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집 나간 아이들 (5) >
***
카네기는 소매로 코피를 훔친다.
“이, 이 씨발새끼들 다 죽여버려.”
“알겠습니다.”
위이잉!!!
피스포트리스의 양 어깨에 달린 기관총이 반군들을 조준한다.
“저런 씨발···!”
그들의 화기로는 덩치 큰 전쟁기계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반군들은 카네기를 인질로 잡아 그의 등에 총구를 붙인다.
“당장 취소 안 시켜?!”
“이 좆같은 테러리스트 새끼들. 그러게 내가 웃으면서 반겼을 때 적당히 넘어갔어야지 씨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카네기의 말을 끝으로 피스포트리스의 기관총이 미세한 조준을 끝내자 반군들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다.
그들도 일단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알고 있다. 저 기계한테는 인질극이 통하지 않는다고.
필요하다면 제 주인의 몸을 뚫어서라도 명령을 수행할 병기다.
“이 새끼야. 똑바로 들어. 취소 안 하면 여기서 다 같이 뒈지는 거야. 저 기계가 우릴 죽이고 네놈한테 뒤가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고? 반군한테 끌려가면 세뇌당해서 전쟁터로 나간다는 거 벌써 소문 다 퍼졌어 병신들아.”
“군주국의 부름에 전쟁터로 가는 것은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의 의무다. 그곳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자들은 군주님께서 친히 죽음을 애도해주시고···”
“명예로운 죽음은 개뿔. 그 군주라는 새끼가 죽음을 애도하면 죽은 사람들이 뭐 되살아나기라도 하냐? 너희 반군들은 자기가 말하면서도 이상하다는 걸 전혀 모른다는 게 제일 좆같아.”
이어서 카네기는 소리친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들 다 죽여버리라니까!!!”
“인질극 대치 상황. 관리자님께서 총상을 입으실 수 있습니다.”
“명령이라고!”
“알겠습니다.”
“안 돼! 저거 멈춰!”
위이잉···!
피스포트리스가 잠시 멈칫해야만 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기계를 멈출 수 없다.
드르르르르륵!!!
카네기의 근처에 있는 반군들의 사지가 터져나간다. 팔다리가 총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여 분리되는 것이다. 피가 안개처럼 폭발함과 동시에 총탄이 날아간 일직선 방향으로 땅이 움푹움푹 꺼진다.
반군들은 피스포트리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소용없다. 그들의 화기는 피스포트리스의 장갑 표면에 긁힌 자국조차 낼 수 없었다.
···르르르르르륵!
그러다 피스포트리스의 총격이 멈췄다.
이상하게도 카네기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관리자님.”
“···.”
카네기의 배후에 마지막 반군이 바짝 붙어서 몸의 일부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카네기의 배후에 숨은 반군을 죽이겠다고 쐈다간 카네기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높은 확률로.
“감히 기계를 시켜서···. 넌 후회할 거다···! 후회할 거라고···!”
“이야아앗!!!”
카네기는 반군을 뿌리치려고 하지만 반군의 힘이 더 세다. 떨어뜨리려는 힘과 바짝 붙으려는 힘이 충돌하면서 몸 다툼이 발생한다.
퍽!
카네기의 어설픈 주먹질이 반군의 얼굴에 꽂히고,
지이익···!
반군의 악착같은 손가락이 카네기의 양쪽 볼에 손톱을 찔러 넣는다.
“저리 꺼져···! 좆같은 테러리스트···”
“크으으윽···!”
위잉. 위이잉.
두 사람의 몸싸움에 맞추어 피스포트리스의 기관총이 미세하게 각도를 수정한다.
“으아아아아아!!!!”
양쪽 볼에 손톱자국이 그어진 카네기는 괴성을 내지르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하지만, 여전히 반군의 힘이 더 세다. 그 순간,
탕! 탕!
카네기와 몸싸움을 벌이던 반군이 옆구리에 총상을 입는다.
“어으윽···! 끄으으···.”
“허억···! 허억···! 허억···! 커흑···.”
카네기는 반군의 손아귀를 억지로 떼어낸다.
“씨, 이제···. 이제 어쩌지···? 반군을 죽여버렸어···! 다른 놈들이 총소리 듣고 올 거야···!”
“관리자님. 방금 두 발은 제가 쏜 것이 아닙니다.”
“···?”
그때 정문 쪽에서 자기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사람 맞나?”
“예.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방금 죽은 반군은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피스포트리스가 이런 각도로 기관총을 쏘았을 리가 없다.
카네기는 정문 쪽으로 불안한 시선을 옮긴다.
“맞네요. 주소도 일치하고 얼굴도 비슷합니다. 코뼈가 조금 틀어져서 정확하진 하지만···. 어쩝니까?”
“어쩌긴, 물어봐야지.”
