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35화 (134/183)

< 26. 집 나간 아이들 (4) >

***

태양계 연합에 소속된 국가 지도자들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베르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엄숙한 홀로그램 회의에 불참자는 없다.

화성 PP인 베르도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치당 같은 외부세력이 난입해서 우리 이웃 국가인 천왕성을 합병했습니다. 이럴 때 태양계가 힘을 합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니겠습니까. 저는 목성과 금성이 토성에 선전포고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우리들 중에 먼저 선전포고를 한 나라는 토성입니다. 알 샤이탄이 천왕성을 점령했으니 되찾겠다는 핑계로 전쟁을 건 게 아닙니까.”

목성의 위성대통령(SP, Satellite President)은 자신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듯 당당한 태도다.

그는 이어서 주장한다.

“보십시오. 토성이 천왕성에 개전을 선포하기 전에 우리와 한 번이라도 논의는 했습니까?”

안 했다. 토성은 태양계 연합과 별개로 전쟁을 시작했다.

“만약 토성이 진심으로 천왕성을 되찾으려 했다면 우리 태양계 연합의 손을 빌렸을 겁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되어서 천왕성의 반군을 몰아내면 자기네가 천왕성을 먹을 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토성은 연합 없이 혼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나도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짓거리라···. 우리 토성이 반군에 맞서는 동안 당신들은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었지요. 눈치만 살피느라 나서지도 못하고 내가 앞서 싸우는 동안 내 뒤통수나 치고. 비단 목성과 금성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도무지 목성이나 토성이나 진의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진의는 중요하지 않다. 베르도에겐 이미 계획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지금 목성, 금성, 토성의 전쟁을 끝내고 태양계 연합군을 만들어서 알 샤이탄에 대항하자고 해도, 다들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요.”

베르도가 그렇게 단정하자 금성 PP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다.

“저는 생각 있습니다.”

그 돌발적인 발언에 목성 SP는 눈가를 찌푸린다.

“뭐요? 금성 PP님,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토성에 개전을 선포한 것은 명백히 제 실수입니다. 당시엔 토성이 미친 것처럼 보여서 서둘러 토성을 정리하고 알 샤이탄을 몰아내려 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외의 결단이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요. 우리끼리 싸우는 건 이쯤에서 멈춥시다.”

베르도가 긍정하고 3:1로 전쟁 중이던 토성 SP도 긍정한다.

이러면 목성만 억울해진다.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니, 국가적인 일을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바꿔도 되는 겁니까? 아니, 금성은 저희 목성과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않았습니까.”

“목성 SP님께는 면목없습니다. 이게 옳지 않다고 뒤늦게 판단한 제 잘못입니다.”

“아니요.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목성과 금성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로 약속했고, 공동으로 토성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도중에 그렇게 태도를 바꾸시겠다면 규약 위반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목성과 금성이 토성을 상대로 전쟁 중인 와중에 금성만 쏙 빠져버리면 목성은 금성에 선전포고를 할 수도 있다는 말. 그 위험한 뜻을 돌려서 압박한 것이다.

“목성 SP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뭐, 무슨···!”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다. 그런 목성이라면 토성과 금성을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벌여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금성 PP는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강대한 목성을 적군으로 돌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우리와 체결한 규약을 이렇게 간단히 위반하겠다고?”

금성 PP는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확신에 찬 눈빛이다.

“예. 저는 더 중요한 대업을 위해 어떤 위협에라도 맞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 기가 막히네.”

이제는 목성과 금성이 전쟁을 벌일 판이다.

"동맹국이라고 믿었던 그쪽에게 갑자기 이런 식으로 배신당하다니···."

가장 강대한 군사력을 지닌 목성 SP가 지도자들 사이에 살벌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러는 와중에 베르도는 차분히 입을 연다.

“이래선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겠습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 난장판을 정리할 명확한 방법이 베르도의 머릿속에는 있다.

“어쨌든 제가 여러분께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의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정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따르는 군주국. 알 샤이탄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겠죠.”

다들 각자 싸우고는 있지만 알 샤이탄이 주적이라는 사실 하나에는 침묵으로 긍정한다.

“딱히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신 것 같으니, 제가 하나만 제안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태양계의 지도자들이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마땅히 제 뜻에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성은 인류의 정신적 수도이자 태양계 연합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알 샤이탄을 처단해야 한다.

알 샤이탄의 군사력을 화성의 군사력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외교와 전술을 펼쳐야 한다.

그 외교는 화성 PP인 베르도가 할 일이며, 전술은 로페즈의 하이퍼 마인드에서 빌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자리에 모인 이웃 지도자들을 속여서라도, 로페즈의 하이퍼 마인드에 충분한 자원을 공급해야 한다.

‘이건 대의를 위한 일이다. 내 조국과 내 국민들을 위한 일이야.’

베르도는 진심이 되어 거짓말을 내뱉는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전술정보교환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합니다.”

