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30화 (129/183)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4) >

***

로페즈는 유토피아에서 화성 정부와 함께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태양계에서 라디에크 군주국은 천왕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태양계 군대의 대부분을 천왕성에 배치한 상태다.

그래서 옵시디아몬은 지휘주력함 프랙탈이 편성된 본대를 모조리 라디에크 항성계로 보낼 수 있었다.

라디에크 항성계의 행성과 궤도에서 교전이 벌이지고 있다. 화성과 군주국 사이의 싸움이다.

그런 전장에 옵시디아몬 본대가 합류했으니 실질적으로 화성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전력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든든한 지원군으로 보였던 옵시디아몬 본대조차 군주국의 가공할 군사력 앞에선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리라.

프랙탈의 전략회의실에서 브리핑이 시작된다. 프랙탈 함대를 이끄는 자는 프랙탈의 함장이자 옵시디아몬의 사령관인 엑스턴이다.

- 수도 행성인 라딘 센터는 공격이 불가능합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제록시스의 반군이 라딘 센터에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군, 테러리스트, 제록시스의 군대, 알 샤이탄.

그 구분이 불투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뭐라고 부르든 하나의 집단이자 적군이 되었다. 지금은 화성 측의 표현에 따라 반군이라고 부르는 중이다.

“라딘 센터는 화성 정규군도 치지 못하는 곳이야.”

엑스턴 사령관을 중심으로 프랙탈 인공지능, 코만데 부사령관, 각 함장들과 화성 함대의 장교들이 접속한 채다.

“화성 측에서도 그렇게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 예. 그래서 우리 화성 함대는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라딘 사이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딘 사이드만 문제가 아니더군요.

“놈들이 국민들을 세뇌, 징집해서 병력으로 충원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그 부분은 그쪽의 프랙탈에 관련 데이터를 보내드렸습니다. 확인해보시죠.

“프랙탈.”

- 네. 사령관님. 화성 정규군이 보내준 정보에 따르면 반군들은 라딘 센터, 라딘 사이드에서 민간인을 징집하여 밀리타의 세뇌 시설에 보내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병사들만 만들어낸다고 싸울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 반군은 라딘 사이드의 공장들을 점거하여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사용될 병기 및 무장 함선은 라딘 센터의 궤도조선소에서 생산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라딘 센터에 놈들이 몰려있던 것이군.”

- 사령관님은 선택을 해주셔야 합니다.

- 주요 목표는 라딘 센터, 라딘 사이드, 밀리타 중 한 곳으로 설정하셔야 합니다. 이에 따라 각 드론 하이브가 준비한 세 가지 전략 조언을 불러오겠습니다.

- 첫 번째 전략은 드론 하이브 집단이 구상했습니다. 저희가 정면으로 라딘 센터를 공격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배후로 라딘 사이드의 화성 함대에 병력을 돌려 라딘 사이드의 전쟁 물자 보급을 끊는 것입니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새로이 충원되는 반군 병력이 전장에 합류하는 속도를 크게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 두 번째 전략은 화성 함대의 주장입니다.

- 내가 말하겠습니다. 프랙탈의 엑스턴 사령관. 우리는 며칠째 라딘 사이드에 상당한 병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 소모의 대가로 라딘 사이드의 궤도 방어 시스템을 돌파하는 방법을 찾아냈죠. 놈들의 궤도를 지키는 방어위성들. 그것들을 전부 지상에 분산된 컨트롤타워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사령관은 이대로 라딘 사이드에 합류해서, 라딘 센터의 반군이 지원을 오기 전에 시간적인 이점을 취하자는 겁니다. 반군의 대응보다 빠르게 라딘 사이드를 잡아서, 우리 함대와 함께 놈들의 전쟁 물자 생산시설을 파괴합시다.

치직···.

머리가 아파진 엑스턴은 습관적으로 시가에 불을 붙인다.

- 세 번째 전략은 밀리타의 세뇌 시설 공략입니다. 화성의 지상군이 되는 4개 사단이 밀리타의 지상에서 각 거점이 되는 도시를 수복하기 위해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첩보에 의하면 본래 라디에크의 국민이었던 반군들이 ‘브레인 시프트(Brain Shift)’ 기술에 의해 세뇌당했다는 근거를 확인했습니다.

- 따라서 밀리타의 각 도시를 우선하여 수복하고 도심의 세뇌 시설들을 장악한다면, 반군이 사용하는 브레인 시프트의 해독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현재 진행 중인 사이버 전쟁에서 돌파구를 탐색할 수 있게 됩니다.

-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사령관님.

엑스턴은 미간을 살짝 구긴다.

평소에 프랙탈은 교전 상황에서 거의 정답에 가까운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확실히 어려운 싸움이긴 한가보다.

어느 선택지나 정답이 없어서 인간인 엑스턴의 판단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우. 일단 화성 측 함장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 예. 빠르게 빠르게 합시다.

“우리가 라딘 사이드에 전원 합류하지 않으면 라딘 사이드는 그쪽에서 자력으로 해치울 수는 없는 겁니까?”

