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29화 (128/183)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3) >

***

단순히 제록시스에 의해 어느 세력이 다른 세력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다. 태양계의 여러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되려는 조짐이 보인다.

- 라디에크 군주국의 제록시스는 합병한 천왕성을 혁명의 발판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들의 이념에 저항하는 세력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토성과 화성까지 점령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 토성은 이웃 국가인 천왕성을 되찾기 위해 선전포고는 불가피하다고 하였습니다. 토성은 태양계 연합의 회의에 불참하고 태양계에서 가장 먼저 선전포고를 한 국가입니다.

- 금성과 목성은 저번 전쟁에서 토성이 저지른 만행을 강조하며, 토성이 태양계 연합의 뜻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국가는 토성이 천왕성을 손에 넣기 위해 라디에크 군주국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토성을 상대로 통일전선을 형성했습니다.

- 태양계 연합의 회의는 마비되었습니다. 화성은 전쟁의 광기가 다시금 세계대전을 일으키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제록시스 군주를 히틀러와 같은 부류의 독재자로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화성은 라디에크 군주국과 전면전을 선택하였고, 라디에크 항성계로 함대를 보내어 교전 중에 있습니다.

- 태양계, 라디에크 항성계 외 다른 국가들의 반응은 냉소적입니다. 다른 국가들은 이번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을 비판하였고, 대체로 전쟁의 확산을 원하지 않는다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각자의 포장된 명분이 전쟁을 일으켜 광기를 퍼뜨리고 있다. 화성이 그렇게 행동한 것도, 토성이 그렇게 행동한 것도, 금성과 목성이 그렇게 행동한 것도 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라디에크 군주국의 제록시스다.

“제록시스가 알 샤이탄을 이용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 금속의 천사들이 알 샤이탄의 핵심 거점을 공략하면서 알 샤이탄은 성공적으로 척결되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핵심 거점이 공략된 후 자신들을 ‘제록시스의 혁명군’이라고 밝힌 출신 불명의 군대가 라디에크를 침공하여 알 샤이탄에 합류했습니다.

혁명군이 아니라 반군 취급을 받고 있겠지만.

- 그들은 라디에크 항성계의 행성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침공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공작원을 심어 라디에크 항성국가를 3일 만에 전복시켰습니다.

무력의 정점인 제타.

제록시스의 반군은 3일 만에 한 항성국가를 빼앗고 12일 만에 천왕성까지 점령한 것이다.

“도대체 군사력이 우리의 몇 배길래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 관측된 정보에 의하면 목성 연방정부의 8.4배 규모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와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보유한 목성이다. 그런 목성의 여덟 배라니, 귀를 의심하게 된다.

“그만한 병력이 지금껏 어디에 있다가 온 거야? 제록시스 군주가 어느 나라에서 온 건지도 몰라?”

- 제록시스와 알 샤이탄 반군에 대해선 출신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반군은 라디에크 항성계의 물적, 인적 자원과 모든 생산시설을 장악하고 국가 생산량의 대부분을 군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라디에크 군주국에 병합된 천왕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사들은 어떻게 늘린 거지? 알 샤이탄을 보니까 우리처럼 무인 병기라도 생산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던데.”

- 반군은 신경 다운로드 기술을 통해 ‘전체주의 재사회화’라는 세뇌를 받습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제록시스 군주에게 무조건 충성합니다. 혁명군의 숫자는 장악한 국가의 국민들을 징집하여 보충합니다.

멀쩡한 나라를 밀어버리고 국민들을 강제로 차출하여 세뇌된 병사로 만든다는 말이다.

“악마보다 더한 새끼네···.”

- 제록시스는 현대의 독재자로서 전쟁을 부추겨 인류의 자원을 극심하게 소모합니다. 그리고 범세계적인 전쟁은 관리자님의 사업체가 활동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심지어 그는 관리자님께 매우 적대적이므로 지금의 관리자님께 가장 위험한 변수가 됩니다.

“그래. 보고만 있을 수 없지. 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병력을 준비한 거니까.”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과 일치합니다.

곧 트랜센던서와 로페즈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죽여야 돼. 반드시 죽어야 하는 놈이다.’

- 제록시스를 제거하시면 됩니다.

***

이곳은 디렉텀이라 불리는 화성 행성대통령의 관저다. 로페즈는 베르도의 집무실에서 그를 독대한다.

“자네가 외부에서 데려온 그 병력들, 이곳에서 보고받고 놀랐네. 설마 자네는 이런 사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했나?”

