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24화 (123/183)

< 24. 성난 거인 (3) >

***

알파는 무자비하다.

정이 없고 감정이 없고 용서가 없다. 이해도 없으며 공감도 없다. 그저 규칙을 위반했다는 사실 하나, 규칙을 위반했을 때 숙청의 대상이 된다는 원리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곳은 장로회의 사이버 공간이다.

알파부터 람다까지 10명의 일원들. 카파를 제외한 모두가 발신지 불명의 통지에 의해 모였다.

“명백한 규칙 위반이다.”

모두와 친했던 감마는, 그래서 카파와도 친했던 감마는 원망스럽게도 지금은 알파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세타 님의 사업체에 자신의 스파이를 잠복시킨 것은 위해 사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파에게 신고한 것은 델타의 짓이었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별이 있다고 해서, 카파와 현실에서 거래를 했습니다. 최종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까 미래에 세타 님의 사업체와 이것저것 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의심스러워서 조사를 좀 해봤더니···. 쯧쯧. 뒤에서 그런 짓이나 벌이고 있었습니다.”

세를린은 델타를 향해 언성을 높인다.

“제가 괜찮다니까요?! 카파 님이 저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었나 보죠!”

하지만 알파는 그녀의 뜻을 묵살한다.

“너희 둘은 현실에서도 돈독한 관계였지. 유감이네.”

“알파 님···!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분명합니다! 제가 현실에서 따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알파는 손바닥을 내밀어 그녀의 음성을 꺼버린다.

“세타. 이 심각한 상황에 자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네.”

“···! ···!”

세를린은 뭐라고 소리치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카파는 세타의 고유한 사업체에 자신의 스파이를 잠입시켰다. 카파는 세타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세타가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세타 몰래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

당사자 간에 합의하거나 이야기를 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장로회의 일원이 장로회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 알파에겐 그뿐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없는 세타. 공학의 정점. 크로노스의 서열 1위 임원인 마야 피티아를 숙청하겠다.”

그것은 알파가 내리는 사형선고였다.

그날 세를린은 장로회에서 접속을 종료하자마자 서둘러 토성으로 향했다. 경호원들을 대동해서 말이다.

타이탄에 있는 크로노스의 본사에 들어와 보니 벌써 이상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비의 경비원들이 마네킹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는 것이다.

“저기요? 저 좀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

“이봐요.”

세를린이 경비원들의 얼굴에 대고 손을 흔들어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다들 그대로 정지한 사물들처럼 서있다.

“하. 그냥 들어가자.”

그녀는 결국 경비원들을 무시하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한다. 권총 벨트를 착용하고 있어서 경고음이 울릴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경호원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들 뭐해?”

경호원들이 보안 게이트 앞에서 가만히 서있다.

“야! 뭐 하는 거냐고!”

자신이 데려온 경호원들인데 대답이 없다. 주변의 경비원들처럼 똑같이 정지했다.

“거짓말이야···.”

세를린은 뛰기 시작한다.

타타탓!

크로노스의 본사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상한 현상들이 눈에 띈다. 모니터 룸을 열어봤더니 모든 화면이 꺼져있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더니,

- 정원이 초과되었습니다.

작동하질 않는다.

복도에도 크로노스의 사원들이 그 자리에 멈춰서 마네킹처럼 서있다. 기묘한 세트장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피티아!!!”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세를린은 피티아를 찾아서 임원실, 회의실, 화장실을 가리지 않고 마구 뛰어다닌다. 전화를 하려고 했더니 휴대전화의 화면이 이상하게 점멸하면서 말을 듣질 않는다.

“피티아! 나 왔어! 피티아!!”

그렇게 계속 외치며 뛰던 어느 순간,

티티티티틱···!

실내의 조명들이 꺼져버렸다.

주변이 순식간에 암흑에 휩싸였다. 비상등도 없고 비상구를 표시하는 형광물질조차 빛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

본능적으로 빛을 찾아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창밖이 까맣게 변했다.

다른 차원의 공허 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미지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피티아···! 피티아!!!”

어둠 속을 헤맨다. 어딘지도 모를 복도를 지나고 뭐 하는 방인지도 모를 문을 열어본다. 몇 층인지도 모를 계단을 오르고 오른다.

그러던 순간, 배후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렸다.

쿵···.

무거운 물건이 떨어진 소리라고 할까.

이 어두운 공간에 누군가 있다.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세를린은 권총을 뽑아들고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조심스레 접근한다. 긴장감에 확장된 동공이 어둠 속 사물들의 윤곽을 밝혀낸다.

「임원 개인실」

「1_마야 피티아」

그녀의 개인실이었다.

“후우···.”

한번 심호흡하고 문을 수동으로 열어본다.

침대, 화분, 액자, 책상, 작동을 정지한 휴머노이드, 탁자.

