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커튼콜 (1) >
***
프랙탈 함대는 가스 행성인 사이거스의 궤도조선소와 콜로니들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이제 프랙탈은 그렇게 빼앗은 궤도조선소와 콜로니의 자원으로 ‘무인 무장 함선’을 건조하는 중이다.
그리고 프랙탈과 화성 함대는 라딘 사이드를 알 샤이탄으로부터 완전히 빼앗았다. 그래서 알 샤이탄은 라딘 센터에서 라딘 사이드로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보내어 라딘 사이드의 탈환에 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프랙탈은 자기 생각대로 작전을 펼친다.
- 함재기를 출격하지 않은 반군의 2개 함단이 본대와 다른 경로로 접근 중입니다.
“···.”
함교의 엑스턴은 프랙탈이 뭐라고 말하든 가만히 듣고만 있다. 자신이 전장에서 할 일을 프랙탈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분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프랙탈이 잘 싸워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차피 프랙탈이 다 알아서 하니까, 작전 성공에 대한 기쁨보다 허탈감이 더 크다.
- 구출 준비에 앞서 함선 나포 및 내부 교란 작전을 펼치겠습니다.
재배열 펄스(Rearranging Pulse).
프랙탈과 오버렉터가 개발한 대통신기기 발전형 전자 폭풍(Counter-Communication Advanced Electronic Storm)이다. 이는 지구의 역사적 기억 보관소에서 나오는 지능형 입자병기에 관련된 지식을 발췌하여 개발했다.
라딘 사이드로 향하는 반군 함대는 자기들 쪽으로 접근하는 함선 여덟 척을 발견한다.
쿠웅··· 쿠웅···
반군 함대는 함선 여덟 척을 향해 함포사격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함대 전체를 감속하고 함재기를 출격시켜 교전에 대비한다.
그러나 그 여덟 척의 함선은 프랙탈이 이 작전을 위해 편성한 무인 함대였다.
쿠웅···
무인 함대는 반군 함대의 화력을 정면으로 받아낸다. 엔진 출력을 실드로 돌려서 함대 전방에 방벽을 형성한 것이다.
무인 함대는 단 하나의 함재기도 출력하지 않고 실드를 전개한 채 반군 함대를 향해 나아간다.
이를 상대하는 2개 함단 규모인 반군 함대는 함재기를 펼친다. 그러고 있으니 반군 함대의 규모가 무인 함대보다 다섯 배는 커 보인다.
···쿠웅.
무인 함대는 아무런 공격도 없이 반군 함대에 근접하는 과정에서 실드가 뚫려 하나씩 격침당한다. 그 모습이 다짜고짜 적 함대에 들이대서 자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군 함대가 화력을 퍼붓는 와중에 반군 함재기들이 무인 함대를 둘러싼다. 곧이어 여러 방향의 공격에 노출된 여덟 척의 무인 함선 중 일곱 척이 무기력하게 격침되었다. 그리고 무인 함대의 꼬리 위치에 있던 마지막 무인 함선마저 실드가 뚫려 폭발한다.
그때 그 폭발을 중심으로 주변 우주 공간이 침묵했다.
재배열 펄스가 터지면서 전자가 충격파처럼 사방으로 방출된 것이다. 매질이 희박한 우주에서 충격파의 흐름은 주변 함재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직!!!!!!
그 일대의 반군 통신망에선 시끄러운 소음만 들린다. 여덟 번째 함선의 폭발 지점과 가장 가까이 있던 함재기들이 일제히 작동을 멈춘다. 함재기들의 엔진이 꺼지고 조명이 꺼진다. 함재기들은 폭발 직전까지 이동하고 있던 방향 그대로 영원히 날아가는 금속 덩어리로 전락한다.
치지지지지직!!!!
이어서 반군 함대에까지 충격파의 범위가 닿는다. 전열에 있던 함선과 함재기들의 조명이 꺼져버리고 후열에 있던 함대까지 순간적이지만 순차적으로 고물이 되어버린다.
- 형님. 하이퍼 마인드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 프랙탈 님과의 연결도 끊어졌다.
-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임무가 시작된 것이다.
재배열 펄스의 영향권에 있던 스텔스기동타격대의 우주선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라켄 용병단이 선박침투조로 운용했던, 문어처럼 생긴 우주선과 비슷한 디자인이다.
그런 자그마한 우주선이 고작 두 대다.
- 테슬라포트리스 님. 분자 회로가 복구되었습니다. 강력한 전자 간섭으로 인해 하이퍼 마인드와의 연결은 아직입니다.
- 스텔스기동타격대. 적 기함에 침투하라.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우주선들이 다시금 스텔스 모드로 진입한다. 인간의 조명이 꺼져버린 우주 일대에서 반군 함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서로 소통할 길이 없다.
