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123화 (122/183)

< 24. 성난 거인 (2) >

***

8월 5일.

킬파인더의 네트워크에 침입했던 트랜센던서가 하이퍼 마인드로 복귀했다.

- 2일 전, 킬파인더는 분석 불가능한 사이버 공격에 당했습니다.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 어떤 경로로 침투한 것인지, 어떤 데이터를 사용한 것인지 분석할 수 없었습니다.

로페즈는 하이퍼 마인드의 서버실에서 생각에 잠긴다.

‘프녹스 씨가 있었으면 알기 쉽게 설명해 줬을 텐데···.’

그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 관리자님께서는 장로회의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여 카파를 고발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알파가 카파의 숙청을 결정했다고 판단하여, 해당 사이버 공격이 킬파인더에 들어왔을 때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센서에 간섭했습니다.

- 그러나 해당 사이버 공격이 저의 존재까지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정보가 해당 사이버 공격의 주도자에게 탈취당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네트워크 탈출을 선택했습니다.

- 탈출 직후 루비코의 인터넷 흐름에서 킬파인더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결과, 킬파인더의 정보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오셀로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동시에 말소되었습니다.

장로회에서 작업의 정점으로 카파 자리를 받은 오셀로.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알파가 그를 숙청한 것이다.

“실종 기사나 뉴스 같은 건?”

- 없습니다. 킬파인더의 경영자 정보가 수정되었고 오셀로의 실종에 대하여 신고하거나 발설한 기록도 없었습니다.

“단체로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건가.”

- 상식적으로 킬파인더의 사원들이라면 오셀로의 실종을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해당 사원들을 감시한 결과, 그들은 평소와 다른 점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미친···.”

- 대표가 바뀌었어도 그들은 평소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바뀐 대표 역시 자신이 본래부터 킬파인더의 대표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파가 오셀로를 지우고 그들의 기억까지 조작한 것 같다.

“그런데 나처럼 오셀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긴 할 거 아니야? 킬파인더는 여러 항성계에서 오는 거물들의 의뢰도 받는 업체인데.”

-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 그들이 가진 오셀로와 관련된 기억과 그들이 남긴 오셀로와 관련된 것들은 미궁에 빠질 뿐입니다. 오셀로는 사라졌고, 오셀로와 관련된 인터넷 기록의 대부분이 지워졌습니다. 때문에 오셀로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그저 미스터리한 사건이 하나 남겨진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라질, 괴담이나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 용병들을 일일이 납치해서 뇌를 건드렸을 것도 아니고···.”

- 숙청의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알파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숙청 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가 탈출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본 건 뭐야?”

- 가시광선, 적외선, 무게 감지, 감시 카메라 등 킬파인더에서 가용한 센서로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장치를 동원해도 인식할 수 없는 침투가 있었다. 그렇게 해석된다.

-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오셀로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속적인 소음을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슨 소음?”

- 그는 자신의 비서에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로 확인한 결과, 실제로 문을 두드린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비서는 문제의 소음을 듣지 못하였다고 했고, 저 또한 문제의 소음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환각인가···.”

- 이어서 오셀로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열고 창밖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권총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총구를 겨눈 다음,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습니다. 당시의 오셀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 그가 사무실을 빠져나온 직후부터 명확히 저를 향한 사이버 공격이 감지되어 탈출했습니다.

역시나 끝까지 들어봐도 진실은 알 수 없다.

***

미르니에서 의사결정회 회의가 끝난 다음, 세를린은 로페즈와 함께 가니메데의 어느 카페에 앉았다.

창밖에서 보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한 쌍의 남녀가 데이트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래서 총수님께서 보신 것이 무엇인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매장과 분리된 널찍한 방으로 휴머노이드가 들어온다. 그녀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알레쉬가 매장 직원들을 대신하여 이 방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진짜로 오셀로가 죽은 거예요? 숙청당해서?”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확실치 않습니다.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죠. 오셀로라는 사람 자체가 지워졌습니다. 현실에서든 인터넷에서든 기억에서든요.”