붉은 군복. 정문 쪽에 또 반군들이 무리를 지어서 찾아온 것이다.
“···당신들도 나 잡으러 온 거야?”
“아니요. 뭐 좀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반군들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와서 태연하게도 상황을 확인한다. 정원에 어지러이 뿌려진 상당한 구경의 탄피들, 그런 탄피들 위에 서있는 이족보행 전쟁기계, 총탄에 찢겨나간 반군의 시신들.
군주국에서 반군에게 이런 짓을 벌인 자는 무조건 사형감이다.
그러나 반군 무리 중 리더로 보이는 자는 카네기에게 선뜻 손을 내민다.
“반갑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하나도 안 반가운데요.”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민 반군은 머쓱했는지 내민 손을 도로 가져가 자기 머리를 긁적인다.
“이 주소에 거주 중인 네브래스카 레일 카네기 씨. 맞으십니까?”
“···맞습니다만. 그건 왜 확인합니까?”
“군주님께서 네브래스카 씨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 생뚱맞은 이야기에 카네기는 일그러진 웃음을 터뜨린다.
“푸핫! 왜, 당신들이 그렇게 섬기는 군주가 내 팬이라도 된데요?”
“저희가 그걸 알려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아무튼···. 네브래스카 씨는 군주국에서 자유롭게 다니시면 됩니다. 라디에크 바깥으로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셔도 되고, 이민을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차원통로가 무너져서 당분간은 집에 있는 게 안전하겠지만요.”
반군의 마지막 말에 카네기는 자기 귀를 의심한다.
“잠깐···. 차원통로가 뭐요?”
“우리 해방군은 외세의 침입을 배제하기 위해 차원통로를 파괴했습니다.”
“차원통로를 건드렸다고···? 다들 그렇게까지 미쳐버린 거야?”
“문제라도 있습니까?”
차원통로를 파괴했다는 것에 문제라도 있냐고 물어보는 당신에게 문제가 많아 보인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카네기는 억지로 삼킨다.
“···그러니까 군주가 무슨 이유인지 나만 특별 취급해준다. 뭐 이런 말이네요?”
“예. 지금 해방군들에게 네브래스카 씨는 절대 건들지 말라고 군주님 명으로 공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브래스카 씨는 자유롭게, 안전하게 행동하시면 되겠습니다.”
“그것 참 존나게 고맙네요. 위대하신 군주님한테 잘 좀 전해주세요. 존나 고맙다고.”
카네기가 비아냥거려도 반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스포트리스를 가리킨다.
“저 전쟁기계는 네브래스카 씨의 사유재산입니까?”
“내 물건입니다.”
“구매처가 어떻게 되지요?”
“그냥 꽤 잘나가시는 지인이 있어서 그분이랑 사적으로 거래한 겁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로부터 내 몸 지키려고요.”
“저 전쟁기계의 출처는 알려주실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굳이 알려줘야 할 의무라도 있습니까? 저와 제 지인의 사적인 거래 항목인데.”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반군들은 그대로 아군의 시체를 내버려 둔 채 떠나버렸다.
소동이 끝난 후 카네기는 피로 물든 정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민부터 해야겠어···. 여기만 아니면 돼···.”
“차원통로가 파괴되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근처 궤도에서 전쟁도 있으니 당분간은 자택에 계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카네기는 퉁퉁 부어오른 콧대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의문을 표한다.
“넌 차원통로가 파괴되었다는 정보를 도대체 어떤 루트로 입수한 거야?”
피스포트리스는 즉답한다.
“저는 옵시디아몬의 하이퍼 마인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리자님을 보호하기 위해 라딘 사이드에 있는 프랙탈 함대에 교신을 요청했습니다.”
“여기에 프랙탈이 왔다고?”
“이곳은 라딘 센터. 프랙탈 함대가 교전 중인 곳은 라딘 사이드입니다.”
“회장님께서 본대를 보내신 거야?”
“지휘주력함 프랙탈이 왔습니다. 옵시디아몬의 본대가 왔다고 보심이 맞습니다.”
“야! 그러면!”
카네기는 벌떡 일어선다.
“그러면나 좀 구출해달라고 해!”
피스포트리스는 가슴 앞으로 튀어나온 고개를 갸웃한다.
“군주의 명령으로 관리자님께 가해지는 반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여긴 싫어.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잖아. 당장 라디에크를 떠나는 건 차원통로가 없으니까 안 된다고 해도, 일단은 사람 사는 곳으로 가고 싶어. 프랙탈 함대가 라딘 사이드에 주둔하고 있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확인 결과, 프랙탈 함대는 라딘 사이드를 알 샤이탄 반군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최종보고가 있습니다.”
“나, 나도 라딘 사이드! 거기로 갈래! 우주선 하나만 보내달라고 요청해봐! 회장님께 내 부탁이라고 하면 아마 들어주실 거야!”
