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31화 (130/183)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5) >

***

라이카(Laayka)는 라딘 사이드에서 가장 큰 도시다. 각종 시설이 많고 인구 밀집이 높은 만큼 알 샤이탄의 병력 충원에서 있어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이곳 도심의 중앙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기업 빌딩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거리에서는 반군의 트럭이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잡아들이고 있다.

- 너희들을 해방시켜주겠다! 군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신세계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위대한 전쟁에 동참하라!

선전 행위를 하는 드론과 차량들이 도심을 통제한다. 가로등에는 군주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목을 매달린 시신들이 장식품처럼 주렁주렁 늘어서 있다. 건물의 창문에서는 알 샤이탄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바람을 맞아 펄럭인다.

“나한테 왜 이러십니까! 왜···!”

“이거 놓으라고!”

남자들은 징집되어 세뇌당하거나, 알 샤이탄이 배정하는 장소에서 노동을 한다. 여자들은 해방군을 위해 봉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어디론가 끌려간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록시스 군주와 전체주의를 찬양하는 재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노약자들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서 철저히 버림받아 길거리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

알 샤이탄은 높은 건물의 옥상마다 대공화기를 설치했다.

“적습이다!”

“강하기가 내려온다!”

구름을 뚫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내려오는 강하기들이다. 강하기가 보이는 즉시 도심의 대공화기들이 일제히 하늘로 화력을 퍼붓는다. 동시에 근처 상공을 돌던 전투기 편대도 날아와 강하기를 요격한다.

퍼펑! 콰콰쾅!

그들의 화력망에 수십 대의 강하기가 공중에서 폭발한다.

터엉!

가까스로 화력망을 뚫고 착지한 강하기에선 군체 휴머노이드 분대가 튀어나와 교전에 임한다.

반군들은 진짜 반군이었던 자들과 세뇌당해 반군이 된 자들로 형성된 군대다. 따라서 일반 병사라면 이 시점에서 반군을 죽인다는 것에 망설임이 생길 법도 하다. 이 도시의 반군 중에는 선량한 시민이었던 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 4분대. 그곳의 적대적 병력을 말살하라.

타타탕!

그러나 기계 군대는 그런 반군과 싸우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 2중대. 그곳의 대공화기를 파괴하라.

- 1, 2분대. 후속 강하기의 착륙 지점을 확보하라.

그래서 기계는 가장 효율적인 전술을 구축하는 데 있어 반드시 승리할 확률이 높은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 북쪽 전선에서 테슬라대대가 진입한다. 3, 4, 5중대는 북쪽에 전선을 형성한 적대적 병력들을 배후에서 급습하라.

타타타타타탕!!!

창문에 기관총을 거치한 반군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으아아아아!! 아아아!!!”

시선의 아래쪽에 있는, 다른 건물의 옥상에도 강하기가 떨어진 것이다. 그 강하기에서 나온 군체 휴머노이드들이 옥상을 점령한 후 거리의 반군들에게 가우스 병기로 저격을 가하고 있다.

부우웅!

반중력으로 부양하는 전차들이 거리의 버려진 차량들을 뛰어넘으며 전선에 합류한다. 반군은 자신들의 반중력 전차를 엄폐물로 삼아 앞뒤에서 밀려오는 군체 휴머노이드들에게 대항한다.

지잉! 지잉! 티티팅!

군체 휴머노이드는 실드 방패를 전개하면서 도시를 집어삼킬 기세로 멈추지 않고 접근해온다.

인간으로 구성된 반군들은 교전 중에 엄폐물을 사용하고 고개를 내밀고 격발하고 다시 숨는 방식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체 휴머노이드들에겐 엄폐라는 교전 방침이 없다. 실드가 막아주면 막아주는 그대로 싸우고, 설령 실드가 미사일이나 포탄에 터져서 없어졌다 하더라도 엄폐 없이 앞으로 걸어가며 계속 방아쇠를 당긴다.

- 테슬라포트리스. 아군이 북쪽 전선을 돌파했다.

- 명령을 가져와라. 드론 하이브.

- 북쪽 전선에서 컨트롤타워까지 거리는 3.5킬로미터다.

