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2) >
***
라디에크 항성국가의 밀리타 행성에 특수전단이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금속의 천사들이다.
2개 함단, 드론 하이브 4기, 군체 휴머노이드 12개 분대, 다수의 전쟁기계와 체인트루퍼가 알 샤이탄의 핵심 거점으로 파악된 사막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파아아···!
사막이 일어나며 기계식 천장으로 닫혔던 통로가 드러난다. 지하에 매복했던 반군들이 통로에서 허둥지둥 튀어나와 금속의 천사들에 대항한다.
“온다!”
사막의 이곳저곳에서 모래가 일어난다. 수백의 반군들이 개미굴에 숨었던 개미들처럼 지상으로 쏟아져 나온다.
금속의 천사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출몰하는 반군들에 맞추어 국지전을 펼친다. 지하의 통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궤도 폭격을 제외한 모든 화력을 동원한다. 드론 하이브가 플라즈마를 사출하고 전쟁기계들이 장거리에서 포격을 가한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전투복에 빨간 천을 두른 반군들은 화력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지하에서 튀어나온다. 그들은 불속으로 돌진하는 나방처럼 자신들의 목숨을 불태우며 교전에 임한다.
“영광스러운 전투에 임하라!!!”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라!”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알 샤이탄이 질 것 같은 전장이다. 그럼에도 싸우는 반군들의 모습은 집단적인 광기에 가까웠다.
쐐애애애액!!!
그 죽음의 광기에 호응하듯 군사용 드론, 전폭기, 로보버그가 순차적으로 상공을 지나며 그들을 휩쓸어버린다.
퍼퍼퍼퍼펑!
끊임없는 폭발 속에서 체인트루퍼들이 배후로 모래를 밀쳐내며 굴러간다.
“아악···!”
“아아아아아!!”
“끄어억···!”
까맣게 물든 폭발의 잔해는 다시금 빨갛게 물든다. 체인트루퍼들은 듣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서는 굉음을 토해내며 반군들을 산 채로 찢어발겼다.
곧이어 반군들은 어디서 구한 것인지도 모를 화기를 대동한다. 반중력 전차,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 가우스 병기 등이다.
파캉! 파캉! 파캉!
반중력 전차는 포신에서 포탄을 거의 연사로 쏟아낸다. 반군의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는 옵시디아몬의 병기들에게 유도되어 적중한다. 가우스 병기는 군체 휴머노이드가 어찌 반응할 틈도 없이 기계의 장갑을 꿰뚫어버린다.
계속 닥쳐오는 로보버그 떼는 푸른 화염을 토해내는 방사기로 처리하고 사막에 매설해둔 지뢰를 일제히 폭파시켜 체인트루퍼의 접근을 저지한다.
서로가 서로의 병력을 빠르게 소모한다.
와중에 금속의 천사들 측에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부서지고 파괴된 것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 샤이탄과 금속의 천사들 사이에 불합리한 격차를 벌렸다.
그리고 계속 벌어지는 격차를 확인한 드론 하이브는 인간 지휘관과 교신한다.
- 이제 전세를 굳히면 됩니다.
쿠우우우우···!
반군들은 멀찍이 떨어진 언덕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목도한다.
높이는 65m. 네 다리로 기동하는 포탑일까. 탑처럼 높은 것이 네 다리로 걸어오고 있다. 다리 위에는 U자로 휘어진 몸체가 있는데, 까맣게 매끄러운 표면에 보라색 장비들이 달려있다. 짧고 비대한 몸체에서 나오는 여섯 쌍의 붉은 안광을 보니 뿔이 달린 악마라도 보는 것 같다.
“씨발···. 저건 또 뭐야···.”
오버렉터.
분자 단위의 이동식 생산 공장을 탑재한 거대화 다각전차이자 움직이는 첨탑이다.
최근에 옵시디아몬이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써가며 새로이 개발한 무인 병기이기도 하다.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력에 대한 공포와 절묘한 우아함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카가가가각!!!!
오버렉터의 몸체 하부에서 동역학적인 디자인의 오버드론(Overdrone)들이 오버렉터의 기다란 다리를 타고 벌레처럼 기어서 내려온다. 다양한 각도로 꺾인 금속 막대기를 복잡하게 엮고 꺾어서 만든 거미나 성게처럼 생겼다.
카가각! 카각!
움직일 때마다 오버드론의 형태를 이루는 막대기들이 각도를 바꾸는데 그 각도가 눈에 다 보인다. 그러나 그 형태가 너무도 복잡해서 도저히 어떤 공학적인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중심을 이루는 몸체 같은 것도 없어서 엮인 막대기들 사이에 공간이 있다.
카각!
오버드론들은 빠르게 흩어진다. 전장에 널린 잔해를 금속 막대기의 끝에서 나오는 레이저 커터로 잘라서 적당한 크기로 만든다. 그리고는 그 잔해를 막대기들 사이에 끼워 넣어선 오버렉터로 돌아간다.