키이이잉!!!
어느 함선의 표면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 너머로 함선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이상하게도 함선 내부의 공기가 우주로 빠져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이어서 함선에 뚫린 구멍은 주변 표면과 똑같은 색깔의 물질로 메꾸어졌다.
구멍이 뚫렸던 함선 내부는 배터리에 의존하는 약한 출력의 빨간색 비상등과 형광물질의 초록색 조명들이 밝히고 있다.
평소보다 어두워진 내부에서 반군의 엔지니어 한 명이 엔진실 앞에 선다.
엔진실 앞은 전투복과 소총으로 무장한 반군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엔지니어입니까?”
“예. 이쪽 회로는 자가 복구가 안 돼서 고쳐야 합니다.”
반군 두 명은 엔지니어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질문한다.
“전투복의 기능이 전부 꺼졌습니다. 함교와 통신이 안 됩니다.”
“그렇겠죠.”
“전자기 펄스라도 터졌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핵무기로 싸워도 멀쩡한 회로들인데···.”
“원인 파악이 아직 안 된 겁니까?”
“네. 통신이 안 되고 정밀한 회로에만 문제가 생긴 것을 보니 일종의 전자병기를 쓴 게 아닌가 싶···”
쩌어억!
말하던 엔지니어의 아래턱에서 정수리까지가 갈라지면서 얼굴만 덩그러니 떨어졌다.
철퍽!
“···뭣!”
“여기 침입자가···!”
쩌억! 촤아악···!
엔진실 앞을 지키던 두 명도 몸이 아무 방향으로나 갈라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툭···. 투둑···.
핏자국이 네모난 발자국을 만들며 열린 엔진실 너머로 사라졌다.
***
피스포트리스는 반군 함선의 착륙장으로 카네기를 안내했다. 함선 한 척이 착륙하면 꽉 차버리는 자그마한 착륙장이다.
커다란 화물트럭의 조종석에서 카네기가 내리고 이어서 짐칸의 피스포트리스가 조심스럽게 땅을 디딘다.
착륙장을 점거한 반군들은 피스포트리스와 카네기의 등장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은 몇 번 시선을 보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카네기를 무시한다.
“딱히 우리를 제지하지는 않네.”
“···.”
피스포트리스는 침묵한다. 어느 반군 한 명이 카네기에게 다가온 것이다.
“···어. 왜요?”
카네기에게 다가온 반군은 무표정이다.
“카네기 작가님. 맞습니까?”
“···.”
카네기도 본능적으로 침묵한다. 그러면서 조용히 고개만 살짝 끄덕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인간이 아니야.’
무표정한 반군은 그대로 등을 보이고는 어느 함선으로 걸어간다.
쿵···. 쿵···.
피스포트리스가 앞서 그 반군을 따라간다. 카네기는 피스포트리스의 발치에 바짝 붙는다.
‘누가 반군이고 누가 인조인간이지?“
착륙장의 반군들을 확인해보니 이상하게도 전부 무표정이다. 농담을 한다거나 동료들끼리 대화를 한다거나 그런 무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다.
이렇게나 반군이 많은데 어떻게 떠드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가.
‘설마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인조인간인가···?’
장로회의 요타인 카네기는 로페즈가 다이토를 인조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반군이 이렇게 자신을 안내하는 것은 인조인간 말고 설명이 안 된다.
“···이쪽.”
반군은 함선의 출입문으로 이어지는 이동식 계단을 가리켰다.
“여, 여기로 타면 돼요?”
“네.”
“제가 데려온 로봇도 같이 타도··· 괜찮겠죠?”
“네.”
카네기는 계단을 오르고 피스포트리스는 함선의 격납고로 돌아서간다.
위이잉.
반군 함선의 출입문이 열렸다.
카네기는 출입문 너머를 보고는 짧은 비명을 내지른다.
“으, 으아아···!”
카네기는 그대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하마터면 계단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터억!
“진정하십시오.”
그가 계단으로 넘어지기 직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반군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그의 등을 받쳐주었다.
“진짜 여기로 들어가요? 진짜···? 이거 맞아요···?”
“맞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카네기가 출입문 너머로 본 것은 상반신이 대각선으로 분리된 반군의 시신이었다. 시신 근처의 바닥에는 이미 굳어버린 피와 싸늘하게 식어버린 내장이 흩어져있다.
“아, 아닌 것 같은데요···? 이거···.”
반군은 무표정으로, 억양 없는 목소리로 책 읽듯이 설명한다.
“네브래스카 레일 카네기. 프랙탈 님은 피스포트리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당신을 구출하라고 했습니다.”
“으으으···.”
“시각 교란 이미지의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반군의 위성 카메라에 적발되기 싫다면 어서 들어가십시오.”
카네기는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함선에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와 시체 냄새가 심하게 역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