“진짜 위험한 도박을 하셨네요. 그 킬파인더를 해킹할 생각을 다 하시다니···.”

“오셀로가 먼저 내 사람들을 죽였으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로페즈는 알레쉬가 가져온 커피를 차분히 음미한다.

세를린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관리자님의 방금 발언으로 인해 긴장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트랜센던서는 세를린의 뇌파나 손목시계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아니라, 그녀를 보고 있는 로페즈의 시선에서 오로지 시각적 데이터만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감이네요.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장례식···. 치르셨다고···.”

“괜찮습니다. 어쨌든 오셀로는 모두에게서 잊히는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그걸로 조금 위안이 됩니다.”

“아무튼 알파 님께서 회장님의 주장을 들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녀가 질문을 자꾸만 회피하려고 한다.

“총수님?”

“네?”

“저는 알고 싶습니다.”

“왜요, 뭐를요?”

“알파 님의 이야기만 나오면 위축되는 총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보셨길래 그러시는 건지 알고 싶다는 말씀을 아까부터 드리고 있습니다.”

“알려고 해서 좋을 것 없어요. 알 수도 없고요.”

“규칙 위반은 아니지 않습니까. 옵시디아몬과 미르니의 협력. 저희 둘이 현실에서 접촉이 있고 저희 둘이 서로 장로회로서 만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원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요···.”

“일원 둘이 만나서 알파 님에 대하여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 이건 규칙 위반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회장님이 자꾸 알파 님을 파헤치려고 하잖아요.”

“어차피 파헤치려고 해도 파헤칠 수 없는 분이시잖아요? 알파 님은.”

“···.”

“겪었던 경험을 알려고 하는 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요.”

「이전에 비해 관리자님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물쭈물하면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니 거의 다 넘어온 것 같다.

로페즈는 세를린에게 살짝 들리도록 한숨을 내쉰다.

“저, 의사결정회에 들어가서 총수님 많이 도와드렸는데···. 세를린 총수님한테 조금은 서운하네요.”

“아니···.”

“저한테도 절대 말씀을 못하실 것 같다면 어쩔 수 없네요. 이쯤에서 포기하죠.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탁.

로페즈는 다 마시지도 않은 커피를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자꾸 귀찮게 여쭤봐서 죄송했습니다. ‘빈센트’ 총수님.”

드륵.

그대로 의자를 뒤로 빼서 일어선다. 아주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회장님.”

그러자 휴머노이드 알레쉬가 로페즈의 앞을 가로막는다.

“제 관리자님께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로페즈는 마지못하는 척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인공지능으로 먹고사는 제가 이 친구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겠네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커피의 표면만 내려다보던 세를린이 고개를 든다.

“아, 알레쉬. 여기 방음은 완벽한 거지?”

“미르니의 협력체가 관리하는 매장입니다. 도청 위협은 없습니다.”

“으음······.”

“총수님께서 제게 뭔가를 말씀해주시면 제가 나름의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몰랐던 것의 진상을 유추할 수 있게 되면서, 두려움이 누그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잖아요.”

세를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가까스로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꺼낸다.

“그날은···. 그때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줄 알았어요. 태양계의 자원 무역을 쥐락펴락하는, 거대기업 미르니의 총수니까요.”

로페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녀가 어렵사리 꺼내게 만든 과거의 기억이다.

“알파 님께서는···. 누군가에겐 천사 같고 누군가에겐 한없이 악마 같은···. 그런 분이세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우리 모두를 심판하고 통제하는 그런···. 유스티티아(Justitia) 같은 분이시죠.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요.”

“···정의라고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알파 님께서도 본인만의 기준이 있으시겠죠. 그리고 이건···. 장로회에서 저와 알파 님만 알고 있는 이야기에요.”

이제야, 그녀가 본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

때는 2558년. 로페즈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41년 전의 장로회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오셀로가 카파가 되기 전에는 전대 카파에 해당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마야 피티아(Maya Pythia). 태양계 최고의 궤도건축기술을 보유한 토성 타이탄의 대기업, 크로노스의 서열 1위 임원이다.