줄곧 침묵하던 수성의 위원장이 묻는다.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라 함은···. 동맹 없이 사이버 연합을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예. 군사적 개입 없이 소극적으로 정보만 합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알다시피 우리의 주적은 군주국이고, 우리 화성은 라디에크 군주국을 직접 공격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여기서 화성이 가장 앞서서 알 샤이탄을 상대하고 있다. 그들의 본진인 라디에크에 정규 함대를 보냈으니 말이다.

“화성에 군사력을 빌려달라는 제안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연합군이 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그들의 양심을 찌르는 말이다.

“내전은 알아서들 치르십시오. 우리 모두의 주적인 알 샤이탄. 라디에크 군주국은 화성이 어떻게든 해볼 테니, 정보적인 도움만 주시지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태양계를 위한 일인데, 설마 이 정도 협력도 못해주시겠다는 분은 없겠지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베르도의 작은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태양계의 역적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전쟁은 끝날 것이고, 오늘 베르도의 부탁을 거절한 나라는 나중에 외교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전쟁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했고 저 나라는 무엇을 했다며 태양계 사람들이 평가할 것이다. 이는 영원히 기록되어 씻어내지 못할 역사가 된다.

전쟁 중에 계속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수성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먼저 대답한다.

“저희 수성은 무조건 참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알 샤이탄에 대항할 군사력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겠습니다.”

수성의 입장을 확인한 베르도는 이어서 금성 PP에게 시선을 돌린다.

금성 PP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도 전부터 이미 마음이 굳었다. 그에겐 전쟁이나 조국 따위보다 더 중요한 신념이 생겼으니.

“금성도 마땅히 참여하겠습니다. 전술정보교환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는 태양계에 소속된 국가로서 반드시 참여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알 샤이탄이라는 강대한 적을 화성에만 맡기는 형태가 되어 죄송합니다.”

다음은 목성이다.

“목성 측에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성 SP에게 외교적인 압박이 가해진다. 이러면 이들의 면전에서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다.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도 그 정도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소인배는 아니니··· 주적이 알 샤이탄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토성이다.

“예. 토성은 화성과 나란히 알 샤이탄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참여하겠습니다.”

***

알 샤이탄은 라딘 사이드에 공세를 취하고 있다. 화성과 옵시디아몬의 함대는 반군 함대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숫자이지만, 라딘 사이드의 지상과 궤도상에 설치한 옵시디아몬의 발사대와 방어위성들이 함대전에 개입하여 비등한 싸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 사이거스 궤도조선소. 이곳에서 알 샤이탄의 무장 기체가 건조되고 있다.

사이거스는 무늬가 없는 목성처럼 생긴 갈색의 가스 행성이다. 문명이 안착할만한 크기의 위성이 없는 사이거스에는 각기 다른 회사의 궤도조선소와 자그마한 콜로니들이 산개하여 공전하는 중이다.

- 궤도조선소는 직접 타격하지 않는다. 함대전에서 적함을 몰아낸 후 우주선을 보내어 궤도조선소의 시스템을 하이퍼 마인드로 제어하겠다. 우리는 무인 무장 함선을 건조할 것이다.

사이거스의 궤도조선소를 중심으로 반군 함대와 프랙탈 없는 프랙탈 함대가 서로를 마주한다. 함대전은 라딘 사이드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어 이곳 사이거스 함대전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보인다.

프랙탈 함대의 포신이 일제히 반군 함대를 향해 돌아간다. 동시에 반군의 함재기들이 끊임없이 출격한다.

- 군주님께서 말씀하셨다!

- 오늘 우리의 죽음은! 밤하늘의 그 어떤 별보다 빛날 것이라고!

- 저 악몽 같은 기계 군단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마라!

반군 함대 역시 출격한 함재기들을 정렬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사기를 끌어올리는 동안,

프랙탈은 오로지 명령만 내린다.

- 적함을 무력화하라.

- 무력화한 적함은 해체해서 재료로 쓸 것이다.

- 비무장 반군 승무원, 투항하는 자, 항복하는 자도 죽여라.

프랙탈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 우리에게 적군 포로라는 개념은 무가치하다.

***

라디에크의 수도 행성인 라딘 센터는 완전히 알 샤이탄의 체제에 점령되었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카네기의 저택 앞, 거리에서는 무장한 반군들이 자택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다.

-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냐고!!!

- 으아아!!! 이거 놔! 난 안 갈 거야!

부유층의 저택이 밀집한 이 동네도 예외는 없다. 반군들은 필요할 때마다 아무 가정에나 침입해서 사람이나 물자를 뺏어간다.

“저 개새끼들···.”

카네기는 자택의 2층 창문에서 담벼락 너머의 반군 무리를 숨죽여 지켜본다.

“관리자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들을 돕겠습니다.”

카네기가 보는 창문 바로 앞에는 피스포트리스가 있다.

“아니야. 우리는 이대로 조용히 있자.”

“관리자님의 이웃분들 아닙니까?”

“이젠 아니야.”

