별 화력의 위용을 과시한다.

화성은 함대 전체가 전탄 발사를 계속하며 화력 집중을 멈추지 않는다.

목성의 거대한 기함은 플라즈마 덩어리 같은 파괴적인 구름을 부채꼴 모양으로 방사하여 반군 함대를 고압 전류 속에 지져버린다.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는 수성의 관측선들은 연합군의 화력에 아군 함대가 휩쓸리지 않도록 적재적소의 좌표에 중력장과 대규모 실드 방벽을 펼친다.

문자 그대로 연합군이 반군 함대를 쓸어버리는 상황이다.

그리고 알 샤이탄의 기함인 켈크란투는 이제, 머리를 전방으로 향한 채 최전선에서 슬그머니 벗어나고 있다.

***

장로회의 사이버 공간.

지금 자리에 있는 자는 두 명.

기술적 특이점과 관측의 정점.

「α」「δ」

상석 쪽에 앉은 알파와 델타다.

그리고 곧 새로운 아바타가 문 앞에 나타난다.

「ζ」

무력의 정점.

- 제타 님께서 접속하셨습니다.

곧이어 알파는 다 알고 있다는 투로 그를 맞이한다.

“자네가 이때쯤 올 거라고 생각했네. ···제록시스.”

“알파 님···!”

제타는 알파의 바로 앞까지 후다닥 달려가서 테이블에 두 손을 얹는다. 자기 자리에는 앉지도 못한 채 급한 말부터 꺼내는 모습이다.

“알파 님이라면, 알파 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좀 더 명확히 표현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지금 로페즈 녀석이 제게 위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델타가 반응한다.

“다짜고짜 와서는 이게 무슨 짓이지? 알파 님께 무례한 태도로군.”

“델타 님! 제가···”

“그 입 닥쳐라. 알파 님께서 보는데 경솔한 발언은 용납하지 않아. 자네가 저지른 일의 대가는 오로지 자네의 몫이야.”

갑작스러운 델타의 묵살에 제록시스는 후두부에 망치라도 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아니, 아니 어떻게 델타 님께서 제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내가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네에겐 무력의 정점이라는 타이틀이 아까워. 막내에게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어디 쓰겠나. 장로회에서 6번째로 나름 높은 녀석이 말이야. 쯧쯧···.”

“델타 님, 그게 무슨···.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혼란스러워하는 제타에게 알파가 알려준다.

“방금 델타에게 이야기를 다 들은 참이지. 전대 카파와 제타. 두 일원이 그동안 무슨 음모를 꾀했는지를 말이네.”

“델타 님께서 저를 왜··· 무슨 말씀을···?”

제타의 아바타에서 억울한 시선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델타는 제타의 시선을 싸늘하게도 외면해버린다.

알파가 델타에게 무언가를 들었다.

‘설마, 설마 저 늙은 새끼가 꼬리를 잘랐나···?’

델타가 알파에게 무언가를 밀고했다. 자신이 여기에 접속하기 전에.

‘저 개새끼가 결국엔 나한테도···. 예전에도 몇 번 저러더니 씨발···’

“거짓을 고하면 더 괴로운 일이 될 것이야. 이제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답하게.”

알파의 평탄한 목소리가 무거운 쐐기처럼 느껴진다. 곧 알파의 목소리에 맞춰 단두대의 칼날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제록시스.”

연합군이 들이닥쳤다. 시간이 없다.

“···예. 거짓 없이 답하겠습니다.”

“자네와 로페즈. 둘 중에 누가 먼저 시작했지?”

시험일까, 추궁일까, 심문일까.

그런데 알파는 이걸 이제 와서 물어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도무지 의도를 모르겠다. 괜히 접속해서 때늦은 참견이라도 받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아니면 달리 방법도 없다. 알파를 잘 이용하면 이 상황을 어떻게 뒤집을 수도 있으리라.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둘 중에 누가 먼저 선을 넘었나?”

“그거야 당연히······.”

< 27. 커튼콜 (5)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