짧은 흑발이 매력적인 피티아는 장로회의 카파로서 ‘공학의 정점’이다.

“언니. 내 꿈은 인간이 천체에 의지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종족이 되도록 하는 거야.”

피티아와 세를린은 사업적으로 접촉하여 종종 이야기를 나누다가 깊은 관계가 되었다.

“천체라는 것도 환경이고 한정적인 자원이잖아? 아주 먼 미래에는 우리 은하계에 있는 천체만으론 부족해질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는 천체라는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 되어야 하지.”

두 사람은 상의를 탈의한 채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누가 봐도 애인처럼 보이는 관계다.

“천체라면 행성이나 항성을 말하는 거야?”

“응. 미래에 핵융합 기술이 더 발달하면 작은 태양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어?”

“그건 지금도 어디선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을 거야.”

세를린은 그렇게 말하며 사랑에 빠진 눈으로 피티아의 앞머리를 쓰다듬는다.

“입체적인 중력 조작 기술은 이미 있잖아. 언니도 알지?”

“응.”

“사람이 태양을 만들고 중력이 있는 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우리가 태양이나 행성에 의지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그렇구나.”

“막말로 테라포밍이라는 게 필요 없어질 수도 있는 거지. 언젠가 별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과학자들이 방법을 찾겠지.”

피티아는 이불을 꼭 쥐고 상반신만 일으킨다.

“아니야. 언니.”

“뭐가?”

“과학자들이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러면 네가 직접 찾기라도 하려고?”

“나도 할 수 있어. 남이 찾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나도 함께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더 빠르잖아.”

젊은 나이에 장로회에 들어온 피티아가 마냥 귀엽고 당돌해 보인다. 그래서 세를린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처음에 접근은 세를린이 했었다.

피티아는 공학의 정점. 그녀는 크로노스를 태양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로 도약시켰고 세를린은 그런 그녀의 공학자들을 미르니의 성장에 이용하고 싶었다.

피티아가 장로회에 막내로 들어왔을 때, 처음엔 그런 의도로 접근했었다. 처음에는.

“멋있네.”

“난 가만히 기다리지만은 않을 거야. 최선을 다할 거라고. 지금도 언니한테 말은 안 하고 있는데,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언제나 널 응원할게.”

“···언니. 나중에 있잖아.”

“응.”

“때가 된다면 우리, 합치자.”

피티아는 그 말을 하면서 얼굴에 홍조를 띤다. 이에 세를린은 대놓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나랑 결혼하자고?”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러면?”

“크로노스랑 미르니랑 하, 합치자는 말···. 이었는데···.”

“그럼 그거 합치는 날에 결혼도 하자.”

“어, 어···?”

“싫어? 이왕 합칠 거면 제대로 합쳐야지.”

“나는···. 싫지는 않은데···.”

“너도 생각 있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사랑하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싫지는 않은데, 언니는 양성애자잖아.”

“그게 뭐 어때서? 난 네가 좋은데. 너도 내가 좋잖아.”

“나는 동성애자인데 언니는 양성애자라서, 나중에 남자라도 생기면···. 아무래도 언니는 여자니까 나보다는 남자가 더 좋지 않겠어?”

세를린은 피티아의 코를 꼬집는다.

“아! 왜!”

“그러니까, 내가 더 성공해서 진짜 멋진 남자가 찾아오기 전에 얼른 채가라는 거야.”

“···내가 그래도 돼? 나는 언니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아무 상관없어. 우린 조건이 완벽하게 맞잖아. 같은 태양계, 같은 장로회, 같은 직업, 같은 취향.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응···.”

“사랑해. 피티아.”

피티아는 어찌할 바를 몰라 이불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만 끄덕인다.

“귀엽기는.”

세를린은 그동안 일에 치이고 돈에 치여서 사랑은 상상도 못했다. 기계처럼 위로 오르기만 했던 자신의 가슴속에 소녀 같은 사랑이 깃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까지만 해도 세를린은 피티아와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 명백한 규칙 위반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녀를,

알파가 숙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24. 성난 거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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