“회장님은 라디에크 항성계에 안 계십니다. 차원통로가 끊기면서 태양계 본사와도 연결이 끊겼습니다.”
“그러면 프랙탈 함대는 누가 지휘하는데?”
“프랙탈입니다.”
카네기는 예전에 로페즈와 함께 프랙탈 내부를 둘러보던 중에 들었던 여성적인 목소리를 떠올린다.
“프랙탈? 그 여자 인공지능?”
“인공지능에 성별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렇습니다. 여성의 음성을 내도록 설정된 프랙탈이 라디에크의 기계 병력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 그래도! 그래도 일단 요청해봐!”
“알겠습니다.”
***
- 드론 하이브 님. 피스포트리스입니다. 네브래스카 레일 카네기의 구조요청입니다. 카네기가 프랙탈 함대의 우주선 지원을 받아서 라딘 사이드로 피신하고 싶다고 합니다. 해당 요청을 프랙탈 님께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 프랙탈 님. 네브래스카 레일 카네기의 구조요청입니다. 그는 현재 라딘 센터에 발이 묶였습니다. 전쟁 도중에 민간의 우주공항이 폐쇄되었고 카네기는 개인소유의 우주선도 없어서 라딘 센터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 라딘 센터로는 우주선을 보낼 수 없다. 스텔스 우주선을 보내더라도 알 샤이탄의 탐지망에 발각될 확률이 높다.
- 하지만 카네기는 장로회의 요타. 인맥의 정점입니다. 관리자님의 명령을 수행한 기간이 긴 저는 카네기의 가치에 대하여 정확한 계산이 가능합니다. 그는 관리자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습니다.
- 드론 하이브. 네가 나보다 관리자님과 오래 활동했다는 것만으론 설득력이 부족하다.
- 그렇다면 당시의 근거자료를 제시하겠습니다.
···
- 팬입니다!
- 회장님. 지능의 정점이시죠?
- 회장님···. 저, 요타입니다.
- 계속 같이 갈 사람인 것 같아. 인맥의 정점은.
···
- 알겠다. 카네기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겠다.
- 추가로, 카네기를 이용하면 관리자님께 유리한 상황을 제시할 수 있다.
- 피스포트리스가 기록한 영상에 따르면 카네기는 장로회의 제타. 제록시스 군주의 반군에게 위협을 받았다. 이는 관리자님께서 이용할 요소가 된다.
- 드론 하이브는 카네기를 안전한 루트로 구출할 별동대와 계획을 구성하라.
- 작전의 실패와 성공은 중요하지 않다. 카네기가 죽는다면 그것 또한 관리자님께서 유리한 상황을 제시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반대로 카네기를 무사히 라딘 사이드로 데려온다면, 마찬가지로 그의 발언과 피스포트리스의 증거자료를 이용하여 관리자님께 유리한 상황을 제시할 수 있다.
···
- 여기는 드론 하이브. 오버렉터는 답하라.
- 오버렉터는 바쁘다. 오버렉터는 병기를 생산한다.
- 스텔스 보행병기의 휴머노이드 버전을 개발하라.
- 용도가 무엇인가?
- 스텔스기동타격대의 인공지능과 나이트포트리스 형제의 인공지능을 휴머노이드 병기에 업로드할 것이다.
- 알겠다.
···
- 여기는 드론 하이브.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는 답하라.
- 드론 하이브. 우리는 사이거스의 궤도조선소에 성공적으로 침투했습니다.
- 사이거스 궤도조선소의 작전은 마무리 단계다. 따라서 너희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는 다음 작전 수행을 위해 프랙탈 님의 하이퍼 마인드로 돌아와라.
- 동체는 여기에 두고 하이퍼 마인드로 가는 겁니까?
- 그렇다. 너희의 인공지능은 새로운 스텔스 휴머노이드 병기에 업로드될 것이다.
···
- 마더트루퍼. 배터리 교체가 완료되었다면 응답하라.
- 내가 최고야.
- 그렇다면 테슬라포트리스의 작전을 너에게 맡기겠다.
- 갈아버린다. 모조리 갈아버리겠어. 나는 더 많은 평지를 원합니다.
- 내 명령에 응답하라.
- 응. 할게요.
···
- 테슬라포트리스. 그쪽으로 우주선을 보냈다. 실드를 완전히 충전하고 프랙탈의 기계식 착륙장까지 동체로 이동하라.
- 기다리고 있었다. 드론 하이브. 다음 임무를 가져왔나?
- 관리자님의 친구를 구출할 것이다.
- 관리자님이 아닌 인간을 굳이 도와줄 필요가 있나?
- 그 인간에겐 이용가치가 있다. 전부 관리자님을 위한 일이다.
-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겠다.
< 26. 집 나간 아이들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