피티아는 없다.

“얘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일정이 기록된 표나 전자노트라도 있을까 싶어서 책상 쪽으로 접근한다.

책상 위에는 촌스럽게도 종이로 쓴 일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세를린은 종이로 작성된 일지를 손에 들어본다. 얼굴을 가까이하자 어둠 속에서 간신히 글자가 읽힌다.

「마음을 훔치는 스파이 작전」

「1. 언니는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일을 싫어한다. 예술적인 가치로 비싼 장식품보다는 그냥 비싼 재료를 써서 비싼 장식품을 훨씬 선호하는 듯.」

‘이게 뭐야······.’

「2. 기념일 챙기는 것이 귀찮다고 하는데 예외적으로 생일은 사원들이 꼬박꼬박 챙겨줬다고 한다.」

피티아의 글씨체다.

그리고 스파이 작전이라고 했으니 최근의 일과 연관이 있는 일지가 분명하다.

「3. 나랑 사귀고 나서 평소보다는 의사결정회에서 까칠하게 말하는 날이 적어졌다고 한다. 내가 평소에 아랫사람들한테 잘해주라고 한 것이 원인인 듯.」

「4. 나한테 먼저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후로 남자와 미팅을 피하고 있다는 소식. 그날 밤에 내가 한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5. 언니는 차별하는 사람을 차별한다. 개조인 현장직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나누던 사원들이 대거 해고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말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6. 알레쉬는 언니가 가장 신용하는 비서다. 조사해보니까 50살 할아버지였다.」

‘너는 도대체···’

「7. 언니는 자기 입으로 금화만 좋아한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언니는 겉보기와 다르게 장미꽃을 좋아한다. 생일선물로 장미꽃 화원을 만들어주자.」

‘스파이로 고작 이런 정보나 캐고 있던 거야···?’

티티티티틱···!

건물 전체에 조명이 들어왔다.

세를린은 일지를 제자리에 놓고 급히 개인실을 빠져나온다. 때마침 개인실을 나누는 복도에 어느 임원이 지나가고 있다.

움직이는 사람이다.

“저기요!”

“네? 저요?”

“피티아 임원은 어디로 갔어요?”

임원은 세를린의 얼굴을 보더니 화들짝 놀란다.

“초, 총수님?! 빈센트 총수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피티아 임원 어디로 갔냐고요.”

“···네? 누구요?”

“피티아 임원 몰라요? 크로노스 서열 1위 임원 마야 피티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죄,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로선 그런 분의 성함을 들어본 적이···.”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른다는 말인가.

세를린은 신경질적으로 개인실의 문을 닫는다. 이어서 개인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봐요! 여기에 버젓이 적혀있잖···!”

「임원 개인실」

「1_펠릭스 세빌 아마도라」

“서열 1위라면···. 혹시 펠릭스 임원님을 찾고 계신 건가요?”

***

세를린은 침울한 얼굴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알파 님이 불러온 지옥에서, 저는 장로회의 무고한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멀쩡했던 거예요. 알파 님께서 제게는 특별히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후에 장로회의 조치는 어떻게 됐습니까?”

“알파 님은 제게 강조하셨어요.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일원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손대지 않는다고. 딱히 이 일을 다른 일원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지도 않으셨어요. 이건···”

세를린은 또박또박 말한다.

“이건 자연현상과 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대기업 본사를 마비시키고 직원들까지 그렇게···. 전자적인 정보나 물리적인 세계의 정보나 한순간에 바꿔버리는, 초월적인 능력이네요.”

“그리고 제가 알파 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항의했어요. 제가 괜찮다는데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구시냐, 사람 한 명을 이렇게 쉽게 지워버려도 되는 거냐···. 카파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라고···.”

“그랬더니요?”

“제 생각과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어요.”

“···.”

“강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무모한 발악이고, 약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도 약함을 증명하는 것이며,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그 말을 알파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를 봐가면서 이빨을 드러내라고 하셨어요. 제게 경고하신 거죠.”

로페즈는 묻는다.

“2558년이면 41년 전이잖아요. 그때도 장로회의 일원들이 지금과 거의 같았어요?”

‘감마는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요. 이후에도 41년에 걸쳐서 몇 명인가는 더 숙청당했어요. 큰 실수든 작은 실수든, 예외 없이 지워졌죠. ···지금 장로회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 계시잖아요?”

“네.”

“제 아래에 있는 일원들의 자리는 다 한 번 이상은 숙청된 적이 있다고 보면 돼요. 그리고 장로회의 역사를 통틀어 생각해보면···. 제가 세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세타의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겠죠. 다른 자리들도 마찬가지고요.”

‘장로회의 탄생 이래 얼마나 많은 일원들이 알파에게···.’

그건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 많았을 권력자, 능력자들 중 단 한 명도 알파에게 대항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니까.