“누가 어디에 그런 짓을 할 거라고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이퍼 마인드의 주장에 따르면 제 세대나 제 다음 세대쯤에 전쟁이 재발할 것이라고 해서요. 미리 대비를 했는데··· 사태가 상당히 일찍 터졌네요.”

베르도는 입술에 침을 묻힌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긴장하는,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다.

「그는 관리자님께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회장님은 당연히···. 이 조국을 위해서 힘을 써줄 거라고 여겨도 되는 것인가?”

베르도에겐 옵시디아몬의 병력이 절실했다.

로페즈는 호언장담한다.

“저도 디렉텀에서 밝힌 입장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모든 원흉은 제록시스, 그 미친 독재자에게 있죠. 태양계 연합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화성이 라디에크를 공략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베르도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겉으로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다.

「그는 안심했습니다. 관리자님의 협력에 내심 의존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군주국은 라디에크의 국민들을 철저하게 소모하고 이용하는 중이네. 전쟁 중에 이민, 여행을 불허하고 총력전에 들어가겠다는 태도지. 그곳에선 선량한 사람들이 모조리 징집당하고 있네.”

“라디에크에서의 전황은 어떻죠?”

“국민들에겐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밝혀놨지만···. 솔직히 낙관적이지만은 않군. 아니다. 낙관적이지 않다는 표현도 틀렸어.”

“그런가요?”

“우리 정규군과 놈들의 반군 사이에 전력 차이가 극심하네. 디폴스텔라이, 루비코, 이스페라, 뭐 기타 등등 다른 국가들에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다 같이 무시하고 있어. 자기네한테 괜히 불똥 튀는 거 싫다는 거지. 이기적인 지도자들이야.”

“태양계가 하나로 뭉쳐서 군주국에 대항하는 게 제일 좋았을 텐데···. 목성, 금성, 토성이 또 서로 싸울 줄은 몰랐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네.”

로페즈는 본론을 꺼낸다.

“···이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목성 연방정부의 8.4배 규모의 군사력을 갖춘 집단이다. 베르도는 눈썹을 밀어올리며 의문의 눈길을 보낸다.

로페즈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하겠다는 말인가.

“뭔가 계획이 있는가?”

“하이퍼 마인드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이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킬 타개책을 찾아보겠습니다.”

“로페즈 회장. 쉽지 않은 상대와 함께 싸워줘서 고맙네.”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할 줄 알았네. 자네는 그 커다란 그릇으로 항상 그렇게 말했지.”

“하하. 네. 저는 라디에크의 국민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습니다. 저희 화성이 앞서 움직이면 태양계의 다른 국가들도 저희를 보고 뭔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겠어요?”

“내가 85년을 살면서 자네처럼 훌륭한 사람은 처음 보았네. 언젠가 내가···. 자네에게 존칭을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 나이와 위치를 떠나서, 난 자네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네.”

“화성의 국민인 저도 각하를 지도자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허허. 난 그렇게 대단한 그릇이 아니네.”

“부패에 물들었던 화성 정계에서 각하 같은 분이 계신 덕분에 오늘의 깨끗한 정계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저도 동참하여 싸우겠습니다.”

베르도는 살짝 감동받은 것 같다.

「훌륭한 발언이었습니다.」

“알겠네. 우선 디렉텀과 유토피아 사이에 통신을 연결하도록 하지. 자네의 그 대단한 인공지능이 언제든 우리와 소통할 수 있도록 말일세.”

“좋습니다.”

“혹여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하게. 세계의 평화가 걸린 일인 만큼, 내가 전력으로 협조하겠네.”

로페즈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입을 다문다.

‘어차피 화성의 입장에선 이 전쟁을 끝낼 타개책을 옵시디아몬에서 찾는 수밖에 없어···. 반군과 격차가 너무 심하니까.’

다시 말해, 베르도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럼 이런 부탁도 들어주겠지.’

로페즈는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각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가 긴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뭐든지 말만 하게. 내가 자네 말대로 해서 틀린 적이 있었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로페즈의 본능이 되었다.

“아주 불리한 전황입니다. 패배한다면 화성도 공산국가가 되겠죠. 그런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다른 어느 국가도 아닌 인류의 정신적 수도인 화성이, 독재자를 처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백 번 옳은 말이네.”

