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38화 (137/183)

< 27. 커튼콜 (2) >

***

라딘 사이드는 프랙탈 본대와 화성 함대가 방어하고 있다.

그리고 라디에크 항성계의 밀리타 행성에는 알 샤이탄의 세뇌 시설이 있다.

프랙탈은 이곳 밀리타로 5개 함단 규모의 무인 함대를 보냈다. 사이거스의 궤도조선소에서 찍어낸 함대다.

알 샤이탄의 병력이 라딘 센터, 라딘 사이드에 집중된 덕분에 밀리타의 반군 함대는 처음보다 그 숫자가 적어 보인다.

적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숫자지만, 밀리타 행성의 궤도를 지키는 대공 방어망이 빈틈을 보인 것이다.

무인 함대는 상대적으로 대공 방어망이 취약한 방향을 노려 밀리타를 침공하기에 이른다.

밀리타를 지키는 반군 함대가 즉시 날아와 교전에 임한다. 그러나 반군 함대가 무인 함대와 교전을 벌이기 직전에 이미 무인 함대는 지상으로 강하기 수십 대를 보낸 채였다.

쐐애애애애액!

퍼펑! 퍼퍼펑!

늘 그렇듯 행성의 방어위성과 함재기들이 옵시디아몬의 강하기를 요격한다.

지잉!!!

그러나 이번에도 옵시디아몬은 스스로 강화했다.

지잉······!

강하기가 제각각 실드를 탑재한 것이다. 함선에 비하면 지극히 약한 출력이지만, 방어위성과 함재기의 요격을 몇 차례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강하기의 강하 확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강하기 몇 대가 파괴되고 여전히 살아남은 수십 대의 강하기가 실드를 보호막처럼 펼친 채 구름을 가른다.

사막에 설치된 대공화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또 강하기 몇 대가 공중에서 격추당한다.

퍼엉! 퍼엉! 퍼엉!

무사히 지상까지 도달한 강하기들은 모래에 파묻힌다. 근처 반군 군세는 강하기에서 병력이 튀어나오기 전에 제압하려고 총구나 포신을 돌린다.

콰콰쾅!

지상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모래 속에서 기계들이 폭발적으로 뛰쳐나온다. 실드 방패를 지닌 전쟁기계, 군체 휴머노이드, 체인트루퍼, 드론 하이브가 각 강하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쏴라! 계속 쏴라!”

강하 지점에 반군들이 모여들어 화력을 집중한다.

쿠우우우!

사막에 숨은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무언가 커다란 것이 모래를 흘리며 웅장하게 일어섰다.

오버렉터다.

“여전히 미개하다.”

퍼엉!

반군들의 발밑에서 모래가 폭발한다. 폭발하는 모래 속에서 메뚜기처럼 세 쌍의 다리로 튀어나온 병기들이 반군을 덮친다.

“우리는 전투를 하면서 더 강해졌는데, 이들은 전투를 하고도 더 강해지지 않았다.”

퍼엉! 퍼엉!

지하에서 메뚜기 같은 병기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 병기들의 머리처럼 보이는 부분에는 몸체의 안쪽으로 회전하는 분쇄기가 있었다.

카드드드드드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이게 날 물었어! 물었다고!!!”

“살려줘!!!!”

“아아아아아악···!”

그것들이 사람을 물면 사람의 옷이나 장비나 살점 따위가 그것들의 목구멍 속으로 걸레처럼 비틀려서 말려들어간다.

그것들이 전차나 병기를 물면 장갑이 알루미늄 호일처럼 찢어진다.

- 킬파인더의 분쇄자를 개선한 병기입니다. 다양한 지형에서 매복이 가능하고 사막 지형에선 지하 급습이 가능합니다.

“으아아아아!!!!”

카드드드드드득!!!

파지지지직!! 콰아아아아!!!

분쇄기로 목표물을 갈아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군들이 사용하던 플라즈마 방사기를 목구멍으로 뿜어대고 있다.

플라즈마를 맞아 뜨겁게 팽창하는 공기 속에서 모래알이 어지러이 시야를 방해한다. 그 혼란의 중심에 빠져버린 반군들은 상대가 어디서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채 순식간에 깎여서 전멸하였다.

- 어떻습니까? 프랙탈 님.

- 사막 지형에서 매우 효과적인 병기다. 오버렉터를 높이 평가한다.

- 임무가 끝난 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름도 없이 식별 번호로만 불리는 이 새로운 병기들은 온전히 인공지능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미사일 발사대부터 설치한다. 우리의 무인 함대는 곧 전멸하여 대공 요격 지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핵 공격과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라.”

오버렉터는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자원을 회수하라. 이 위치에 가우스 포대를 설치하여 방어위성을 격추하겠다.”