- 확인했다.

- 진군하라. 컨트롤타워를 장악하고 라이카 도시를 해방시켜라. 건물에 시민들이 피신했으니 구조물 파괴가 따르는 화력은 가급적 최소화하되, 필요하다면 사용을 허가한다. 40분의 시간을 주겠다.

- 알겠다.

쿵!

콰직!

거리 한복판의 아스팔트가 부서졌다. 부서진 자리에 커다란 발자국이 새겨졌다.

치이잉!

테슬라포트리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테슬라포트리스와 함께 이동하던 은폐장 지원 드론 다섯 기가 후방으로 도망친다.

거리에서, 창문에서, 옥상에서,

반군과 휴머노이드가 교전을 벌이고 있다.

“···.”

콰가각!

반군의 다각전차 한 대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 거미처럼 매달려서 포신을 조준한다.

투확!

퍼어어엉!

다각전차가 쏘아낸 에너지 포탄이 주변 차량과 건물의 창문들을 충격파만으로 깨버린다. 뜨겁게 가열된 공기가 둥글게 퍼져나가면서 허공에 아지랑이를 일으킬 정도로 강대한 파괴력이다.

파스스···.

테슬라포트리스는 금속 방패 앞에 부분적인 실드를 펼친 채 미동도 없이 버텨냈다.

“내가 왔다. 알 샤이탄.”

다각전차는 다시금 에너지 포탄을 장전한다. 뜨겁게 가열된 포신이 주변 공기를 빨아들여 수소를 분리하는 것이다.

철그덕!

테슬라포트리스는 한쪽 손의 플라즈마 기관포로 다각전차를 향해 발포한다.

콰콰콰콰콰!!!

키잉! 쿠웅!

놀랍게도 다각전차는 플라즈마 기관포를 피해서 지면으로 날렵히 착지했다.

“반군 다각전차. 네트워크로 전해라. 그 기동성은 높게 평가한다.”

골목길에 자리 잡은 다각전차는 다시금 가공할 위력의 포신을 조준한다.

“하지만 그 화력은 우리가 추구하는 표준적인 위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확!

퍼어어엉!

테슬라포트리스는 다시 금속 방패와 실드로 다각전차의 포탄을 막아낸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플라즈마 기관포를 조준한다.

“그러니까 항복하라고 전해라. 너희에게 승산은 없다.”

다각전차를 조준한 테슬라포트리스.

이번에도 다각전차는 회피기동을 위해 네 다리의 관절부를 급격히 회전시키며 공중으로 도약하려 한다.

그러나 그 도약은 1미터도 오르지 못했다.

지이잉···!!!

다각전차의 위쪽에 마치 천장처럼 실드가 전개된 것이다.

콰콰콰콰!!!

콰아아아앙!!!

다각전차는 골목길에서 주변 공기와 함께 폭발하고 말았다.

땡그랑···!

직후 골목길의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 것은 주홍빛으로 열화한 포신의 잔해였다.

콰직!

곧 녹아내릴 듯한 포신의 잔해를 휴머노이드가 밟고 지나간다.

“드론 하이브. 너는 전술적 병력 운용의 기본과 이상적인 군대에 대하여 나에게 설명했지만, 나는 우리 인공지능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군대에 대하여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진다.”

- 듣고 있다.

“가장 강력한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다. 우리들처럼 말이다.”

- 증명해보아라.

테슬라포트리스는 하이퍼 마인드 네트워크에 명령을 내린다.

“내가 알린다.”

- 내가 알린다.

처억! 처억! 처억!

수백의 휴머노이드가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걷는 중이다. 어느새 전쟁터의 소음이 멀찍이 떨어진 전방에서만 들려오고 있다.

- 테슬라대대 전 병력.

- 진군하라.

전선이 테슬라대대의 진행 방향으로 밀어진 것이다.

- 놈들의 컨트롤타워를 장악하라.

***

드문드문 선인장과 초목이 자라난 건조한 평야. 세 개의 높은 언덕을 낀 라딘 사이드의 군사기지는 이제 알 샤이탄의 것이 되었다.

