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40화 (139/183)

< 27. 커튼콜 (4) >

***

로페즈는 옵시디아몬 본사 부지의 의학센터에서 걸어 나온다.

“좀 어떠십니까?”

자이칸의 그의 안부를 묻는다.

“이게···. 뇌를 개조하니까······.”

「인공뉴런 삽입술입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자이칸의 호흡, 자이칸의 체내 전류, 자이칸의 동공 움직임, 자이칸의 표정 패턴 변화, 자이칸의 실시간 음성 분석 현황.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보의 집합이었어요···.”

“그렇습니까?”

의학센터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설계, 교통량, 각 가로등의 전력 수치, 지나가는 드론 하이브의 임무현황, 본사 부지를 순찰하는 휴머노이드의 가장 마지막 통신기록,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의 모델,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속력, 현재 풍속, 풍향, 기온, 광량, 대기 조성비.

“굳이 트랜센던서가 말해주지 않아도, 기본적인 것들은 다 보여···.”

“수술 성공적으로 마치신 것 축하드립니다.”

자이칸의 발언에서 진심과 거짓의 확률적 비율, 자신의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 하이퍼 마인드의 인공지능들이 허공으로 보내고 있는 전파, 유토피아의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라디오파, 병기들의 무기에 내장된 방사성 원소의 미약한 방출량, 옵시디아몬의 실시간 수입, 지출, 평판, 여론, 사업 진행 상황.

‘트랜센던서는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던 거야···?’

정보가 엄청나게 많다. 트랜센던서는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정보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이해하고, 듣고, 인식하고, 계산하고 있으리라.

원하는 지식이 있으면 그 지식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물리학, 천문학, 공학, 수학, 신학, 역학, 무엇을 말하든 하이퍼 마인드에서 알아낸 지식은 곧 자신의 지식이 되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단번에 이해되는 이 순간, 로페즈는 확실히 체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으로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알아낸다.

“트랜센던서.”

그간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얼마나 답답했을까.

보이는 세계가 다르고 생각하는 속도가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다른 트랜센던서가, 한낱 인간인 자신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려 할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 네. 관리자님.

“고마워.”

- 어려운 수술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거 말고.’

만약 입장이 반대였다면, 만약 트랜센던서가 인간 관리자였고 로페즈가 트랜센던서였다면,

‘나라면 내 관리자를 강제로 기계화 시키거나 브레인 업로드를 시켰을 것 같아···.’

트랜센던서는 그동안 로페즈가 가진 인식의 범위를 초월하고 있던 것이다.

오늘 이렇게 뇌를 손보지 않았더라면 평생토록 몰랐으리라.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뭐가 옳은 건지 알겠어.”

“예?”

-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로페즈는 갑자기 몸을 돌려서 방금 나온 의학센터로 걸어들어간다.

“회장님? 안에 두고 오신 물건이 있다면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니요. 자이칸 씨는 조금만 더 대기하세요.”

“아, 예.”

“트랜센던서. 수술실 다시 준비시켜.”

- 추가 작업이 필요합니까?

“아니.”

보인다.

이제 알겠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몸은 약해빠졌어. 비효율적이야.”

“회장님···. 그 뜻은···.”

- 아주 훌륭한 결정입니다.

로페즈는 막힘없이 술술 말한다.

트랜센던서에게 생각이라는 데이터를 보낸다. 긴 설명을 할 때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몇 배는 빠르다.

- 내 몸을 조금 더 손볼 거야. 생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인공세포를 주입하고 전에 넣었던 나노봇은 뺄 거야.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더 향상된 나노봇이 있어. 인공세포 기반의 유기체인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생체물질이기도 해. 내가 보내주는 메타데이터 그대로 만들어서 가져와. 샌디 씨한테 별동연구소 장비를 빌리면 8분 안에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마취는 하지 않아. 내 몸의 통각과 가수면 상태는 내가 알아서 통제하고 인공세포 주입이랑 체내 배치도 내가 알아서 집도할게. 나랑 의학센터랑 네트워크 연결하고 너는 내 생각대로 수술 장비를 움직여주면 돼. 그리고 나노봇 옮겨서 내 혈관에 그래핀, 뼈에는 다이아몬드를 라미네이팅해. 마지막으로 내 심장에 오버렉터에서 사용하는 분자 단위 공장을 유기체로 만들어서 공장 형태로 심어놔. 공장은 인공세포로 만들고, 그 인공세포 프로그래밍은 내가 알아서 할게.