“군사력의 극심한 격차를 뒤집기 위해선 전술과 외교밖에 답이 없습니다. 전술은 하이퍼 마인드가 구성할 것이고, 그 전술 구성을 위한 자원을 각하께서 외교로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외교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침묵하는 수성, 복수하려는 금성, 징벌하려는 목성, 본심을 알 수 없는 토성. 그리고 이 화성. 태양계가 하나로 뭉쳐서 싸워도 불리한 판국에 저희끼리 싸워선 답도 없습니다.”

로페즈는 이어서 주장한다.

“저희끼리 싸우고는 있지만, 다들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어차피 진정한 적은 라디에크 군주국이라고···. 다들 머릿속에 공통의 적을 그리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걸 대놓고 명분으로 써서, 마비된 태양계 연합 회의를 열라는 뜻이군.”

“네. 아마도 화성이 나서서 대놓고 공통의 적을 언급하면 불참하는 지도자는 없을 겁니다.”

“확실한가? 불참자가 없을 거라는 확신 말이야.”

“연합의 회의에 불참하면 자연스레 소외당하기 십상입니다. 소외당한 국가는 나중에 군주국에 당하더라도 태양계 연합의 도움을 구하기에 난처한 입장이 되죠. 그래서 특히나 강조 드립니다. 각하께서 화성을 대표하여, 태양계 공통의 적으로 라디에크 군주국을 확실히 지목하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그런 다음엔 모두가 힘을 합치도록 말을 잘해야겠군.”

“아닙니다.”

로페즈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아니라고?”

“당장 힘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금성과 목성 측이 토성 측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세력이 이웃 국가를 점령했는데 굳이 토성에 전쟁을 걸 정도로요.”

“흠······.”

그래서 로페즈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나라가 이 불리한 전황을 역전하기 위해선 하이퍼 마인드에 최대한의 자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이퍼 마인드가 태양계의 모든 국가 네트워크에 침입할 수 있도록 ‘협력 네트워킹 구축’을 제안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태양계 지도자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당장 힘을 합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우리에겐 공통의 적이 있다. 군주국의 본진이 된 라디에크 항성계는 화성이 혼자서라도 칠 테니, 전술정보교환을 위해서 태양계 연합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그렇게 주장하시면 됩니다.”

“···.”

베르도는 그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각하. 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이퍼 마인드로 태양계의 모든 국가 네트워크에 잠입해서, 하이퍼 마인드의 연산에 사용할 자원을 비밀리에 수집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나한테······. 다른 지도자들을 속여서 해킹의 침투 경로를 만들어달라는 말을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현 상황에서 외교는 일단 이렇게라도 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태양계 네트워크 장악’이다.

굉장히 올바른 지도자 축에 속하는 베르도는 로페즈의 비밀스러운 제안에 심히 갈등한다.

「양심의 문제입니다.」

“각하. 다른 지도자들을 속이고 그들 국가를 해킹한다는 선택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들 이웃 국가이지 않는가. 평생을 그 지도자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될 수가 있네.”

“떳떳하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뭐라고?”

“화성의 국민들은 평화, 번영, 안전을 원하고 있습니다. 라디에크에서 고통받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이고. 각하께서 말씀하신 이웃 국가인 천왕성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만인을 위해 선택해라.

나는 제록시스의 파멸을 원한다.

“양심이나 우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건 정치, 외교입니다. 그래서 정답도, 옳은 선택도 없습니다. 최선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죠.”

당신은 알고 있다. 불확실성은 정치와 외교의 기본이다.

“각하께서는 지도자로서 최선의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선택이고, 무엇이 세계가 원하는 선택인지를요.”

당신은 정의로운 승리를 거머쥐어라.

나는 태양계를 거머쥘 것이다.

“···각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하겠다고 대답만 해. 빨리.’

어차피 속으로는 마음이 기울지 않았는가.

“알겠네. ···달리 방법도 없는 마당에 자네의 뜻은 아주 일리가 있어. 그렇게 하지.”

됐다.

“괴로운 결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옵시디아몬은 최선을 다하여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는······. 제가 아는 그 어떤 지도자보다도 가장 지도자다운 면모를 갖추신 분이십니다.”

“과찬이네. 흠, 아무튼 조속히 태양계 연합 회의를 열어서 자네가 말한 그···. 전술정보교환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제시하도록 하겠네.”

정말 잔인하고 냉정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전쟁은 엄청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정말 잔인하고 냉정한 이야기를 겪어온 로페즈는, 그 누군가가 되기를 자처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내가 더 감사하네.”

이 끔찍한 전쟁 속에서, 태양계는 옵시디아몬의 소유물이 되리라.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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