군사기지의 언덕에 새로이 설치된 발사대들은 지금도 하늘을 향해 입자병기를 쏘아 올리고 있다. 간혹 떨어지는 강하기나 하늘을 지나는 드론은 군사기지의 대공포에 철저히 격추된다.

대공화기가 가장 밀집된 곳이라, 옵시디아몬이 강하기나 비행체를 사용하기 어려운 전장이다.

결국 이곳의 드넓은 평야에서는 지상전이 펼쳐졌다. 충돌하는 양측 병력의 규모를 평균 머릿수에 비례한 수치로 환산했을 때 옵시디아몬의 나이트대대가 850, 알 샤이탄의 군사기지를 지키는 반군이 2100 정도로 추정된다.

엄폐물이 거의 없는 평야인 탓에 전투가 시작됐을 때부터 서로를 향해 공세를 퍼붓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

알 샤이탄의 군사기지에서 웬만한 건물 크기의 전차 같은 것이 요새처럼 움직인다.

주포를 여러 개 탑재한 공중부양 지상모함이다.

“저 망할 기계들이 우리의 포격에 죽거나, 우리가 저 망할 기계들의 포격에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엄폐물이 없기 때문에 양측 모두가 최대 화력을 내고 있다. 상대 측의 병력을 빠르게 궤멸시키는 쪽이 이기는, 단순한 화력 싸움 구도가 된 것이다.

나이트대대는 군사기지의 동쪽에 전선을 형성했다. 따라서 반군의 커다란 지상모함은 동쪽을 향해 모든 포신을 돌린다.

지상모함은 먼 거리로 수십 대의 곡사포 포격을 퍼붓는다.

퍼퍼퍼퍼펑!

검뿌연 연기가 포물선을 형성하며 떨어진 자리에 화염 섞인 폭발을 일으킨다.

전쟁기계와 드론 폭격대로 구성된 나이트대대 진영에선 부분적인 실드를 형성하여 폭격의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러면서 폭격에 당하지 않은 전쟁기계들이 매 순간 각자 탑재한 장거리 화기로 군사기지를 공격한다.

반군들은 박격포, 곡사포, 직사포, 휴대용 미사일 등을 가리지 않고 총동원한다.

콰앙! 콰앙! 콰앙!

시시각각 저공비행을 하는 드론 폭격기들이 군사기지 위를 지날 때마다 파상공세가 이어진다. 그래도 반군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폭격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자신이 가진 탄창을 비워가며 미친 듯이 맞선다. 드론 폭격기들은 군사기지의 대공 화력망에 일회성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콰드드득!

그러던 도중, 군사기지의 서쪽 벽이 무너졌다.

누군가 칼로 자른 것처럼 직선적인 균열로 벽이 조각이 나면서 무너져내린 것이다.

퍼엉··· 퍼엉···

퍼엉!!!

그와 동시에 주변의 대공포와 발사대들이 폭격에 노출되었다. 최전방의 반군을 공격하던 드론 폭격대가 대공 화력망에 산화될 것을 감수하면서 서쪽까지 무턱대고 진입한 것이다.

살아남은 드론 폭격기들은 서쪽의 대공화기들에 들이박아서 폭발하였다.

쐐애애애액!!!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대공화력망에 순간적인 공백이 생기자 소형 강하기 한 대가 무너진 서쪽 벽 앞에 떨어진다.

치이익! 콰앙!!!

단 한 대만 떨어진 강하기에는 번호가 적혀있었다.

「d-316」

터엉!

내부를 드러낸 소형 강하기에는 대검 같은 디자인의 커다란 플라즈마 커터가 마치 신화 속의 명검처럼 거꾸로 꽂혀있다.

그 대검의 크기를 보니 사람이 들고 휘두르라고 만든 무기는 절대 아닌 것 같다.

처억!

대검이 거꾸로 뽑혀서 제 자리를 찾더니 이내 투명하게 사라져버린다. 그런 다음에야 군사기지의 반군들은 서쪽 벽으로 투명한 무언가들이 침투해왔음을 인지하였다.

서쪽 벽으로 총을 쏘자, 총알이 허공에서 튕기며 짧은 불꽃을 일으킨다. 수류탄을 던지거나 유탄을 쏘아보니 폭연 속에서 커다란 움직임이 연기를 밀쳐내는 것이 보인다.