- 어렵습니다. 지금은 우주의 적 함대를 가까스로 뚫은 다음에 지상의 발사대와 궤도의 방어위성을 상대하고 있죠. 그러는 와중에도 라딘 센터 쪽에서 놈들의 함대가 자꾸만 측면으로 들어오니까 이쪽 출혈이 심합니다. 이러다간 하늘을 뚫고도 놈들의 지상군을 상대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프랙탈.”

- 네. 사령관님.

“사이버 전쟁 현황은 어떻지?”

- 본래 화성의 사이버 부대가 불리했으나, 하이퍼 마인드가 합류하면서 교착상태가 되었습니다.

“아까 말했던 전쟁 물자···. 반군의 생산시설 대부분은 라딘 사이드에 있고?”

- 그렇습니다.

“······반군 놈들은 인간 위주로 구성되었어. 사이버 전쟁에서 이긴다고 당장 그 압도적인 머릿수가 없어져 버린다는 상황은 기대할 수 없겠지.”

엑스턴은 결정을 내린다.

“라딘 사이드에서 만들어지는 전쟁 물자의 보급을 배후에서 끊어도, 그게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요소는 아니야. 일시적인 유리함을 가져올 뿐이겠지. 다른 곳에서 전쟁 물자 시설을 대체하기 전까지만.”

-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랙탈. 우리 옵시디아몬 병력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 최첨단 기술과 기계 중심으로 구성된 효율적 군대입니다.

“그렇지. 그런데도 반군이 유리한 이유는?”

- 상당한 격차의 병력 규모와 항성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소모함에 기반한 지속적인 병력 충원입니다.

“전장에서 병력은 우리도 충원할 수 있어. 우리도 놈들처럼, 이 전쟁터에 거점만 안착시키면 놈들처럼 만들 수 있다고. 놈들보다 훨씬 빠르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

이것이 엑스턴의 결론이다.

“화성 함대가 출혈을 감수하면서 라딘 사이드를 돌파할 방법을 이미 찾아놨어. 그 방법이 먹히지 않고 있는 이유는 명확히 화성의 병력이 부족해서야. 내가 보기에 우리가 곧장 가세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성공해서, 놈들의 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빼앗는 식으로 간다.”

“그러니까 우리는, 화성 함대에 합류해서 라딘 사이드를 친다. 라딘 사이드를 우리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해당 전략을 작전으로 세분화하여 각 지휘 프로세스에 전달하겠습니다.

- 잘 선택하셨습니다. 역시 옵시디아몬의 사령관. 언제나 우리의 혈맹으로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군요. 우리와 함께 싸워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단번에 밀어버립시다. 그쪽은 궤도에 총력을 기울여주시죠. 놈들의 화력망만 분산시켜주신다면 저희가 알아서 돌파하겠습니다.”

- 그쪽에 지상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이쪽에서 컨트롤타워와 생산시설을 장악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발사대가 정리되면 그쪽 함대를 내려서 거점을 강화하는 겁니다.”

- 완벽하군요. 좋습니다. 함께 힘을 합쳐서 반드시 라딘 사이드를 쟁취해봅시다.

“예. 그럼, 전장에서 봅시다.”

***

화성 함대는 라딘 사이드에 총공세를 가한다. 화성 함대가 소모전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돌변하자 반군 함대는 라딘 센터에 지원 요청을 보냈다.

화성 함대가 노리는 것은 반군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라딘 사이드를 지상까지 돌파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50분 안에 옵시디아몬의 지상군이 라딘 사이드에 내려가 그들의 궤도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계산이 떨어진다.

쿠우우우···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국가 규모의 함대 교전이 이어진다. 서로의 함대가 산화하는 현장에서 웅장한 불꽃들이 곳곳에 작은 태양처럼 둥근 폭발을 일으킨다.

총공세는 곧 전탄 발사와 접근전을 의미한다. 반군은 방어적 위치에 배치된 함대로 입자병기를 사용한다. 이에 더해서 라딘 사이드의 방어위성과 발사대들은 화성 함대의 강하를 저지하기 위해 화력을 내뿜는다.

장렬한 빛줄기들이 행성의 바깥쪽으로 끊임없이 솟구친다. 화성 함대도 이에 질세라 반군이 쏘아대는 빛줄기의 반대 방향으로 가용한 모든 화력을 퍼붓는다.

형형색색의 빛줄기와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발사체가 교차한다. 그 사이에 간혹 핵미사일이 터지면서 전파를 교란하고 전장에 일시적인 공백을 만든다.

라딘 사이드의 거의 모든 방향에서 반군과 화성 함대가 충돌하는 가운데, 프랙탈 함대가 한 지점에 돌파를 시도한다.

수십 발의 벡터 미사일이 일그러지는 중력장 속에서 미사일답지 않은 속도를 내는 듯하다. 그래도 라딘 사이드에의 반군은 프랙탈 함대가 발사한 미사일을 모조리 격추시킬 정도의 화력망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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