지금 장로회에서 두 번째로 높은 베타가 여전히 베타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세 번째로 높은 감마가 여전히 감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그들의 태도에서 알파에게 거스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베타는 무조건 알파가 옳다고 하고 감마는 무조건 규칙을 중시하니까.’

“궁금하신 건 더 없으세요?”

세를린에겐 깊은 상처가 있었다. 알파에게 입은 상처다.

하지만 알파의 존재가 너무도 절대적이어서 복수심이나 반감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결국 로페즈는 솔직하게 사과한다.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됐어요. 알레쉬 말고 사람한테 말하니까 좀 후련하기도 하니까요···.”

“아, 그러면 여기 있는 알레쉬는 결국 사람이었던 건가요?”

“돌아가신 전 비서처럼 잘 하길래 이름만 딴 거예요. 관련은 없죠.”

“관리자님의 아픔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알레쉬는 로페즈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총수님. 제가 돌아가서 생각을 좀 해볼 겁니다. 그 이상 현상의 원리가 무엇인지를요.”

“네.”

“뭔가 짐작되는 부분이나 알아낸 부분이 있다면···. 알려드릴까요?”

로페즈의 배려에 세를린은 즉답한다.

“모르는 채로 있고 싶네요. 알고 싶지 않아요. 그분에 한해선···.”

***

로페즈는 옵시디아몬 본사로 돌아왔다.

현재로선 도저히 정체를 알 수도 없는 알파에 대한 것은 잠시 미뤄두고, 자신을 적대하는 나머지 두 명에 대한 것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래, 말해봐.”

- 출처는 피스포트리스가 수집한 정보입니다.

피스포트리스는 라디에크에서 카네기의 곁을 지키고 있다. 카네기는 피스포트리스의 권한자가 자신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은 로페즈가 피스포트리스의 진짜 권한자다.

- 카네기는 라디에크 항성국가의 정치인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사적인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일부 도청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알아낸 유의미한 정보가 있습니다.

- 그들의 정부는 라디에크의 외곽 행성에서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중인 테러리스트, 알 샤이탄의 반군 중 전장지휘관 역할을 하는 자를 가까스로 생포하여 자백제로 심문했다고 합니다.

- 그리고 심문 도중에 반군은 ‘제록시스 군주’를 언급했습니다.

“제타에 해당한다는 놈?”

- 네.

‘네?’

평소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나.

“아무튼, 그래서?”

- 그들 정치인의 주장에 따르면 반군은 ‘모든 것이 제록시스 군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고 진정한 통치를 받아들여라.’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제록시스가 알 샤이탄을 가이우스 다음의 도구로 쓰고 있네.”

- 또한 그들 정치인은 카네기의 집 앞에 있는 피스포트리스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이는 관리자님께서 라디에크에 접근하여 알 샤이탄을 저지할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괜찮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 카네기는 피스포트리스로 주제를 돌린 후, 관리자님과 옵시디아몬의 무기사업에 대하여 그들에게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역시 카네기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라디에크 정부로 사업을 확장할 때네. 카네기의 소개를 받으면 간단한 일이야.”

- 그곳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알 샤이탄에 위해를 가하면 장로회에서 규칙 위반의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난 제록시스를 막으려는 게 아니야.”

「0_0?」

뜬금없는 말처럼 들렸나 보다.

“나는 다른 항성계로 무기사업을 확장하고 싶은데, 마침 카네기가 괜찮은 연줄이지. 그래서 카네기의 소개로 라디에크 정부에 병기를 팔고 ‘시연회’를 위해 테러리스트를 ‘이용’하는 거야.”

- 그런 ‘설정’입니까?

“테러리스트 새끼들 목숨으로 무기를 테스트한다는데 누가 태클을 걸겠어?”

테러리스트를 죽인다는 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세간에서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반대로, 세간에서는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여긴다. 로페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들은 해충보다 더 해로운 인간들이니까.

“난 알 샤이탄이 제록시스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물론 애초에 제록시스가 제타인지도 나는 모르는 일이고.”

- 매우 효율적인 접근입니다.

일전에, 피스포트리스를 선물하면서 카네기에게 말은 해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디에크를 소개해달라고.

모든 상황과 설정이 맞아떨어진다.

“관련 팀장들이랑 비서실에 알려”

- 어떤 명목으로 알리면 되겠습니까?

진짜는 전쟁광을 막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옵시디아몬이 나서서 라디에크의 악당을 처단하여, 무고한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완벽한 설정이다.

“테라포밍 자본 마련을 위한 군수산업 확장. ···에 관련해서 회의가 생겼다고 알려.”

-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대로 알 샤이탄을 친다. 마침 새로운 병기도 실전에서 테스트해야 했던 참이다.

< 24. 성난 거인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