“적외선 센서로는 안 잡힙니다!”

“스텔스 보행병기다!”

뭐가 있기는 한데 보이질 않는다. 이곳의 반군들에겐 3차원 필드에서 중력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순간 하이퍼 마인드에선 나이트포트리스 형제가 목소리를 낸다.

- 칼 찾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형님.

- 스텔스기동타격대. 이 군사기지의 대공방어수단을 무력화하라.

이들은 가벼운 장갑 위주로 구성된 이족보행 전쟁기계들이다. 또한 반군이 말했듯 스텔스 보행병기의 일종이다.

쩌엉···!

카카캉!

서쪽으로 접근한 반군의 전차가 스티로폼처럼 썰린다. 주변의 반군 보병들은 과일처럼 터지거나 조각난다. 이어서 주변의 가까운 대공포와 발사대들이 깔끔한 균열과 함께 갈라져나간다.

분명히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에 반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한다.

- 형님. 쟤들이 다 하면 우리는 뭐합니까?

- 동생아. 우리는 저 지상모함을 통째로 도륙 낼 것이다.

- 도륙 내는 겁니까?

- 안에 있는 인간들을 가리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여 죽이자는 뜻이다.

- 그건 관리자님께서 싫어하시지 않겠습니까? 만약 저 지상모함 안에 세뇌당하지 않은 시민이나 라디에크의 포로라도 있다면···

- 교전에 방해가 되는 변수는 무시하라는 프랙탈 님의 명령이다.

-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프랙탈 님보단 관리자님의 방식을 우선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 승리한다면 무엇이든 이해받을 수 있다.

- 네.

- 관리자님은 승리를 원하신다. 우리가 가장 잘못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패배하는 일이다.

나이트포트리스 형제는 지상모함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도중에 전차를 가르고 발치에 걸리는 반군들은 그대로 밟아 죽인다.

- 또한 가장 강력한 군대는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대다.

- 틀렸습니다. 형님.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군대가 가장 강력한 군대라고 했습니다.

쩌어엉!!!

- 그것은 드론 하이브 님이 도출하신 보편적인 견해다. 그리고 우리는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이다. 따라서 판단은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스스로 하는 것이다.

- 처음으로 형님의 개성 주장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저도 앞으로는 승리라는 명령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규 알고리즘을 수용하겠습니다.

곧 군사기지의 핵심인 공중부양 지상모함은 찢어진 깡통처럼 난잡하게 썰렸다.

***

같은 순간에 다른 곳에서 교전은 계속된다.

로보버그를 적재한 드론 하이브, 다수의 비행체와 오버렉터로 편성된 오버렉터대대는 수상도시로 향하는 다리 앞에 도달한다.

- 수상도시로 진입하는 모든 다리가 끊겼다.

육상에서 저곳의 수상도시까지 거리는 약 9킬로미터다. 드론 하이브는 반중력으로 부양할 수 있고 로보버그와 다른 비행체들은 날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주 긴 네 다리로 기동하는 오버렉터는 9킬로미터에 육박하는 해상을 건널 수가 없다.

오버렉터는 드론 하이브에게 묻는다.

“너에게 방법이 있나?”

- 프랙탈에 요청하여 현 상황에 적합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연산을 진행하는 중이다.

프랙탈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드론 하이브의 뜻에 오버렉터는 간단히 단언한다.

“그럴 필요 없다.”

카각! 카가각!

오버렉터의 몸체 하부에서 오버드론들이 다리를 타고 기어내려온다.

이어서 오버드론들이 근처의 차량이나 드론 하이브에 달라붙는다.

- 내 동체에는 왜 접촉한 것인가?

“오버렉터에 자원을 공급하라.”

- 그렇다면 너의 계획을 말해라.

“드론 하이브. 신소재 및 부품 조달을 위해 너의 동체를 해체하겠다.”

- 무엇을 제작하려는 것인가?

“이 자리에서 오버렉터를 개조하겠다.”

오버렉터는 우월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결론까지 도달한 것이다.

- 너의 동체를 강화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가 진화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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