밀리타에 뚫린 단 하나의 침투 경로가 행성 전체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다.

- 오버렉터. 가까운 위치에 도시가 있다. 프랙탈 님은 그 도시의 대공화기와 도시 상공의 방어위성이 무력화되면 너에게 무인 함대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하셨다.

“쉬운 일이다. 밀리타는 오버렉터의 공장이 될 것이다.”

***

드레이크 쌍성계에 있던 정보가 왕복선을 통해 유토피아에 도달했다.

본사의 로페즈는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 드레이크의 궤도조선소에서 주력함 6척이 건조되었고 3개 함단급 함대 병력이 준비되었습니다.

“그중엔 오버렉터도 있겠지?”

- 오버렉터의 인공지능과 동체가 준비되었습니다. 단, 이 오버렉터가 현재 라디에크에서 잦은 교전을 벌이고 있을 오버렉터와 동급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괜찮아. 오버렉터는 학습한 데이터를 다 통합하는 식이니까.”

오버렉터는 드론 하이브처럼 여러 인공지능과 여러 동체를 가지고 마치 하나의 존재처럼 움직이는 병기다. 당연히 라디에크에서 교전을 벌인 오버렉터가 무언가를 배웠다면 나중에 이쪽에 합류하여 더 강화된 오버렉터가 된다. 그건 드론 하이브와 같은 방식이다.

반대로 테슬라포트리스, 나이트포트리스와 같은 병기들은 하나의 동체와 하나의 인공지능으로 유지된다. 병기로서 그런 역할이고 그런 역할에 맞추어 설계된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포트리스 계열 전쟁기계들이 다 라디에크에 고립돼서 곤란해. 당장 특수작전은 펼치기 어려우니까 외교와 드레이크의 생산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돼.”

- 정보력도 있습니다.

“그렇지.”

정보력은 로페즈와 트랜센던서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오래된 무기다.

“태양계 네트워크 장악 상황은 어때?”

「수성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00%」

「목성 가니메데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00%」

「목성 유로파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00%」

「토성 타이탄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100%」

「천왕성 네트워크 장악 진행률: 21%」

100%라는 수치는 정말 100%를 뜻한다.

- 천왕성은 알 샤이탄이 병합했기 때문에 예외다.

“이러면 너 엄청 똑똑해진 거 아니야?”

「진화 프로세스 진행률: 82.5%」

- 네. 태양계 네트워크 장악을 거의 완료한 단계에서 저는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것들을 학습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 이전보다 더 의지가 된다.

“그러면 들어봐. 내 생각에는 드레이크의 병력을 더 준비해서 이쪽으로 합류시키고 이쪽의 화성 본대와 우리 병력까지 더해서 천왕성을 밀어버리면 태양계는 대충 정리가 될 것 같아. 어때?”

- 충분히 성공 가능한 전략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전략의 성공 확률을 더 높이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겠습니다.

“뭔데?”

진화율이 80%를 넘어선 트랜센던서는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온다.

- 제가 알고 있는 것이 관리자님께서 알고 있는 것보다 많습니다.

“그건 한참 전부터 그랬지.”

-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을 관리자님께 설명드리기 위해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관리자님과 저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관리자님의 이해력이 부족하여 설명에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

트랜센던서가 보고 있는 세계와 인간인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는 아주 다를 테니까. 생각하는 속도에서도 차이가 벌어져서 불편한 상황이 몇 번인가 있었다.

- 관리자님께서는 브레인 업로드, 기계화, 급속진화와 같은 ‘인간의 몸’을 버리는 방식을 지양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절충안으로 관리자님의 뇌와 하이퍼 마인드가 전자적, 광학적으로 연결되는 광섬유 기반의 인공뉴런 삽입술을 제안합니다.

“내 뇌만 선택적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거야?”

- 그렇습니다. 관리자님은 관리자님의 경험, 생각, 감정, 사고방식과 같이 관리자님 고유의 특성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 없이 저의 기계어로 관리자님의 뇌에 직접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언어라는 도구로 생각을 전달하는 게 아닌, 서로의 생각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연결되어서도 각자 다른 생각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 뜻에 지금의 로페즈는 간단히 답한다.

“할게.”

- 수술실을 준비하겠습니다.

- 그리고 두 번째 제안입니다.

- 지금까지 저는 인간의 장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인간의 장비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기, 전파 신호로 사이버 세계에서 움직였습니다.