카각! 카각!
오버드론들은 처음에 내려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오버렉터의 긴 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그렇게 오버렉터의 몸체 하부로 들어가 전장에서 수집한 자원을 공급하는 것이다.
오버렉터는 다시금 여섯 쌍의 붉은 안광을 발한다. U자로 꺾여 뿔처럼 생긴 몸체의 끄트머리에서 뜨거운 연기를 하늘로 흘려보낸다.
그러더니 허스키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를 낸다.
- 알 샤이탄의 일회성 생체 병력.
파아아! 후두두두둑!
이윽고 오버렉터의 하부에서 엄청난 숫자의 로보버그와 군체 휴머노이드 몇 기가 생산되어 떨어진다.
- ···미개하다.
그 장면은 반군들에게 절망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버렉터는 목숨을 불태우며 싸우고 있는 상대에게, 소모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 것이다.
반군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든 어떤 신념을 가졌든 어떤 각오로 전투에 임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상대가 싸우면서 죽어가는 동안, 이쪽은 싸우면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 나의 시연회. 성공적이다.
이후 금속의 천사들이 철저하게 예측한 승리는 고스란히 실현되었다. 끝내 알 샤이탄의 반군들은 땅굴 속에서 무모하게 싸우다 죽거나 투항하거나 자결하는 최후를 선택했다.
그리고 땅굴의 중심에 위치한 곳에서는 콘크리트로 세운 별도의 구조물이 발견되었다.
“이, 이 부패한 자본주의의 노예들아!”
그 구조물 안에서는 파시스 군주가 군체 휴머노이드에게 잡혀서 끌려 나왔다.
“이히힉···! 계속, 계속 그렇게 경쟁하면서 살라고···. 반드, 반드시 누가 잃어야 내가 얻는, 시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톱니바퀴를 자처하는 새끼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맞는 건 줄 알고 자, 자각도 못하지. 누가 틀렸다고 하면 미, 미친 소리라고 하지.”
파시스는 침을 튀겨가며 횡설수설한다.
“흐, 그렇게 사는 거야. 평생을 돈, 자리, 돈, 자리. 다들 그렇게 자기 사유재산에 허덕여서. 히히. 멍청하고 불쌍한 것들아. 다 같이 공유하고 나눠쓰면 겨, 경쟁도 없고, 얼마나 좋은 사회야? 응? 옛날에는, 옛날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시, 시스템이 발전해서 완벽하게, 실현이 된다니까?”
“파시스. 우리는 너를 라딘 센터의 중앙특수법원에 넘겨 심문할 것이다. 그 망상 같은 발언은 검사 앞에서 해라.”
“야. 들려? 들어봐. 결국엔 다 하나가 될 거야. 무력으로 세계의 표준을, 옳고 그름을, 계속 그랬어. 패전국의 방식은 나빠, 승전국이 착해. 가, 강한 나라가 새로운 정의야···. 히.”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동공에 초점이 없고 식은땀에 머리칼이 다 젖어서 몸을 떨고 있다.
“히, 히히. 아아아···! 진정 위대하신 군주님···! 그분께서 우리의 병든 사회를 친히 수확하러 오시리라!!!”
***
드레이크에서 5번 행성의 기후는 11월 6일을 기점으로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본래 11월 11일에 완료될 것으로 계산되었던 예정일이 5일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활약을 보이고 팀장급으로 승진한 나노공학자가 로페즈에게 설명한다.
“깊은 해저에 미세한 열수분출공이 있었습니다.”
해저 바닥에서 뜨거운 물을 뿜는다는 그것이다.
“해저탐사로봇으로 이 행성의 열수분출공들을 조사해보니 뜨거운 물과 함께 소량의 인, 대량의 질소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하이퍼 마인드의 자문을 빌려 해저의 심층까지 실험적인 시추공을 뚫어서 조사해봤는데, 일부 해저에서 지각에 갇힌 대량의 질소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질소가 해저 밑에 갇혀있던 건가요?”
“일부 해저에 한해서만 그랬습니다. 질소를 뿜는 열수분출공만 찾아서 시추공을 통해 대량의 질소를 뽑아낸 결과, 행성의 기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죠.”
「참고로 해저를 뚫은 실험적인 시추공은 이 행성에서 발견된 원자 충진율이 매우 높은 듀얼 풀러렌을 나노튜브로 접어서 만든 것입니다. 이 신기술은 공학적 병기의 소재로써 사용할 수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설명하면 난 모른다고. 그쪽 분야는.’
로페즈는 트랜센던서의 설명을 듣고서 나노공학자에게 질문한다.
“아, 그리고 또 궁금했어요. 그 시추공에 쓰인 기술을 병기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하이퍼 마인드한테 들었는데요.”