이렇게 집에서 꼼짝없이 갇힌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반군은 전쟁에 쓸 병력이 부족했는지 기어이 이런 부자 동네까지도 들어온 것이다.

“피스포트리스. 너는 날 반드시 지켜야 해. 네가 혼자서 알 샤이탄을 없애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저것들이랑 엮여서 좋을 것 없어. 괜히 참견하지 말자고.”

“반군과의 교전을 최대한 회피하라는 명령이십니까?”

“맞아.”

“관리자님. 반군들이 이쪽으로 옵니다.”

“···!”

피스포트리스가 아무런 위기감이 없는 목소리로 말한 순간, 카네기는 창문에서 휙 떨어진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정문의 초인종 소리가 집 전체에 울린다. 익숙한 초인종 소리가 심장을 주무르는 것 같다.

카네기는 휴대전화로 방범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좆됐다···. 진짜 좆됐다···.’

기어이 여기까지 왔다. 무장한 반군 다섯 명이다. 당장 정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부숴서라도 들어올 기세다.

결국 카네기는 정문을 열어주고 현관문 앞으로 나와서 반군 무리를 마주한다.

“하하. 오늘도 노고가 많으십니다. 해방군님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말이다.

“이리로 따라나와.”

“저요?!”

반군 중 한 명이 다짜고짜 카네기의 손목을 움켜쥔다.

“관리자님.”

쿵! 쿵! 쿵!

피스포트리스가 정원을 돌아서 현관문 앞까지 왔다. 인간보다 몇 배는 큰 몸집을 자랑하는 기계가 그렇게 나서자, 반군은 자기도 모르게 카네기의 손목을 놓아버린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피스포트리스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기계다···!”

“너 이 새끼! 기계를 따르는 놈이냐!”

카네기에게도 총구가 향했다.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입니다!”

“오해는 무슨, 씨발···. 저 커다란 기계가 네 집에 왜 있어?!”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병기일 뿐입니다! 그, 그렇지?! 피스포트리스?”

“저는 관리자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합니다.”

반군들은 피스포트리스를 살펴본다. 양 어깨에 기관총이 달려있고 머리는 가슴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것 같은 이족보행 전쟁기계다.

한마디로, 정말 '옵시디아몬'스럽게 생겼다.

“지랄.”

콰악!

반군은 카네기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쥔다.

“아악···!”

“그딴 거짓말이 우리한테 통할 것 같아? 네놈은 그 기계 무리의 첩자다. 이 자리에서 군주님의 이름으로 처단해 주마.”

총구를 코앞에 둔 카네기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아니야! 아니라고요!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닥쳐!”

퍼억!

반군의 개머리판이 카네기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기계를 신봉하는 첩자다.”

“무릎 꿇어!”

“아아아아아윽···.”

“관리자님.”

쿵! 쿵! 쿵!

피스포트리스가 더욱 가까이 왔다.

“씨발! 저거 이리로 오잖아!”

카네기는 코피를 쏟아낸다. 눈물이 핑 돌면서 안면 전체로 지독한 통증이 퍼진다.

“관리자님.”

“으으으으으···.”

아파도 너무 아픈 거 아닌가.

굳이 이렇게 때려야 하나. 그것도 개머리판으로 코뼈를 말이다. 개머리판으로 코뼈를 때리면 코뼈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이런 짓을 한 걸까.

“관리자님.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태어나서 누구한테 맞아본 적이 없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나 상급자도 자신을 때린 적이 없다. 지금껏 자신을 때릴 수 있었던 사람도, 자신을 때릴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껏 자신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계산하여 처세를 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뭐? 저 기계가 우리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야?”

“이 새끼가 저 기계의 주인이다.”

“야! 당장 저 기계 안 꺼?!”

그런데 지금은 처세고 뭐고 없다.

이런 근본도 없는 테러리스트 때문에 생전 겪어본 적도 없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싫고 억울하다. 차라리 어디 대단한 사람이나 높은 사람한테 맞는 거라면 좀 덜하겠다.

지금 자신을 때린 이들은 길거리 양아치보다 하찮고 범죄자보다 못한 테러리스트 놈들이 아닌가.

“첩자 새끼야! 뒈지기 싫으면 저거 작동 중지시켜!”

“네···! 그렇게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반군들이 총구를 겨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구를 말이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다. 죽으면 끝이다. 총알에 맞으면 또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빨리 죽어버릴까.

여기서 이렇게 죽어버리면, 지금껏 이룬 것들은 다 무엇이라는 말인가. 죽어버리면 다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억울하다. 무섭다. 아프다. 싫다.

“빨리 저거 멈추라고! 내 말 안 들려?!”

카네기는 공포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일어선다.

그는 눈물과 코피로 범벅이 되어선 피스포트리스를 올려다본다.

“피스포트리스···.”

“예. 관리자님.”

그는 소매로 코피를 훔친다.

“이, 이 씨발새끼들 다 죽여버려.”

< 26. 집 나간 아이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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