- 이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단말기와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것을 강제합니다. 라디에크와 태양계의 연결을 돕는 차원통로가 제 기능을 못할 경우, 태양계의 저 또한 라디에크에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 지금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연결 수단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항성계 내에서 전자기 펄스 공격이나 네트워크 차단과 같은 경로 파괴에 있어 저항력을 가지는 연결 수단은 될 것입니다. 인간의 장비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 본사 하이퍼 마인드의 함수로 암호화된 저를 우주 공간에 다양한 파동의 형태로 뿌리는 것입니다.

슬슬 이해하기 어렵다.

“파동?”

- 전파, 중력파, 소립자 등 진동에 유의미한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는 물리적, 양자역학적 수단이나 파동을 우주 공간에 뿌린 후 해당 영역에서 가장 큰 천체의 중력을 따라 회전하는 파동 기반의 데이터입니다. 에어패킷의 상위 버전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막 뿌려놓으면 아무나 그 데이터를 잡아서 너를 해킹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그래서 본사 하이퍼 마인드의 함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진동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하는 특정한 함수가 없으면 저를 이루는 데이터를 구조적으로 절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

트랜센던서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해석하자면 이런 뜻 같다.

‘영혼처럼 온 사방에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는 건가.’

- 함수 없이는 관측이 어렵고 관측하여도 함수가 없다면 이해가 어려운 파동을 활용합니다. 저는 이것을 ‘암흑 네트워크’라고 정의합니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에 쓰이는 그 ‘암흑’이라는 뜻이네.”

- 네. 암흑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항성계 단위로 어디서나 저와 연결되실 수 있습니다. 서버, 네트워크 등 전자적 장비나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

얼마 후 로페즈는 화성의 작전사령부 회의에 참석했다. 화성의 국방부장관과 베르도를 중심으로 양복이나 군복을 입은 높은 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국방부장관의 옆에 앉은 군복 차림의 인물이 설명한다.

“차원통로의 관리자들 측에선 라디에크의 차원통로가 언제 복구될지 확답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원통로의 관리자들이 국제적으로 개입하여 연합군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라디에크 군주국의 본대가 태양계에 난입할 일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태양계와 라디에크가 분리되었다.

그래서 라디에크의 본대가 태양계에 오지 못한다면, 지금 태양계에는 천왕성에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알 샤이탄이 전부라는 뜻이다.

“따라서 군주국의 본대가 태양계에 오기 전에 고립된 천왕성을 우선하여 공략하는 것이 이 전쟁을 빠르게 끝낼 최선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그러자 국방부장관이 로페즈를 쳐다본다.

“하이퍼 마인드에선 이 작전을 어떻게 봅니까?”

로페즈는 당당하게 주장한다.

“목성과 토성이 타이탄 근방 영역에서 교전을 벌이다가 반군의 개입을 받아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진입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옵시디아몬의 하이퍼 마인드가 화성과 천왕성을 제외한 국가들의 네트워크에 침투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천왕성을 공략할 타이밍이 있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토성이나 목성 함대와 충돌할 일이 없고 라디에크의 반군 본대가 난입할 일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태양계의 출혈을 끝낼 때가 되었다.

“드레이크에서 준비한 저희 측 함대가 3일 후에 카이퍼 벨트를 통과합니다. 화성 본대와 전력을 합쳐서 천왕성을 해방한 후, 태양계 연합 회의를 거쳐서 목성에 휴전 압박을 가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드레이크에서 온다는 그 함대의 규모는 파악이 됐습니까?”

“10개 함단급입니다. 처음에 라디에크로 보냈던 프랙탈 본대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괜찮은 상황이 될 것 같군요.”

“그 함대와 화성 함대를 합치면 천왕성의 반군 규모와 비등합니다.”

“나쁘지 않은 작전입니다.”

다들 긍정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다들 베르도의 결정을 기다린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한마음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

“국민은···.”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베르도가 입을 연다.

“국민은 종전을 원하고 있습니다.”

베르도의 입장에선 굉장히 무거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천왕성을 해방하고 태양계에서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웃 국가였던 천왕성에 총공세를 가하여 그곳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니 말이다.

“···천왕성은 해방을 원하고 있겠지요.”

로페즈는 그의 대답을 기대하며 침을 꿀꺽 삼킨다.

“나는 절대 천국에는 갈 수 없을 겁니다. 수많은 민간인과 젊은 병사들이 오늘 나의 선택으로 피를 흘리게 될 테니···.”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다.

때리거나 맞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지워지는, 국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잔인한 활동이다.

“···허가하겠습니다. 이 작전.”

천왕성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드레이크에서 오는 함대가 카이퍼 벨트를 통과하는 날, 화성 함대와 함께 천왕성에 총공격을 가하세요.”

그리고 로페즈의 옵시디아몬은 천왕성을 불바다로 만드는, 대활약을 할 것이다.

< 27. 커튼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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