“예. 이 행성의 암석에서 분리한 흑연이 통상의 흑연보다 질량이 컸습니다. 결정 구조는 분명히 흑연인데 충진율이···. 원자와 원자 사이의 공간이 적어서 더 무거웠던 것이죠. 그걸 변형해서 시추공의 새로운 소재로 적용했더니 더 단단한 시추공이 완성되었습니다. 수직으로 가해지는 힘에 한해선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단단하죠.”
수직으로 가해지는 힘에 강하다는 신소재.
어느 나라에선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옵시디아몬에겐 신기술이다.
이걸 병기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선 로페즈의 상상력이 절실하다.
“행성의 핵을 공격하는 병기나···. 바늘 같은 철갑탄, 총탄을 만들 수 있겠네요.”
나노공학자는 손뼉을 한번 치며 감탄한다.
“그렇죠! 바늘 같은 발사체! 그걸 엄청나게 발사해서 적함을 공략하면, 장갑에 재생성 소재가 없는 함선은 우주로 공기가 빠져나가서 무조건 격침될 겁니다! 내부의 회로까지 망가뜨릴 수 있고요!”
“오, 그러네요. 그럼 그걸로 총탄을 만든다고 한다면 ‘철의 폭풍’처럼 총알을 쏟아내서 하나의 면적을 커버하는 병기가 좋겠어요.”
로페즈는 이어서 상상력 기반의 실현성을 강조한다.
“다이아몬드 이상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건 당연하고, 총탄의 단단함이 바쳐준다면 아무리 작은 결정 구조라도 총구 속의 순간적인 압력에 버틸 수 있겠죠. 그러면 나노튜브로 만든 나노단위의 발사체를 쏘는 게 가능하지 않나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목표물을 물리적으로, 수천 개의 바늘로 꿰뚫는 병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겁니다! 우주와 지상을 가리지 않고요!”
“훌륭하네요.”
조만간에 목표물을 찔러서 가루로 갈아버리는 신무기가 개발될 것 같다.
이후 로페즈는 더 높아진 사옥의 옥상에서 숨을 한껏 들이켠다.
드디어 이곳에서 방호복 없이 호흡이 가능해졌다.
피부로 와닿는 기후는 여름처럼 온난하다. 그래서 이곳의 변화한 환경에 맞추어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할 동식물들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 착륙지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분지에 도시의 기반 시설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기반 시설?”
- 평탄화된 지형에 하수도, 도로, 토대, 공공시설 등을 건설했습니다. 고밀도 계획도시입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로페즈가 제일 주목하고 있는 일은 옵시디아몬의 군대다.
“군수공장이랑 병력 증강은?”
- 추가로 자원 채굴장과 무인 광산을 개발하면서 확장된 군수공장에 충분한 자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련소, 원소 합성 장치가 완성되었고 궤도조선소는 관리자님의 명령에 따라 표준규격보다 작은 설계로 함선을 우선 생산하고 있으며, 군수공장에서 함선의 부품을 조달하여 생산속도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곧 화성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네가 보기에 우리가 국가 수준의 군사력은 된 것 같아?”
- 옵시디아몬의 최첨단 주력함 8척과 8개 함단급 무장 함대, 드론 하이브 16기, 다목적 전쟁기계 320기, 우주 전폭기 65대, 군사용 드론 142기, 군체 휴머노이드 866기, 체인트루퍼 80기.
-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개발한 오버렉터 6기가 준비되었습니다.
- 이는 작은 국가를 침공할 수 있는 정규군 수준의 군사력입니다. 현재 화성의 유토피아와 라디에크의 라딘 센터에서 생산되고 있는 병력까지 합산하면 옵시디아몬의 군사력은 화성의 군사력에 필적할 것입니다.
테라포밍. 차원통로 개통비. 군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좋아. 돌아갈 인원들 준비시켜.”
***
12일에 걸쳐 우주를 횡단한 프랙탈 함대는 더욱 거대해진 규모로 태양계에 진입한다.
지금쯤이면 프랙탈 함대의 등장에 태양계 전체가 떠들썩하리라, 로페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인류의 영역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트랜센던서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관리자님. 태양계, 라디에크, 드레이크에 분산되었던 저의 데이터가 통합되면서 긴급한 정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뭔데?”
- 알 샤이탄이 라디에크에서 쿠데타를 성공하였습니다.
“뭐···? 알 샤이탄이 어떻게···”
밀렸던 정보가 끔찍한 진실이 되어, 막을 수 없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 라디에크 항성국가는 제록시스 군주를 따르는 라디에크 군주국이 되었습니다. 라디에크 군주국은 수정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때가 된 것이다.
결국엔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가혹하게도, 거대한 세계는 개인의 인지 범위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거대한 세계는 결코 로페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 라디에크 군주국이 천왕성을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
- 천왕성은 라디에크에 합병되었습니다.
- 토성이 라디에크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화성이 라디에크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금성이 토성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목성이 토성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라디에크 항성계에서 두 국가가, 태양계에서 다섯 국가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
전쟁의 역사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 25. 전쟁을 원한다면, 평화를 주시하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