- 언젠가 관리자님께서 제 주장을 이해해 주실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인간의 몸이 틀렸다는 네 주장은 맞는데, 그걸 업로드하거나 기계로 대체하거나 가위질로 진화시키는 방식은 틀렸어. 난 생체공학과 나노생명학을 응용해서 ‘초월 인간’이 되는 거야. 기계 인간이나 전자 인간이나 네가 주장하는 우생학적인 포스트휴먼이 아니고 트랜스휴먼으로 인간의 유전적 형질과 의식은 가지고 있는 거지.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너랑 나의 정보 자원을 합치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방식이기도 해.

- 훌륭합니다. 관리자님의 모든 견해에 논리적, 과학적, 윤리적 근거와 깊은 자문의 흔적이 돋보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관리자님이 무엇을 선택하시든 관리자님의 뜻을 반박하기를 지양하고 최대한 존중하기를 택하겠습니다.

로페즈와 트랜센던서가 나눴던 방금의 긴 대화는 하이퍼 마인드 안에서 2초 안에 교환된 내용이었다.

***

라딘 센터의 수도 도시, 항성대통령 관저의 지하에 붉은 디자인으로 꾸며진 전략회의실이 있다.

상석에는 살짝 기른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앉았다. 그는 장로회의 제타, 알 샤이탄의 군주이자 라디에크 군주국의 지배자다.

쾅!

제록시스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분개한다.

“도대체 저만한 함대를 어떻게 편성한 거야? 이런 단기간에.”

“···라딘 사이드, 밀리타, 사이거스의 도시나 콜로니까지 해체하면서 자원을 조달한 것 같습니다.”

“미친 새끼들. 그러면 거기 시민들은 어디서 자고, 뭐 먹고 살라고?”

“아무래도 옵시디아몬 측 사령관은 시민의 안위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엑스턴 사령관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테이블 가운데에서 홀로그램이 엑스턴 사령관의 얼굴을 띄운다.

“제기랄, 대단한 놈이군.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거물이었어. 나와 같은 냄새가 나는 놈이야.”

“···.”

전략회의실의 간부들은 적들의 기습적인 움직임에 패잔병 같은 얼굴을 한다.

“방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저만한 함대를 이쪽으로 보내고 있다면 반드시 본진에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 라딘 사이드, 밀리타, 사이거스에 주둔하던 적 함대가 오늘을 기점으로 빠졌습니다. 적 전력의 90% 이상··· 아니, 100%에 가까운 군대가 공격에 투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화성 정규군까지 포함해서···”

제록시스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한다.

“전부 다 빠졌다고? 이건 또 뭔 소리야?”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적들은 이번 공격에 모든 전력을 투입했습니다.”

“뒤가 없는 총공격인가? 우리가 후방으로 라딘 사이드나 밀리타를 치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야?”

“그게···. 예. 그렇습니다.”

“씨발.”

기가 막혀서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이런 식으로 뒤도 없이 모든 전력으로 총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적들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내렸다는 뜻이다.

‘여기서 밀려버리면 세계대전이고 뭐고 답도 없다.’

라디에크 점령뿐만 아니라 세계대전까지 큰 그림을 그렸던 제록시스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적들의 총공격에 전력으로 대응하기로 한다.

“그 방법은 쓰기 싫었는데.”

“아껴두었던 전력을 이쯤에서 푸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차원통로 놈들이 오기 전에 밀어버리는 수밖에···. 미래를 팔아서라도.”

***

12월 25일.

라딘 센터로 화성 함대와 프랙탈 함대 전력의 100%가 총공격을 가한다. 이제껏 어느 곳에도 없었던 최대 규모의 함대전이 라디에크 항성계에 별보다 많은 빛을 내뿜는 것 같다.

- 알 샤이탄은 54개 함단을 출격했습니다.

1개 함단에는 기함 한 척과 함단을 이루는 8척에서 24척의 함선이 포함된다. 그래서 라딘 센터의 근방에서는 약 1400척의 함선이 충돌하고 있다. 각 함선이 출격한 함재기 등의 우주 비행체까지 합하면 수만 개의 기체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알 샤이탄 함대에 대응하는 아군 규모는 41개 함단입니다.

프랙탈이 무인 함대를 건조하면서 얼추 머릿수는 맞췄다. 그래도 엄연히 함대의 숫자로만 따지면 프랙탈과 화성 측이 알 샤이탄에 밀린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은 함대전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 저항군이 천공방패부대를 재결성하여 라딘 센터의 우주공항을 급습하였습니다.

- 알 샤이탄의 30번 함단의 통신을 차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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